주간동아 1025

2016.02.17

국제

샌더스의 정치혁명이 시작됐다

상·하원 통틀어 ‘가장 왼쪽에 선 사회주의자’…월스트리트에겐 ‘저승사자’

  • 부형권 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bookum90@donga.com

    입력2016-02-16 14:5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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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오와로부터 기쁜 소식이 들어왔어요. 저랑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부 장관의 지지율 격차가 48%p밖에 안 된대요.’
    지난해 여름 어느 날 민주당 대통령선거 경선주자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75·버몬트 주)은 가까운 지인들에게 이런 내용의 e메일을 보냈다. 첫 경선 지역인 아이오와에서의 참담한 여론조사 결과를 전하며 ‘샌더스식 썰렁한 유머’를 구사한 것이다. 당시 그는 국정 경험, 대중 인지도, 자금력 등 모든 면에서 ‘클린턴 대세론’에 대항하기엔 역부족이었다.
    그러나 2월 1일 아이오와 주 코커스(당원대회)의 실제 투표 결과는 그야말로 혁명적이었다. 클린턴 49.8%, 샌더스 49.6%로 0.2%p 차. 지난해 여름의 48%p 차가 완전히 사라져버렸다. 2월 9일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예비경선)에서 샌더스는 60.40% 득표율로 클린턴(37.95%)을 22.45%p나 앞섰다. 미국 연방 상원과 하원을 통틀어 ‘가장 왼쪽(좌파)에 있는 사회주의자’ 샌더스가 표심의 선택을 받은 것. 미 언론들은 “샌더스의 정치혁명이 성공(대통령 당선)할지 아직 확신할 수 없지만, 혁명이 시작된 것만은 분명하다”는 평가를 쏟아내고 있다.



    고교생 샌더스가 하버드에 합격했다면

    샌더스는 미국 워싱턴 정치의 이단아이자 반항아다. 그 자신도 “남들이 다 인정한다는 이유만으로 나도 따라서 인정하는 걸 체질적으로 싫어한다”고 말해왔다. 그는 대선 출마를 선언하면서 선거용 자서전이나 에세이를 발간하지 않은 사실상 유일한 후보다.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 연방 하원의원, 연방 상원 의원 등 각종 선거 때마다 기자들이 “유권자는 당신이 누구인지,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알 권리가 있다”며 자서전 쓰기를 권했다. 그러나 그는 “내 삶의 궤적에 대한 가십기사 말고 심화하는 임금 불평등 같은, 미국이 직면해 있는 심각한 문제들을 다뤄달라”고 반박해왔다.
    이 때문에 그는 자신이 사회주의자가 된 배경과 이유를 소상히 밝힌 적이 없다. 미 언론들은 그의 학창시절 친구들의 증언, 각종 기고문 등을 짜깁기해 그의 ‘의식화’ 과정을 추적할 뿐이다. 1941년 9월 8일 뉴욕 브루클린에서 폴란드 출신 유대인 아버지와 러시아계 유대인 집안 출신의 뉴요커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집안 형편을 ‘중하층(중산층 중 하위 그룹)이었다’고 회고한다.
    그를 ‘사회주의 길’로 처음 안내한 사람은 그보다 여덟 살 많은 형(래리)이었다. 샌더스 자신도 훗날 “내 정치적 사고가 처음 형성되는 데 형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을 정도. 브루클린 칼리지에서 정치단체 ‘젊은 민주당원’에서 활동하던 형 래리는 도시 재개발 반대 운동 등에 어린 샌더스를 데리고 다녔고, 심리학이나 정치학 책은 물론 사회주의 관련 서적도 읽혔다.
    형은 대학 졸업 후 하버드대 로스쿨(법학대학원)에 진학했다. 샌더스도 형을 따라 하버드대에 가고 싶었으나, 당시 하버드대엔 이른바 ‘유대인 쿼터’(입학생의 다양성 확보를 위해 유대인을 10% 이상 뽑지 않는 정책)가 있었다. 샌더스의 고교시절 친구들은 “샌더스는 정말 하버드대에 가고 싶어 했다. 불합격 통보를 받고 크게 낙담하던 모습이 생생하다”고 회고한다.
    이후 샌더스는 시카고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뽑혔지만 투병 중이던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브루클린 칼리지 진학을 선택했다. 대학 입학 직후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동아리 설명회에서 ‘유진 데브스 클럽’이란 사회주의자 모임을 처음 접하게 된다. 유진 데브스(1855~1926)는 미국 노동조합 운동가이자 사회당 대선후보를 지낸 ‘대표적 사회주의자’. 샌더스는 “(고교 시절 책에서만 봤던) 사회주의자들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된 것이 충격적이고 흥미로웠다”고 회상했다.
    1959년 어머니를 여읜 샌더스는 61년 이른바 ‘붉은 학교(Red School)’라는 별명을 갖고 있던 시카고대로 편입해 본격적인 사회주의자의 길을 걷게 된다. 그는 ‘인민의 젊은 사회주의자 연맹’에 가입해 러시아혁명, 카를 마르크스와 블라디미르 레닌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인종차별 반대, 반전평화 시위 등을 주도하다 체포되기도 했다. 샌더스가 간절히 원했던 ‘아이비리그’(동부지역 8개 명문대) 하버드대에 합격했다면 ‘75세 사회주의자’는 존재하지 않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미 언론들은 전한다.



    “불평등한 세상이 나를 불러냈다”

    “당신 나이가 75세다. 민주당 후보가 돼도, 대통령에 당선돼도 최고령 기록을 갈아치우게 된다. 지금까지 뭐하다 이제야 대선에 뛰어든 것인가.”
    4선 시장, 8선 연방 하원의원, 재선 상원의원을 지낸 샌더스가 요즘 자주 듣는 질문이다. 그는 “임금 상승분 등 새로 생겨나는 부(富)의 90% 이상을 최상위 1% 부자들이 다 가져간다. 이렇게 게임 룰이 심각하게 (한쪽으로) 기울어진 불평등한 세상의 모순이 나를 징발한 것”이라고 답한다. 분노한 민심은 자기 목소리를 들어줄 누군가를 찾고 있었고, 그게 우연히 샌더스 자신이었을 뿐이라는 논리다.
    실제로 강성진보 시민단체 무브온(MoveOn) 등은 ‘월스트리트의 보안관’이라 부르는 민주당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 주)에게 오랫동안 “대선에 나서 달라”고 요청해왔다. 그러나 워런 상원의원은 “아직 때가 아니다”라며 끝내 고사했고, 그 대신 샌더스를 뒤에서 돕고 있다. 무브온 등도 샌더스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진보 진영에선 샌더스가 민주당 후보가 될 경우 워런을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끊이지 않는다. ‘샌더스-워런’ 커플은 월스트리트가 상상도 하기 싫어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샌더스가 경쟁자인 클린턴과 가장 큰 차별성을 보이는 부분이 바로 미국의 대형 금융자본 세력인 월스트리트와의 분명한 대립각이다. 월스트리트를 향한 그의 외침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너무 커서 망하게 할 수 없는 기구(대형은행)는 존재해서도 안 된다(If it’s too big to fail, it’s too big to exist)”는 것. 그의 주요 공약 역시 대부분 월스트리트와 대기업들이 난색을 표하는 과격한 정책들이다.
    월스트리트의 대표적 거물인 로이드 블랭크파인 골드만삭스 회장은 최근 TV에서 “샌더스의 주장은 위험하다”고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진보 진영으로부터 융단폭격을 당했다. 기자가 만난 한 대형은행 임원은 익명을 전제로 “마이클 블룸버그 전 뉴욕시장 등 중도세력의 지지를 받는 후보가 등장하기를 기대한다. 샌더스 열풍이 ‘찻잔 속 태풍’이 되기를 조용히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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