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5

2016.02.17

경제

나 홀로 상표출원 도전하기

‘알바천국’ 되고 ‘김밥천국’ 안 되는 이유…흔한 보통명사와 ‘기술적 표장’은 사용 불가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6-02-16 14:4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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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부 한지혜(38·가명) 씨는 생활소품 디자이너다. 3년 전부터 직접 만든 손가방, 인형 등의 사진을 인터넷 개인 블로그에 올리기 시작했다. 한씨의 작품이 예쁘다는 소문이 나면서 그의 블로그로 누리꾼들의 상품 구매 문의가 잇달았다. 한씨는 본격적으로 사업을 펼치고자 자신의 성을 따서 ‘한스’가 포함된 브랜드명으로 상표등록을 준비했다. 관련 정보를 알아보니 변리사 등 대리인의 도움을 받으면 최소 수십만 원의 중개료를 내야 했다. 한씨는 중개료를 아끼고자 직접 특허청을 방문해 상표를 출원하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이다.
    한씨처럼 ‘셀프 상표등록’을 진행하는 자영업자가 늘고 있다. 특허청에 따르면 직접 상표를 등록하는 경우는 2010년 1만1441건에서 2011년 1만5060건, 2012년 1만4927건, 2013년 1만8175건, 2014년 1만8611건으로 증가했다. 상표를 출원하는 경우도 2010년 3만1405건에서 2011년 3만4807건, 2012년 3만5210건, 2013년 3만9640건, 2014년 3만6244건으로 대체적인 증가세를 보였다. 전체 상표출원·등록의 25~27%에 해당하는 수치다.




    40만 원 중개료 아끼려다…

    상표란 상품을 생산 및 판매하는 사람이 그 상품을 타인의 것과 식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문자, 기호, 도형 등을 말하며 주로 브랜드명이나 로고에 해당한다. 특허청에 등록된 상표가 아니더라도 사용은 가능하다. 하지만 미등록 상표는 독점적 사용 권한이 없기 때문에 누구나 쓸 수 있어 유사 상표가 난립할 가능성이 있다. 누군가 상표를 등록하면 상표에 대한 독점적 사용 권리를 갖기 때문에, 그와 같거나 비슷한 상표를 썼다가는 상표권 침해 소송 등 분쟁에 휘말릴 수 있다. 따라서 남들이 자신의 사업체명, 브랜드명을 베끼거나 유사한 이름을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상표등록의 주된 이유다. 특허청 상표디자인심사국 관계자는 “최근 4~5년 사이 여성의 쇼핑몰 창업이 유행하고 개인 소자본 창업자가 증가하면서 자신의 상표권을 지키고자 직접 상표출원을 하는 경우가 늘었다”고 설명했다.
    상표출원 시 변리사의 도움을 받으면 상표별로 30만~40만 원의 중개료가 발생한다. 여기에 특허청에 내야 하는 수수료가 상품류 또는 서비스업류의 경우 개당 5만6000원씩 발생한다. 추후 등록이 결정되면 존속기간 10년을 기준으로 22만120원의 등록관납료가 부과된다. 이를테면 패션쇼핑몰 운영자가 의류, 신발, 가방, 쇼핑몰류 등 4개 상표를 등록할 경우 약 280만 원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대리인 없이 혼자 진행하면 약 100만~160만 원을 절약할 수 있다.
    스스로 상표출원을 할 경우 특허청을 방문하거나 특허청이 운영하는 특허정보검색 사이트 ‘키프리스’를 통해 유사 상표가 없는지 확인하고 업종, 상품 및 서비스별로 정보를 기입해 신청하면 된다. 심사 결과는 7~8개월 후 나오는데 출원에 대한 거절 사유가 없으면 특허청은 그 출원 내용을 상표공보에 게재한다. 그 후 2개월 동안 다른 업체가 이의 신청을 하지 않으면 최종적으로 상표를 등록할 수 있다.
    하지만 비용을 아끼려 혼자 상표등록을 시도하다 낭패를 볼 위험성도 있다. 의류를 제작하는 김미혜(34·여) 씨는 최근 특허청으로부터 상표등록 불가 통보를 받았다. 특허청이 김씨에게 보낸 의견제출통지서에는 ‘지정 상품은 타인의 선등록 상표 제????호와 1요부의 칭호가 동일 또는 유사한 상표이므로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7호에 해당해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다’고 쓰여 있었다. 김씨는 “쓰려고 했던 상표명을 키프리스에서 검색했을 때는 유사 상표가 없는 것으로 나왔다. 심사 결과를 8개월이나 기다렸는데 시간과 돈 모두를 낭비한 꼴이 됐다”고 안타까워했다.



    ‘한라산’ ‘월드’ ‘마을’ 같은 단어의 함정  

    일반인은 대부분 키프리스에서 동일·유사 상표를 검색한다. 하지만 이 경우 법리적 지식이나 요령이 미숙해 유사 상표를 확인하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 예를 들어 ‘빨간펜’ 또는 ‘빨간펜공부방’을 검색하면 교육브랜드의 상표가 등록돼 있다. 하지만 ‘빨간펜학습방’을 검색하면 등록된 상표가 없는 것으로 나온다(2016년 2월 12일 기준). 이에 ‘빨간펜학습방’이라는 상표를 출원하면 특허청으로부터 기존에 등록된 상표와 호칭이 유사하다는 이유로 등록 거절을 통보받을 수도 있다. 상표분석사이트 ‘닥터브랜드’ 운영자인 진병욱 변리사는 “일반인의 경우 상표명칭 전체를 검색해 동일한 상표가 없으면 안심하고 등록을 신청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전문가라면 상표명칭란에 ‘빨간펜’을 검색한 후 공부방 관련 지정서비스업에 해당하는 유사군코드(S120905, S120999, S120903)를 입력해 선행 상표가 있는지 확인한다. 비전문가인 개인은 이런 부분을 놓치기 쉽다”고 지적했다.
    상표의 식별력을 가늠하지 못하고 출원했다 등록을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다. 누구나 사용하고 싶어 하는 흔한 명칭은 특정 업체에게만 독점적 사용권을 부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자동차를 ‘카(car)’라고 하는 보통명칭, ‘한라산’ 등의 지리적 명칭, 굽 높은 구두를 ‘키높이’라고 하는 기술적 표장, 그 밖에 식별력이 부족한 ‘~월드’ ‘~나라’ ‘~마을’ 등이 흔한 예다.
    분식 프랜차이즈업체 ‘김밥천국’은 흔한 보통명칭을 사용해 상표등록이 불가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김밥천국은 2001년 상표출원을 했지만 특허청은 등록을 거절했다. ‘김밥’이라는 일반명사와 보편적으로 ‘최고’라는 의미를 담은 ‘천국’이 결합한 단어는 상표의 식별력이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2016년 2월 12일 현재 키프리스에 따르면 ‘김밥천국’ 단어를 포함한 상표 가운데 총 26개가 등록을 거절당했고, 19개가 등록돼 있다. 등록된 상표는 대부분 ‘김밥천국’ 앞뒤에 ‘kimbab’ 등의 영어단어를 붙였거나 로고 디자인이 특이한 편이다.
    특허청 상표심사정책과 관계자는 “김밥천국이라는 문자만으로는 식별력이 떨어진다. 누가 봐도 ‘김밥이 맛있는 곳’이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 때문”이라며 “등록된 상표 대부분은 도형, 즉 로고 디자인에 차별성을 줘서 승인된 측면이 있다. 업종이 같고 상호명이 유사해도 로고의 식별력이 뚜렷하면 등록 가능성이 높아진다”고 설명했다.



    등록 후에도 분쟁 가능성은 남아

    상표가 기술적 표장인지 여부는 개인이 알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시대나 판단하는 주체에 따라 기준이 바뀌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 정보제공업체 ‘알바천국’의 상표권 소송 사태가 그 예다.
    알바천국을 운영하는 (주)미디어윌네트웍스는 2013년 2월 특허청에 상표를 출원했지만 같은 해 10월 등록을 거절당했다. 특허청은 ‘아르바이트의 약칭인 ‘알바’와 서비스 제공 장소로 통용되는 ‘천국’이 결합한 것으로, 부업을 소개하거나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곳으로 인식하는 성질 표시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서비스 내용을 직접적으로 표시한 기술적 표장이라는 것이다. 미디어윌네트웍스는 2014년 1월 “알바천국은 지정서비스업의 성질을 간접 또는 암시적으로 표시했다”는 의견을 제출했지만 특허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미디어윌네트웍스는 특허심판원에 불복심판을 청구했지만 이마저도 기각돼 특허청을 상대로 상표등록 거절 취소를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이 소송은 2016년 1월 21일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이 확정됐다. 대법원은 “알바천국이라는 상표는 ‘직업을 소개하고 정보를 제공하는 장소’를 직접적으로 표시하지 않는다. 따라서 독점적 사용 권한을 주는 것이 공익상 부당하지 않다”며 미디어윌네트웍스의 손을 들어줬다.
    한 상품류에서 지정한 여러 상품 가운데 하나가 기존에 등록된 상표와 비슷하면 나머지 상품들의 상표등록도 거부될 수 있다. 예를 들어 모발 관련 화장품 상표를 출원하려는 A씨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A씨는 특허청이 지정한 ‘두발 및 두피화장품’에 해당하는 모발염료, 모발영양제, 모발용 왁스 등 100개 상품을 ‘창포머릿결’이라는 상표명으로 출원했다. 그러나 기존에 다른 사업자가 등록한 ‘창포머릿결’ 상표의 모발염료가 있다면 100개 상품에 대한 상표등록 자체가 거부된다. 개인의 직접 상표출원을 돕는 ‘마크인포’의 문경혜 변리사는 “이 경우 등록 거부 사유가 되는 상품만 상표출원에서 제외하거나 특허청의 판정에 반박하는 보정서를 쓰면 등록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인은 그 사실을 모르고 등록 자체를 포기하는 편이다. 약간의 법리적 지식이 있으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상표등록 이후에도 안심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경쟁업체로 인한 상표권 분쟁이 발생할 수 있다. 2014년 4월 매일유업은 자사가 2008년 ‘카페라떼 바리스타’ 상표를 등록했는데, 서울우유가 ‘바리스타즈 카페라떼’를 출시하면서 상표권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같은 해 8월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바리스타즈 카페라떼는 전문가가 만든 고품질의 커피음료를 나타내는 기술적 표장으로 상표권 침해가 아니다”며 매일유업에게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복수의 유사한 상표가 등록된 경우 서로 상표권을 침해했다는 이유로 분쟁이 발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 특허청은 ‘여러 개의 비슷한 상표를 등록했다’는 과실에 대한 책임이 없다. 특허청 관계자는 “상표권 분쟁은 사전에 발생 가능성을 예상하기 힘들기 때문에 특허청이 분쟁에 개입하거나 책임질 일은 거의 없다”며 “개인은 상표를 직접 출원하기에 앞서 법리적 지식의 한계 때문에 상표등록을 못 하거나 시간, 비용을 낭비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나 홀로 상표’ 출원에서부터 사용까지, 안전하게 하는 방법
    ▼지정 상품은 폭넓게 설정, 문자·로고 만들었으면 둘 다 사용해야 ▼

    혼자서 상표를 출원하고 등록, 사용하는 과정은 녹록지 않다. 등록까지 마쳐놓고 사용 중 주의사항을 지키지 않아 손해를 볼 수도 있다. ‘나 홀로 상표’를 실수 없이 출원하고 사용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출원 시에는 유사군코드 안에서 상표명의 어절을 분리해 검색해본다. 예를 들어 ‘통통닭집’이라는 상표가 이미 등록돼 있는데, ‘통통치킨’이나 ‘통통삼계탕’을 검색할 경우 상표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기존 상표명과 유사하기 때문에 등록을 거절당할 여지가 충분하다. 등록된다 해도 유사한 선행 상표를 확보한 권리자가 상표 사용 금지나 손해배상을 청구할 위험이 있다.
    사업 확장을 염두에 둔다면 지정 상품을 폭넓게 설정해야 한다. 추후 권리 범위를 넓게 확보하기 위해서는 치킨 관련 서비스업(유사군코드 S120602)과 함께 치킨 관련 상품(G0703)에도 함께 상표등록을 받는 것이 유리하다.
    식별력 있는 문자(명칭), 도형(로고)을 모두 상표로 등록하면 좀 더 안정적으로 상표권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문자와 도형 상표등록을 모두 받아두고 실제로는 명칭만 사용할 경우 해당 상표를 사용한 것으로 인정받지 못할 수 있다. 상표분석사이트 ‘닥터브랜드’ 운영자인 진병욱 변리사는 “타인이 불사용취소심판을 제기했을 때 심판청구일로부터 과거 3년간 상표 사용 실적이 없으면 취소 심결처분을 받게 되므로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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