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2

2016.01.20

커버스토리 | 엄마가뿔났다

누리과정 4년의 악몽, 착한 정책 나쁜 결과

배부른 유치원, 허리 휘는 부모, 아이는 볼모

  • 김유림 기자 mupmup@donga.com

    입력2016-01-18 10:1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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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리과정(만 3~5세 무상보육) 예산 미편성에 따른 유치원의 보육대란이 시작됐다. 1월 4일 경기도교육청의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이 도의회 해당 상임위원회 및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심의 과정에서 전액 삭감된 것은 물론, 본회의에서 예산안 처리가 되지 않아 준예산 사태를 맞았다. 경기 외에도 서울과 광주·전남의 유치원 누리과정 예산 역시 시도의회에서 전액 삭감됐다. 그뿐 아니라 서울과 경기, 세종, 강원, 전북, 광주, 전남은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을 한 푼도 편성하지 않았다. 지난해 말부터 학부모들 사이에서 떠돌던 ‘무상보육 중단’이란 괴소문이 결국 현실로 드러나는 모양새다. 현재 학부모들이 누리과정을 통해 지원받는 금액은 유치원(유아 학비+방과후 과정비)은 공립 11만 원, 사립 29만 원, 어린이집은 보육료 22만 원과 방과후 과정비 7만 원 등 인당 총 22만~29만 원이다(표 참조).  
    2012년부터 시행된 누리과정은 본래 취지만 본다면 분명 ‘착한 정책’이다. ‘아이를 낳기만 하면 나라에서 키우겠다’는 박근혜 정부의 공약은 그야말로 장밋빛처럼 다가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4년간 엄청난 규모의 재원이 투입됐음에도 이번 누리과정 예산 미편성 사태에서도 보다시피 재정과 관련된 치명적 결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데다, 누리과정의 실효성 또한 뚜렷하지 않다. 학부모가 부담하는 보육료가 줄어들었다지만 최근 몇 년 사이 유치원비도 급격히 올라 실효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유치원비는 연평균 6% 이상 올랐고, 누리과정이 3~4세까지 확대된 2013년에는 사립유치원의 경우 원비가 전년 대비 평균 6.9%나 올렸다. 2012년 교육부는 누리과정 확대에 앞서 정부의 유아 학비 지원이 실질적인 학부모의 부담 경감으로 이어지도록 전국 유치원에 원비 동결을 유도하는 ‘유치원비 가이드라인’을 제시했지만 이듬해 유치원 정보공시 웹사이트인 ‘유치원 알리미’를 통한 조사 결과, 전국 사립유치원의 80.2%가 해당 교육청의 가이드라인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이들이 실시한 유치원비 인상률은 16.2%나 된다.
    전국적인 통계를 굳이 들이대지 않더라도 일반 학부모의 유치원비 상승 체감률은 상당히 높다. 실제로 주변에서 보면 대학등록금 뺨치는 비싼 유치원비 때문에 울상 짓는 학부모가 한둘이 아니다. 이들 대부분은 “누리과정으로 정부 지원금을 받지만 실제로 부담해야 하는 원비가 너무 비싸다”고 푸념한다. 서울 강남구 일원동에 사는 주부 A씨는 “3년 전부터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고 있는데 해마다 2만~3만 원씩 원비가 오르고 있다. 아무리 물가상승률이 있다고 하지만 유치원 시설 증축에 들어가는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방과후 과정비도 지원되는 마당에 그 돈이 다 어디에 쓰이는지 궁금하다”며 답답해했다. 서울 구로구 고척동에 사는 B씨는 “연년생 아이를 키워 안 그래도 추가로 내는 돈이 만만치 않은데, 당장 어린이집 지원금이 끊기면 가계에 심각한 타격이 온다. 아이들을 어린이집에 계속 보내려면 아르바이트라도 해야 할 판”이라며 막막해했다.



    보육수당 챙겨 영어유치원 등록도

    2014년 교육부가 유치원 알리미를 통해 공개한 유치원 원비 현황을 살펴보면, 학부모가 부담하는 한 달 원비가 월 70만 원이 넘는 곳도 있다. 정부 지원금 20만 원을 포함하면 원비가 100만 원에 육박하는 수준이다. 1위는 서울 성북구에 위치한 U유치원으로 78만 원이고, 그 뒤로 서울 은평구 Y유치원이 71만 원, 서울 송파구 O유치원이 60만 원, 서울 서초구 S유치원이 54만 원 정도다. 그 밖에도 학부모 부담금이 50만~70만 원대인 곳은 서울·경기권에 10곳이나 된다.


    서울 외곽에 위치한 신도시의 경우 넓은 부지와 호화 시설을 내세워 고액의 유치원비를 산정하는 곳이 많다. 인천 송도국제도시에 사는 주부 C씨는 지난해 신생 유치원 설명회에 참석했다 기분만 상해 돌아왔다고 털어놓았다. C씨는 “수영장에 축구장까지 딸린, 1000여 명 수용이 가능한 유치원이었는데 원비가 국고보조금 빼고 50만 원이나 돼 깜짝 놀랐다. 아이들을 올바르게 보육하고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사업 대상으로 아이들을 이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미련 없이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심지어 유치원 수영장을 주말에는 일반인에게도 개방해 또 다른 장사를 한다고 들었다. 그 유치원을 보내는 학부모로선 기분이 좋을 리 있겠느냐”며 씁쓸해했다.
    경기 용인에 사는 주부 D씨는 아이를 개인부담금이 50만 원에 육박하는 사립유치원에 보내고 있다. D씨의 가장 큰 불만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D씨는 “2년 전 처음 유치원 설명회에 갔는데 원장이 너무 당당하게 ‘어머님들, 나라에서 보조받지 않느냐. 아이들의 교육을 생각해 원비가 비싸다고 생각지 마라’고 해 황당했다. 원장이 미덥지 않아서 등록하고 싶지 않았지만 다른 유치원은 추첨에서 다 떨어져 울며 겨자 먹기로 그곳에 아이를 보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누리과정 시행 후 유치원과 어린이집 원장들의 배만 불린 것 아니냐는 의혹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실제로 1월 6일 서울시교육청이 사립유치원을 대상으로 실시한 특정 감사 결과를 발표했는데, 유치원 공금을 부당하게 처리하거나 빼돌린 혐의로 원장 4명이 고발됐고 8억 원 환수 조치가 내려진 사실이 알려져 학부모들을 분노케 했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A유치원 원장은 2013년 12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유치원 회계에서 본인과 배우자(유치원 설립자)의 개인차량 자동차세, 자택 관리비, 자택 가스요금 등을 납부하는 방식으로 공금을 횡령했고, 지난해에는 강사 2명에게 지급해야 할 돈 가운데 1680만 원을 개인통장으로 이체해 빼돌린 것으로 밝혀졌다. B유치원은 에쿠스 승용차를 개인 용도로 렌트하면서 31개월에 걸쳐 렌트비 4152만 원을 유치원 공금에서 지출한 것도 모자라, 유치원 통장에서 기부금 명목으로 100만 원을 인출해 교육감 후보에게 정치 후원금을 건네기도 했다.
    C유치원 원장은 유치원 시설 공사비 명목으로 4500만 원을 빼돌렸고 하지도 않은 공사의 견적서를 토대로 엉뚱한 사람에게 2200만 원을 보내기도 했다. 이 밖에도 유치원 원장직을 그만둔 뒤에도 판공비 및 급여 명목으로 7000여만 원을 횡령한 경우, 급식비 회계에서 원장의 친목 여행 경비와 액세서리 구매비, 찜질방 이용비, 병원비 등을 지출한 경우, 학부모들이 낸 교구 교재비로 교사들 재킷을 구매한 경우 등 횡령 사례도 다양하다.  


    또한 아동을 허위 등록해 국가 지원금을 타내는 수법도 여전히 횡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1월 대구에서 아동과 교사를 허위로 등록해 1억여 원의 국고보조금을 가로챈 어린이집이 적발돼 파문을 일으켰다. 원장과 짜고 자녀를 어린이집에 허위 등록한 학부모 19명과 정식교사로 허위 등록된 시간제 보육교사 6명도 불구속 입건됐다. 경찰 조사 결과 원장은 누리과정이 확대 실시된 2013년부터 최근까지 자신이 운영하는 어린이집 1곳과 바지 원장을 대표로 내세운 어린이집 1곳 등 가정식 어린이집 2곳에서 국고보조금을 타낸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누리과정 도입 초기 보육업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을 하면 돈 번다”는 인식이 퍼져나갔고, 유치원에 비해 설립 절차가 간편한 민간 어린이집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당시 “어린이집을 인수하려는데 프리미엄이 엄청나게 올랐더라, (어린이집 개업용) 아파트 1층은 없어서 못 판다”는 말도 심심찮게 들려왔다.
    실제로 학부모 사이에선 자신의 아이를 유치원에 허위로 등록했다는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경기 분당에 사는 주부 E씨는 “얼마 전 이웃 중 한 명이 유치원 원장의 권유로 자기 아이를 해당 유치원에 이름만 올렸다고 하더라. 정작 자기 아이는 영어유치원에 보내고 있는데 영어유치원은 누리과정이 아니다 보니 보육수당으로 10만 원밖에 못 받는데, 유치원에 이름만 등록해주면 그보다 더 많은 돈을 받을 수 있고, 그 돈을 보태 영어유치원비로 쓴다고 자랑하더라”며 어이없어 했다.





    교재와 교구 납품 경쟁, 교육의 질은?   

    누리과정 교재와 교구를 제대로 구매해 활용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현재 유치원과 어린이집은 국가로부터 누리과정 교재 및 교구비를 별도로 지급받는다. 누리과정 도입 후 누리과정 교재 제작사와 판매사가 급격히 늘어난 이유도 이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에서 누리과정 교재 총판업을 운영하는 F씨는 유치원과 어린이집에 교재를 납품하기 위해 영업사원들의 경쟁이 날로 심해지고 있다고 밝혔다.
    F씨는 “최근 들어 업체가 많이 생기기도 하고 문을 닫기도 한다. 영업을 잘하려면 교재·교구 질도 중요하지만 원장님들의 비위를 얼마나 잘 맞추느냐가 중요하다. 몇 번을 찾아가 원장의 개인사를 들어주고 서로 친분을 쌓아야 계약이 성사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일부 원장은 교재·교구비를 빼돌린다. 한 달 치 교재를 석 달에 걸쳐 사용하는 식인데, 학부모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아도 되는 돈이니 얼마든지 유용이 가능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누리과정 도입 후 보육 및 교육의 질은 얼마나 향상됐을까. 안타깝게도 일선 교사 대부분은 이에 대해 물음표를 던진다. 서울 마포구 한 유치원에서 근무 중인 G교사는 “유치원 선생님들끼리는 어린이집과 유치원 교육이 합쳐지면서 하향평준화됐다는 얘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이어 G교사는 “기존 유치원 교육과정은 6차과정이 나오기까지 10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누리과정 교육안은 계획부터 배포까지 채 2년이 걸리지 않았다. 누리과정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누리과정 교재나 교구들을 보면 예전에 비해 종이 질이 좋고 화려해지긴 했지만 가격 대비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무엇보다 누리과정 도입 후 유치원별로 고유의 특색이 없어졌다는 점은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도 상당히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교사 처우가 특별히 좋아진 것도 아니다. 현재 사립유치원 교사는 교직수당 25만 원, 담임수당 11만 원, 교사인건비 보조수당 15만 원 등 총 51만 원을 추가로 받는데, 이는 누리과정 도입과는 별도로 예전부터 교육부를 통해 받아오던 임금이다. 어린이집 교사는 어느 정도 처우 개선이 이뤄졌다. 2013년 5월부터 민간어린이집의 누리과정 교사는 처우개선비로 인당 30만 원씩 추가로 받고 있다(국공립어린이집은 원 운영 형편에 따라 담임수당이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어 통상 17만 원 추가로 수급). 그럼에도 현실은 여전히 최저임금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누리과정이라는 이름으로 교육 내용만 통합됐을 뿐, 유치원교사와 비교해 임금 차이는 여전하다. 2013년 서울 기준 어린이집 보육교사의 급여는 처우개선비 포함 월평균 145만 원이고 유치원 교사의 급여는 214만 원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김명자 전국보육교사총연합회 대표는 “어린이집 보육교사들은 낮은 임금뿐 아니라 연장근무, 시간외 근무 등에 대한 수당 지급도 불규칙한 실정이다. 양질의 서비스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에서 누리과정 예산 사태까지 터져 근무조건이 더 열악해질까 봐 걱정”이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의 가장 큰 피해자는 아이들일 수밖에 없다. 부정부패 없는 투명한 유치원, 자긍심 넘치는 교사들, 그 속에서 건강하고 해맑게 자라는 아이들은 과연 이상 속에나 존재하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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