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1

2016.01.13

사회

수백만 이민자 한국사회 화약고 되나

2020년엔 국내 체류 외국인 300만 명…“외국인 차별 없애 잠재적 위험 해체해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6-01-11 16:3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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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네 나라로 좀 꺼졌음 좋겠어요.’
    새누리당 이자스민 의원이 1월 초 ‘이민사회기본법안’(이민법안)을 발의했다는 내용의 기사 아래 붙은 댓글이다. 다른 누리꾼이 ‘이자스민 의원은 한국인’이라고 반박하자 원댓글 작성자는 그 아래 다시 ‘출생지는 필리핀이에요’라고 답을 달았다. 이민법안 제1조는 ‘이 법은 (중략)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이룩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규정한다. 일부 누리꾼에게 출신지의 다양성은 존중받을 가치가 아닌 셈이다.  
    1998년 한국 국적을 취득하고 2012년 귀화인으로는 최초로 국회에 입성한 이자스민 의원은 2014년 ‘이주아동 권리보장 기본법안’을 대표 발의했을 때도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불법체류자 부모 등에게서 태어나 출생기록이 없는 ‘미등록 이주아동’에게도 만 18세가 될 때까지 교육·의료 등의 권리를 보장하자는 법안 내용에 비난이 쏟아진 것. 이자스민 의원실에 따르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게시판에만 댓글이 1만5000개 이상 달려 사상 최고기록을 세웠다. 의원 개인 인터넷 블로그에도 욕설이 쏟아져 댓글달기 기능을 차단해야 했다. ‘국내인도 복지가 안 되는 판에 범법자의 자식에게 복지를 하자고 하네요. 불법체류자의 자식들이 이 나라를 위한 노동력이 될 것도 아니고’ 같은 주장이 줄을 이었다. 이에 대해 외국인노동자 인권운동을 계속해온 김해성 지구촌사랑나눔 대표는 “최근 경제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젊은 층에서 국내 체류 외국인에 대한 거부감이 더욱 높아지는 것 같아 걱정”이라며 “한국에 터 잡고 살아가는 이의 인권을 보장하는 건 우리 모두를 위한 일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고 안타까워했다.  



    광주광역시 인구보다 많은 외국인

    전문가들에 따르면 1991년 유엔 아동권리협약에 가입한 우리나라에서 ‘미등록 이주아동’의 권리를 보호하는 건 시혜라기보다 의무에 가깝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2011년 ‘부모의 법적 지위나 출신에 상관없이 모든 아동의 교육 접근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권고했고, 유엔인종차별철폐위원회도 2012년 우리나라에 ‘난민, 인도적 지위 체류자, 난민 신청자, 미등록 이주민 자녀의 출생을 적절히 등록할 제도와 절차를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2014년 당시 이자스민 의원 외에도 강창희 전 국회의장을 비롯해 이인제, 정병국, 박영선, 심상정 등 여러 정당 소속 의원 20여 명이 공동 발의한 관련 법안은 19대 국회 통과가 난망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내 외국인 수는 계속 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발표한 ‘2015년 외국인주민 현황’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1월 1일 기준 국내 거주 ‘외국인주민’ 수는 174만1919명으로 주민등록인구(5133만 명)의 3.4% 수준이다. 외국인주민은 외국인으로서 한국 국적을 취득한 자, 국내 거주 기간이 90일 넘는 국적 미취득자, 결혼이민자 및 국적취득자의 미성년 자녀 등을 포함하는 개념. 2006년 첫 조사 당시 약 54만 명이던 이들의 수는 그새 3배 이상 늘었다. 17개 광역시·도 인구와 비교해도 11번째로 충북(약 158만 명), 대전(약 153만 명), 광주(약 148만 명) 인구보다 오히려 많다. 증가율은 연평균 14.4%로, 우리나라 주민등록인구 증가율 0.6%의 25배 수준이다. 지금 같은 속도가 이어지면 2020년 무렵 국내 체류 외국인은 300만 명을 넘어선다는 전망이 나올 정도다. 이는 인구의 약 8% 수준으로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서유럽 국가와 비슷한 규모다.
    문제는 이처럼 많은 외국인이 한국에 들어오고 있음에도 이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체계적인 정책이 없다는 점이다. 한국에 정주한 외국인을 부르는 명칭도 불분명하다. 상황에 따라 이민자, 외국인주민, 다문화가정 등 여러 용어가 등장하고 행정 업무도 여러 부처가 나눠 관장한다. 조주은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은 “19대 국회 회기 동안 다문화 관련 사업을 추진한 정부 부처는 여성가족부, 법무부, 교육과학기술부, 고용노동부, 행정자치부, 문화체육관광부, 농림축산식품부, 보건복지부 등 8개이며 각 지방자치단체도 별도로 지역 특성에 맞는 관련 사업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태환 한중대 교수는 “이처럼 정부의 컨트롤타워가 없다 보니 예산만 낭비되고 실질적 효과는 내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각종 정책은 쏟아지니 시민들은 외국인이 내국인에 비해 과도한 복지 혜택을 누리고 있다고 여긴다. 취업난 등에 몰린 젊은이는 국내 체류 외국인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반면, 정작 다문화가정 구성원들은 한국 사회에서 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이다.  



    ‘다문화가정’을 넘어

    지난해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잡지사 ‘샤를리 에브도’에 대한 총격 사건의 가해자는 이민자의 자녀로 이슬람 극단주의에 빠진 프랑스 국적자였다. 반면 2011년 7월 노르웨이에서 소년캠프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총기를 난사한 인물은 정부의 이민정책에 반대하는 30대 노르웨이 태생 극우주의자였다. 이 때문에 국내 체류 외국인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갈등을 잘 해결하지 못할 경우, 이 문제가 머지않아 한국의 새로운 화약고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한 외국인 인권운동가는 “최근 상당수 외국인 노동자들의 걱정은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일찍부터 비행을 저질러 학교를 그만두거나 소년원에 드나드는 자녀 문제”라며 “이들을 보듬지 않으면 서울이 ‘제2의 파리’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고 했다.
    정부가 저출산·고령화 문제를 풀 방법으로 ‘외국 인력 활용’을 제시하면서 이러한 걱정은 더욱 커지는 분위기다. 정부는 지난해 말 ‘제3차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2018년부터 적극적인 이민정책을 펴겠다고 밝혔다. 삼성경제연구소도 2011년 발표한 ‘인구고령화의 경제적 파장’이라는 연구보고서를 통해 “2020년 이후에는 전체 노동력 규모가 감소하면서 한국경제의 성장기반 약화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외국인이 한국에 살게 된다면 더 늦기 전 대책이 필요하다.
    전문가들이 가장 강조하는 건 사회인식 변화다. 한국 출신 아버지와 가나 출신 어머니가 한국에서 낳은 아이를 입양해 키우고 있는 김해성 대표는 “우리 아이는 한국 국적을 갖고 있고, 한국 음식만 먹으며,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만 어디를 가든 사람들이 피부색을 보고 ‘한국말도 할 줄 아네’라고 신기해한다. 피부색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이 사라지지 않으면 외국인 문제가 풀리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혜순 계명대 사회학과 교수는 “정부가 나서서 국민의 불안감과 상대적 박탈감을 해결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외국 인력이 우리 국민의 일자리를 보완하는지 대체하는지 등을 체계적으로 연구해 조화와 상생의 길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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