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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만 구독자 ‘머법관 유튜버’ 박일환을 아십니까

댓글에 일일이 ♥ 다는 前 대법관… 시대와 호흡하며 사회 변화 주시

  •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13만 구독자 ‘머법관 유튜버’ 박일환을 아십니까

박일환 전 대법관. [지호영 기자]

박일환 전 대법관. [지호영 기자]

“나무꾼은 선녀들의 목욕 장소에 함부로 침입했으므로 성폭력특례법(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을 적용할 수 있다. 선녀 옷을 몰래 숨긴 것은 어떨까. 자신이 직접 입을 목적이라면 절도죄에 해당하지만 훔치고 숨기기만 했으니 재물은닉에 의한 손괴죄를 물을 수 있다.”

‘라떼는 말이야’ 유행어 쓴 제목도

대법관까지 지낸 법조인의 얼굴에 장난기가 가득하다. 6월 1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사무실에서 만난 박일환(70) 전 대법관은 인터뷰 내내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경북고·서울대를 거쳐 사법시험 15회(사법연수원 5기)에 합격한 그는 서울중앙지방법원 부장판사, 제주지방법원장, 서울서부지방법원장 등을 역임했다. 2006~2012년 대법원 대법관(2009~2011년 법원행정처장 겸임)을 지냈다. 대법관으로서 검찰의 위법한 압수수색 절차를 이유로 ‘제주지사 선거법 위반 사건’을 파기 환송(이후 광주고등법원이 무죄 판결)하는 등 사법사(司法史)에 큰 족적을 남겼다.

박 전 대법관은 최근 ‘이중생활’ 중이다. 2018년 12월 유튜브 채널 ‘차산선생법률상식’을 개설해 유튜버로 변신했다. ‘농담으로 한 ‘회사 그만둘래’ 발언 후 퇴직 발령?’ ‘증인이 법정에서 증언 내용을 바꾼다면?’ 등 법률 상식을 쉽게 풀이한 영상으로 인기를 끌어 구독자 13만5000명(6월 16일 기준)을 모았다. 팬들의 응원 댓글에 일일이 ♥(하트) 표시를 다는 인기 ‘머법관’(‘대’와 ‘머’의 모양이 유사한 것에 착안해 대법관을 익살스레 일컫는 말) 유튜버를 만났다.

최근 다른 유튜버와 컬래버(컬래버레이션)도 했다.

“같은 로펌(법무법인 바른)의 백광현 변호사가 최근 유튜브 채널(‘법테랑 백광현’)을 시작했는데 조회수가 잘 안 올라가 고민이라더라. 나와 컬래버하면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어 함께 출연했다. 백 변호사가 아이디어를 내 ‘선녀와 나무꾼’ 이야기를 법적으로 재밌게 풀이해봤다. 원래 구독자 많은 유튜버와 컬래버하기 쉽지 않은데, 내가 후배 유튜버에게 큰 혜택을 준 셈이다(웃음).”

유튜버 활동을 시작한 계기는?

“사람들이 참고할 만한 판례나 생활과 밀접한 법률 상식을 소개하고 싶었다. 예전에야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려면 책을 쓰는 게 당연했지만 품도 많이 들고 요즘 읽는 이도 많지 않다. 소통 방식을 고민하던 중 딸이 유튜브를 활용해보라고 권했다. 이야기를 짧으면서도 효과적으로 풀어낼 수 있어 매력적이더라. 유튜브를 시작한 후 딸이 많이 도와준다. 내가 영상편집도 직접 배워보려 했는데 손이 둔해 그런지 쉽지 않더라. 딸도 전문가는 아니어서 간단한 자막만 넣는 등 편집을 최소화한다. 제목을 어떻게 달지 딸과 상의하는데 최근 영상엔 ‘라떼는 말이야’ 같은 유행어를 제목에 써봤다.”



법조계 반응도 뜨거울 듯하다.

“주변 또래들은 내 유튜브 채널을 잘 모른다. 요즘 60, 70대도 유튜브를 많이 본다는데 내 채널은 안 보더라. 오히려 30년가량 후배 변호사들이 ‘그 나이에 어떻게 유튜버가 됐느냐’며 신기해한다. 내 채널 구독자는 대부분 30대 이하다. 자세히 살펴보면 18~24세 37%, 25~34세 40%, 35~44세 15% 정도다.”

박일환 전 대법관(왼쪽)이 ‘동화로 보는 법률 이야기’를 주제로 백광현 변호사와 유튜브 채널 컬래버레이션에 나섰다. [유튜브 캡처]

박일환 전 대법관(왼쪽)이 ‘동화로 보는 법률 이야기’를 주제로 백광현 변호사와 유튜브 채널 컬래버레이션에 나섰다. [유튜브 캡처]

‘소리바다’ 판결로 지식재산권 보호 기틀

박 전 대법관은 판사 시절에도 ‘얼리 어답터(early adopter)’였다. 서울고등법원 지식재산권 전담재판부 부장판사로서 국내에 생소하던 지식재산권 판결의 기틀을 닦았다. 2005년 서울고등법원 판사, 2007년 대법관으로서 P2P(Peer to Peer) 방식의 파일교환업체 ‘소리바다’ 운영자에 저작권법 위반 책임을 물은 것이 대표적이다. “현재 법조계는 내가 초임 판사로서 발 디뎠을 때와 너무나 다르다”고 말하는 박 전 대법관은 동시대와 호흡하며 사회 변화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뒷광고’ ‘가짜뉴스’ 등 유튜브를 둘러싼 논란도 크다.

“(유튜브의) 여러 문제가 노출된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언론·출판의 자유를 함부로 규제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언론사의 경우 예나 지금이나 기자와 데스크가 게이트키핑을 거치며 자정 기능이 작동하지만, 유튜버는 그런 절차가 없으니 가짜뉴스 유포나 명예훼손 등 부작용이 생긴다. 다만 유튜브 세계에도 자정 기능이 있다. 최근 논란이 된 ‘뒷광고’나 ‘가짜뉴스’로 구독자 신뢰를 잃은 유튜버는 쉽게 재기하지 못한다. 굳이 공권력을 동원하지 않아도 지금의 부작용을 해결할 수 있다고 본다.”

최근 유튜버를 겸하는 회사원·공무원과 직장의 갈등도 커지고 있다.

“퇴근 후 자기 집에서 유튜버로 활동한다면 큰 문제없지 않겠나. 공무원은 직무전념의 의무(국가공무원법 제56조, 지방공무원법 제48조)를 지켜야 하지만 일과 외 시간을 활용해 업무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면 무방할 듯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대두한 ‘사법부 개혁’은 어떻게 보나.

“어려운 문제다. 다만,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무엇을 개혁하느냐는 것이다. 기존 판사를 모두 내보내고 새로 임용할 것인가. 이번 정부는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 폐지를 사법부 개혁 성과로 내세우는 듯하다. 판사가 승진에 매달려 대법원장에게 예속되는 것을 막겠다는 취지다. 100% 틀린 말은 아니지만 세상이 바뀐 것을 간과하는 건 아닌가. 요즘 민간기업에서 젊은 직원은 임원 진급에 목을 매지 않는다고 한다. 마찬가지로 젊은 판사 중 고등법원 부장, 대법관 승진을 목표로 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수한 판사를 어떻게 양성할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단순히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만 없앤 것은 사법부 개혁을 했다고도, 안 했다고도 할 수 없는 허망한 일이다.”





주간동아 1294호 (p58~59)

김우정 기자 frie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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