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7

2021.04.30

진중권의 인사이트

국민의힘, 김종인 지어준 ‘다 된 밥’ 뱉고 ‘쉰밥’ 먹으려 해

대선은 4·7 보궐선거와는 차원이 다른 게임, 황교안 복귀하면 원점 회귀

  •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

    입력2021-04-30 10:3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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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4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기념패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이 4월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 참석해 기념패를 들고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밥상을 차려 입에 넣어주는 것까지는 할 수 있어도 입에 들어온 밥을 씹어 넘기는 것까지 대신해줄 수는 없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이 떠난 후 국민의힘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다. 입맛은 못 바꾸나 보다. 정강정책까지 만들어놓고 떠났건만, 그가 입에 넣어준 그 밥을 뱉어내고 그 대신 쉰밥을 먹으려 한다.
    4·7 보궐선거에서 당선한 박형준, 오세훈 시장이 두 대통령의 ‘사면’ 얘기를 꺼냈다.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이낙연 전 대표가 그 얘기를 꺼냈다 괜히 빈축만 샀던 게 불과 몇 달 전. 아직 국민 다수의 반대로 사면을 위한 분위기가 무르익지도 않은 상황에서 그 불발탄을 다시 끄집어낸 것은 당 안팎의 강성 지지자들의 정서를 대변하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이들 강성 지지층이 국민의힘의 ‘개혁’을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선거에서 이기려고 유세장에서 행동을 자제했을 뿐, 이들이 과거 낡은 사고까지 포기한 것은 아니다. 국민의힘 서병수 의원은 국회에 나와 탄핵의 정당성을 정면으로 부정했다. 그들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고, 그런 채로 여전히 그 당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김용판 의원은 느닷없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난하고 나섰다.

    “문재인 정권과 함께 적폐 수사를 현장 지휘했던 윤 전 총장은 ‘친검무죄, 반검유죄’인 측면이 전혀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겠냐.”

    법원에서 자신이 무죄를 받은 것을 빌미로 아예 과거 정권 비리에 대한 수사의 정당성 자체를 부정하고 나선 것이다.

    이 같은 수구 회귀 분위기에 정점을 찍은 사건은 탄핵 총리 황교안의 복귀다. 국정농단 조력자이자 지난해 4·15 총선 참패의 주역까지 돌아왔다. 탄핵의 강을 건너는가 싶더니 다시 원점으로 돌아간 셈이다. 그런가 하면 홍준표 전 대표를 다시 당으로 들이자는 얘기도 나온다. 선거에서 압승했다고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나 보다.



    늙은 영남당으로 머물 것인가

    당권을 둘러싸고 다툼이 벌어지는 모양이다. 그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어차피 치열한 경쟁을 통해 지도부를 선출하는 것은 민주주의 본질에 속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지난 총선 참패로 당의 구성 자체가 거의 일색화했다는 데 있다. 수도권 후보가 전멸하다 보니 당이 거의 영남 지역당으로 굳어버린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적으로 투표해봐야 영남 의원들이 당 지도부를 차지하기 십상이다. 김종인 전 위원장이 국립5·18민주묘지에서 무릎 꿇고 사죄한 것은 호남의 비토 감정을 누그러뜨려 국민의힘을 지역당에서 전국 정당으로 변모시키기 위한 제스처였다. 그런데 이번 국민의힘 당권 선거 결과가 전국 정당을 향한 이러한 노력을 무색하게 만들 수 있다.

    워낙 그 밥에 그 나물이다 보니, 김 전 위원장은 당대표를 아예 초선에 맡기는 방안을 긍정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예를 들어 김웅 의원은 전통적인 국민의힘 정치인과는 결이 다르다. 게다가 아직 젊기에 보수당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인물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호남 출신이라 영남당 이미지를 벗는 데도 유리하다.

    대선 승리의 조건들

    국회에서 활약한 윤희숙 의원 등 신인 중심으로 과감하게 당 지도체제를 구축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나, 과연 국민의힘이 그 정도로 급진적인 쇄신이 가능한 조직인지에 대해서는 아직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황교안이 활동을 재개하고, 홍준표가 입당에 목매는 것을 보면 그 회의는 정당하다.
    김 전 위원장에게서 ‘선거 전략가’ 면모만 봐서는 안 된다. 재보선이야 여당의 실수만으로도 이길 수 있지만, 대선은 성격이 다른 게임이다. 전자가 과거의 심판이라면, 후자는 미래의 선택이다. 거기서도 유권자들이 홧김에 표를 던질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대선은 상대 실수만으로 이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는 새로운 정강정책을 마련했다. 거기에는 그동안 보수정당이 외면해온 노동·생태·여성·기본소득 등 다양한 의제가 담겨 있다. 하지만 이 콘텐츠들과 관련해 국민의힘 내부에 과연 ‘합의’가 존재하는지 적이 의심스럽다. 그동안 새로운 정강정책이 의원들의 입법으로 뒷받침되는 것을 본 기억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완전히 거꾸로 나가는 경우도 있다. 이준석 전 최고위원은 공적 영역에서 완전한 성평등을 지향한다는 신(新)정강정책에도 ‘여성할당제’와 ‘여성가산점’ 폐지를 주장하는 등 안티 페미니즘 캠페인을 주도하고 있다. 신정강정책이 그들의 언행을 구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이 이미 빈 껍질로 전락했다는 얘기다.

    대선에서 승기를 잡으려면 △철저한 반성에 기초한 과거와 단절 △조직 및 지도체제의 인적 쇄신 △시대적 요구에 조응하는 정치 메시지 등 3박자를 고루 갖춰야 한다. 하지만 현재 국민의힘은 다시 과거로 돌아가려 하고, 인적 쇄신을 기대하기 어려우며, 콘텐츠는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없는 상태다.

    그러니 믿을 것은 역시 민주당밖에 없다. 일단 민주당은 총선 참패에도 반성하지 않고 있다. 친문(친문재인) 일색인 당의 구성과 대깨문에 의존하는 구조로 인해 당 혁신과 인적 쇄신도 불가능하다. 나아가 민주당의 정치적 콘텐츠는 바닥을 드러냈다. 즉 그들이 어젠다로 내세운 ‘개혁’ 시리즈는 골고루 실패했다.
    한 가지 변수는 이재명이다. 그는 애초에 친문과는 결을 달리 하는 인물. 그것이 그의 한계이자 장점이다. 거기에 그는 탄탄한 정책적 이해를 갖추고 있으며, 자신의 정책을 의제로 설정하는 능력 또한 뛰어나다. 현재 국민의힘 역량만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상대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에선 아무런 위기의식도 안 느끼는 모양이다.

    대선에서 이기기 위한 필요조건은 다음의 세 박자를 갖추는 것이다. 첫째, 일단 반성하고 사과했으면 과거로 돌아가는 언동은 삼가야 한다. 둘째, 지도체제 구성 과정에서 ‘급진적’ 개혁으로 늙은 영남당이 아닌, 젊은 전국당의 면모를 과시해야 한다. 셋째, 자기들이 만든 신정강정책을 숙지하고 체화해야 한다.
    이는 승리를 위한 필요조건일 뿐이다. 충분조건은 역시 후보를 세우는 일. 그 또한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만큼 쉽지는 않은 일일 게다. 이렇게 갈 길이 먼데 뒷걸음이나 치고 있다. 팔자들이 너무 편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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