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5

2021.04.16

서민의 野說

양날의 칼 된 PC-정치적 올바름

차별금지법 발의 놓고 설왕설래…“법의 이면도 잘 살펴봐야”

  • 서민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bbbenji@naver.com

    입력2021-04-2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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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별금지법 도입을 앞두고 여러 논란이 촉발되고 있다. [GettyImages]

    차별금지법 도입을 앞두고 여러 논란이 촉발되고 있다. [GettyImages]

    ‘말의 표현이나 용어의 사용에서 인종·민족·언어·종교·성차별 등의 편견이 포함되지 않도록 하자는 주장을 나타낼 때 쓰는 말이다.’ 위키백과에 나온 ‘정치적 올바름(공정)’에 대한 정의다. 영어로는 Political Correctness, 흔히 ‘PC’라고 부른다. 백과사전 뜻만 보면 PC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하지만 이론과 실제가 다르다는 게 문제다.

    예컨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은 당명과 달리 정치적 견해가 다른 이를 포용하기는커녕, 윽박질러 내쫓는 일을 일삼았다. PC 역시 인간 본성에 내재한 차별을 반성하게 만들기보다 오히려 세상을 더 삭막하게 만드는 데 기여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서울 한 여대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자. 강의 도중 강사가 이렇게 말했다. “딸에게 인형을 사주려면 돈을 열심히 벌어야 한다.” 그러자 한 여학생이 이의를 제기했다. “왜 딸에게 인형만 사줘야 한다고 생각하느냐. 불쾌하니 사과하라.” 강사는 졸지에 ‘여자아이는 인형만 좋아한다’는 도그마에 빠진 성차별주의자가 됐다. 강사는 결국 사과했다. 만약 사과 대신 해명하려 했다면 문제는 더 커졌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강사는 사과하면서도 깊은 자괴감에 빠졌을 것이다. ‘앞으로 강의 중에는 절대로 사적인 얘기는 하지 않겠다’는 다짐도 했을 테다. 비단 그 강사뿐일까. 자신의 말에 시비를 걸어 매도하는 문화가 팽배해지면 사람들은 말 한마디 한마디를 조심하게 되고, 아예 말을 안 하게 될 수도 있다.

    정치적 올바름이라는 게 공적 영역으로 들어오면 문제가 커진다. 어떤 사람이 회사에 취업하려 면접을 봤는데 아쉽게 낙방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 회사에선 불합격 사실만 전할 뿐, 왜 떨어졌는지 얘기해주진 않는다. 이때 그 사람이 “내가 성소수자라서 낙방했다”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 “면접관이 저를 보는 눈길이 그리 곱지 않았어요. 질문도 다른 면접자들한테 하는 것과 좀 달랐던 것 같고요” 하면서 말이다. 정작 낙방한 이유는 그의 실력 부족 때문인데도 해당 회사는 졸지에 악덕기업으로 몰리게 된다.


    공적 영역으로 들어온 PC

    그래도 우리나라의 사정은 아직 그리 나쁘지 않다. 이런 일들에 대해 사회적으로 비난은 받을지언정, 법적으로는 처벌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차별을 규제하는 법이 존재한다면 어떻게 될까.



    2007년 남성 동성애자 존 래니는 영국 성공회의 청소년 사역자 채용에 지원했다 불합격했다. 우리와 달리 영국은 차별금지법이 있다. 래니는 해당 기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자신이 동성애자라 탈락했다는 것이다. 법원은 이를 차별로 판단해 래니에게 승소 판결을 내렸다. 역시 비슷한 법이 존재하는 미국에서 케네스 호웰 교수는 대학에서 로마 가톨릭교 개관을 강의하던 중 동성애에 반대하는 가톨릭교 교리를 설명했다. 한 학생이 이를 인권센터에 신고했고, 대학 측은 호웰 교수를 즉시 해고했다.

    차별금지법의 문제점은 성 구분마저 흐린다는 데 있다. 영국에서 일어난 사건을 보자. 2019년 수업시간에 “세상에는 남성과 여성, 두 가지 성이 있다”는 주장을 고수한 학생이 퇴학을 당했다. 남성과 여성 이외에 다른 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망각했기 때문이란다. 트랜스젠더는 따로 분류해야 할 것 같고, 신체구조가 남성이라 해도 자신이 여성이라고 믿는 경우도 있으니 성이 딱 2개만 있다고 믿는 것은 그들에 대한 차별이니까. 이런 애매한 성 구분은 범죄자들에게 악용되기도 한다.


    “차별금지법 입법에 앞서…”

    2019년 3월 32세 미국 남성이 월마트 여성 화장실에 들어가려다 제지당했다. 월마트 직원이 붙잡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여자가 아니라는 것을 당신이 어떻게 아느냐.” 그는 외관상으로는 분명 남성이었지만 자신이 여성이라면서 여성화장실을 이용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결국 여자화장실에 들어간 그는 뒤에 들어온 한 여성을 성추행했다.

    크리스토퍼 햄브룩이라는 37세 캐나다 남성은 제시카라는 여자 이름으로 자신을 소개하며 여성 전용 쉼터에 입소했다. 그곳에서 그는 여러 명의 여성을 성폭행했다. 햄브룩의 입소를 거절하는 것은 물론 불가능했다. 그랬다간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큰 처벌을 받을 테니 말이다. 스포츠계에서도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스스로를 여성으로 인식하는 남자선수는 여성들이 뛰는 경기에 참가한다. 만일 이들이 뛰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차별금지법 위반으로 해당 협회는 거액의 돈을 물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조만간 비슷한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차별금지법을 발의했다. 장의원은 말한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불합리한 차별을 방지하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누가 이 거룩한 명제에 대놓고 반대하겠는가. 하지만 법의 이면도 신중히 살펴봐야 한다.

    서민은… 제도권 밖에서 바라본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로운 입담으로 풀어낸다. 1967년생. 서울대 의대 의학과 졸업. 서울대 의학박사(기생충학). 단국대 의대 기생충학교실 교수. 저서로는 ‘서민독서’ ‘서민 교수의 의학 세계사’ ‘서민의 기생충 콘서트’ ‘서민적 글쓰기’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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