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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단적 양심’ 첸리췬 “나는 요행히 살아남았다”

[조경란의 21세기 중국] “反우파투쟁·톈안먼시위 희생자에 책임감 느껴”

  •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이단적 양심’ 첸리췬 “나는 요행히 살아남았다”

첸리췬(錢理群) 전 중국 베이징대 교수. [바이두백과]

첸리췬(錢理群) 전 중국 베이징대 교수. [바이두백과]

첸리췬(錢理群·82) 전 중국 베이징대 교수는 중국 지성계의 양심으로 불린다. 스스로 ‘비판적 지식인’을 표방하지 않았다. 이른바 ‘반(反)체제 지식인’도 아니다. 현대 중국에선 ‘비판적 지식인’ ‘좌파’ ‘우파’ 같은 용어가 모두 ‘오염’됐다. 차라리 좋은 것은 좋다고, 나쁜 것은 나쁘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지식인의 조건이 됐다. 권력 눈치를 보지 않고 비판 목소리를 내는 지식인 첸리췬, 그는 누구인가. 

중국문학 연구자 첸리췬은 대중에겐 생소해도 중국 인문학을 공부한 이에겐 익숙한 인물이다. 루쉰(魯迅)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다. 1985년 ‘20세기 중국문학’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기존 중국 학계는 자국 문학사를 중화인민공화국 이전과 이후로 나눠 단절적으로 인식했다. 반면 첸리췬은 20세기 중국문학을 유기적 흐름 속에서 파악했다.


‘아버지’냐, ‘혁명’이냐

첸리췬의 삶은 통한의 중국 현대사 그 자체다. 1939년 충칭(重慶)에서 국민당 고위 관료 첸텐허(錢天鶴)의 아들로 태어났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부친은 국민당을 따라 타이완으로 건너갔다. 외가 식구들의 만류로 첸리췬과 어머니는 대륙에 남았다. 홀어머니 슬하에서 인고의 세월이 시작됐다. 첸리췬은 소학교 때부터 아버지를 부정(否定)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아버지’와 ‘혁명’ 중에서 선택을 강요받은 것이다. 

1956년 첸리췬은 베이징대 중국문학과에 입학했다. 베이징대 학생들이 민주주의와 사상의 자유를 요구하며 시위에 나섰다. 문인들도 표현의 자유를 통한 문예부흥을 주장하며 학생들에 동조했다. 당국은 이들을 ‘우파’로 규정해 탄압했다. 1957년 반우파투쟁이 그것이다. 첸리췬은 그 과정을 베이징대에서 직접 목도했다. 

1958년 ‘대약진(大躍進) 운동’, 1966~1976년 ‘10년의 동란’ 문화대혁명(문혁)이 이어졌다. 첸리췬은 문혁 때 구이저우(貴州)성 안순(安順)시로 하방(下放: 문혁 당시 대학생·지식인 등을 농촌·공장으로 보내 노동에 종사시킨 일)돼 오랫동안 중고교 교사로 일했다. 1978년 베이징으로 돌아와 베이징대 대학원에서 중국문학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후 모교 교수로 부임했다. 



첸리췬의 중요한 업적은 중국 사회가 잊은 저항의 목소리를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는 ‘베이징대학 우파분자 반동언론 모음집’ ‘교내외 우파언론 모음집’을 냈다. 1957년 반우파 운동을 전후한 시기, 표현의 자유를 주장한 중국 대학생·지식인의 기록을 집대성했다. 첸리췬은 1957년 반우파투쟁이 문혁으로 치닫는 계기가 됐다고 봤다. 중국에서 ‘우파’라는 단어는 ‘반동(反動)’과 같은 멸칭으로 자리 잡았다. 문혁 열풍 속 비(非)사회주의, 반(反)사회주의적 인물로 지목되면 우파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런 기준에 따라 첸리췬도 우파로 여겨졌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밝히듯 ‘사회민주주의자’다.


온후한 노(老) 학자의 촌철살인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을 지지하는 홍위병들. [GettyImages]

중국 문화대혁명 당시 마오쩌둥을 지지하는 홍위병들. [GettyImages]

평소 첸리췬은 “책 한 권과 차 한 잔이면 족하다”고 말한다. 2014년 여름, 필자는 중국 베이징 교외에서 첸리췬을 인터뷰했다. 더할 나위 없이 온후한 인상이었다. 그런 그가 어떻게 중국 사회와 문학을 촌철살인(寸鐵殺人) 비판, 평론할까. 필자는 첸리췬 사상의 지적 동력을 크게 세 가지로 본다. △‘루쉰 정신’ 내재화를 통한 지식인으로서 자기직시와 독립정신 △현대사에서 ‘살아남은 자’로서 부채의식 △이단사상에 대한 추구 및 관심이다. 

먼저 첸리췬에게 지식인으로서 자기직시와 독립정신은 어떤 것일까. 그는 자기객관화가 지식인의 중요한 가치라고 본다. 중국의 일반 지식인에게 부족한 점이기도 하다.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태도는 지식인 개인뿐 아니라 중국이라는 국가에도 비극이다. 세계를 중국 중심으로 보는 중화주의(中華主義)의 폐해다. 첸리췬은 중국 지식인이 자신의 지위를 착각한 탓에 노예화됐다고 여긴다. 중국 사회에서 지식인의 실제 지위는 놀림거리에 불과한데 군자(君子)나 ‘민중의 향도자(嚮導者)’를 자처한다는 뜻이다. 루쉰도 단편 소설 ‘쿵이지(孔乙己)’를 통해 중화주의에 빠진 청나라 말기 전통적 지식인을 풍자한 바 있다. 

둘째는 중국 현대사 속 ‘살아남은 자’의 부채의식이다. 첸리췬은 필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1957년 반우파투쟁 당시) 희생된 학생들에 대한 책임감은 훗날 사회운동에 참여하게 된 중요한 원인일 수 있습니다. 제 글쓰기를 ‘요행히 살아남은 자(幸存者)의 글’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우수한 사람들이 희생됐고 나는 도리어 살아남았다’는 뜻입니다. 1957년을 연구한 이유는 당시 희생·숙청된 린짜오(林昭), 린시링(林希翎) 같은 청년들이 나보다 더 뛰어난 인재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희생됐고 나는 살아남았으므로 그들에 대한 책임의식이 있습니다. 톈안먼(天安門) 사건에 희생된 학생들에게도 책임감을 느낍니다.” 

첸리췬은 중국 사회를 향해 거침없이 소신 발언을 쏟아냈다. 1998년 베이징대 개교 100주년 기념 공개 강연이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4가지 사건을 베이징대 역사의 ‘찬란한 때’로 꼽았다. 1919년 5·4운동(제국주의·봉건주의에 반대한 학생 운동), 1957년 ‘표현의 자유’ 시위, 1989년 6·4 톈안먼시위(베이징 톈안먼광장에서 민주화를 요구하던 시민들의 시위를 중국 정부가 유혈 진압), 그리고 1998년 개교 100주년이다.


‘찬란한 시절’ 베이징大 4가지 사건

대학 교수가 공개 석상에서 1957년과 1989년 시위를 긍정적으로 평가하자 논란이 일었다. 중국 당국은 “대학은 하나의 진지(陣地)다. 프롤레타리아가 점령하지 못하면 부르주아가 점령할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학계 안팎의 대대적 비판을 받은 첸리췬은 2002년 강제 퇴직당했다. 이 사건을 보면서 필자는 문혁이 언제든 다시 일어날 수 있다는 중국 원로 지식인들의 걱정이 기우가 아님을 알게 됐다. 

오늘날 중국에선 5·4 시위와 1989년 6·4 톈안먼시위 관련 언급을 금기시한다. 첸리췬의 책이 원 내용 그대로 출판된 적은 거의 없다. 당국의 압박 속 출판사 편집진이 저작의 여기저기를 삭제했다. 첸리췬도 저작에 대한 검열을 방관하고 있지만은 않았다. 삭제된 곳을 모두 기록해 이른바 ‘산제집’(刪除集·삭제본)이라는 책을 따로 냈다. 

첸리췬의 마지막 지적 동력은 ‘민간 사상’이다. 관(官)에 대항하는 민(民)의 사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규정한 민간 사상은 주류와 다른 ‘이단(異端)’이다. 공식 출간되는 책·신문·잡지 등이 아닌, 대자보 형태로 전파된다. 권력과 불화하는 민간 사상, 저작은 강제로 매장된다. 첸리췬은 6·4 천안문시위를 민간 사상의 표출로 봤다. 이미 마오쩌둥(毛澤東)의 주류 이데올로기에 대한 회의가 평범한 중국인들 사이에 퍼진 터였다. 중국 당국은 톈안먼에서 터져 나온 민간 사상을 탄압했다. 국가 권력의 행보에 대해 ‘NO’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사회의 에너지는 사라졌다. 

첸리췬은 개혁적 지식인 루쉰의 사상을 발굴해 현대 중국의 문제점을 환기했다. 1957년과 1989년 사회주의 민주화운동을 중국 개혁의 지표로 삼았다. 중국에 사는 지인에 따르면 첸리췬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매일 ‘인민일보’를 통독한다고 한다. 그는 여전히 중국 사회를 주시하며 지적 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다. G2 시대 중국은 첸리췬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

조경란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중국현대사상·동아시아 사상 전공. 홍콩중문대 방문학자·베이징대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초빙교수 역임. 저서로는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신좌파·자유주의·신유가’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전통·근대·혁명으로 본 라이벌 사상가’ ‘국가, 유학, 지식인: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등이 있다.





주간동아 1278호 (p22~24)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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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8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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