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0

2020.12.25

K9 자주포, 우크라이나까지 진출하는 통로 열려 [웨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11-07 08: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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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9 자주포. [동아db]

    K9 자주포. [동아db]

    11월 초 우크라이나에서 흥미로운 소식이 하나 날아왔다. 구소련 무기 위주의 군사력을 운영하고 있는 육군이 기존의 포병 규격과는 맞지 않는 새로운 자주포 도입 가능성을 밝혔다. 

    우크라이나는 소비에트 연방의 핵심 국가였던 만큼 거의 모든 무기가 구소련 당시 제작된 모델이다. 주력 자주포는 러시아군도 사용 중인 2S19 152mm 자주포 63문이고, 이보다 구형인 2S3 152mm 자주포 235문, 마찬가지로 구식 2S1 122mm 자주포 340문을 기계화부대의 주력 자주포로, 185문의 2A65, 287문의 2A36, 224문의 D-20 등 700여 문에 달하는 구형 152mm 견인포를 보병부대의 주력 화력지원 수단으로 운용 중이다. 

    우크라이나는 최근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이 심화되면서 다각도로 군사력 현대화를 꾀하고 있는데, 이번에 도입하려는 것은 노후화가 극심한 D-20 등의 견인포, 2S3 자주포를 대체하는 물량으로 2가지 모델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러시아의 군사적 위협 심화

    견인포는 체코의 DANA M2 차륜형 자주포가 유력하게 거론되며 실제로 체코와 도입 협상이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고, 자주포는 정말 의외로 폴란드의 크랩(Krab) 자주포 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DANA M2는 우크라이나군의 현용 곡사포 규격인 152mm이어서 도입 논의가 놀라울 일이 아니지만, 크랩 자주포는 우크라이나 포병 규격과 맞지 않는 NATO 표준의 155mm 규격을 사용하고 있어 우크라이나가 왜 이 자주포를 도입하려 하는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다.
     
    지구 반대편 우크라이나가 폴란드제 자주포를 도입하는데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는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대량 납품할지도 모르는 이 자주포의 절반이 ‘Made in Korea’가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폴란드가 자주포를 수출하는데 뜬금없이 ‘Made in Korea’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자주포가 제조국은 폴란드지만 한국과 영국의 혈통이 섞인 ‘혼혈’이기 때문이다. 

    크랩은 1999년 NATO에 갓 가입한 ‘신입’ 폴란드가 ‘터줏대감’인 영국의 환심을 사기 위해 영국제 자주포를 기반으로 만들어낸 폴란드-영국 혼혈 자주포였다. 폴란드는 NATO 가입 후 소련제 장비를 버리고 NATO와 탄약과 통신이 호환되는 신형 무기로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차세대 자주포 개발을 위한 일명 ‘레지나 프로젝트(Project ’Regina’)‘로 명명된 영국-폴란드 합작 사업에 착수했다. 



    이 프로젝트는 영국의 BAE 시스템즈가 생산하는 AS-90 자주포의 포탑과 폴란드가 개발한 차세대 범용 플랫폼 UPG-NG(Uniwersalna Platforma Gąsienicowa - Nowej Generacji)를 결합하는 사업이었다. 폴란드는 이 신형 자주포에 UPG-NG 차체를 사용해 보고 앞으로 만들 모든 차세대 장갑 차량에 이 차체를 사용할 예정이었다. 

    이 혼혈 자주포 개발 사업은 방산 공기업 부마르(Bumar)가 맡았다. 부마르는 2008년, 영국에서 10대의 AS-90 포탑을 받아와 UPG-NG 차체에 얹어 10문의 시제품을 생산해 폴란드 육군에 납품했다. ‘AHS 크랩’으로 명명된 이 자주포는 ‘폴란드군의 NATO化’의 선구적 상징물로 큰 기대를 모았지만, 납품 몇 달이 채 되지 않아 폴란드 육군의 엄청난 질타를 받는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차세대 자주포 차체 해외 공개 입찰

    폴란드의 크랩(Krab) 자주포. [위키피디아]

    폴란드의 크랩(Krab) 자주포. [위키피디아]

    애초에 UPG-NG는 보병전투장갑차 등 경량 장갑차량으로 사용하기 위해 개발된 물건이었다. 그런 플랫폼에 엄청난 반동이 발생하는 52구경장 155mm 곡사포를 얹었으니 차체가 온전할 리가 없었다. 주행 중 차체에 균열이 가거나 서스펜션이 파손되는 것은 물론, 사격을 하면 반동 때문에 차체가 출렁이듯 춤을 추는 현상이 발생했다. 

    자주포의 차체가 반동을 제대로 받아내지 못하면 화포의 방열이 흐트러지기 때문에 엄청난 오차가 발생한다. 그 반동 때문에 차체와 화포 구성 부품이 깨질 수도 있다. UPG-NG 차체를 사용한 크랩은 바로 그런 문제에 시달렸고, 격분한 폴란드 육군은 프로젝트 자체를 날려버리려 했지만, 폴란드 정부가 부마르와 협의해 2014년까지 문제를 해결하는 것으로 합의를 봤다. 

    그러나 제작사는 2014년이 넘어서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고, 설상가상으로 엔진을 납품하기로 했던 업체가 경영난으로 엔진 제조 공장을 폐쇄해 추가 생산과 군수지원에도 문제가 발생했다. 부마르는 시간을 더 주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해외에서 도입하면 국내 방위산업 기반이 흔들릴 것이라며 시한 연장을 요구했다. 하지만 폴란드 국방부는 일언지하에 거부하고 차세대 자주포 차체 해외 공개 입찰을 선언했다. 

    가장 유력했던 것은 영국의 BAE 시스템즈였다. BAE 시스템즈는 포탑이 AS-90이니 당연히 차체도 AS-90을 써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폴란드 국방부가 선택한 것은 한국의 K9 자주포 차체였다. AS-90의 완제품 수출을 기대하고 있던 BAE 시스템즈는 모든 외교 채널을 통해 강력하게 항의하며 “AS-90의 포탑에 AS-90을 모방한 짝퉁 차체를 결합하는 격”이라며 K9을 깎아내리는 비방전을 펼쳤다. 그러나 폴란드는 일사천리로 K9 자주포 차체 120대를 도입하는 3억 1000만 달러 규모의 계약을 삼성테크윈(현 한화디펜스)과 체결했다. 

    이 계약은 한국이 K9 자주포 차체 24대 완제품을 폴란드에 직접 공급하고, 이후 현지 공장에서 면허생산 및 기술이전 조건으로 96대를 생산하는 조건이었다. 삼성테크윈의 후신인 한화디펜스는 납기를 정확히 지켜 폴란드에 차체를 납품했고, AS-90 자주포 포탑과 통합하는 작업도 도왔다. 이렇게 만들어진 신형 크랩은 폴란드 육군의 시험평가에서 극찬을 받으며 5개 연대 전력화가 확정됐고, 첫 번째 연대인 제11포병연대 물량 24문이 최근 실전 배치가 완료됐다.
     
    K9 자주포의 차체를 결합한 크랩은 폴란드 육군에게 그야말로 ‘신세계’를 열어주었다. 한국군에 1000문 이상이 배치돼 이미 그 성능과 신뢰성을 검증 받은 K9 자주포의 차체는 소련제 장비만 사용하던 폴란드군 장병들에게 우수한 신뢰성과 쾌적한 거주성 등 모든 분야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고, ‘명품’ 차체와 결합한 포탑 역시 성능을 100% 발휘하며 폴란드 육군 포병에게 ‘사후이속(Shoot & Scoot, 적의 대·對 포병 사격을 피하기 위해 포탄 발사 후 즉각 현장을 이탈하는 치고 빠지기식 포병 운용)’ 시대를 열어주었다. 

    폴란드에 대한 K9 자주포 차체 수출 성공 사례는 이후 유럽 여러 나라에 입소문이 돌았고, 핀란드·에스토니아·노르웨이 등이 K9을 도입하는데 영향을 미쳤다. 그런 K9이 폴란드를 발판으로 이제는 우크라이나에 수출될 가능성이 열린 것이다. 

    문제는 폴란드가 우크라이나에 어떤 방식으로 이 자주포를 수출하느냐 하는 것이다. 한화디펜스는 1차분 24대의 완제품 차체를 모두 납품한 상태이고, 현재 생산 중인 차량은 한화가 현지 국영 업체인 HSW(Huta Stalowa Wola)에 부품을 보내 현지에서 제작된 물량이다. 현재의 구조에서 우크라이나가 크랩을 주문하면 폴란드는 우크라이나 납품용 크랩을 생산하기 위해 한화디펜스와 추가 차체 도입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

    폴란드, 차체 국산화 시도 가능성

    영국 BAE 시스템즈가 생산하는 AS-90 자주포. [미국 육군 제공]

    영국 BAE 시스템즈가 생산하는 AS-90 자주포. [미국 육군 제공]

    2014년 계약 당시 K9 차체의 폴란드 수출 가격은 1대에 약 28억 원꼴이었는데, 우크라이나가 2S3 자주포 대체 물량 235문을 모두 크랩으로 대체할 경우, 이번 거래 성사만으로 한화는 6500억 원이 넘는 수출 이익을 얻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K9 차체 도입과 함께 기술 이전을 받은 폴란드가 차체 국산화를 시도해 우크라이나 납품 물량 차체를 전량 자국산 차체로 대체할 경우 막대한 수출 물량에도 불구하고 한화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은 적거나 거의 없을 수도 있다. 

    외국산 장비를 면허생산하며 기술을 축적하고, 국산화해 이를 제3국에 판매하는 방식의 방위산업 운영은 우리나라가 방위산업을 발전시켜 오며 걸어온 길이기 때문에 폴란드가 K9 차체를 국산화해 우크라이나 판매를 추진한다고 해도 우리가 문제 삼기는 어렵다. 다만 모처럼 수백 대 규모의 대규모 자주포 수출 사업의 기회가 열렸으니, 한화디펜스는 물론 우리 정부도 상황을 잘 모니터링하며 국산 차체 또는 부품이 대거 수출될 수 있는 방안을 찾기 위해 함께 머리를 맞대고 고민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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