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7

2020.12.04

한국형 함재기 사업, 사출기 무시하면 안보공백 온다 [웨펀]

  •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10-22 10:4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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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OBAR 방식의 항공모함이 도입할 수 있는 함재기인 F-35C와 F/A-18E/F, 프랑스의 라팔(위부터). [동아DB]

    CATOBAR 방식의 항공모함이 도입할 수 있는 함재기인 F-35C와 F/A-18E/F, 프랑스의 라팔(위부터). [동아DB]

    현 정권이 출범하고 한국항공우주산업(KAI)만큼 기세가 등등해진 기업도 없을 것이다. 정권 교체 후 KAI 사장에는 정권의 핵심 실세와 아주 가까운 것으로 알려진 인사들이 사실상 ‘임명’됐고, 이 때문인지 KAI의 최대 고객인 군은 ‘구매자’임에도 불구하고 ‘판매자’인 KAI와 갑을관계가 뒤바뀐 듯한 모습들이 잊을만하면 언론을 통해 보도되고 있다. 

    멀쩡한 블랙호크 헬기를 대량으로 퇴역시키고 그 빈 자리를 KAI의 수리온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은 언론 보도를 통해 많이 알려졌다. 선행연구 결과를 뒤집어 버리고 합동참모회의 의결서에 ‘KAI사의 마린온’이라는 업체명과 제품명까지 기재해가며 무장헬기 국내 개발이 가능하니 전력화 시기를 뒤로 미뤄야 한다는 위법 소지가 다분한 결정을 내리는가 하면, 이런 문제를 지적한 국회 예결위 보고서 작성자가 집권 여당의 국방위원장실에 불려가 혼쭐이 나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업들은 지금부터 소개할 사업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무려 ‘해군용 함상 전투기’ 자체 개발 이야기까지 나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KFX 네이비’다.

    총선 공약으로 내건 항공모함 도입

    이 이야기가 처음 나온 것은 10월19일, 국내 모 매체의 ‘단독기사’였다. 이 기사는 익명의 ‘업계’와 익명의 ‘군사전문가’를 인용해 “업계가 경항모에 탑재할 해군용 한국형전투기(KFX) 네이비 개발을 검토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면서 “예산이나 기술적 측면에서 KFX 네이비의 승산이 있다는 전망까지 나온다”고 주장했다. 

    보통 이런 유형의 ‘단독’ 기사는 업체나 기관에서 여론 조성 작업 초기에 언론과 접촉해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은데, 해당 기사 역시 왜 KFX 함재형을 개발해야 하는지 그 당위성을 주장하는 업체의 주장이 고스란히 실려 있었다. 

    해당 기사는 수직이착륙 버전인 F-35B의 성능이 사출기 이함 방식인 F-35C보다 크게 떨어지는데 반해 가격이 매우 높아 효용성이 떨어지므로, F-35B보다는 사출기 이함 방식의 함재기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제기하며 여기에 KFX 네이비 개발 필요성을 슬쩍 끼워 넣었다. F-35B 가격이 비싸 이 기종을 도입하면, 선체 가격과 헬기 등 전체 사업 비용이 10조 원에 육박하게 되니, 차라리 그 돈으로 정규 항모를 건조해 거기다 KFX 네이비를 얹자는 주장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실 지난주 국정감사장에서 처음 나왔다. 지난해 3월, 총선 공약으로 항공모함 도입을 내걸었던 집권 여당이 갑자기 태도를 바꾸어 항모 사업 일정을 뒤로 미루어야 한다는 주장을 쏟아내기 시작한 것이다. 

    포문은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열었다. 안 의원은 해군본부 국정감사에서 독도함의 운용일수를 지적하며 “해군은 경항모나 한국형 구축함 등 무기체계 늘릴 생각만 하지 말고 우리가 가진 전력을 100%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라”며 해군의 항모 도입 조기 착수에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이어 같은 당 설훈 의원은 “경항모가 시기상조라는 지적이 일리 있다고 생각하고, 핵잠수함 쪽으로 먼저 방향을 잡는 게 옳은 방향이 아닌가 생각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야당에서도 “작전상 경항모가 정말 필요한 것인지 제대로 확인해서 추진하라”거나 “F-35B 기종 도입 검토를 결정한 것이 부끄럽지 않느냐”는 질타가 쏟아졌다. 정치권의 이러한 질타가 쏟아진 직후, 누군지 모를 업계 관계자를 인용해 ‘KFX 네이비’ 개발 주장이 튀어나온 것은 그야말로 오비이락(烏飛梨落)이 아닐 수 없다.

    육상기와 너무 다른 함재기

    그 ‘업계’는 KFX가 2026년 개발이 완료되기 때문에 충분히 함재기 버전을 개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물론 이 주장에는 해군이 F-35B를 운용하는 STOVL(Short Take Off and Vertical Landing) 방식의 항모를 포기하고 CATOBAR(Catapult Assisted Take Off But Arrested Recovery) 방식의 정규 항모를 도입한다는 전제가 있지만 말이다. 

    사실 선체 형상을 STOVL에서 CATOBAR로 바꾸는 것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해군은 이미 4년 전, 대우조선해양이 수행한 7만 톤급 CATOBAR 항공모함의 기술 검토 자료를 가지고 있다. 당시 대우조선해양은 선체 형상과 배치, 추진기관, 심지어 승조원 숫자와 인건비를 비롯해 건조비와 수명주기비용까지 계산해 놓고 있었기 때문에 해당 자료를 활용하면 선체 형상 변경 문제는 별 어려움 없이 해결할 수 있다. 

    문제는 함재기다. CATOBAR 방식의 항공모함이 도입할 수 있는 함재기는 F-35C와 F/A-18E/F, 프랑스의 라팔 등이 고려될 수 있다. 그러나 6세대 전투기가 곧 나오는 마당에 F/A-18E/F나 라팔과 같은 4.5세대 전투기를 도입할 이유가 없기 때문에 당연히 함재기는 F-35C가 되어야 하지만, 여기에 뜬금없이 ‘KFX 네이비’라는 모델이 튀어 나온 것이다.

    그 ‘업계’와 누군지 모를 ‘군사전문가’는 한국형 항공모함의 전력화 목표 시기가 2030년대 초중반이기 때문에, KFX를 함재기로 개조할 시간이 충분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불가능’하다. 

    함재기는 비전문가가 봤을 때 외형상 육상용 전투기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완전히 다른 항공기다. 주요 부품의 재질부터 골격 설계, 비행 제어 소프트웨어에 이르기까지 육상기와 너무도 다른 특성을 가지는 것이 함재기다. 

    우선 주요부에 대한 방염 대책이 적용된다. 육상에서 운용되는 공군기와 달리 함상에서 운용되는 함재기는 염분에 의한 부식과 부품 성능 저하가 매우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에 주요 부품의 방염 기준이 육상기와 다르게 설정된다. 

    넓디넓은 비행장이 아닌 비좁은 항모 갑판에서 운용되기 때문에 모듈화와 폴딩(Folding) 설계도 필수다. 항모 격납고는 격납고이자 정비고, 보급창 역할을 해야 하므로 항상 좁다. 이 때문에 함재기로 설계되는 항공기들은 모듈화를 통해 손쉽게 분리될 수 있어야 하고, 폴딩을 통해 자신의 체적을 최대한 줄여야 한다. 

    함재기는 모듈화‧폴딩이 가능해야 하는 것은 물론, 육상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튼튼한 골격과 랜딩기어(Landing gear)를 가져야 한다. 30톤급 함재기가 증기 사출기를 통해 발진할 때 사출기에 걸려 있는 랜딩기어에 걸리는 순간 하중은 9톤급이다. 이 순간 하중은 랜딩기어를 통해 기체에 그대로 전해지는데, 랜딩기어와 전방 기체 설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사출과 동시에 기체 전방 동체가 뜯겨 나갈 수 있다. 

    이 때문에 함재기는 더 두껍고 튼튼한 랜딩기어를 사용하며, 기골 역시 육상용 항공기에 비해 더 튼튼하게 설계되어야 한다. 즉, 처음부터 함재기 전용을 고려하지 않고 설계된 KFX를 함재기로 개조하려면 기골부터 동체 구조 설계를 완전 재설계에 가까운 수준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렇게 함재기 개조를 한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사출기와 강제 착함 장치도 만들어야 하고, 이러한 장치들을 조합해 육상 실험도 충분히 거쳐야 한다. 우리가 F-35C와 미국의 EMALS(Electromagnetic Aircraft Launch System)를 구매한다면 미국이 이러한 실험과 운용요원 교육훈련을 일정 부분 지원해줄 수 있겠지만, 함재기도 독자 개발하고, 그 함재기에 맞는 사출기도 따로 개발한다면 모든 것을 우리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

    10년 안에 독자 개발?

    사출 및 강제 착함 장치는 50년 넘는 CATOBAR 항모 건조 및 운용 경험을 가진 프랑스조차 미국제를 수입해 쓰고 있고, 우리보다 항공 기술력에서 우위에 있는 중국조차 이 문제를 해결하는데 4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중국은 1985년 호주의 퇴역 항모를 구매해 증기 사출기를 뜯어보며 CATOBAR 항모의 구조와 운용 방식, 기술적 특성에 대해 연구를 시작한 뒤 브라질 해군에게 큰돈을 주고 함재기 함상 운용 노하우를 배우는 한편, 우한에 모형 항모를 만들어 놓고 이곳에서 10년 가까이 사출 및 회수 시스템에 대한 연구 개발을 수행해 최근 겨우 관련 개발 일정을 마쳤다. 그런데 이런 시스템을 10년 안에 독자 개발해 항모에 얹을 수 있다니,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다. 

    백번 양보해서 이 모든 것이 10년 안에 가능하다고 가정해도 문제다. KFX는 기본적으로 4.5세대 전투기다. 이 전투기가 완성돼 배치되는 2030년대 중반이면 미국과 일본, 중국, 러시아가 6세대 전투기 양산을 시작할 시기다. 지난 1980년대 초, 세계 각국이 4세대 F-16을 도입할 무렵 한국 홀로 3세대 F-5를 대량 면허생산 해 수십 년 뒤처진 공군력이 두고두고 문제가 되었던 사례가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성능만큼이나 가격도 큰 문제다. KFX 네이비를 도입할 나라는 한국뿐이다. 당연히 규모의 경제라는 것은 기대할 수 없고, 도입 수량도 많아 봐야 40대 안팎이 될 것이다. 수백 대 양산 물량을 확보한 F-35C나 F-35B에 비해 획득, 유지 모든 면에서 비쌀 수밖에 없다. 가격과 성능 모든 면에서 합리적이지 못한 ‘KFX 네이비’ 이야기가 나온 것은 오직 ‘국산’이라는 타이틀 때문이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사회에서는 ‘국산화=절대선’이라는 인식이 팽배해져 있다. 물론 국산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이점도 많지만, 과도한 국산화 요구는 외산(外産)에 대한 과도한 배격으로 이어지고, 이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수많은 ‘국산 명품 무기’의 실패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한국형 함재기’라는 그럴싸한 ‘국뽕 마케팅’으로 고개를 들고 있는 ‘KFX 네이비’를 경계해야 한다. 항모와 전투기라는, 천문학적인 예산과 시간을 잡아먹는 사업에 합리성이 결여된 ‘국뽕’이 접목되는 순간, 막대한 혈세의 낭비와 안보 공백이 올 수 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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