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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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위성 구입비 3조, “전작권 전환보다 급한 비용” [웨펀]

  • 신인균(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입력2020-09-03 14:0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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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찰 위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정찰 위성.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제공]

    정치학에서 다루는 다양한 동맹이론 가운데 자율성과 안보의 교환 모델(Autonomy-Security Trade-off Model)이라는 것이 있다. 이 모델은 비교적 국력이 약한 나라가 강대국과 동맹관계를 맺을 때 강대국의 영향력 행사를 일정 부분 수용하는 대가로 강대국의 힘을 빌려 안보 소요를 충족하는 것을 말한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체결한 동맹은 대부분 이러한 모델이었다. 전후 잿더미가 된 유럽은 소련의 위협에 직면하면서 미국과 군사동맹을 맺고 자국 영토에 미군을 주둔시키는 한편, 마셜 플랜에 따라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원조를 받아 경제 재건에 나섰다. 미국은 동맹국에 군사적∙경제적으로 원조를 해주면서 해당 국가에 대한 영향력을 키웠다. 미국의 원조를 받은 나라는 미국식 가치인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체제를 도입해야 했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어떤 정치세력이 집권하면 그 정통성을 미국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이 체제 안정을 달성하는 데 가장 중요한 전제조건이 되기도 했다. 

    미국과 이 모델의 동맹을 체결한 나라들은 경제력 상승과 대미(對美) 자율성 증가가 비례하는 경향을 보인다. 유럽이 그랬고,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였다. 6·25전쟁으로 전 국토가 잿더미가 됐던 우리나라는 수만 명의 미군을 주둔시키고 군사적 자율권을 어느 정도 포기하는 대신, 미국의 경제 원조와 안보 지원을 바탕으로 한강의 기적을 일구며 빠르게 발전했다. 1980년대 눈부신 경제발전을 일군 우리나라는 노태우 정부 출범 이후 작전통제권 전환을 추진하기 시작해 김영삼 정부 시기에 평시작전통제권을 넘겨받았다. 이후 김영삼 정부는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도 추진했지만, 1994년 북핵 위기가 불거지면서 전작권 환수 논의는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우리나라에서 전작권 전환이라는 이슈가 일반 대중의 관심사로까지 확산된 시기는 노무현 정부 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주국방’을 기치로 해공군에 상당한 투자를 하며 전작권 전환을 추진했지만,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 전환은 차일피일 미뤄졌다. 

    경제 우선의 실리정책을 펼쳤던 이명박 정부는 전작권 전환에 부정적이었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국방예산을 대폭 늘려야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안보 주권 회복’이라는 명분보다 국방예산 절감이라는 실리에 집중했다. 결국 이명박 정부 기간 중 전작권 전환 논의는 거의 진행되지 못했고, 다음 정부인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야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이라는 명제가 확립됐다. 



    우리 사회에서 전작권 전환은 대단히 민감한 이슈다. 전작권 전환을 주장하는 진영은 안보 주권 회복을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전환 반대 진영을 ‘매국노’ ‘친미 사대주의자’라고 몰아붙인다. 반대로 전작권 전환을 반대하는 진영은 안보 불안 해소와 한미동맹 강화를 내세우면서 반대 진영을 ‘빨갱이’ ‘이상주의자’라고 몰아붙인다. 

    사실 양 진영의 주장은 다 맞는 말이다. 대한민국은 당당한 주권국가로서 우리 안보는 우리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주장에 이견을 제시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테다. 반대로 너무 자주성만 내세우다가는 안보 불안이 생겨 나라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주장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조건에 기초한 전작권 전환’이라는 말은 바로 이 때문에 나왔다. 

    한미 양국이 2014년 제46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규정한 전작권 전환 조건은 △전작권 환수에 부합하는 한반도 및 지역 안보 환경 △한미연합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핵심 군사 능력 확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리 군의 초기 필수 대응 능력 구비 등 3가지다. 그러나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 3가지 조건 중 갖춰진 것은 단 한 하나도 없다. 

    우선 한반도 및 지역 안보 환경을 보자. 북한의 위협은 더욱 고도화됐다. 지난 6년간 북한은 단거리부터 중거리, 장거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유형의 정밀 타격 자산을 확보했고, 여기에 탑재할 소형화된 핵탄두 개발 및 양산에도 성공했다. 중국, 러시아, 일본의 군사적 팽창으로 서해와 동해에는 연일 이들 나라의 군함과 군용기가 떠다니고 있으며, 우리의 핵심 해상교통로에서는 미국과 중국의 군사적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한미연합 방위를 주도할 수 있는 한국군의 핵심 군사 능력 확보라는 목표도 거의 달성되지 못했다. 한미연합 방위 주도를 위한 핵심 군사 능력이란 크게 정보 능력과 지휘통제 능력, 그리고 전쟁 지속을 위한 군수지원 능력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실 이 분야는 애초에 한국이 독자적으로 능력을 갖추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이들 능력을 모두 갖추는 데 소요되는 예산이 천문학적이기 때문이다. 

    정보 능력은 최소 72시간 이전에 북한의 전쟁 도발 준비를 조기경보할 수 있는 전략적 정보 수집·분석은 물론, 전쟁이 발발하면 전구(Theater) 내에서 발생하는 모든 정보(Intelligence)를 실시간으로 수집·분석하고 정보(Information) 소요 부대에 이를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서는 한반도 전역을 촘촘하게 감시할 수 있는 영상·신호정보 수집 위성과 정찰기를 대량으로 도입, 운용해야 한다. 

    한반도 상공을 1시간에 한 번 촬영하려면 10~12기의 정찰위성이 필요하다. 정찰위성 기당 가격이 2500억~3000억 원 수준이고, 설계 수명은 5년 안팎이므로 매년 위성 전력의 구축, 유지에만 조 단위 예산이 필요하다. 정밀한 작전을 위해 위성 구입비만 적어도 3조 가량이 든다. 미군의 조인트 스타즈나 RC-135 같은 고성능 정찰 자산은 대당 3000억~5000억 원 수준이다. 한국보다 많은 국방예산을 쓰는 영국 등 나토(NATO) 회원국들도 정보 자산을 공동구매해 운용하는 마당에 이들 정보자산의 독자 구축과 운영은 어불성설이다.

    다연장 로켓 포탄. [록히드 마틴 전투기 제작사]

    다연장 로켓 포탄. [록히드 마틴 전투기 제작사]

    전쟁 지속 능력은 전쟁이 발발했을 때 소요되는 탄약과 물자를 전쟁 기간 내내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능력을 말한다. 한국군의 고질적인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탄약이다. 155mm HEBB탄 1발 가격이 120만 원이고, MLRS(다연장로켓시스템)에서 사용하는 227mm 로켓탄 1발이 4000만 원이다. K9 1개 대대가 1회 일제사를 하면 2200만 원이, MLRS 1대가 12발 일제사를 하면 4억8000만 원이 날아간다. 전시 상황에서 이들 화포는 1문이 하루에 수십 발의 포탄을 쏜다. 우리 육군에는 개전 초기 대화력전에 투입되는 상비사단과 군단 포병여단 소속의 포신 포병 대대만 100개가 넘는다. 

    북한 전역을 실시간으로 들여다볼 수 있는 조밀하고 정밀한 정보자산, 그리고 막대한 전쟁물자를 평시에 모두 갖춰놓고 있는 것은 누가 봐도 낭비요, 비효율적이다. 군에서 수십 년간 근무한 예비역이 대부분 전작권 전환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이는 것은 바로 이 점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작권 전환의 마지막 조건인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우리 군의 초기 필수 대응 능력 역시 갖춰지지 않았다. 북한은 기습 발사가 용이한 고체연료 방식의 중·단거리 탄도탄부터 대구경 방사포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진입 코스로 남한 전역을 타격할 수 있는 수단을 갖췄지만, 한국은 여기에 대응할 다층 방어체계 구축은 고사하고 아직 독자적인 조기경보 능력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한국군이 이른바 ‘3축 체계’라는 것을 들고 나오며 서울과 일부 공군기지만 극히 제한적으로 방어 가능한 전력을 구축하기 시작하자 북한은 다종화된 장거리 방사포와 고체연료 탄도탄을 이용해 3축 체계를 무력화하는 전력을 완성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제야 대응 전략이랍시고 L-SAM(장거리지대공미사일 시스템)이나 한국형 아이언돔을 10년쯤 후에 자체 개발해 배치하겠다는 소리를 하고 있다. 

    전작권 전환을 위한 대내외 환경도, 한국군의 준비도 거의 되지 않은 상태인데 현 정부는 집권 초기부터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을 밀어붙여왔다. 2019년 최초작전운용능력(IOC)을 검증하고, 올해 완전운용능력(FOC)을 달성하며, 내년 완전임무수행능력(FMC)을 갖춰 2022년 전작권 전환을 한다는 얼토당토않은 플랜이 제시됐다. 

    북한의 반발로 한미연합훈련은 계속 축소·연기돼왔고 이로 인해 전시 한미연합군의 정상적인 작전 수행이 어려울 것이라는 미군 측 문제제기가 계속 있어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방부는 매년 두 차례 연합훈련을 연합작전 수행능력 제고가 아닌, 전작권 전환을 위한 예행연습과 검증에 초점을 두고 실시하자며 미국과 대립해왔다. 결국 올해 8월 한국군의 FOC 검증은 실시되지 않았고,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이 교체되면서 FOC 검증은 새로운 군 수뇌부에 의해 내년 상반기 진행되게 됐다.

    대단히 우려스럽게도 새로운 군 수뇌부 모두 지명 이후 첫 일성으로 ‘전작권 전환 가속’을 내세우며 정부와 코드를 맞추는 모양새다. 서욱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현재는 조건에 전제한 전작권 전환이니 조건을 가속화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했고, 원인철 합참의장 내정자 역시 “대통령의 통수지침과 장관의 지휘 의도를 받들겠다”며 “전작권 전환 등 주요 국방 과제 추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서욱 국방부 장관 후보자와 원인철 합참의장 내정자는 사관생도 시절까지 포함하면 40여 년간 군복을 입고 일생을 군문에 바친 군인이다. 그동안 수십, 수백 차례 연합훈련을 했을 테고, 작전과 군정 분야를 두루 거치면서 현 정부의 임기 내 전작권 전환이 왜 어려운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군인은 나라를 지키는 것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고 오로지 그것만 생각해야 한다. 정치권에서 특정 정파의 이해관계 때문에 국방을 흔들려 한다면 직을 걸고 군 통수권자와 다른 목소리를 낼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 군인이다. 최근 대선을 두 달여 앞두고 극도의 혼란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에서는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이 군 통수권자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과 관계없이 군은 철저히 무정치성(Apolitical)을 지키겠다고 선언해 국민의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번 국방부 장관 교체는 기수를 뛰어넘는 파격적 인사로, 장관 교체 이후 대대적인 장성 인사가 이뤄질 전망이다. 새로 임명될 군정·군령 책임자와 군 수뇌부가 부디 출세를 위한 정무적 판단보다 국민을 위한 군인의 양심을 지켜줄 것을 간곡히 호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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