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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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용 내역 묻지마”, 세입자 울리는 원룸 관리비

5만 원에서 15만 원까지 제각각, ‘깜깜이’ 내역이 대부분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0-06-10 08:3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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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슷한 원룸으로 이사했는데, 관리비는 2배로 올랐네요.” 

    서울 관악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임모(27) 씨의 말이다. 그는 서울 서대문구에서 관악구로 이사하면서 원룸 관리비가 월 5만 원에서 10만 원으로 올랐다. 주차를 하려면 매달 5만 원을 별도로 내야 한다. 그는 “방 크기도, 원룸 건물의 가구수도 비슷한데 관리비는 갑절이 됐다”며 “돈도 돈이지만, 관리비가 어디에 사용되는지 모른다는 게 더 문제”라고 말했다.

    깜깜이 원룸 관리비

    청년 1인 가구가 주로 거주하는 원룸촌. [동아DB]

    청년 1인 가구가 주로 거주하는 원룸촌. [동아DB]

    전체 가구에서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는 1인 가구(29.3%·2018년 기준). 그중 청년 1인 가구는 주로 원룸에 거주한다. 그런데 원룸 관리비는 그 비용도, 포함된 항목도 제멋대로인 경우가 많아 청년 세입자의 원성을 사고 있다. 

    부동산 중개 애플리케이션(앱)에서 ‘원룸’을 검색하면 보증금, 월세와 함께 관리비 정보가 표시된다. 한동네 비슷한 면적의 방이라도 관리비는 천차만별. 적게는 3만 원부터 많게는 10만 원이 넘기도 한다. ‘관리비 협의 가능’이라고 적어놓은 곳도 있다. 

    관리비는 말 그대로 ‘건물을 관리하는 비용’으로, 청소·소독비와 경비원이 있는 경우 경비비 용도로 지출된다. 전기·가스·수도 사용료 같은 공과금은 관리비에 포함되지 않는다. 임대차계약서에 관리비 금액이 표시되지만, 구체적인 사용 내역을 세입자에게 알려주는 곳은 드물다. 



    서울 마포구에서 부동산중개업을 하는 신모 씨는 “원룸 관리비는 5만 원에서 10만 원 사이가 보통이지만, 종종 월세가 주변 시세보다 저렴한 대신 관리비를 비싸게 받는 곳도 있다. 관리비에 케이블TV 사용료가 포함돼 TV가 없는 청년 세입자가 불만을 토로하는 곳부터 정화조 비용을 포함하는 곳까지 제각각이다. 사실상 원룸 관리비 책정은 집주인 마음대로인 셈”이라고 전했다. 

    서대문구에 다가구주택을 소유한 최모 씨는 “각 세입자로부터 수도요금을 포함해 매달 5만 원을 관리비로 받는다”며 “사람을 불러 청소하면 돈이 더 들기 때문에 매일 직접 청소한다. 이 정도는 많이 받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서울 강남지역은 월 관리비가 10만 원을 훌쩍 넘기도 한다. 경기 용인시에 거주하는 박모(27) 씨는 지난해 12월 회사를 옮기면서 서울지하철 9호선 선정릉역 인근에 석 달간 거주할 집을 구했다. 박씨는 “전화로 월세 85만 원짜리 원룸을 알아보고 계약하러 부동산공인중개사사무소에 찾아갔더니, 청소비와 인터넷·수도 사용료가 포함된 관리비로 월 15만 원을 따로 내야 한다고 했다”며 “사실상 월세 100만 원이라 부담이 컸지만 출근이 임박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계약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청년 주거 관련 시민단체 민달팽이유니온이 2014년 제시한 서울지역 표준 원룸 관리비는 1만3450~1만4525원. 30가구의 원룸 건물을 기준으로 실제 소요되는 청소비, 물탱크 청소비, 승강기 점검비, 인터넷 회선비를 조사해 가구수로 나눈 금액이다. 6년 전 금액임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서울지역 원룸이 관리비로 5만 원 이상을 받고 있는 것은 과하다고 할 수 있다. 최지희 민달팽이유니온 위원장은 “원룸 관리비 관련 상담이 들어와도 이를 문제 삼을 법적 근거가 부족해 제대로 대응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있으나 마나 한 입주민 동의제도

    서울 관악구 원룸 세입자 임모 씨가 제공한 원룸 임대계약서. 관리비 10만 원이 명기돼 있다.

    서울 관악구 원룸 세입자 임모 씨가 제공한 원룸 임대계약서. 관리비 10만 원이 명기돼 있다.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라 300가구 이상 공동주택은 47개 항목에 대한 관리비 사용처와 그 금액을 입주자에게 고지해야 한다. 매달 우편함에 꽂히는 아파트 관리비 명세서에는 공과금을 제외하고도 청소비, 소독비, 건물 보험료 등이 10원 단위까지 상세히 나와 있다. 온라인으로도 관리비 명세를 확인할 수 있다.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 홈페이지에서 아파트 이름을 검색하면 구체적인 사용 내역은 물론, 주변 아파트와 비교도 가능하다. 1월 국회에서 ‘집합건물의 소유 및 관리에 관한 법률’(집합건물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앞으로 150가구 이상 집합건물은 관리비 사용 내역을 작성, 공개, 보관하고 매년 회계감사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150가구 미만 집합건물은 여전히 관리비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다만 4월 24일부터 시행된 개정 공동주택관리법에 따르면 150가구 미만 공동주택도 입주민의 3분의 2 이상이 서면 동의할 경우 관리비를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에 공개해야 한다. 

    최 위원장은 “길어야 1~2년 거주하는 청년 세입자가 일일이 이웃의 서명을 받아 집주인에게 관리비 사용 내역을 요구하는 일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근까지 원룸에 거주했던 대학생 김모(24) 씨 역시 “누군가 총대를 메야 하는데, 누가 하려고 하겠나”라고 말했다. 이상엽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원룸 건물은 크기와 가구수가 각각 달라 법적으로 관리비 기준을 정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다만 원룸이라도 관리비 사용 내역을 세입자에게 정확히 알려주는 것은 건물주가 갖춰야 할 상식”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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