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천용성, 민수, 백예린, 림 킴, 이날치

2019년 플레이리스트에 꼭 추가해야 할 가수&노래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입력2019-12-30 10: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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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해 음악계를 돌아볼 때면 예년 같은 시기에 썼던 글이나 정리해뒀던 자료들을 들여다보게 된다. 이를 통해 나이 듦을 느끼고 시대의 변화를 체감하곤 한다. 2019년 음악계를 정리하기 위해 10년 전 데이터를 봤다. 당시 파릇파릇했던 신예들이 이제 중견이 되거나 다른 길을 걷고 있다. 

    다운로드나 음반을 통해 음악을 듣던 세태가 변해 이제는 모두가 스트리밍으로 음악을 듣는다.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 구입하던 CD는 이제 공연장에서 사인을 받기 위한 소장품의 개념이 됐다. 이에 소장 가치를 극대화하고자 CD 대신 LP나 카세트테이프로만 음반을 발매하는 경우도 늘어났다. 

    기술 발달과 노하우 축적으로 양질의 레코딩은 더욱 용이해졌고, 소셜미디어 발달로 홍보 및 활동의 영역이 확장되면서 데뷔하는 뮤지션의 체감 수도 더 많아졌다. 이는 자연스럽게 음악의 상향평준화를 유도했다. 더 많은 음악이 더 좋은 꼴로 우리에게 유성우처럼 쏟아진다. 

    하지만 그만큼 더 많은 음악이 작은 조명 한 번 받지 못하고 사라진다. 실시간 차트의 영향력이 더욱 강해진 데다, 극소수를 제외하면 크고 강력한 팬덤이나 사재기를 통한 장난질로 차트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좋은 음악, 가치 있는 음악과 대중의 귀에 머무는 음악은 반비례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우리에게는 여전히 들을 음악이 필요하다. 한 해 동안 꾸준히, 때로는 게으르게 음악을 들었다. 1년을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작년’으로 흘려보내기에는 아까운 노래들을 추려본다. 대부분 소수의 플레이리스트에 몸담고 있었을 테지만 이제라도 그 노래들을 얘기하고 싶다.

    천용성 ‘대설주의보’

    천용성 [천용성 인스타그램]

    천용성 [천용성 인스타그램]

    싱어송라이터 천용성은 2010년대 초반부터 활동했지만 존재는 미미했다. 몇 장의 싱글이 있을 뿐이다. 1987년생인 그가 뒤늦게 발매한 정규 앨범 ‘김일성이 죽던 해’는 거창한 제목과 달리 따뜻하고 소박하며 정갈한 노래가 담겨 있다. 윤상, 동물원, 브로콜리너마저 등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뚜렷한 흔적을 남기며 계보를 완성해온 뮤지션의 연장선에 있다고 할까. 



    그중 타이틀곡인 ‘대설주의보’는 힘 있는 멜로디와 포근한 사운드, 그리고 아련한 가사가 삼위일체를 이루는 매력적인 포크 팝이다. 이 앨범의 다른 노래가 대체로 그러하듯, 오래된 일기장이나 흐릿한 기억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음악으로 옮기고 소리로 꾸몄다. 개인적이며 보편적이다. 아직도 유튜브보다 라디오에서 음악을 듣는 게 더 좋은 사람이라면 꼭 챙겨야 할 곡이다.

    민수 ‘커다란’

    민수 [사진 제공 · 지니뮤직]

    민수 [사진 제공 · 지니뮤직]

    2016년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인 민수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섬’이라는 곡이었다. 음악이 만들어내는 빈 공간에 민수의 목소리는 멍하니 홀로 있었다. 최소한의 사운드가 잔향처럼 머물렀다. 그럼에도 주목할 만한 재능이자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전히 싱글 위주로 활동하는 민수는 올해 ‘커다란’이라는 곡을 냈다. 

    윤상이 강수지와 함께 작업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노래다. ‘섬’에서 그러했듯, 음악의 공간 중심에 민수의 목소리와 멜로디가 있다. 그때와 달리 그 주변에, 위와 아래에 풍부한 사운드가 자리한다. 

    최소한의 투입으로 적정한 그루브를 만들어내는 리듬이 있다. 적당한 반복과 아주 작은 변화로 만들어내는, 미니시리즈 같은 드라마가 있다. 이 노래를 통해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 민수의 정규 앨범을 기다리게 된다. ‘커다란’은 짝사랑에 대한 노래다.

    백예린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백예린 [백예린 인스타그램]

    백예린 [백예린 인스타그램]

    오랫동안 JYP엔터테인먼트에 몸담고 있었음에도 백예린은 그 역량과 가능성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가수다. 아니, 그럴 기회를 좀처럼 부여받지 못했다. 2015년 데뷔 이후 2장의 미니 앨범과 2장의 싱글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백예린이 하고 싶어 하는 음악과 회사에서 원하는 음악의 차이가 꽤 크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는 그가 JYP와 결별하기 직전 내놓은 마지막 작품이자 다시 한 번 그의 잠재력을 확인케 해준 곡이다. R&B를 바탕으로 하지만 이 매력적인 곡을 이끌어가는 백예린의 목소리는 흔하디흔한 ‘실용음악과 출신 R&B 보컬’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지극히 제한된 활동 영역에서 그가 갈고 닦고 있었던 내공의 칼날이 느껴진다. 

    말 그대로 재능을 뽐낸다. 도대체 왜 이런 재능이 그토록 적은 기회만 부여받았을까. 그래도 늦었지만 다행이다. 이 노래를 끝으로 백예린은 JYP와 결별하고 자체적으로 첫 정규 앨범 ‘Every Letter I Sent You’를 냈다. 이 또한 2019년 연말의 선물이었다.

    림 킴 ‘YELLOW’

    림 킴 [사진 제공 · 유니버설뮤직]

    림 킴 [사진 제공 · 유니버설뮤직]

    ‘슈퍼스타K’로 화제가 된 투개월 출신의 김예림은 미스틱엔터테인먼트에서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했다. 흔한 오디션프로그램 출신 가수의 운명을 답습하는 걸까. 천만의 말씀. 자신의 영어 이름 ‘림 킴’으로 돌아온 그는 올해 발표한 2장의 미니 앨범 ‘SAL-KI’와 ‘GENERASIAN’을 통해 상전벽해가 무엇인지를 보여줬다. 외모와 스타일링도 확 달라졌지만 음악은 이를 능가한다. 

    사전 정보가 없다면 다른 사람의 음악이라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힙합과 일렉트로니카를 바탕으로 한 그의 새로운 길은 지금 한국 대중음악, 또는 케이팝(K-pop)의 자장보다 음악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사운드클라우드를 기반으로 한 서구 음악 공동체의 최전선에 가깝다. 가장 앞선 트렌드를 본디 제 옷인 양 소화하면서도 ‘네이버뮤직 온스테이지’에서 증명했듯, 시각적 퍼포먼스에서도 충격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2019년 팝계에 빌리 아일리시가 있었다면 한국 음악계에는 림 킴이 있었다.

    이날치 ‘어류도감’

    이날치 [사진 제공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이날치 [사진 제공 ·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2018년 음악계에 짧고 강한 충격을 안겼던 ‘씽씽’을 기억하는가. 제대로 된 결과물을 보여주기도 전 너무 빨리 해체한, 국악과 팝의 결합체 말이다. 잠시나마 그들에게 열광했던 이라면 2020년을 기대해도 좋겠다. 씽씽의 주축이던 베이스 장영규를 중심으로 결성된 이날치가 있기 때문이다. 

    조선 철종과 고종 시대 활동했던 전설의 명창 이름에서 따온 이들 역시 국악에 서구 음악을 결합한 팀이다. 차이가 있다면 씽씽이 경기민요를 베이스로 한 반면, 이날치는 판소리가 중심이다. 장영규와 씽씽에서 함께했던 이철희, 장기하와 얼굴들 출신인 정중엽이 연주를 맡고 권송희와 박수범 등 소리꾼 5명이 노래를 맡는다. 

    이제 노래 2곡을 발표했을 뿐이지만, 그 전부터 여러 공연을 통해 멋쟁이들의 이목을 끌어왔다. 2020년에는 더 많은 활동이 예약돼 있다. 따라서 이 노래를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하는 건 2019년의 복습보다 2020년의 예습에 더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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