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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2시간 근무 시대에 야근 때문에 퇴사

일거리 도시락처럼 챙겨 퇴근 후 처리…급여 줄었는데 워라밸도 안 돼

  •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주52시간 근무 시대에 야근 때문에 퇴사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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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 10분 전이면 보통 도시락을 싸죠. 물론 먹는 도시락이 아닙니다. ‘일 도시락’이에요. 남은 일을 집에서 처리해야 하니까요. 필요한 파일을 모아 회사 e메일에 올려두고 퇴근하죠. 비밀 유지가 필요하다고 해 회사 내 파일을 USB 저장장치에 담거나 하긴 어렵거든요.” 

지난달 내로라하는 대기업에서 퇴사한 유모(30) 씨의 말이다. 유씨는 자정이 넘어서도 업무를 놓지 못하는 날이 6개월 넘게 이어지자 이를 버티지 못하고 회사를 나왔다. 

지난해 2월 주당 최대 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줄이는 주52시간 근무제가 도입됐다. 기업의 반발도 있었지만 정부의 도입 의사는 확고했고 실행도 빨랐다. 일부 기업은 하루 8시간, 정해진 근무시간이 끝나면 컴퓨터 전원을 끄고 임직원들을 집으로 보냈다. 일을 하고 싶어도 더 할 수 없게 만든 것.


52시간은 사무실 안에 머무는 시간

회사의 불은 꺼졌지만 유씨처럼 남은 일을 집에 가져가는 경우가 많은 것일까. 최근 퇴사자들을 대상으로 퇴사 이유를 설문조사한 결과 1위가 잦은 야근 등 ‘워라밸이 불가능한 직장생활(과로)’이었다. 과거 같은 조사에서는 과로보다 임금, 비전 등 다른 이유로 퇴사하는 사례가 더 많았다. 

인터넷 취업포털 잡코리아는 5월 7일 20~40대 퇴사자 1170명을 대상으로 퇴사 이유에 대해 설문조사했다. 응답자 중 가장 많은 23.2%가 ‘잦은 야근 및 일과 생활의 분리가 불가능해서’ 회사를 떠났다고 답했다. 근소한 차로 2위를 한 응답은 ‘불안정한 고용 상태’(22.9%), 3위는 ‘권위적인 회사 분위기’(21.1%)였다. 연령별 퇴사 이유는 조금 달랐다. 20대는 ‘권위적인 회사 분위기’(24.3%) 때문에 퇴사한 사람이 가장 많았고, 2위는 ‘워라밸이 불가능한 직장생활’(23.7%)이었다. 30대는 ‘불안정한 고용 상태’ 때문에 회사를 떠났다는 응답이 29.7%로 가장 많았다. 역시 퇴사 이유 2위는 ‘워라밸이 불가능한 직장생활’(23.3%). 40대는 퇴사 이유 1위가 ‘불안정한 고용 상태’(40.7%), 2위가 ‘낮은 급여’(24.3%)였다. 



하지만 지난해 같은 조사에서는 퇴사 이유가 달랐다. 잡코리아가 지난해 2월 퇴사 경험이 있는 직장인 153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에서는 퇴사 이유 1위가 ‘나의 미래 비전이 낮아 보여서’(36.7%·복수응답)였다. 2위는 ‘낮은 연봉’(34.4%), 3위는 ‘회사의 미래가 불투명해서’(33.8%)였다. 

‘잦은 야근’이 1년 만에 높은 순위를 차지한 것은 주52시간 근무제로 공식적으로는 일하는 시간이 줄었지만, 실제 일하는 시간은 같거나 늘어났기 때문으로 보인다. 

주52시간 근무제를 지키지 못하는 것은 공적 영역도 마찬가지다. 5월 15일 충남 공주에서 무기계약직 집배원 이모(34) 씨가 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유족은 이씨가 정규직 전환을 앞두고 과중한 업무를 거부하지 못해 계속 늦게까지 일해왔다고 밝혔다. 전국집배노동조합(집배노조)도 지난해 전국적으로 25명의 집배원이 숨졌는데 대부분 과로와 안전사고 때문이라며 노동환경을 개선해달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정사업본부 집계에 따르면 집배원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745시간. 이를 주단위로 환산하면 52.79시간이다. 주당 한계 근로시간인 52시간을 근소하게 초과한다. 계약직 집배원 A씨는 “우정사업본부가 비용을 줄이려고 초과근무 예산을 감축해 무료 노동이 늘었다. 실제 근로시간은 이보다 더 많을 것”이라고 밝혔다.


일했으면 보상을 줘야지

지난해 2월 국회에서 주52시간 근무제가 포함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동아DB]

지난해 2월 국회에서 주52시간 근무제가 포함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동아DB]

허울만 주52시간 근무제라 일이 줄지 않은 것도 서러운데, 급여 역시 야속하게 줄어든다. ‘일 도시락’을 싸들고 집에서 밤새워 일하더라도 이 비용을 회사에 청구할 수는 없다. 애초에 일을 줄이려고 만든 정책인 만큼 회사 눈치가 보여서라도 비용 청구가 어렵다. 

유씨가 퇴사한 이유 중 하나도 보상 문제 때문이었다. 주52시간 근무제 도입 이후 야근수당, 심야수당, 심야교통비가 전부 없어지니 통장 사정은 나빠졌다. 게다가 신규 인력 채용을 줄이니 일은 늘어났다. 결국 건강에 적신호가 켜졌고, 이를 회사에 밝혀 권고사직 형식으로 회사를 나오게 됐다. 권고사직을 받으면 실업급여를 수령할 수 있으니 회사로서는 유씨에 대한 마지막 배려였던 것. 

그는 “근로시간 단축은 잘못된 정책이 아니다. 하지만 일하는 시간을 줄이면 기업이 어쩔 수 없이 채용을 늘릴 것이라는 생각이 문제다. 차라리 시간외수당을 정확히 기록하는 방식이었다면 기업도 비용이 부담스러워 일하는 시간을 크게 줄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유씨 외에도 명목상 퇴근하고 집에서 일하는 직장인이 많다. 인터넷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11월 직장인 5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퇴근 후에도 업무 처리를 고민하거나 압박감에 시달린다는 응답자가 70.4%에 달했다. 퇴근 후에도 일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해야 할 일이 많아서’(44.4%·복수응답), ‘업무 실수에 대한 불안감으로 재차 확인해야 해서’(30.7%), ‘일을 다 못 끝내고 밀릴 때가 많아서’(29.5%) 순이었다. 

문모(28·여) 씨도 올해 초 직장을 그만뒀다. 대기업 입사를 목표로 2년간 꼬박 취업준비에 매달려 취업에 성공해 그동안 열심히 직장생활을 했지만 지난 1년간의 생활을 더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 부서 이동이 화근이었다. 지난해 초 핵심 부서로 발령받았다고 기뻐했던 것도 잠시, 엄청난 업무량이 문씨를 기다리고 있었다. 주52시간은 사무실에 남아 있는 절대시간을 의미할 뿐이었다. 인력은 그대로고 일하는 시간은 줄었지만 회사에서는 업무 마감이 늦어지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문씨는 “잠을 못 자고 스트레스가 늘어가니 원형탈모가 생겼다. 위장병도 생겨 약을 달고 살았다”고 밝혔다. 

그래도 문씨를 1년이나 회사에서 버티게 한 것은 상사와 동료들이었다. 누구 하나 요령 피우지 않고 열심히 일해 결과를 만들어내니 힘든 와중에도 보람은 있었던 것. 하지만 일을 잘하던 상사와 동료들이 인사이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새로 온 상사들은 연공서열 등에 목을 맸다. 당장 본인은 관리직이라며 업무 분담에서 빠진 채 실적이 나오지 않는다고 다그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결국 상반기보다 한참 나쁜 실적 탓에 팀이 해산됐고 성과급과 인사고과의 꿈도 날아갔다. 

박모(28·여) 씨 역시 비슷한 이유로 지난달 회사를 그만뒀다. 대리 승진을 눈앞에 두고 있던 그는 자발적으로 야근하며 좋은 성과를 냈다. 또래에 비해 입사가 늦어 승진 대상이 되자마자 대리 자리에 오르는 게 그의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는 인사고과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야 했다. 하지만 그는 승진하지 못했다. 팀장이 오랫동안 진급하지 못하고 있던 상사들에게 점수를 몰아줬기 때문. 그는 인사고과상으로는 지난 한 해를 그다지 치열하게 보내지 않은 동기들과 같은 성적표를 받아들어야 했다.


회사보다 사람이 싫어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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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씨는 “순간 이 회사는 능력에 따라 일을 시키면서 그 성과는 필요에 의해 나누는 공산주의와 뭐가 다른가 싶었다. 팀장이 다른 사람들은 다 가장이니 미혼인 네가 한 번만 희생해라. 다음에는 좋은 결과 있도록 도와주겠다며 양해를 구했다. 그 얘기에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다. 적어도 잘못된 것은 알고 있으니 언젠가 이상한 보상체계가 변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퇴사까지 하게 된 것은 내 성과의 과실을 대신 누린 윗사람들의 태도 때문이었다. 미안해하지는 못할망정 회의 때마다 내 성과를 깎아내리기 바빴다. 시간이 더 흐르면 저들이 팀장이 되고 나는 그 아래에서 일하게 될 텐데, 아무리 일해도 성과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할 것 같았다”고 밝혔다. 

선배 직장인도 하급자가 주는 스트레스가 만만치 않다. 중소기업 대리인 이모(28) 씨는 신입사원 때문에 머리가 다 빠질 지경이다. 면접을 거쳐 채용해도 일주일 정도 출근하다 못 나오겠다고 통보해온 신입사원이 벌써 3명. 그중 한 명은 휴대전화를 꺼놓고 연락도 받지 않았다. 이씨는 “결국 신입사원이 그만둘까 봐 눈치를 보게 된다. 상부에서는 이번에 뽑은 신입사원까지 그만두면 나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해 상사가 하나 더 생긴 기분이다. 지난주에는 신입사원이 회사 차량 열쇠를 잃어버렸다. 원래도 지각이 잦아 이번 기회에 한번 경고를 주려 했지만, 막상 그만두면 어쩌나 싶어 다음부터는 조심하라는 식으로 넘겼다”고 말했다. 

실제로 직장인의 가장 큰 스트레스는 인간관계였다. 잡코리아와 알바몬이 직장인 1049명에게 ‘회사생활에서 가장 버티기 힘든 부분’에 대해 물었다. 응답자의 22.3%가 ‘인간관계 스트레스’라고 답해 1위를 차지했고, ‘저녁 없는 삶’(16.8%)이 2위였다. 이 스트레스가 실제로 퇴사로 이어지는 비율은 젊은 층이 높았다. 같은 조사에서 ‘그래도 회사에서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체의 73.5%. 이를 연령별로 살펴보면 40대가 81%로 가장 높았고 30대는 74%, 20대는 71%였다. 즉 젊을수록 회사를 쉽게 떠나고 있는 것.


근무시간 단축의 과실 적지만 챙기는 사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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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는 퇴근 후 싸온 ‘일 도시락’으로 과로를 하고 있지만, 근무시간 단축으로 워라밸을 찾은 사람도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국민의 평균 여가시간은 주말 5.3시간, 평일 3.3시간으로 최근 집계인 2016년에 비해 각각 0.3시간씩 늘었다. 월평균 여가 비용도 같은 기간 15만1000원으로 1만5000원 늘었다. 

물류대기업 인사 관계자는 “업무량 때문에 집으로 일을 가져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나도 안다. 하지만 그만큼 일이 줄어든 사람도 생겼다. 일례로 회사 내 지원 업무를 담당하던 팀에서는 당장 사무실 불이 꺼지니 퇴근이 빨라졌다”고 밝혔다. 

일각에서는 기업이 사람을 뽑을 수밖에 없도록 일 진행이 더디더라도 퇴근 후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나온다. 노동계 관계자는 “계속 누군가가 밀린 일을 처리하니 기업이 채용을 늘릴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소 불편하고 답답하더라도 퇴근시간이 되면 업무를 멈추고 관련 사안에 신경 쓰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회사의 압박은 물론이고, 사내 분위기도 일을 놓지 못하게 한다. 광고회사를 그만둔 지 3개월째인 김모(31) 씨는 “상부에서 압박이 심하다. 내일까지 처리하라고 일을 던져놓고 일 처리가 늦어지면 ‘나 때는 안 그랬다’부터 시작해 ‘이렇게 일이 느려서 어떻게 이 회사에서 살아남으려 하느냐’고 한다. 그러고는 퇴근시간이 되면 약속이 있다며 칼같이 사무실을 나선다. 집에 돌아가 혼자 일하다 보면 피곤함보다도 공정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더더욱 회사에 다니기 싫었다”고 말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이처럼 실질노동시간이 쉽게 줄어들지 않는 이유를 “정부의 정책 실현 의지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직장 내 근로감독이 제대로 이뤄진다면 업무 과중 등을 막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 교수는 “근로시간 외에도 임금체불, 부당해고 등 현장에서 벌어지는 일을 파악하기에도 현재 근로감독 인원은 모자라다. 충분한 인력을 갖추고 적극적으로 감독을 펼친다면 주52시간 근무제의 효과가 더 빠르게 나타날 것”이라고 말했다. 일부 근로자가 주장하는 주52시간 이상 근로에 더 높은 급여를 매기는 할증제에 대해서는 “할증제로 기업을 압박할 수는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근로자의 근로의욕이 높아져 장시간 노동사회를 벗어나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했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이사장은 “주52시간 근무제가 지난해 7월에 시행됐고 사실상 처벌이 없다 보니, 아직 정책 효과가 발휘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일하는 시간만 줄고 업무량은 그대로인 사례에 대해서는 “당초 근무시간을 줄여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지금 정부는 근무시간을 줄이는 데만 집중하고 일자리 창출에는 힘쓰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던 부작용인 만큼 일자리 문제에서도 정부의 적극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의견을 밝혔다.






주간동아 2019.05.17 1189호 (p14~17)

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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