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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빈슨 크루소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던 대니얼 디포

300주년 맞은 ‘로빈슨 크루소’ 저자의 숨겨진 삶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로빈슨 크루소보다 더 극적인 삶을 살았던 대니얼 디포

대니얼 디포 초상화. [위키피디아]

대니얼 디포 초상화. [위키피디아]

1719년 4월 15일은 영국에서 소설이 탄생한 날이다. 영어로 발표된 최초의 근대소설로 꼽히는 ‘로빈슨 크루소’가 출간된 날이기 때문이다. 원래 책 제목은 부제까지 합치면 엄청 길다. ‘요크의 선원 로빈슨 크루소의 삶과 기이하고 놀라운 모험들: 본인을 제외하고 선원 전원이 사망한 난파 사고로 인해 아메리카 대륙 해안가 오루노크강(오리노코강) 하귀 주변의 무인도에서 28년 동안 혼자 살았던 그의 이야기와 해적들 덕에 귀국하게 된 사연.’ 광고가 없던 시절 책 제목으로 이를 대신하려는 상업적 의도가 뚜렷이 읽힌다. 

이 책에 대해선 ‘성경 다음으로 가장 많은 나라의 언어로 번역된 책’이라는 문구가 따라붙곤 한다. 옥스퍼드 국립인물사전에 등장한 표현이다. 정확히 몇 개 국어로 번역됐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지금도 어린이들에게 인기가 많아 세계 곳곳에서 읽히고 있다는 방증자료로 제시되곤 한다.


로빈슨 크루소는 디포의 198개 필명 중 하나

영화 ‘캐스트 어웨이’(2000)에서 현대적 로빈슨 크루소로 분한 톰 행크스(왼쪽). 대니얼 디포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몰 플랜더스’(1996)의 주인공 로빈 라이트. [CJ엔터테인먼트, IMDB]

영화 ‘캐스트 어웨이’(2000)에서 현대적 로빈슨 크루소로 분한 톰 행크스(왼쪽). 대니얼 디포의 원작소설을 영화화한 ‘몰 플랜더스’(1996)의 주인공 로빈 라이트. [CJ엔터테인먼트, IMDB]

300년 전 이 책이 발표될 때 저자는 로빈슨 크루소였다. 그러니까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 체험담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던 셈이다. 게다가 부친이 독일 브레멘 출신이라 본디 자신의 성이 독일식인 크로이츠네인데 지인들이 부르는 대로 크루소가 됐다는 아주 그럴듯한 사연까지 곁들여져 있다. 그러면서 자신이 1632년 영국 요크에서 태어났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실제 저자는 28년(크루소가 무인도에 갇혀 있던 세월과 같다) 뒤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대니얼 디포(1660~1731)라는 것을. 크루소는 많이들 알고 있지만 정작 그를 창작한 디포에 대해선 잘 모르는 경우가 태반이다. 영문학 전공자도 크루소처럼 부유한 상인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선원이 된 적은 없었고 정치적 팸플릿의 문필가로 활약하다 말년에 소설가로 변신했다는 정도만 알 뿐이다. 

그렇지만 디포는 ‘모든 소설가의 아버지’라고 부름직한 인물이었다. 그는 우선 온갖 사업에 손을 댔다 망해서 도스토옙스키처럼 평생 빚에 시달리며 글을 써야 했다. 그 일환으로 훗날 어니스트 헤밍웨이와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같이 많은 소설가가 거쳐 간 저널리스트를 직업으로 삼은 최초의 인물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필명이 198개나 됐던 그는 필화 사건으로 죽음 직전까지 갔다 극적으로 살아났다는 전설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붓 한번 잘못 놀렸다 생식기가 제거되는 치욕을 견디고 ‘사기’를 남긴 사마천이나 처형 직전 구사일생으로 살아나 ‘지하생활자의 수기’를 남긴 도스토옙스키가 따로 없는 셈이다. 게다가 영국이 자랑하는 첩보소설가 이언 플레밍과 존 르 카레처럼 그 자신이 스파이였다. 해양소설이기도 했던 로빈슨 크루소의 자식들은 또 있다. 작가가 되려면 선원이 돼야 한다는 생각을 실천했던 허먼 멜빌과 조지프 콘래드, 테네시 윌리엄스, 잭 런던 같은 작가들이다. 

디포가 71년간의 생애 중에서 소설가로 활동한 것은 1719~1724년 5년 간이다. 이를 통해 꽤 많은 돈을 벌었으나 1730년 돌연 행방을 감췄고, 1년 뒤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그리 멀지 않은 궁벽한 하숙집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영국 문화사가 콜린 윌슨의 ‘인류의 범죄사’에 따르면 번 돈으로 빚을 갚기 싫어 잠적했다 독거노인으로 외롭게 숨진 것이었다.


장사꾼, 어용지식인, 언론인, 스파이

1719년 출간된 ‘로빈슨 크루소’ 
초판본. [위키피디아]

1719년 출간된 ‘로빈슨 크루소’ 초판본. [위키피디아]

디포는 원래 양초제조업자이자 푸주한인 제임스 포의 아들로 태어났다. 장로교 신자 집안이었는데, 당시 영국에선 국교도 신자가 아니면 대학에 진학할 수 없어 목사의 꿈을 접고 일확천금을 꿈꾸는 장사꾼이 됐다. 스물네 살 때 결혼한 부인의 지참금 3700파운드가 그 날개가 돼 직물의류 도매상으로 벼락부자가 됐지만 사치와 경영부실로 10년도 안 돼 1만7000파운드의 빚을 지고 파산한다. 당시 빚을 못 갚는 이들을 수감하는 채무감옥이 별도로 있었다. 1692년 서른두 살에 이 감옥에 갇힌 그는 평생 여러 차례 이 감옥을 드나들게 된다. 

절체절명의 순간 그의 선택은 어용지식인이 되는 것이었다. 디포는 네덜란드 출신이라고 집단따돌림을 당하던 윌리엄 3세(재위 1689~1702)를 옹호하는 글을 쓴 대가로 관직을 받고 채무도 일거에 갚았다. 당시 그의 대표작 중 하나가 ‘순수한 영국인’(1701)이라는 풍자시인데 역사적으로 영국 민족은 켈트족, 색슨족, 바이킹족, 노르만족의 혼혈민족이기에 혈통을 놓고 왈가왈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 무렵부터 프랑스식 귀족명인 de를 성 앞에 붙여 ‘de Foe’를 쓰다 결국 Defoe로 굳어지게 됐다. 

1702년 윌리엄 3세가 숨지고 그의 처제이자 국교도 신자인 앤 여왕(재위 1702~1714)이 집권하면서 디포는 최대 위기를 맞이한다. 비국교도에 대한 탄압을 우회적으로 조롱한 ‘비국교도에 대처하는 첩경’이라는 글이 문제가 돼 사흘간 형틀에 묶인 채 광장에서 조리돌림을 당하는 처벌(필로리 형)을 받게 된다. 보통 성난 군중이 돌을 던지기 때문에 큰 부상을 입거나 죽을 수도 있었지만 그는 살아남았고 벌금을 갚지 못해 다시 채무감옥에 무기한 투옥된다. 그가 쓴 ‘필로리 찬가’라는 시가 워낙 유명해 사람들이 그에게 돌이 아니라 꽃을 던졌다는 전설이 덧붙여졌지만 역사학계에선 근거 없는 낭설로 본다. 

어쨌든 디포는 감옥에서 다시 정치적 도박을 감행한다. 1702년 런던에서 창간된 세계 최초의 신문 ‘데일리 쿠란트’를 벤치마킹해 ‘더 리뷰’라는 신문을 옥중 창간한 것이다. 감옥에서 만난 도둑이나 살인자와 한 인터뷰, 떠들썩한 사건에 대한 가십에 정치논평을 곁들여 펜을 쥔 권력자가 된 것이다. 

그는 이를 토대로 자신을 감옥에 처넣은 토리당의 당수 로버트 할리(1661~1724)에게 접근해 정적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는 스파이조직의 창설과 운영을 제안했다. ‘심심풀이 도락이 곧 책략’이라는 평가를 받던 할리는 기쁘게 이 제안을 받아들이고, 디포는 훗날 영국비밀정보국의 기반이 되는 스파이조직을 만들어 할리가 펼치는 공작정치의 선봉장이 된다. ‘프랑스 정세 리뷰’로 이름을 바꾼 그의 신문사는 그런 첩보활동의 위장조직이 된다. 

하지만 권불십년이라고, 독일에서 건너온 조지 1세(재위 1714~1727)가 즉위하면서 할리가 실각했고 디포에게도 다시 위기가 닥쳤다. 야당이던 휘그당의 탄핵으로 다시 감옥에 수감된 디포는 이번엔 휘그당을 위해 이중스파이가 될 것을 자처한다. 하지만 휘그와 토리 양측으로부터 끊임없이 이중간첩이 아니냐는 눈총을 받게 된다. 글솜씨 하나 믿고 20년 넘게 정치적 줄타기에 지친 그의 눈에 새로운 벤처사업이 눈에 들어왔다. 훗날 소설로 불리는 장르의 책이었다.


소설가 그리고 경제학자

로빈슨 크루소 섬(서태평양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의 마사 티에라 섬). [위키피디아]

로빈슨 크루소 섬(서태평양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의 마사 티에라 섬). [위키피디아]

신문사 사장에 비밀첩보기관의 수장이었으니 정보력 하나는 끝내줬을 그에게 굴러들어온 정보가 하나 있었다. 알렉산더 셀커크(1676~1721)라는 스코틀랜드 선원이 1704년 남미대륙을 항해하던 도중 명령불복종으로 남태평양 무인도에 버려져 4년 4개월을 홀로 버티다 구조돼 무사히 귀향했다는 이야기였다. 디포는 1713년 영국 항구도시 브리스틀에서 셀커크를 직접 만나 그의 수기를 싼값에 손에 넣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마치 자신이 직접 겪은 것처럼 쓴 소설이 ‘로빈슨 크루소’였다. 그의 나이 59세 때였다. 

셀커크가 체류했던 섬은 현재 칠레 영토인 후안 페르난데스 제도의 마사 티에라 섬으로 800여 명이 사는 유인도가 됐다. 칠레 정부는 1966년 태평양 연안에 있는 이 섬의 이름을 ‘로빈슨 크루소 섬’으로 공식 개명하고 관광지로 개발했다. 하지만 소설에 등장하는 섬은 대서양과 접한 카리브해 연안에 위치한 것으로 그려져 있다. 

환갑이 다 됐음에도 디포의 ‘감(感)’은 살아 있었다. 책이 잘 팔려 바로 그해 ‘로빈슨 크루소의 추가모험’이 출간됐다. 디포는 이후 5년간 9편의 장편소설을 발표하는 왕성한 창작활동을 펼쳤고 1724년 ‘록사나’를 끝으로 소설가로서 활동을 끝낸다. 64세 때다. 

이후 그의 활동과 관련해선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가 쓴 ‘나쁜 사마리아인들’에 소개된 내용을 빼놓을 수 없다. 장 교수는 이 책에서 디포가 다시 경제학자로 변신해 ‘영국산업발전계획’(1728)이라는 책을 집필했다며 그 내용을 자세히 설명했다. 

‘로빈슨 크루소’는 이후 근대적 개인의 탄생을 알리는 존재이자 그보다 두 세대가량 연하였던 애덤 스미스(1723~1790)가 구상한 ‘합리적 경제인’의 원형으로 간주됐다. 그에 따르면 크루소는 자신의 섬과 다른 섬 사이에 자유교역을 지지하고 정부의 개입을 반대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그런 크루소를 창조한 디포는 영국의 산업발전을 위해선 정부의 보호정책이 절실하다고 역설한다. 실제 영국 정부는 그의 조언을 받아들여 양모수출국에 불과하던 영국을 산업혁명을 주도한 제조업국가로 탈바꿈시켰다. 

28년간 무인도 생활을 버틴 로빈슨 크루소도 대단하지만 71년의 생애 동안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변화무쌍한 삶을 산 디포의 인생역정은 더 극적이라고 할 수도 있다. 콜린 윌슨은 그런 디포에 대해 “항상 지름길을 찾았고 이 세상에서 남을 속이지 않고는 성공할 수 없다고 믿었던, 한마디로 사기꾼이었다”고 평했다. 심지어 디포가 창조한 여성 캐릭터로 창녀이자 도둑, 해적으로 변신을 거듭하면서 늘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몰 플랜더스에 비견하며 “몰처럼 디포는 솔직한 창녀였다”고 했다.


크루소+파우스트=디포

디포는 그런 자신의 모습을 로빈슨 크루소에 투영했다. 사람들은 대부분 기억하지 못하지만 소설 초반부의 로빈슨에는 디포 자신의 모습이 투영돼 있다. 중간계급에 속했던 로빈슨의 아버지는 하층계급이 겪는 빈곤과 질병, 상층계급이 겪는 시기와 야망에 물들지 않은 중간계급의 삶이 가장 행복하다며 바다로 나가 모험을 펼치려는 그를 만류한다. 그럼에도 로빈슨은 자신의 내면의 충동을 좇아 바다로 나갔고,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겪으며 ‘아버지 말씀을 듣지 않아 받는 벌’이라고 참회하면서도 모험심을 포기할 줄 모른다. 심지어 28년의 무인도 생활을 마치고 귀향한 뒤에도 다시 항해에 나선다. 

‘그물에 잡히지 않는 바람처럼’ 살았기에 한마디로 규정할 수 없었던 디포야말로 자신의 처지와 신분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모험을 펼치는 인간이었다. 악마에게 영혼을 파는 한이 있더라도 앎과 삶의 정수를 획득하고자 했던 괴테의 파우스트는 그렇게 이미 디포 안에 깃들어 있었던 것이다.






주간동아 2019.04.19 1185호 (p6~9)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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