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65

2018.11.23

황승경의 on the stage

36년 전 우리가 겪은 다문화 차별, 그러나 우리는…

연극 ‘텍사스 고모’

  • 공연칼럼니스트·공연예술학 박사

    lunapiena7@naver.com

    입력2018-11-26 11: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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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국립극단, 안산문화재단]

    [사진 제공 · 국립극단, 안산문화재단]

    11월 13일 인천 한 아파트 옥상에서 동급생 4명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한 한 중학생이 추락해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가해 학생 중 한 명이 피해 학생의 패딩 점퍼를 입고 포토라인에 섰다는 증언과 피해 학생이 초등생 때부터 괴롭힘을 받아왔다는 글이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올라오면서 국민적 공분을 사고 있다. ‘우리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특히 우리 사회의 기둥으로 자라야 할 학생들이…. 

    올해 초·중등 다문화가정 학생 수는 12만2212명(전체 학생의 2.2%)으로 전년 대비 1만2825명(11.7%) 증가했다. 학생 100명 중 2명 이상이 다문화가정 아이인데, 우리 사회는 여전히 편견과 배제를 드러내고 있다. 이러한 차별에 성찰을 제시하는 연극 한 편이 공연 중이다. 

    [사진 제공 · 국립극단, 안산문화재단]

    [사진 제공 · 국립극단, 안산문화재단]

    국립극단과 안산문화재단이 공동제작한 연극 ‘텍사스 고모’는 예쁜 한복을 차려입고 고향을 떠나 한국 이름 ‘춘미’에서 미국 이름 ‘크리스티나’가 된 텍사스 고모의 36년 전 이야기로 시작한다. 일만 열심히 하면 학교에 보내준다는 말에 속은 춘미(박혜진 분)는 식모살이를 시작하지만 학교는커녕 혹독한 노동에 시달렸다. 빵집에서 만난 친절한 주한 미군 리처드를 믿고 의지한 그녀는 미국 텍사스로 이주한다. 수영장이 있는 집에서 모닝커피를 마시는 유유자적한 삶을 상상했던 그녀는 하루 종일 옥수수밭에서 일만 하는 신세가 됐다. 어찌 된 일인지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손에 쥐는 품삯은 없었다. 고생 끝에 세 아이를 미국에 남겨두고 홀로 한국에 돌아왔지만 춘미는 고향 충북 괴산으로는 차마 돌아가지 못하고 경기 의정부에 둥지를 튼다. 그 대신 미국에 거주하는 것처럼 텍사스 사탕과 하와이 망고젤리를 사서 고향의 오빠 집으로 부친다. 그래서 그녀는 아직 텍사스 고모다. 

    춘미는 환갑이 넘은 오빠(김용준 분)가 조카(주인영 분)보다 세 살 많은 19세 키르기스스탄 신부를 맞이한다는 소식을 듣는다. 컵 공장의 고된 노동에 지친 신부(윤안나 분)는 공부를 시켜준다는 오빠의 말을 믿고 머나먼 한국까지 오게 된 것이다. 춘미는 더 나은 삶을 위해 한국행을 선택했던 동네 이주여성들에게서 36년 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다. 

    [사진 제공 · 국립극단, 안산문화재단]

    [사진 제공 · 국립극단, 안산문화재단]

    연극은 이주여성뿐 아니라 소외되고 외면받는 다문화가정 아이들의 고통과 갈등을 농밀하게 그린다. 이를 지켜보는 관객에게 그들의 현실은 더욱 뼈아프게 다가온다. 



    작가 윤미현은 이주여성들을 ‘살려고 애쓸수록 무언가 더 잃어가는 사람들이지만, 여전히 살려고 애쓰는 사람들’로 조명한다. 우리가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이유를 구체적으로 무대에 그린다. 좀 더 나은 환경을 위해 이 땅에 온 그녀들은 같은 이유로 외국에 갔던 36년 전 우리의 데칼코마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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