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3

2015.11.16

서울유스호스텔이 품은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

국가정보기관→시정연구원→청소년 문화시설로 변신 거듭

  • 정석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 jerome363@uos.ac.kr

    입력2015-11-16 13: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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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유스호스텔이 품은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

    옛 국가안전기획부 건물을 개조해 청소년 시설로 바꾼 서울 중구 서울유스호스텔.

    생텍쥐페리의 동화 ‘어린 왕자’에는 장미꽃 이야기가 나온다. 들판에 수많은 장미꽃이 피어 있어도 내가 직접 물 주고 바람을 막아주며 벌레도 잡아준 바로 그 장미꽃만 내게 중요하다는 얘기다. 자랑도 불평도 들어주고, 아무 말 없이 있을 때조차 늘 귀를 기울여주던 바로 그 꽃, 내가 오랜 시간 길들인 장미여야 내게 의미 있는 존재란 얘기다. 꽃만 그럴까. 사람도 그렇고 도시도 마찬가지다.

    지방도시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에 올라와 살아온 시간이 어느새 고향에서 보낸 시간보다 더 길어졌다. 서울지도를 펴놓고 내가 살았던 곳들을 시간순서대로 짚어보니 여기저기 많이도 옮겨 다녔다. 서울 이곳저곳을 길들이며 살았다. 그만큼 서울이랑 정도 많이 들었다. 신혼 첫 살림을 살았던 성북구 삼선동 한성대 앞 작은 다가구주택은 지금도 가슴 뭉클한 기억들을 떠올리게 한다. 직장과 멀지 않아 “퇴근해요”라고 전화하고 집에 도착하면 저녁식사 준비가 채 끝나지 않았던 잠실주공2단지의 작은 전셋집도 애틋하게 기억된다. 지금은 재건축으로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없는 게 아쉽다.

    서울 속 추억여행

    집이나 동네 말고도 애잔한 기억으로 떠오르는 곳이 있다. 나의 일터다. 학부와 대학원 석·박사 과정까지 13년을 보냈던 대학 캠퍼스가 그리움 속에 떠오르고, 취직해 열심히 일했던 직장이 있던 곳들도 ‘특별한 서울’로 머릿속에 각인돼 있다. 박사학위를 마치고 들어간 첫 직장인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강남구 삼성동 서울의료원 옆에 있었다. 매일 새벽 일찍 출근해 연구원 동료들과 테니스를 한 뒤 하루 일을 시작했고, 점심시간에는 연구원 마당에서 족구를 했다. 20여 년 전 그때만 해도 지금과는 문화가 많이 달라서 연구원에 새 식구가 오는 날이면 꼭 회식을 했다. 연구원 근처 식당에서 시작한 회식은 잠실 새마을시장으로 건너와 2차로 이어졌고 우리 집에서 3차를 해야 끝날 때가 많았다. 지금 같으면 쫓겨날지도 모르는 일을 그땐 겁 없이 하곤 했다. 그런 시절이었으니까.

    1997년 초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은 남산으로 이사했는데, 새 청사는 남산 중턱의 옛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현 국가정보원) 본관 건물이었다. 60년대 초 ‘중정’이라 부르던 중앙정보부가 창설돼 남산 중턱에 자리 잡았고 81년 안기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90년대 서울시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남산 제모습찾기 사업’에 따라 안기부가 이전하면서 이 터에 남아 있던 건물 상당수는 철거됐다. 그러나 본관을 비롯한 여러 별관은 서울시에서 고쳐 새로운 용도로 썼다.



    본관 건물은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청사로 정해졌고, 충무로역에서 올라오는 예장동 입구 쪽 별관은 서울시 교통방송(tbs)과 건설안전관리본부가, 제일 안쪽 건물은 도시철도공사가 각각 쓰게 됐다. 본관을 지나 터널 조금 못 미치는 곳에 테니스 전용 실내체육관도 있었는데, 테니스를 유난히 좋아하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전용코트였다고 한다. 나중에 남산창작센터로 바뀌기 전까지 대통령 전용코트에서 매일 아침 테니스를 즐겼으니 나도 호사를 누린 셈이다. 2003년 초 서울시정개발연구원이 서초동으로 이전한 뒤 이곳은 다시 리모델링돼 지금은 서울유스호스텔로 쓰이고 있다.

    처음엔 중정과 안기부가 쓰던 건물에서 근무한다는 게 몹시 낯설고 으스스했다. 지하벙커를 둘러볼 때는 오싹한 느낌마저 들었다. 장소란 그런 것이다. 지금 눈앞에 보이지 않아도 지난 시절의 기억과 사건을 품고 있다. 당시 인기 드라마 ‘야망의 전설’이 바로 그 건물에서 촬영됐는데, 배우 채시라가 고문받고 끌려나가는 장면을 볼 때면 드라마가 아닌 현실처럼 느껴졌다.

    요즘 가끔 회의를 하러 서울유스호스텔에 갈 때도 마음은 내가 머물렀던 장소에 반응한다. 당시 근무했던 방을 찾아가 보기도 한다. 살면서 까마득히 잊었던 옛일들이 그 장소에 가면 마치 뚜껑을 연 향로에서 향이 피어오르듯 하나하나 되살아난다.

    서울유스호스텔이 품은 한국 현대사의 장면들

    국가안전기획부가 서울 남산 중턱에 있던 시절 내부 모습(왼쪽)과 외관. 현재 서울유스호스텔이 됐다.

    남산 산책로에서 만나는 기억

    가을이 겨울에게 자리를 내주고 훌쩍 떠나기 전 남산에 가봐야겠다. 서울메트로 4호선 충무로역에서 내려 남산골 한옥마을 쪽으로 걸어야겠다. 출퇴근 때 늘 다니던 길을 따라 걸으면 옛일이 톡톡 정신없이 튈 테니 일부러 조금 돌아가는 것도 좋겠다. 한옥마을 안쪽 타임캡슐을 지나 생태육교를 건너 남산창작센터부터 가봐야겠다. 대통령 한 사람을 위해 만들었던 체육관이 수많은 예술가를 키우는 신명 나는 창작 현장으로 바뀐 모습을 보고 싶다. 기다란 터널을 지나 밥을 먹으러 다니던 옛날 도시철도공사 건물을 둘러보고 그 위 순환도로도 걸어야겠다. 벚꽃이 활짝 핀 봄날이면 말 그대로 꽃대궐이던 곳, 자동차 통행을 막은 뒤로는 시각장애인들이 즐겨 걷던 곳을 걷다 보면 옛날 인라인스케이트를 타던 순간도 떠오르고 큰맘 먹고 저녁마다 달리기를 했던 시간들도 되살아나겠지.

    순환도로 중간쯤에서 잘 보면 옛날 서울시정개발연구원으로 내려오는 좁은 오솔길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호젓한 숲길에서 꺽꺽 우는 장끼를 만나면 좋겠다만. 그렇게 옛날 생각하며 걸어 내려와 내가 일하던 옛 안기부 본관도 둘러보고, 한일 강제병합조약을 체결했던 통감관저 터와 서울문학의집으로 바뀐 안기부장 관저까지 돌아본 뒤 수령 400년이 넘는 은행나무와 느티나무 아래 잠깐 앉아야겠다. 내가 길들인 6년, 누군가가 끌려와 모진 고초를 겪었을 30여 년, 그리고 더 오래된 많은 사건으로 차곡차곡 쌓여 있을 이곳 시간의 켜를 가만히 느껴봐야지.

    충무로역까지 다시 내려오는 길에도 많은 기억이 스쳐갈 것 같다. 안기부 쪽으로 창문을 내지 못했다 안기부가 떠난 뒤에야 창문을 냈던 건물은 아직 그 자리에 있을까. 허스키한 목소리가 걸걸하던 남도식당 사장님 생각도 날 테고, 미인이던 쉬리 카페 사장님 생각도 나겠지만 가게도 사람도 더는 볼 수 없어 쓸쓸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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