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1

2015.11.02

생닭업계의 출혈 ‘치킨게임’

과잉공급으로 3년째 생산비도 못 건져…“어디 한 곳 망해야”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입력2015-11-02 10: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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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킨 가격이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프랜차이즈 치킨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메뉴인 튀긴 닭 ‘프라이드치킨’은 1만5000~1만6000원이고 마늘이나 꿀, 파 등 첨가 재료에 따라 1만7000~1만9000원까지 가격이 올라간다. 지난해 BBQ 치킨에서 판매하다 중단한 몬스터치킨은 2만3000원으로 한때 최고가를 기록했다. 각 업체들도 앞다퉈 고가 메뉴를 출시하고 있어 머지않아 치킨 가격 2만 원 시대가 열릴 것으로 보인다.

    소비자는 어쩔 수 없이 프랜차이즈 치킨을 시켜 먹으면서도 가격에 불만이 많다. 닭고기 원가와 치킨 판매가의 차이가 상당하기 때문이다. 직장인 박지혜(34) 씨는 “주말에 밥하기 귀찮을 때는 치킨을 시켜 먹을 때가 종종 있는데 1만6000원씩 하는 걸 보면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대형마트에서 파는 생닭 가격은 치킨의 절반 값인데 튀김옷, 배달, 인건비 등이 붙었다고 해도 업체에서 이윤을 많이 남기려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생닭 가격은 어떻게 결정될까. 치킨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면 양계농가에서 병아리를 닭으로 키우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농민들은 병아리를 300원가량에 사들여 32일 동안 닭으로 키운 뒤 생닭가공업체에 판매하는데 그 값은 매일 다르게 정해진다. 대한양계협회에서 10월 29일 공시한 가격을 보면 대(1.6kg) 1100원, 중(1.4~1.6kg) 1200원, 소(1.4kg) 1300원이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각각 700원씩 떨어진 가격이다. 치킨 가격이 오르면 생닭 가격도 오를 것 같지만 지난 3년 동안 생닭 가격은 꾸준히 내렸다. 2013년 10월 2590원에 거래되던 생닭은 지난해 2000원 남짓한 가격을 유지해오다 올해 들어 2000원 선마저 붕괴됐다.

    매일 30만 마리 남아돌아

    생닭 가격을 결정하는 주체는 닭고기 공급업체들이다. 우리나라 닭고기(육계)산업은 육계 계열화 시스템을 갖춘 ‘하림’ ‘동우(참프레)’ ‘마니커(이지바이오)’ ‘체리부로식품’ ‘사조화인코리아’ 등 5개 대형업체를 비롯해 계열화 참여 농가가 공급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육계 계열화 시스템이란 닭고기 가공원료가 되는 생닭을 사육하기 위한 기반사업에서부터 부화장, 사육농장, 도축·가공, 유통판매까지 병아리를 키우고 닭고기로 가공해 판매하는 전 사업을 총괄하는 것을 말한다. 1980년대 말부터 정부가 국민에게 닭고기를 싸게 공급할 수 있게 자금을 대여해주고 육계 계열화 시스템이 형성되도록 산업을 육성해왔다.



    육계산업이 안정화된 후 업체들이 저마다 품질경쟁에 뛰어들면서 문제가 시작됐다. 2000년대 이후 소비자 사이에서 닭을 잡는 공장시설의 위생 문제가 중요한 구매 기준이 되자 업체들이 생산시설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동우는 참프레라는 브랜드를 새로 만들고 2012년 전북 부안에 2000억 원을 들여 육계공장을 새로 지으면서 공급 물량 또한 늘렸다. 업계 1위인 하림도 그해 연말 전북 정읍에 육계공장을 완공해 가동에 들어갔다.

    한국육계협회에 따르면 국내 닭고기시장은 매년 3~4%씩 미미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1인당 닭고기 소비량 12.7kg을 기준으로 적정 공급량은 연간 6억7000만 마리인 데 반해, 현재 생산량은 7억7000만 마리를 넘어 매일 30만 마리가 시장에 과잉공급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업체들은 재고를 줄이기 위해 저마다 가격 덤핑에 나섰다. 한국육계협회 관계자는 “일단 업체에서는 신설 공장을 가동해야 하는 상황인데 소비가 따라주지 않고 있다. 닭고기는 그냥 두면 썩으니까 업체들은 값을 낮춰서라도 팔아야 한다. 일부 업체가 가격을 원가 이하로 낮춰버리면 다른 업체들도 그 가격으로 낮출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최근 3년 동안 적자를 보는 업체가 늘었다”고 말했다.

    닭고기 가격 덤핑 문제로 닭을 키우는 양계농가들의 피해가 우려된다. 업체들은 “육계 계열화 시스템에 따라 사육농가는 업체로부터 사료, 병아리, 기술 지원을 받아 생닭을 사육해주고 사육 성적에 따라 계약된 위탁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직접적인 피해는 크지 않다”고 말한다. 하지만 일부 업체는 적자로 자금 조달이 힘들어지자 위탁수수료 지급일을 맞추지 못하는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다. 한국육계협회 관계자는 “만일 업체가 문을 닫으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위탁계약을 한 농가에게 돌아간다”고 우려했다.

    위탁계약 양계농가 피해 볼까 조마조마

    생닭업계의 출혈 ‘치킨게임’

    3년 전부터 5대 육계업체의 출혈경쟁이 심화되면서 업체 적자가 누적돼 양계농가에도 피해가 발생하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대한양계협회도 행동에 들어갔다. 10월 18일부터 닭고기 가격 덤핑을 주도한 참프레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참프레가 후원하는 한국 프로야구 구단 NC 다이노스의 경기가 열리는 경남 마산야구장에서 1인 시위를 벌인 것. 대한양계협회는 “닭고기업계와 육계 사육농가들의 피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업 이윤만 추구하는 참프레의 행위를 국민에게 알리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참프레 측이 “육계공장과 직영농장 신축은 소비자에게 좋은 품질의 제품을 제공하기 위한 회사의 노력”이라는 태도를 고수하자 대한양계협회는 11월 4일 서울역 대규모 규탄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육계업체들이 적자를 감수하면서까지 제 살 깎기 식 경쟁을 멈추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 중견 육계업체 관계자는 “일부 업체가 망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형 육계업체 5곳 가운데 3년째 이어지는 가격 덤핑을 견디지 못하는 업체는 결국 도산할 테고, 그 업체가 공급해온 물량을 다른 업체들이 나눠가지면 지금까지의 적자를 메울 수 있다고 보고 때를 기다리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공급 가격이다. 업체 한 곳이 도산하고 일시적으로 공급량이 줄어들면 그만큼 가격이 오를 개연성이 높다. 이 관계자는 “생닭 가격이 원가 이하로 떨어진 지 오래지만 프랜차이즈 치킨 가격은 요지부동이다. 만약 생닭 가격이 조금이라도 오르면 그 인상분은 치킨 가격에 바로 반영되고, 그 피해는 소비자들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일부 육계업체는 육계시장이 이렇게까지 악화됐는데도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가 사태를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성토한다. 산업 보호를 위해 제정된 ‘수급조정명령발동권’을 보유하고 있는 농식품부가 육계업체 간 경쟁을 통한 ‘자율수급조정’을 유도한다는 방침에 따라 시장 가격 안정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것. 한국육계협회 관계자는 “대형업체들이 육계 계열화 시스템 사업으로 시장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보니 농식품부가 눈치를 보며 섣불리 나서지 못하고 있다. 가격 안정화를 위해 공급량 조정을 명령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예상되니 농식품부는 알아서 자체적으로 조절하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닭고기시장은 농산물시장과 성격이 다르다며 반박했다. 농식품부 축산경영과 관계자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상 현재 닭고기시장에 수급조정명령발동권을 꺼내 들 근거가 없다. 배추처럼 저장이 어려운 채소류의 경우 수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가격이 폭락 혹은 폭등해 농가나 소비자의 피해가 심각하게 우려될 때 법령으로 이를 조절하기 위해 나설 수 있다. 그런데 현재 닭고기시장은 업체들의 이윤 추구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관이 나서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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