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1

2015.11.02

쓰레기 마취약 쓰는 위기의 성형왕국

의료사고는 2월, 입건은 10월에야…‘환자가 잠든 사이’ 벌어진 기막힌 수술 행태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입력2015-11-02 09: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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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레기 마취약 쓰는 위기의 성형왕국
    성형업계의 안전 의식이 위기를 맞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10월 22일 의사 A씨와 간호사 B씨를 불구속 입건했다. 2월 서울 강남 L성형외과의원에서 지방이식수술을 받은 여성 김모(29) 씨를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다. 사망 원인은 오염된 ‘프로포폴’ 투약이었다.

    프로포폴은 성형수술이나 수면내시경 검사 시 마취제로 쓰는 약물로, 부패하기 쉬워 냉장 보관해야 하며 개봉 후에는 단시간 내 쓰고 남은 양은 폐기해야 한다. 하지만 수술 당시 해당 의원에 프로포폴 재고가 없었고, 간호사는 일주일 전 휴지통에 버린 프로포폴을 찾아 김씨에게 주사했다. 김씨는 수술 직후 고열 등 이상 증세를 호소했지만 의사는 다음 환자 수술을 위해 수술실로 들어갔고, 간호사는 응급차가 아닌 개인 차량에 김씨를 태워 대형병원으로 이송했다. 김씨는 패혈성 쇼크에 따른 신부전증으로 수술 후 이틀 만에 숨졌다. 당시 수술을 집도한 의사 A씨는 성형외과가 아닌 일반외과 전문의이며, 현재 A씨와 간호사 B씨는 오염된 프로포폴을 사용한 책임이 상대방에게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성형수술 전후 사진 조작도

    국내 성형업계의 안전 및 윤리 의식 부재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2009년에는 부산의 한 산부인과에서, 2013년에는 경기 용인의 한 내과에서 프로포폴 오용으로 인한 사망사고가 발생했다. 환자가 마취제를 투여받고 눈을 감은 사이 수술실에서는 각종 불법행태가 벌어지고 있다. 강남의 한 대형병원 종사자 이모(26) 씨는 “성형업계의 실태를 알면 사람들이 성형하러 오지 않을 것”이라며 자신이 목격한 업계 현실을 말했다.

    “먼저 의사가 소독장갑을 끼지 않은 채 맨손으로 수술도구나 약제를 만지는 일이 빈번하다. 이는 세균 감염이나 피부 괴사를 일으킬 만큼 위험하다. 환자 눈을 속이기 위해 성형수술 전후 사진을 조작하기도 한다. 수술 전후 사진을 수정해뒀다 환자가 수술 결과에 대해 항의하면 ‘사진에 나온 얼굴은 이렇게 예쁘지 않느냐.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예쁘고 사진발도 잘 받는 결과가 나왔다’고 거짓으로 설명하는 것이다. 또는 수술을 잘못하고도 ‘본인 얼굴 구조상의 한계 때문에 모양이 이렇게 나온 것’이라고 변명하는 경우도 있다.”



    병원 수익을 늘리려고 약제를 바꿔 쓰기도 한다. 환자에게 필러나 물광주사 등을 놓을 때 약제 가격을 비싸게 받고 실제로는 싼 약제를 쓰는 것이다. 이씨는 “환자들이 10만 원 정도의 최고급 약제를 써달라고 하면 값은 그만큼 받고 실제론 가장 싼 1만 원짜리를 사용하는 경우를 종종 목격했다. 환자에게 ‘효과는 개인에 따라 다르다’고 설명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했다.

    3월 대한성형외과의사회가 강남 G병원 측에 제기한 ‘대리수술’ 의혹도 여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리수술이란 환자가 지정한 수술 집도의와 실제 수술실에 들어간 의사가 다른 경우다. 이씨는 “상담할 때는 대표원장에게 수술을 맡기는 조건으로 큰 수술비를 지불하지만 실제 수술실에는 대표원장의 수술법을 그대로 베끼는 ‘섀도 의사’, 즉 다른 의사가 들어간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마취 상태로 누워 있는 환자는 어느 의사가 수술했는지 알 길이 없다.

    중국인 등 외국인 환자는 한국인 환자보다 비싼 수술비를 낸다. 병원에 환자를 유치하는 브로커나 통역사 명목으로 한국인에 비해 2~3배 많은 돈을 지불하는 것이다. 이 경우 세금 탈루 목적으로 외국인 환자의 진료기록을 지우는 행태도 보인다. 강남의 한 대형병원 관계자는 “병원에 ‘○월 ○일 세금조사를 한다’는 소문이 돌면 조사 며칠 전부터 직원들이 밤샘 작업을 한다. 압수수색에 대비해 개인용 컴퓨터에 있는 외국인 환자 수술 기록은 다 지우고 종이차트만 몰래 다른 창고에 보관한다. 수술 이력이 적거나 재방문하지 않을 것 같은 외국인 고객의 자료부터 먼저 지운다”고 말했다.

    일부 의사는 “성형외과의원이 기업화되면서 환자의 미(美)와 안전은 뒷전이고, 수술 건수 실적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한다. 강남의 한 대형병원에서 매일 30여 명의 환자를 진료했던 의사 백모(36) 씨는 “병원에서 매일 의사들의 실적을 기록했다. 환자 상담 건수 대비 수술 실적을 매기는 식이다. 실적을 높이기 위해 수술 도중 다른 환자를 상담하는 일도 흔하다. 수술실을 4~5번 나간 적도 있다”고 말했다. 실적에 따른 고용 압박이 이러한 행태를 부추긴다. 백씨는 “실적이 낮은 의사를 바로 다음 달 해고하는 병원도 있다. 대표원장의 스타일대로 수술한다는 원칙과 무조건 환자를 많이 보는 것 외엔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실적 채우려고 수술 도중 상담

    쓰레기 마취약 쓰는 위기의 성형왕국

    전국 성형외과의원 900여 곳 중 서울 강남구에만 360여 곳이 몰려 있다. ‘성형수술의 메카’로 불리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거리.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

    업계 관계자들은 “강남 지역 성형외과의원이 포화 상태에 이른 지 오래고, 무한 생존경쟁이 윤리 의식과 안전성 저하를 불러왔다”고 말한다. 대한성형외과학회에 따르면 성형외과 전문의가 설립해 ‘○○성형외과의원’이란 이름으로 운영되는 기관은 전국에 900여 곳. 그중 서울 강남구에 360여 곳, 서초구에 50여 곳이 몰려 있다. 성형외과 전문의가 개원하지 않았지만 성형 진료를 하는 곳은 주로 ‘○○클리닉’ ‘○○의원’ 등의 이름으로 운영하면서 간판에 ‘진료과목 성형외과’라고 쓴다. 강남구 보건소에 따르면 성형외과의원이 아니지만 진료과목에 성형외과를 포함한 의원은 강남구에만 300여 곳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성형업계에서는 실제 이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한다.

    이미 강남 성형업계는 몇몇 대형병원이 독식하고 중·소형 병원은 버티기 힘든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대한성형외과의사회 관계자는 “환자들은 광고를 보고 병원을 선 택하는 경향이 강한데, 대형버스 광고만 해도 50대에 한 달 동안 싣는 데 5000만 원이 든다. 작은 규모의 병원은 자본력이 없어 환자를 모으지 못하는 빈익빈 상태가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권의 비싼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하지 못한 성형외과들이 자리를 떠 건물이 매물로 나오는 경우도 많아졌다. 강남의 한 부동산중개업 관계자는 “최근 압구정동 성형외과의원들이 아예 폐업하거나 신사동으로 이전하는 경향이 뚜렷해졌다. 강남권에서는 가로수길과 강남역 주변의 강남대로 외 상권은 침체됐다고 보면 된다. 특히 테헤란로는 불황이 심해 기존에 있던 성형외과의원이 폐업해도 신규 유입이 없다”고 했다.

    중국 내 ‘혐한 성형’ 기류

    성형의료관광 시장을 중국에만 의존하는 것도 취약점이다. 6~7월에는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때문에 중국인 환자가 급격히 줄었다. 업계에서는 이전에 비해 중국인 환자가 10%대로 줄면서 경영난에 처한 성형외과의원이 많아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인들에게 비싼 수술비를 강요하면서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아 중국 내 혐한 기류도 조성되고 있다. 10월 초 서울 명동에서는 중국인 3명이 한국의 성형수술에 대해 항의하는 시위를 했다. 이들은 자신의 수술 전후 사진을 공개하며 “일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수술 결과가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의 성형외과의원에서는 ‘보상할 방법이 없다’며 책임을 외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성형외과의원을 운영하는 류민희 북경화한성형병원 원장은 “중국 모바일 메신저 서비스 위챗(we chat)에는 한국 성형수술 사고에 대한 뉴스가 실시간으로 뜬다. 한국 성형의 문제점이 노출되고 외국 의사들의 실력이 좋아지면 한국 성형시장은 더욱 침체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형외과 전문의로 이뤄진 대한성형외과의사회는 “일부 의사의 비윤리적인 행태로 전체 성형업계가 비난받고 있다”고 억울해한다. 차상면 대한성형외과의사회 회장은 “‘대리수술’이나 ‘바가지 수술비’ 등을 없애기 위한 법규는 미미한 수준이다. 수술실에 폐쇄회로(CC)TV를 달거나 집도의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법률이 만들어져야 한다. 비(非)성형외과 전문의들의 반대가 워낙 크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상황 개선을 의사의 양심이나 자율적인 시정 노력에만 맡길 순 없다”고 말했다.

    차 회장은 특히 비의료인이 병원이나 의원을 개설하는 ‘사무장 병원’을 강력하게 단속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의료법 제33조 2항에 따르면 의사가 아닌 자는 의료기관을 개설할 수 없다. 하지만 대형 자금을 가진 비의료인이 의원을 세우고 의사들을 고용하는 불법기관이 곳곳에 있고, 이러한 경우 수술 결과에 대해 환자가 항의해도 대표자가 책임질 수 없는 경우가 많으며, 수술한 집도의는 떠나면 그만이다. 게다가 운영에 대한 처벌도 솜방망이 수준이다. 차 회장은 “단속에 걸리면 3개월 영업정지, 자발 신고하면 1개월 영업정지인데 업계에서는 ‘3개월 영업정지는 휴가 가는 셈’이라며 우습게 본다. 단속 직전 병원 문을 닫고 인근에 다른 병원을 개원하기도 어렵지 않다”며 “관련 의사의 면허를 취소하는 등 엄격한 처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의료사고 분쟁을 중재하는 행정 속도도 느리기만 하다. 2월 발생한 프로포폴 사망사고의 경우 유족이 바로 수사를 요청했는데도 10월이 돼서야 수술 집도의와 간호사가 불구속 입건됐다. 서울지방경찰청 의료수사팀 관계자는 “의료사고가 발생하면 경찰이 대한의사협회나 한국의료분쟁조정중재원에 감정을 의뢰하고 결과를 받는 데 최소 50일이 걸린다. 환자 또는 병원 측이 결과를 수용하지 않으면 재감정을 의뢰해 또 그만큼의 시간이 걸린다”고 말했다. 의료사고의 특성상 여러 원인 가운데 한두 가지를 가려내기가 쉽지 않고 사건을 전담하는 인력도 적다 보니 시간이 연장되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8개월 만에 관련자가 불구속 입건된 것은 흔한 일이다. 사건 처리가 느린 것은 알지만 성급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우리도 인력이 한정돼 있어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차 회장은 “대한성형외과의사회에서도 성형업계가 가진 문제점에 대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며 “환자들의 신뢰를 회복하고 불법의료 행위를 줄이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겠다. 보건복지부 등 관련 당국에서도 일부 비양심적인 의료인을 처벌하고 성형업계의 윤리, 안전 수준을 높이는 데 힘써줄 것을 당부한다”고 말했다.

    쓰레기 마취약 쓰는 위기의 성형왕국

    최근 서울 강남권 성형업계가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기존 성형외과 건물이 매물로 나오는 경우가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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