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53

2018.08.29

기업

“기업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

故 최종현 SK 회장 타계 20주기…에너지·화학, 이동통신 등 뚝심으로 키워

  • 입력2018-08-28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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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폐암수술을 받은 고(故) 최종현 SK 회장(가운데)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SK]

    폐암수술을 받은 고(故) 최종현 SK 회장(가운데)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신청 직전인 1997년 9월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회의에 참석해 경제위기 극복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사진 제공·SK]

    고(故) 최종현 SK 회장이 1997년 외환위기 직전 산소호흡기를 단 채 청와대를 찾아간 일화는 한국 경제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면 가운데 하나다. 당시 폐암 투병 중이던 최 회장은 산소호흡기를 꽂은 채 김영삼 대통령과 독대한 자리에서 “한국 경제는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할 정도로 심각하다”며 “금리인하 등 조치가 시급하다”고 고언했다. 그러나 정부는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해가 바뀌기 전 한국이 국제통화기금(IMF)에 구제금융을 신청하는 궁박한 상황에 처했다. 손병두 전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 상근부회장은 “나중에 김영삼 대통령을 만났는데, ‘금리를 낮추자는 최종현 회장의 얘기를 들었어야 했다’며 후회하더라”고 회상했다.
     
    8월 26일은 최종현 전 회장이 타계한 지 20주기가 되는 날이다. 최태원 회장이 선대의 뜻을 이어받아 SK그룹을 이끈 지 20주년이 되는 때이기도 하다. SK그룹은 8월 24일 서울 광진구 그랜드 워커힐 서울에서 각계 인사 500여 명을 초대해 최종현 전 회장의 경영철학을 재조명하는 행사를 가졌다. 

    1973년 선경(SK) 회장직에 오른 최종현 전 회장은 섬유회사를 세계 일류 에너지·화학회사로 탈바꿈시킨 장본인이다. 원유 정제는 물론 석유화학, 필름, 원사, 섬유 등 수직계열화를 성공시켰고, 해외 유전을 개발해 한국을 ‘무자원 산유국’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한 미래 먹거리로 이동통신사업을 내다보고 SK텔레콤의 기반을 다졌다.

    “運으로만 큰 사업할 수 없다”

    1973년 2월 SK가 MBC ‘장학퀴즈’ 단독 광고주로 나선 첫 방송 모습(위).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최종현 전 SK 회장(왼쪽). [사진 제공·SK]

    1973년 2월 SK가 MBC ‘장학퀴즈’ 단독 광고주로 나선 첫 방송 모습(위). 한국고등교육재단 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수여하는 최종현 전 SK 회장(왼쪽). [사진 제공·SK]

    1973년 선경석유를 세운 최 전 회장은 사우디아라비아로부터 원유 공급을 약속받았으나 오일쇼크로 무산됐다. 이 쓰라린 경험을 발판 삼아 그는 중동국가의 왕실 등과 네트워크를 구축해나갔다. 이는 79년 2차 오일쇼크 때 한국이 에너지 위기를 벗어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83년부터는 해외유전 개발에 나섰다. 거액을 들인 프로젝트에서 수차례 실패한 끝에 84년 북예멘 유전개발에 성공했다. “석유개발은 한두 해에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몇 번 실패했다고 중단하면 아무 성과가 없다. 실패를 거론하지 말아야 한다”는 최 전 회장의 뚝심이 성공 밑거름이 됐다. 

    1992년 SK는 제2이동통신사업자에 선정됐다. 2위와 압도적 차이였지만 특혜 시비가 일자 사업권을 자진 반납했다. 최 전 회장은 “준비한 기업에는 언제든 기회가 온다”며 그룹 내부를 설득했다고 한다. 최 전 회장 말대로 SK는 2년 후인 94년 한국이동통신 민영화에 참여해 이동통신사업에 진출했다. 당시 8만 원대이던 한국이동통신 주식을 33만5000원에 인수하자 내부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에 대해 최 전 회장은 “이렇게 해야 나중에 특혜 시비에 휘말리지 않을 수 있다. 앞으로 회사 가치를 더 키워나가면 된다”고 말했다. 

    최 전 회장의 경영철학은 ‘한솥밥 한 식구’란 표현으로 요약된다. 그는 항상 기업이란 인간을 위해, 인간에 의해 움직이는 유기체라며 “노사는 한솥밥을 먹는 한 식구”라고 강조했다. 전경련 회장 재임 중에는 중소기업협동중앙위원회와 함께 대·중소기업협력위원회를 구성해 납품대금 지급 준수 등 자율적 협력 사업을 추진했다. 그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공존관계다. 중소기업 도움 없이는 대기업이 성장할 수 없다”는 지론을 폈다. 



    최 전 회장은 인재 양성에도 남다른 열정을 쏟았다. 인재를 키우면 대한민국이 얼마든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다는 확신에서다. 1974년 사재를 털어 한국고등교육재단을 설립했고, 한 해 전 2월에는 폐지 위기에 처한 MBC ‘장학퀴즈’의 단독 광고주로 나섰다. 그는 “돈 걱정 없어야 24시간 공부에 전념할 수 있다”며 해외 유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넉넉히 줬고, ‘장학퀴즈’ 후원에 대해서는 “청소년에게 유익한 프로그램이라면 열 사람 중 한 사람만 봐도 조건 없이 지원하겠다”고 했다

    사회적 가치 철학으로 ‘진화’

    1991년 울산 콤플렉스(CLX) 
준공식에 참석한 최종현 전 SK 회장.(위) 최 회장이 1981년 내한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사진 제공·SK]

    1991년 울산 콤플렉스(CLX) 준공식에 참석한 최종현 전 SK 회장.(위) 최 회장이 1981년 내한한 야마니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오른쪽에서 두 번째)과 담소를 나누는 모습. [사진 제공·SK]

    한국고등교육재단은 44년간 3700여 명의 장학생을 지원해 740명에 달하는 해외 명문대 박사를 배출했다. 동양계 최초 예일대 학장 천명우(심리학과), 한국인 최초 하버드대 종신교수 박홍근(화학과) 등 한국고등교육재단이 도움을 준 세계적 석학이 적잖다. ‘장학퀴즈’는 7월 말까지 2200회 이상 방영된, 국내 최장수 TV 프로그램이다. 최 전 회장은 조동성 인천대 총장과 대담에서 “인간은 중요하고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자원”이라며 “석유는 한 번 쓰면 없어지지만, 인간의 능력은 사용할수록 향상되고 가치가 커진다”고 말했다. 

    최 전 회장은 ‘돈 버는 것만이 기업의 목적은 아니다’라는 철학이 확고한 기업인이었다. 국가나 사회가 가진 고충을 해결해 함께 발전하는 것을 기업의 진정한 책무로 본 것이다. “우리는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 기업 이익은 처음부터 사회의 것이다”라는 그의 평소 언사에 이러한 철학이 잘 담겼다. 

    선대 회장의 철학은 현재도 이어지고 있다. 울산에 약 363만6300㎡(110만 평) 규모의 울산대공원을 기부한 최 전 회장의 뜻을 이어 최태원 회장 역시 2006년 경기 수원에 ‘해비타트-SK행복마을’ 3개 동, 2009년 ‘SK청솔노인복지관’을 건립해 기부했다. 2011년에는 500여억 원을 들여 핸드볼전용경기장을, 그리고 화장(火葬)시설을 지어 사회에 기부하라는 최 전 회장의 유지에 따라 세종시 은하수공원에 화장시설을 조성해 기부했다. 

    SK그룹은 최종현 회장 타계 20주기를 맞아 그의 업적과 경영철학을 기리고 있다. 구성원 기부금을 모아 숲 조성 사회적기업인 트리플래닛에 전달, 약 16만5000㎡(5만 평) 규모의 숲을 조성키로 했다. 주요 사업장에서는 최 전 회장의 업적과 그룹 성장사를 살펴볼 수 있는 20주기 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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