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민아의 시네똑똑

지독하고 끔찍한 가출팸 아이들의 세계

이환 감독의 ‘박화영’

  • 입력2018-07-24 11: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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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제공 · 리틀빅픽쳐스]

    [사진 제공 · 리틀빅픽쳐스]

    익히 들어는 봤다. 아이 티를 벗지 못한 청소년들이 친구를 잔인하게 때려눕혀 마음과 몸을 불구로 만들어버리는 현실을. 안타까움과 분노의 감정이 동시에 느껴지지만 어른들이 품고 가야 할 현실이다. 그러나 어른들은 잘 모른다. 아이들이 얼마나 아파하고, 또 얼마나 잔인하고, 그리고 또 얼마나 절망하고 있는지. 

    저예산 독립영화 ‘박화영’은 불량청소년의 생생한 현실을 그린다. 영화는 시작부터 성과 폭력, 욕설로 점철돼 잠깐을 견디기도 매우 힘겹다. 그러나 중간에 포기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있다. 이 영화가 가출 청소년이 가족처럼 함께 사는 ‘가출팸’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생활과 언어를 그대로 드라마로 옮겼다는 점 때문이다. 리얼리즘 10대 범죄영화 ‘박화영’은 어른들에게 직면하기 어려운 현실을 툭 하고 던진다. 욕설과 폭력, 흡연, 원조교제 같은 장면으로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받았고,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영화가 아니라 어른들이 보라고 만든 영화다. 

    들어는 봤지만 보지 못했고, 짐작은 했지만 상상하지 못했다. 지나치게 복잡하고 몹시 어두워서 잠깐씩 등장하는 유머를 즐길 여유가 없이, 영화를 본다는 것 자체가 많은 에너지를 요한다. ‘꿈의 제인’(2016)이 가출팸을 판타지로 그려내면서 그들의 아픈 마음에 위로를 보내고 싶었다면, ‘박화영’은 가출팸의 리얼리티를 카메라에 포착함으로써 한국 청소년영화가 그릴 수 있는 최대치를 보여준다. 

    가출팸 아이들 사이에서 ‘엄마’로 불리는 박화영(김가희 분)은 동갑내기 아이들에게 집을 제공하고, 라면을 끓여주며,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 담배꽁초 범벅이 된 집 안을 청소한다. 그는 가출한 아이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면서도 때때로 신경질을 그대로 받아주는 샌드백이 되기도 한다. “나 없으면 어쩔 뻔 했느냐”는 말을 입에 달고 다니는 박화영에게 연예인 활동을 하는 친구 미정(강민아 분)은 특별하다. 미정에게는 우두머리 남자친구 영재(이재균 분)가 있는데, 영재는 미정이 화영과 어울리는 것을 싫어해 툭하면 화영을 괴롭힌다. 미정은 화영에게 살갑게 굴면서도 화영이 영재에게 수모를 당할 때는 영재 편에서 같이 구박한다. 

    서로 괴롭히고 괴롭힘을 당하는 이상한 관계, 죽일 듯이 때리고 욕설을 퍼붓지만 떠나지 못하는 기이한 집착 속에서 화영은 엄마가 되기를 그만두지 못한다. 엄마가 되고 싶은 아이 화영이 진짜 엄마를 대하는 장면은 충격적이다 못해 절망스럽다. 화영이 그렇게 된 이유를 자세히 알 수는 없다. 다만 화영의 과거가 플래시백으로 가끔씩 끼어듦으로써 관객은 어렴풋이 유추할 뿐이다. 세상살이에서 위안이 아닌 상처만 주는 가족은 처참한 결과를 남긴다. 



    폭력을 통제하지 못하는 한 남자의 삶을 폭발력 있게 그린 ‘똥파리’(2008) 이후 10년 만에 엄청난 에너지가 담긴 독립영화 데뷔작을 만났다. 신예 감독 이환은 단편영화 ‘집’(2013)을 장편으로 확장했으며, 타이틀롤을 맡은 김가희는 배역을 위해 살을 대폭 찌우고 인물에 동화됐다. 주 · 조연을 막론하고 신인배우들의 연기 앙상블이 훌륭하다. 가족으로 인한 결핍과 상처가 또 다른 일탈된 가족 형태 속에서 더욱 강하게 반복되는 현실이 아릿하게 다가온다.

    이번 주부터 영화평론가인 정민아 성결대 교수의 ‘시네똑똑’을 격주로 싣습니다. 정 교수는 한국영화평론가협회 사무처장을 맡고 있습니다. ‘시네똑똑’은 신작 영화의 문을 똑똑 두드린다와 영화 읽기를 통해 조금은 똑똑해지자는 뜻이 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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