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5

2018.04.25

강양구의 지식 블랙박스

인간 없는 도시의 주인은 ‘고양이’

  • 입력2018-04-24 13:3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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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양이는 사람 없는 세상에서 최고 포식자로 군림할 가능성이 높다. [shutterstock]

    고양이는 사람 없는 세상에서 최고 포식자로 군림할 가능성이 높다. [shutterstock]

    지난해 7월 중국이 환경오염을 이유로 더는 재활용쓰레기를 수입하지 않겠다고 선언할 때만 해도 무심하게 그런가 보다 했다. 미국, 유럽, 한국 등 전 세계 재활용쓰레기의 절반 정도가 중국으로 모이는 현실을 알고 있었는데도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몇 주 전 아파트 엘리베이터 알림판을 볼 때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했다.

    ‘더 이상 폐비닐을 수거하지 않습니다.’ 

    알다시피 그 뒤로 폐비닐을 비롯한 재활용쓰레기 수거를 둘러싸고 혼란이 진행 중이다. 중국 수출길이 막히면서 재활용쓰레기 가격이 폭락하자 수거업체가 처리 비용에 비해 싼 비닐, 플라스틱, 스티로폼 등의 수거를 거부했다. 환경부도 손놓고 있는 바람에 수도권을 중심으로 쓰레기 대란이 일어났다. 나비 효과가 아니라 ‘쓰레기 효과’다. 

    당장 내 집, 내 아파트에서 쓰레기를 처리하는 일만큼이나 이 쓰레기가 어디로 갈지 따져보는 것도 중요하다. 중국으로 가지 못한 그 많은 쓰레기는 이제 어디로 향할까. 이렇게 매년 늘어나는 쓰레기를 과연 지구는 감당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엉뚱한 질문이 떠올랐다. ‘처치 곤란한 쓰레기나 내놓는 인간이 지구에서 갑자기 사라지면 무슨 일이 생길까.’ 

    상상력을 발휘해 하나씩 따져보자. 인간이 사라진 서울, 뉴욕, 런던 같은 대도시는 수십 년도 지나지 않아 진짜 숲으로 바뀐다. 인공 난방이 없어진 고층 건물은 겨울을 몇 차례 거치는 동안 곳곳에 균열이 생긴다. 어느 도시에나 있는 복개된 실개천 같은 오랜 물길도 인간의 통제가 없어지면 제 모습을 찾고자 기지개를 켠다. 그런 물길은 도시 기반 자체를 흔든다. 



    화재도 문제다. 번개로부터 도시를 보호하던 피뢰침도 20년이면 제구실을 못 한다. 청소부가 없어 도시 곳곳에 쌓인 낙엽은 순간의 불씨에도 민감하게 반응한다. 도시 곳곳에 흩날리는 종이와 비닐은 여기저기로 불씨를 옮긴다. 결국 세계 도시들은 자연 붕괴 전에 잦은 화재로 제 모습을 잃는다.

    사라져도 지구의 민폐, 인간

    인간이 사라지면 불행해질 이들도 있다. 인간이 사라진 도시의 주인이 바퀴벌레가 되리라는 전망도 있다. 천만의 말씀이다. 인간보다 훨씬 오랫동안 지구에서 버텨온 바퀴벌레도 어느 순간 안락한 삶에 길들여졌다. 인공 난방에 익숙한 현 도시의 바퀴벌레는 난방 없는 겨울을 견디지 못하고 궤멸될 공산이 크다. 

    그럼, 쥐는 어떨까. 인간이 먹고 남은 음식물쓰레기에 의존해온 쥐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사료에 입맛이 길들여진 ‘견공’과 함께 가장 먼저 굶어 죽을 개연성이 크다. 다행히 굶주림으로부터 살아남은 쥐나 개도 낙관해서는 안 된다. 곧 도시를 점령할 야생동물이 가만 두지 않을 테니까. 어쩌면 그 전에 고양이 밥이 될지 모른다. 

    고양이! 그들을 키우는 사람은 그 실체를 안다. 반려동물 가운데 야생성을 잃지 않은 고양이는 인간 없는 도시에서 주인 역할을 할 수도 있다. 고양이가 일단 야생생활에 빠른 속도로 적응하면 쥐, 개는 물론이고 너구리, 족제비, 여우 같은 작은 동물은 이 엄청난 수의 포식자에게 밀려 기를 못 펼 확률이 높다. 인간 없는 도시에서 고양이는 가장 무서운 존재다. 

    인류문명이 남긴 유산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가장 먼저 핵폭탄이 떠오른다. 한때 인류 파멸의 원흉으로 지목되던 핵폭탄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세계 곳곳에 은밀히 저장된 3만 개의 핵폭탄이 인간 없는 세상에서 폭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핵폭탄은 오랫동안 오만한 인류의 상징으로 지구를 지키리라. 

    짐작하다시피 핵폭탄보다 더 위험한 것은 핵발전소다. 2016년 4월 16일 현재 세계 곳곳에 위치한 핵발전소 450기는 인간이 사라지면 며칠 새 폭주하며 폭발한다. 1986년 4월 26일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2011년 3월 11일 일본 후쿠시마에서 있었던 일이 반복될 것이다. 지구를 덮는 대기는 오랫동안 방사성 물질에 오염될 공산이 크다. 

    핵발전소만큼 지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간이 200년 동안 대기 중으로 배출한 이산화탄소 같은 온실기체다. 인간이 사라지고 나서도 온실기체는 없어지지 않고 계속해서 지구를 데울 것이다. 온실기체가 인간 이전 상태 수준이 되려면 10만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수십~수백만 년 지속될 플라스틱 쓰레기

    인류 멸망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구에 남을 플라스틱 쓰레기. [shutterstock]

    인류 멸망 뒤에도 사라지지 않고 오랫동안 지구에 남을 플라스틱 쓰레기. [shutterstock]

    그렇다면 쓰레기는 어떨까. 인간이 사라진 세상에서 가장 오랫동안 존재감을 발휘할 쓰레기는 바로 플라스틱이다. 플라스틱은 자연 분해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어 컵라면 용기 등에 쓰는 폴리에틸렌은 세균이 득실득실한 상자에 1년 동안 넣어둬도 거의 분해되지 않는다. 이렇게 인간이 남긴 산물이 대다수 사라지고 나서도 플라스틱은 여전히 지구의 골칫거리로 남는다. 

    납, 카드뮴 같은 중금속도 수만 년이면 씻겨 나간다. 하지만 플라스틱이 지구에서 분해되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걸릴지 누구도 모른다. 몇몇 과학자의 조심스러운 예측에 따르면 온실기체가 인간 이전 상태를 회복하는 시간, 즉 10만 년보다 플라스틱 분해 시간이 더 걸린다. 수십, 수백만 년이 지나면 어쩌면(!) 플라스틱을 분해할 수 있는 미생물이 진화할지도 모르고. 

    물론 인간이 갑자기 지구에서 사라지는 일 따위는 없다. 앞에서 해본 엉뚱한 상상은 새삼 지구에서 차지하는 인간의 자리를 따져보기 위함이었다. 이번에 대한민국을 강타한 재활용쓰레기 대란에 불편을 토로하기 전 쓰레기 배출량이 계속 늘어만 가는 현실을 한 번 되돌아봐야 한다. 과연 우리가 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말이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언급하자. 짐작하다시피 인간이 갑자기 사라진 세상의 모습에 의문을 먼저 품었던 사람은 ‘인간 없는 세상’의 저자 앨런 와이즈먼이다. 그가 이 엉뚱한 질문을 떠올린 곳은 어디일까. 그는 전쟁 탓에 수십 년 동안 인간 없는 세상이 된 한국 비무장지대(DMZ)를 우연히 방문하고 이 기막힌 질문을 떠올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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