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35

2018.04.25

문화

실력 경쟁보다 인간적 캐릭터로 승부

형(쇼미더머니)보다 나은 동생의 가슴 뭉클한 반란

  • 입력2018-04-24 13:3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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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등패러’ 우승자 김하온, 2위 배연서(이로한), 3위 이병재(왼쪽부터). [방송화면 캡처]

    ‘고등패러’ 우승자 김하온, 2위 배연서(이로한), 3위 이병재(왼쪽부터). [방송화면 캡처]

    최근 종영한 Mnet 청소년 힙합 경연 프로그램 ‘고등래퍼2’가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결선곡 ‘붕붕’(김하온), ‘전혀’(이병재), ‘이로한’(배연서) 등이 음원 차트 상위권을 점령했다. 시즌 중반에 발표된 곡 ‘바코드’ ‘북’ ‘탓’ 등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둬 스테디셀러 조짐을 보인다. 허무 속에서 긍정적인 꿈을 굳게 유지하는 우승자 김하온의 철학적 가사도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난데없는 ‘디스’에 지친 대중, ‘고등래퍼’에 환호

    2월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센터 탤런트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고등래퍼2’ 멘토들과 MC 넉살(맨 왼쪽). [뉴시스]

    2월 23일 서울 마포구 상암동 CJ E&M센터 탤런트 스튜디오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 참석한 ‘고등래퍼2’ 멘토들과 MC 넉살(맨 왼쪽). [뉴시스]

    ‘고등래퍼2’가 흥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두고 지난 몇 년간 한국 힙합에 제기돼온 문제의식이 가장 먼저 거론된다. 힙합 하면 자연스럽게 따라붙었던 ‘부정적 요소’에 대중은 피로를 느껴왔다. 금전적 성공이나 실력 등을 과시하는 ‘스왜그(swag)’와 상대를 비판 또는 비난하는 ‘디스(diss)’가 대표적 사례다. 이에 못지않게 여성 비하나 소수자 혐오 등도 힙합 평단과 매체, 인터넷 커뮤니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꾸준히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래퍼들의 어이없는 노선 변경도 논란이 됐다. 자극적인 가사로 온갖 ‘센 척’은 다 해놓고 ‘쇼미더머니’ 결승이 가까워지면 ‘엄마’를 찾으며 시청자의 눈물을 뽑으려 해 빈축을 샀다. 이러한 분위기가 조성된 데는 지금 힙합 신(scene)의 ‘절대강자’로 불리는 Mnet 힙합 경연 프로그램 ‘쇼미더머니’도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청자 머릿속에 강한 인상을 남길 필요가 있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특징이 자극성을 한층 높였다는 것이다. 

    그것은 고스란히 ‘고등래퍼’의 과제로 돌아왔다. 청소년이 힙합을 매개로 경쟁할 때 제작진이 마땅히 짊어져야 할 윤리적 책임은 그들의 숙제였다. 물론 Mnet에서 진행하는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미성년자가 참가하는 일은 결코 드물지 않았다. 그러나 힙합 신에 대한 대중적 이미지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랩의 특성을 고려할 때 ‘고등래퍼’에는 더 큰 부담이 실릴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는 시즌1에서 많은 이가 지적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제작진은 좀 더 ‘착한 예능프로그램’을 지향했다. 방송은 지난 시즌과 달리 예선을 중계하지 않고 처음부터 32명 본선 진출자를 등장시켰다. 출연자 ‘검증’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후문이다. 문제 여지가 있는 출연자를 배제하고, 방송을 통해 노출되는 내용을 통제하려 했다. 이는 10대 출연진의 발언을 제작진이 검토, 여과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상업방송으로서 어느 정도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적어도 미성년 출연자가 대중 앞에 무방비로 노출되게 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선택은 또 다른 특징으로 이어졌다. 바로 ‘실력 경쟁’ 프레임의 약화다. 이미 대다수 오디션 프로그램은 일종의 ‘캐릭터 쇼’ 성격을 갖는다. 아이돌 연습생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 101’도 ‘데뷔시키고 싶은’ 또는 ‘더 오래 보고 싶은’ 참가자에게 시청자의 투표가 몰린다. 결국 참가자의 매력이 생존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쇼미더머니’도 마찬가지다. 우승 여부와 무관하게 방송에서 인상을 남긴 참가자가 흥행 성적도 좋다. 하지만 표면적으로 중요시되던 실력 경쟁을 ‘고등래퍼2’는 거의 내려놓은 것처럼 보인다. 이미 제작발표회에서 제작진이 “ ‘시즌1’은 너무 무대 중심으로 방영됐다”고 발언했을 정도다. 음악 오디션 프로그램은 실력 경쟁이 아니며 더는 이를 감출 필요도 없다는 뜻이다. 

    실제로 방송은 시작부터 다른 요소에 집중했다. ‘고등래퍼2’의 유난한 관심은 사탕을 나눠 주거나, 앞머리가 눈을 가리거나, 참가자끼리 만나고 정서적으로 교류하는 모습에 있었다. 시청자는 출연자 캐릭터에 집중하며 그들에게 인간적 애착을 형성했다. 그다음에야 비로소 이들의 서바이벌 여부에 관심을 두게 된다. 결국 출연자가 어떤 인물상을 제시해 시청자를 매료시키느냐가 관건이다. ‘캐릭터 서바이벌’인 셈이다. 이는 인물상을 소비하는 아이돌 산업에서 한국 대중문화시장이 그동안 배운 것이자 다수의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을 성공시킨 Mnet의 잠정 결론이다. 

    그 지점에서 ‘고등래퍼2’의 취지가 등장한다. ‘10대 목소리를 듣겠다’는 것이다. 경연곡 ‘바코드’에서 김하온과 이병재는 서로를 향해 자신의 내면이나 고통스러운 기억을 이야기했다. 두 사람이 출연을 통해 서로를 알아간 것이 대화의 바탕이 되듯 시청자도 그들을 알아가기에 애착을 느끼고 귀 기울였다. 출연자들은 방황, 가정사, 꿈, 희망 등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고 이를 이어나갈 수 있는 목소리를 얻었다. 덧붙이자면 Mnet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의 단골 레퍼토리인 ‘엄마’마저 10대가 하는 이야기이기에 감상의 장벽 없이 활용될 수 있었다.

    ‘고등래퍼2’는 힙합 대세 전환의 신호탄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이 변화하는 시점에서 ‘고등래퍼2’는 10대를 주인공으로 한다는 부담은 줄이고 그 장점은 십분 살려냈다. 물론 우승자 김하온을 비롯한 참가자의 캐릭터와 실력, 재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또한 방송에 참여한 멘토를 비롯해 많은 이가 입을 모으듯 참가자의 전반적인 실력이 일정 수준 이상이었기 때문에 캐릭터에 집중하는 방향성이 설득력을 갖출 수 있기도 했다. 

    그것은 지금 10대에게 힙합이 갖는 특별한 위상으로 귀결된다. 힙합이 현재 10대 대중가요시장에서 대세로 군림한 것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입시 중심으로 꾸려지는 중고생의 삶에서 실행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음악 장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악기나 연습실이 없어도 마이크나 휴대전화, 노트, 펜 등 일상적인 물건만으로 당장 뭔가 해볼 수 있는 것이 랩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힙합은 온라인 게임, 인터넷 방송과 함께 10대 문화의 가장 중요한 축이 돼 있다. 

    지난해 ‘쇼미더머니6’에서 3위를 한 우원재도 시적인 가사와 진중하게 성찰하는 내용의 랩을 선보인 바 있다. ‘고등래퍼2’의 성공은 새로운 흐름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힙합에 대한 대중의 부정적 이미지와는 차별화된 청소년 래퍼는 자극적인 내용과 번지르르한 외면보다 내면에 집중하고 이를 통해 ‘세상을 향한 목소리’를 토해낸다. 이 때문에 힙합이 10대에게 갖는 막강한 영향력도 건강한 방향으로 향해갈 것임을 기대하게 만든다. 

    한편으로 역대 시즌에 비해 다소 부진했던 ‘쇼미더머니6’의 돌파구도 ‘고등래퍼2’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제작진은 자극을 줄이면 상업적 파급력도 크지 않음을 체감했을 터다. 지금 ‘고등래퍼2’에 대한 대중의 관심은 ‘쇼미더머니’가 직면한 장벽을 청소년 참가자의 재능과 포맷을 통해 돌파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니 이들의 게임은 지금부터다. ‘고등래퍼’와 출연자들이 힙합 신과 10대 문화를 바꿀 것인지 지켜봐야 할 때다. 언제나 그렇듯 대중문화시장은 결국 소비자의 선택에 따라 돌아간다. 만약 당신이 10대 목소리에 신선미와 뭉클함을 느꼈다면,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래퍼를 찾아 적극적으로 지지해주길 당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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