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3

2017.11.15

트럼프 방한

‘코리아 패싱’, ‘코리아 페잉’(Paying)으로 막았다

FTA 재협상 | 무기 구매, 방위비 분담금 증액 … “美 핵심 요구 수용”

  • 입력2017-11-14 13:3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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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 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 충무실로 향하고 있다.[뉴시스]

    11월 7일 오후 문재인 대통령 내외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내외가 청와대 충무실로 향하고 있다.[뉴시스]

    ‘안보에는 여야(與野)가 없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도 따로 놀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을 앞두고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미국을 방문했다. 10월 23~27일 닷새 동안 미국에 머물며 홍 대표는 한 가지에 집중했다. 전술핵 재배치다. 미국 중앙정보국(CIA) 코리아임무센터(Korea Mission Center)에서 간부들과 비공개 면담을 가진 뒤, 홍 대표를 수행한 강효상 대변인은 이렇게 말했다. 

    “CIA는 홍 대표가 추진해온 전술핵 재배치 서명운동에 대해서도 알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들어가는 일일보고에도 포함돼 있다. CIA 측은 ‘한국 제1야당 대표의 말을 늘 주시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에게 보고한다’고 설명했다.” 

    귀국에 앞서 홍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트럼프 대통령의 아시아 순방 때 어떤 메시지가 나올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해 전술핵에 대해 언급하길 기대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른바 ‘홍준표 패싱(passing)’이 벌어진 것이다. 11월 8일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연설 직후 홍 대표는 이렇게 평가했다. 

    “북핵 메시지는 기존 워싱턴 메시지의 반복에 불과하고, 우리 국민이 안심할 만한 강력한 대북 메시지는 없었다.” 

    강력한 대북 메시지로서 전술핵 언급이 빠져 서운했다는 이야기다. 더불어민주당은 홍 대표의 방미가 국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우려를 표했다. 정쟁 외교, 혼선 외교, 몽니 외교라고 비판했다. 홍 대표는 방미 마지막 날 문재인 대통령에게 안보 영수회담을 제의했지만 문 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 측이 거절했다. 한미 정상회담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준비에 여념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전술핵 재배치, ‘홍준표 패싱’

    홍 대표는 이미 두 차례나 문 대통령의 청와대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 특히 9월 27일 문 대통령이 유엔총회에서 연설한 뒤 돌아와 여야 대표들을 두 번째 초청했을 때는, 청와대 측이 “안보 문제에는 여야가 따로 없는 것 아니냐”며 거듭 참석을 촉구했음에도 끝내 거절했다. 안보관은 다르더라도 대외적으로 일관된 메시지를 내보내자는 속뜻이었다. 여기에 누가 더 열심이어야 할까. 누가 더 책임이 클까. 당연히 대통령과 여당이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에게 1차적 책임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놓쳤을까. 문 대통령은 홍 대표의 단독회담 요구를 수용했어야 한다. 이후 다른 정당 대표와 연쇄회동을 가지면 될 일이었다. 홍 대표가 방미하기 전 선제적으로 대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홍 대표도 잘한 건 없다. 보수세력을 결집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도 자제했어야 한다. 특히 자유한국당 ‘의원 방미단’을 보낸 데 이어 직접 방미까지 강행한 것은 경솔했다. 미국 정부나 공화당이 같은 편으로 여겨 반길 것이라고 믿었다면, 너무 순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들어 전술핵 재배치 문제를 꺼낼 것이라 믿었다면, 정말 국가 지도자로서 자질이 있는지 의심스러워진다. 

    ‘용감한 기자’ 한 명이 한미 정상회담 이후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대놓고 물었다.  “한국인에게 ‘코리아 패싱’(Korea Passing·한반도 주요 안보 문제에서 한국을 배제)은 없다거나 불식됐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까.” 

    실은 어처구니없는 질문이었다. 우리끼리 다퉈야 할 문제를 공식석상에서 꺼낸 탓이다. 트럼프 대통령에게 굳이 이런 질문까지 할 필요는 없었다. 우문현답(愚問賢答)이라고, 트럼프 대통령은 이렇게 답변했다. 

    “한국은 나에게 굉장히 중요한 국가다. 한국을 우회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there will be no skipping South Korea).” 

    이런 원론적 언급 말고 대체 어떤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까. 이 답변을 가장 반긴 쪽은 더불어민주당이었다. 추미애 대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코리아 패싱’ 논란과 관련해 한국을 우회하는 일은 없다고 분명히 강조하고 쐐기를 박았다”면서 “앞으로는 코리아 패싱이나 균형외교를 둘러싼 국내의 소모적인 정쟁이 중단돼야 한다”며 환영했다. 국민의당도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대북관계 입장차가 여전히 존재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코리아 패싱이 절반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는 듯하다. 반면 코리아 패싱 논란을 주도해온 자유한국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의례적인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곤란하다는 반응이다.



    코리아 패싱? 코리아 페잉(paying) !

    미국 해군이 보유한 토마호크 미사일.[사진 제공  미 해군]

    미국 해군이 보유한 토마호크 미사일.[사진 제공  미 해군]

    이번 정상회담에서 미국 정부의 한국 무시 가능성이 낮아진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를 상당히 들어줬기 때문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미국산 무기 대량 구매,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 세 가지가 핵심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여러 차례 ‘한미 FTA 폐기론’까지 언급하며 우리 정부를 압박했다. 코리아 패싱이 극심하던 시기였다. 우리 정부는 8월 22일 제1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때 일단 한미 FTA와 미국 무역적자의 상관관계부터 분석해보자며 버텼다. 하지만 10월 5일 제2차 한미 FTA 공동위원회 특별회기 때는 결국 물러서고 말았다. 

    6월 30일 첫 번째 한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FTA 재협상을 공식화했다는 평가가 나오자 청와대는 “FTA 재협상에 대해 양측이 합의한 바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요즘은 재협상을 ‘개정협상’이라고 불러야 한다고 우기지도 않는다.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한 직후인 9월 4일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했다. 통화 직후 백악관은 “트럼프 대통령이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산 군사 장비를 구매하려는 한국의 계획을 개념적으로 승인(conceptual approval)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두 정상 간 통화에서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 협상이나 구매 액수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번 한미 정상회담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수십억 달러 규모의 미국 군사전략자산을 주문하기로 했다. 이미 승인이 난 것도 있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은 여기에 전혀 토를 달지 않았다. 대체 ‘이미 승인이 난 것도 있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자유한국당이 곧바로 의문을 제기했듯 이면합의라도 있었던 것일까. 청와대는 이번에도 “이면합의는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해명과 번복이 반복되다 보니 신뢰가 가지 않는다. 

    문 대통령은 한미 정상회담 직후 방위비 분담 문제와 관련해 “합리적 수준의 방위비를 분담함으로써 동맹 연합방위태세 능력을 지속적으로 강화해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결국 미국 정부의 분담금 증액 요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은 첫 번째 한미 정상회담 때 이미 수용 의사를 내비친 사안이긴 하다. 하지만 합의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방위비 분담금 증액 규모에 대해서는 여전히 함구 중이다. 

    따라서 트럼프 대통령의 세 가지 요구를 우리 정부가 수용함으로써 코리아 패싱 여지가 줄어들 것은 맞다. ‘패싱’을 ‘페잉’(paying·지불)으로 막은 격이다. 하지만 한 번의 ‘페잉’으로 패싱을 얼마나 오랫동안 막아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또 다른 요구가 잇따라 나오곤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일방통행 역시 패싱이라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매사 미국 정부는 요구하고, 우리 정부는 수용하는 식으로 흘러가는 것도 패싱이다. 요구할 것은 공격적으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한미 정상회담을 일주일가량 앞둔 10월 31일 한중 외교부가 동시에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문’을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렸다. 중국 정부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보복제재를 종결하는 협상을 진행한 결과 이른바 ‘3불(不) 원칙’을 정해 공개한 것이다. 11월 3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구체적으로 △사드 추가 배치 검토하지 않는다 △미국 미사일방어(MD)체계에 편입하지 않는다 △한미일 안보협력이 군사동맹으로 발전하지 않을 것이라는 3불 원칙을 재차 확인해줬다. 같은 날 화춘잉(華春瑩)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한국이 ‘약속’을 지키길 바란다”고 언급했다. ‘3불 원칙’을 ‘3불 약속’으로 격상(?)시킨 것이다. 

    이후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굴욕외교’라며 비판하고 나섰다. 한미공조에 균열을 가할 수 있다는 우려도 함께 제기했다. 아니나 다를까, 허버트 맥매스터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한국이 세 가지 영역에서 주권을 포기할 것으로 생각지 않는다”며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논란이 불거지자 이번에도 청와대가 나섰다.

    “정부의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이지,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중국에 약속한 바 없다.”


    日 ‘과공(過恭)외교’와 ‘독도 새우’

    1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도쿄 아카사카궁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 전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11월 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도쿄 아카사카궁에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정상회담을 갖기 전 악수하고 있다.[뉴시스]

    같은 맥락에서 우리 외교부는 ‘3불 약속’이라고 표현한 중국 외교부 측에 정식 항의했고, 중국 외교부도 ‘약속’을 ‘입장 표명’이라는 표현으로 수정했다. 그래도 뭔가 이면합의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은 여전하다. 이러한 논란에도 3불 원칙이 부정적 결과만 초래한 것은 아니다. 일단 중국 정부의 사드 보복제재가 빠른 속도로 풀리는 중이다. 이와 동시에 미국 정부를 긴장케 하는 효과를 불러왔다. 트럼프 대통령이 방한 기간에 한미 FTA에 대한 공세 수위를 낮추고, 대북 압박보다 평화를 강조하는 문 대통령의 손을 슬쩍 들어주는 모양새를 취한 것이다. 중국 정부와 타협하려는 한국 정부를 달래야 할 필요성이 대두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가능한데, 우리 정부가 이런 효과까지 계산에 넣고 3불 원칙을 천명했는지는 의문이다. 

    하지만 미국 정부의 반응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예상 못 한 것은 아니다. 결과적으로 3불 원칙 카드는 사드 배치 문제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 끼여 숨조차 쉴 수 없던 우리 정부에게 숨 쉴 여유를 되찾아줬다. 트럼프 대통령과 국빈만찬 자리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초청하고 ‘독도 (닭)새우’를 메뉴에 올린 것을 두고 일본 정부가 반발하는 일도 벌어졌다. 일본 NHK는 ‘한미일 협력을 군사동맹으로까지 발전시키기는 어렵다’는 뜻을 미국 측에 암시한 것 아니냐는 그럴 듯한 해석까지 붙였다. 물론 그렇게까지 치밀하게 연구한 결과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이 일로 미국과 일본 사이에도 미세한 틈새가 벌어진 모양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용수 할머니를 가볍게 포옹한 장면이 결정적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과공(過恭)외교’를 벌였지만 ‘워싱턴포스트’로부터 ‘충실한 조수(loyal sidekick)에 불과하다’는 야박한 평가를 받았다. 그래서 더 심사가 불편했을 테다. 미국과 중국, 미국과 일본 사이에서 틈새를 발견했다고 ‘운전자’ 지위까지 획득한 것으로 보긴 어렵다. 다만 운신의 여지가 생긴 것은 분명하다. 서로 운전대를 놓지 않으려는 운전자들 사이에서 차장, 조율사 구실 정도는 할 수 있게 됐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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