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11

2017.11.01

인터뷰 | ‘폐 건강 전도사’ 서효석 편강한의원장

“바이오산업 이끌 ‘韓方 김연아’ 육성해야”

“한의학 한류는 미래 먹을거리 … SCI급 논문 게재 등 과학화 노력”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7-10-30 13:0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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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흡기는 찬 기운에 민감해요. 찬 기운이 들어오면 호흡기는 몸을 보호하려고 점액이라는 ‘방어막’을 쳐요. 점액이 과다하게 나오면 가래를 배출해야 하니 기침이 나오는 거죠. ‘방어막’이 없다면 우리의 호흡기는 곧장 동상에 걸릴 겁니다.”

    찬바람이 불던 10월 24일 서울 서초동 편강한의원에서 만난 서효석 원장(71  사진)은 기자의 기침 소리에 이렇게 운을 뗐다. 그리고 직원에게 “편강탕 한 잔 내어 드리세요”라며 싱긋 웃는다.

    한의(韓醫)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이라도 지하철, 버스, 옥외·극장, 신문 광고 등을 통해 ‘아토피, 비염, 천식은 편강탕’이라는 문구를 본 기억이 있을 터. ‘언제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는’이란 뜻의 ‘편강탕 같은…’이라는 비유법이 유행할 정도로 편강탕은 한방업계에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서 원장은 편강탕(환)으로 한약 수출 1호 한의사가 됐다. 그가 편강탕을 개발하고 ‘폐 건강 전도사’가 된 것도 어릴 적 편도샘염으로 고생한 경험 때문이다. 자신의 병을 스스로 고쳐보겠다는 ‘자존심’은 편도 건강을 위한 연구로 이어졌고, 결국 편강탕 개발의 단초가 됐다. 말이 나온 김에 평소 궁금한 호흡기 건강 상식부터 물었다.



    감기가 ‘뿌리’내리면…

    콧물이나 기침이 나면 감기라고 생각하는데, 비염도 증상이 비슷하다고 하던데요.
    “감기가 1주일 이내 치료되면 말 그대로 감기죠. 그런데 열흘을 넘긴다면 감기가 몸에 ‘뿌리’를 내려 여러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어요. 비염도 그중 하나죠. 열이 없는 상태로 콧물, 재채기, 기침, 가래 등을 일으키는 코감기는 비염과 증상이 비슷해요. 비염도 초기에는 콧물, 코 막힘, 재채기, 가려움증 같은 증상이 나타나거든요. 그런데 코 점막이 콧물로 장기간 습한 상태가 되면 세균이 침투해 축농증, 결막염, 중이염으로 발전할 수 있어요. 코감기는 1~2주면 증상이 호전되는데, 비염은 수개월에서 1년 내내 계속될 수 있죠.”



    요즘은 미세먼지(입자 크기가 지름 10㎛ 이하)나 초미세먼지(2.5㎛ 이하) 때문에 호흡기 질환을 호소하는 분도 많아요.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는 호흡기 질환의 원인입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몸에서 어떤 ‘방어태세’가 갖춰졌느냐에 따라 증상이 다르다는 거죠. 백혈구의 식별능력이 좋다면 초미세먼지가 우리 몸에 유입돼도 기민하게 찾아내 방어하지만, 식별능력이 떨어지면 폐렴균이나 암세포도 알아보지 못하고 제대로 방어하지 못해 문제가 생기죠.”

    결국 우리 몸의 ‘방어태세’, 즉 면역력에 달렸군요.
    “맞아요. 사실 인간은 수백만 년 동안 미세먼지보다 작은 세균, 바이러스와 맞서 싸우며 이겨온 내력이 있어요. 세균은 보통 0.2~2㎛ 크기로 미세먼지보다 훨씬 작고, 바이러스는 세균의 100분의 1에서 1000분의 1 크기로 초미세먼지보다 훨씬 작아요. 머리카락 굵기가 100㎛라면 미세먼지는 머리카락의 10분의 1, 초미세먼지는 40분의 1가량 돼요. 그런데 세균 중에서도 꽤 큰 편인 탄저균은 그 100분 1 정도밖에 안 돼요. 세균이나 바이러스는 먼지와 달리 한 마리가 순식간에 몇만 마리로 증식하고, 이들이 독소를 내뿜어 우리 몸에 큰 피해를 주죠.”

    우리 몸은 세균, 바이러스와 싸우면서 진화했다는 말씀이군요.
    “그렇죠. 결국 초미세먼지보다 작은 세균, 세균보다 훨씬 작은 바이러스로부터 우리 몸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폐를 깨끗이 하는 ‘청폐(淸肺)’라고 봐요. 생각해보세요. 우리 몸이 안 좋을 때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게 감기잖아요. 200가지 이상 바이러스가 일으키는 감기는 오직 ‘내 몸속 의사’인 면역력을 키워야 예방할 수 있어요. 코는 눈과 귀, 부비동과 연결돼 염증이 여기저기 옮겨 다니기도 하는데, 코의 염증이 귀로 가면 중이염, 눈으로 가면 결막염, 깊은 코로 가면 축농증이 되는 거죠. 이후 천식이 생기고 폐기종, 기관지 확장증 같은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폐섬유화의 중증 폐질환으로 발전하죠. 감기를 우습게 봐선 안 돼요.”



    야생동물처럼 달려야 하는 이유

    콧병 원인도 폐에서 찾는군요.
    “ ‘폐주비(肺主鼻)’, 즉 ‘폐가 코를 주관한다’는 한의학 이론에 근거를 두고 있어요. 한의학에서 코는 폐의 보조기관이라 폐에 이상이 생기면 코에 질병이 발생한다고 봐요. 특히 사람의 생명력을 생성하는 양기가 부족해 병에 대한 저항력이 떨어졌을 때나 과로 등으로 자율신경 기능이 저하됐을 때 비염이 생기죠. 2500년 전 중국 의학서 ‘황제내경’에서는 ‘폐주피모(肺主皮毛)’라고 했습니다.”

    ‘폐가 피부와 모발도 주관한다’는 건가요.
    “네. 인체 호흡 총량의 95%는 폐가, 나머지는 피부가 담당하는데 폐가 좋으면 당연히 호흡기인 피부 숨구멍이 열려 질병을 예방하는 이치입니다. 폐를 강화해야 아토피 피부염을 다스릴 수 있는 거죠. 그런데 현대인들 생활은 어떤가요. 바쁜 직장생활, 스트레스, 운동 부족, 게으른 생활습관 등으로 원래 폐 기능의 6분의 1가량만 쓰고 있고, 거기에 경쟁사회에 살면서 ‘열받는’ 경우도 많죠. 열이 나면 대부분 몸 위쪽으로 올라오면서 피부를 통해 발산하지만, 미량의 잔열은 폐포(肺胞)에 촘촘히 쌓여요. 이 열이 피부로 나타나면 아토피 피부염, 기관지로 나타나면 천식, 코로 나타나면 비염이 되는 거죠. 따라서 비염은 단순히 코에만 한정 짓지 말고 호흡기의 중심이자 생명의 전당인 폐 기능 강화로 접근해야 해요.”

    그렇군요. 폐 기능을 향상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야생동물은 생존하고자 끊임없이 달리며 폐를 100% 활용하니 별다른 노력을 할 필요가 없어요. 인간도 시간 나면 등산이나 유산소운동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금연하면서 맑은 공기를 가득 채워야죠. 숨을 헐떡일 정도로 운동한 뒤 숨을 천천히 깊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일주일에 3회 이상 운동하고, 복식호흡이나 단전호흡 같은 호흡 수련도 도움이 되죠. 특히 복식호흡은 폐 곳곳에 신선한 공기가 들어가게 해 폐질환 예방에 탁월해요. 저도 아침마다 집 앞 수리산(경기 군포)에 오르고, 소식(小食)하면서 틈틈이 바둑, 탁구 등 취미생활을 해요.”

    ‘운동 부족 직장인’을 위한 약차나 음식도 있을 듯한데요.
    “유산소운동과 함께하면 더욱 좋겠죠. 기관지에는 영지차, 상엽차, 관동화차, 차조기잎차 등이 좋고, 초기 감기라면 귤껍질에 대추·생강을 넣어 달여 차로 마시면 좋아요. 기침이 계속 나오거나 가래가 많으면 호두로 죽을 쑤거나 달여 먹고, 잦은 기침에는 석류차가 도움이 돼요. 목감기라면 도라지나 귤껍질과 감초를 함께 달여 마시고, 열 감기라면 배즙이나 무를 갈아서 꿀과 섞어 뜨거운 물을 부어 마시는 게 좋죠. 평소 가래와 기침이 심하다면 연근을 갈아 즙을 내 먹으면 효과가 있어요. 연근은 점막의 저항력을 높이는 작용을 해 기침을 진정시키고 모과는 기침 진정과 근육통에 도움이 되죠. 편강탕을 드셔도 좋고요.(웃음)”



    중3 여학생 비염환자

    그러고 보니 편강탕 개발 사연도 궁금하네요.
    “제가 어릴 적 편도샘염으로 엄청 고생했어요. 한여름에도 이불 똘똘 말아 덮고 끙끙댔거든요. 목감기가 오면 편도가 붓잖아요. 그래서 편도를 강하게 만들려고 한의사가 된 뒤 혼자 한의서 보면서 이것저것 연구하기 시작했죠.(웃음) 1990년대 후반 경기 군포에서 한방병원장을 할 때인데, 중3 여학생 비염환자가 찾아왔어요. 보통 한의학에선 비염환자에게 소청룡탕(백작약, 오미자 등 약재를 넣은 기관지염 치료 처방)이나 여택통기탕(황기, 마황 등의 약재를 쓰는 비염 치료 처방)을 씁니다. 경험상 이 처방이 사람마다 효과가 다르고 기대만큼 결과도 좋지 않더군요. 그래서 그동안의 편도 강화 연구를 바탕으로 처방을 조금 달리해봤는데, 사흘 뒤 아버지가 찾아왔어요. ‘딸의 비염 증세가 완화됐다’며 신기해서 왔다더군요.”

    그 처방이 편강탕으로 발전했군요.
    “네. 편도샘을 튼튼히 해 면역력을 높인 원리인데, 한의학에서도 편도샘염은 감기, 과로, 스트레스 등으로 폐에 이상이 생겨 나타난다고 봐요. 그러니 폐와 편도를 강화해야죠. 편도샘이 편안하다는 뜻에서 ‘편강(扁康)탕’이라고 이름 지었죠.”

    서 원장만의 ‘특별 약재’를 쓰나요.
    “아뇨. 흔히 구할 수 있는 10여 가지 일반 한약재를 함께 써요. 지금도 꾸준히 업그레이드하고 있고요. 영업비밀이라 여기까지….(웃음)”

    서 원장은 경희대 한의대 졸업 후 여느 한의사들처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인근에서 한의원을 운영했는데, 외환위기가 닥치면서 한의원 경영에 큰 타격을 입었다고 했다. 환자가 줄면서 월세와 인건비 대기에도 빠듯해져 결국 문을 닫았고, 이후 경기 군포의 ‘월급쟁이’ 한방병원장으로 일하며 여러 환자의 진료를 맡았다 그곳에서 수십 년 연구한 ‘편강탕’을 완성했으니, 외환위기는 그에게 위기이자 기회였다. 이어지는 그의 말이다.

    “우리나라 한의학은 인류의 보석 중 보석입니다. 세계에 알리고 산업화해야 해요. 한방(韓方)은 우리나라의 새로운 먹을거리가 될 수 있어요. 김연아 선수가 등장하자 세계가 한국 피겨스케이팅에 주목했듯, 우리도 한방 바이오산업을 이끌 선두주자, 선두그룹부터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봐요. 미래학자들은 오래전부터 ‘메디컬 푸드 시대의 도래’를 예견했잖아요. 우리 한방이 ‘메디컬 푸드’인데….”

    맞는 말씀입니다만, 한방은 참 모호하다는 느낌도 있습니다. ‘녹비(鹿皮)에 가로왈(曰)’이라고, 사슴 가죽에 해 일(日)자를 써놓고 옆으로 당기면 가로 왈(曰)이 되는 것처럼 말이죠.
    “옳은 지적입니다. 한방의 우수성을 오늘날 과학으로 명쾌하게 증명하고 산업화하는 방향으로 가야죠. 그래야 신뢰감을 줄 수 있고요. 제가 그동안 한방을 과학적으로 연구해 SCI(과학기술논문 인용색인)급 논문에 게재하고, 한국과 미국, 일본 등에서 한의학 강의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그리고 한의학에 관심이 높아진 지금 ‘한의학 한류(韓流)’를 일으킬 때가 됐다고 봐요.”



    韓方산업의 가능성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40년 이상 진료실에서 환자들을 만나다 지난해 10월 서울 관악구민회관을 시작으로 매달 ‘폐 건강법 강의’를 하는데, 관심도를 몸소 체감하고 있어요. 질의응답 시간이 부족할 정도니까요.(웃음) 최근 충북 제천시에서 열린 ‘2017 제천 국제 한방바이오산업엑스포’(9월 22일~10월 10일)에 관람객 110만 명이 다녀갔어요. 당초 80만 명을 예상했는데, 그 열기가 뜨거웠죠. 우리 한의원도 부스를 차려 참여했고요. 나중에 들어보니 국내외 253개 기업과 28개국 311명의 해외 바이어가 찾아 231억9000만 원 수출계약을 했더군요. 한방산업의 가능성을 보여준 거죠.”

    그의 말처럼, 서 원장은 이충재 충남대 의대 교수, 이현재 삼육대 교수 연구팀과 함께 흰쥐 실험을 통해 편강탕(환) 추출물(PGT)이 대기오염물질로 인한 호흡기 염증(객담 과다분비증) 및 폐섬유화를 완화한다는 연구 결과를 지난해 연말 SCI급 국제학술지에 실었다. PGT는 인동덩굴꽃, 맥문동, 숙지황 등 6가지 한약 추출물인데, 이러한 한약재가 폐섬유화증을 낮춘다는 연구 결과였다. 서 원장은 5월 29일 일본에서 열린 ‘제4회 만성폐쇄성폐질환에 관한 국제회의 및 워크숍, COPD 2017’에 특별연사로 참석해 강연을 했다. 미국, 영국, 인도 등 50개국 관계자 500여 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서 각국 전문가들은 만성폐쇄성폐질환의 한의학적 치료에 큰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그는 “한의사들이 자신의 연구를 해외에 알리는 노력을 통해 ‘한의학 한류’를 앞당겼으면 좋겠다”며 싱긋 웃었다.  

    서 원장은 어릴 때부터 한의학에 관심이 많았나요.
    “제가 2남6녀 중 장남인데,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컸어요. 아버지는 전북 이리(현 익산)에서 큰 서적상을 했는데, 덕분에 책속에 파묻혀 자랐죠. 아버지는 한방 관련 서적 50여 권을 통독한 한방 마니아였고, 직접 한약재를 사와 달여서 자녀들에게 먹이셨어요.”

    아버지의 영향으로 한의대에 갔군요.
    “사실 무역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안 계실 때 가끔 서점 일을 도왔는데, 종업원이 팔 때와 제가 팔 때 단위시간당 매출액이 확연히 달랐거든요. 책 대신 비행기나 배를 팔면 돈을 많이 벌겠다는 생각에 무역학과에 가려 했죠. 우리 때는 대학입시에 전기대와 후기대가 있었는데, 전기대로 의대에 지원했는데 시험에 떨어졌어요.(웃음) 내심 ‘잘됐다’ 싶어 후기대로 무역학과에 진학하려는데, 아버지가 경희대 한의대 원서를 사온 거예요. 운명의 길이자 행운의 길로 들어선 계기가 됐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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