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08

2017.10.04

인터뷰 | 최광 성균관대 석좌교수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苦言

문재인 대통령을 향한 苦言 “국정 화두가 온통 ‘적폐청산’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은 ‘팔로어’ 아닌 ‘리더’ …  도쿠가와의 ‘인재 등용술’ 배워야”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7-10-03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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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광

    •1947년 경남 남해 출생
    •부산고,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미국 위스콘신대 대학원 공공정책학 석사, 메릴랜드대 대학원 경제학 박사
    •공인회계사 합격(1969)
    •미국 와이오밍대 경제학과 조교수, 한국외대 경제학과 교수
    •한국조세연구원장, 보건복지부 장관(김영삼 정부)
    •국회예산정책처장(노무현 정부)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박근혜 정부)




    9월 20일 오전 서울 충정로 한 레스토랑에서 만난 최광(70) 성균관대 석좌교수는 “문재인 대통령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르는 거 같다”며 운을 뗐다. 8월 기자가 문재인 정부의 의료 정책(문재인 케어)에 관해 물었을 때 그는 “의료정책뿐 아니라 국정운영 전반에 대해 고언(苦言)하는 참모가 보이지 않는다”며 9월 인터뷰를 약속한 터였다.



    당시 그는 “대학원 강의 준비와 저술 작업으로 바쁘고,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 기조를 조금 더 지켜보자”는 이유를 댔다. 인터뷰에 앞서 최 교수는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문재인 대통령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재인 대통령의 성공을 위한 苦言’이라는 제목의 A4 용지 20쪽짜리 문건을 기자에게 건넸다. 최 교수가 생각하는 ‘부국안민의 길’이었다. 인터뷰는 문건 제목처럼 현 정부에 대한 ‘쓴소리’로 시작됐다.

    요즘 어떻게 지내나.
    “한국조세연구원장과 보건복지부 장관, 국회예산정책처장 등 국정에 참여한 경험을 살려 대학원(성균관대 국정전문대학원)에서 ‘부국안민론(富國安民論)’을 강의한다. 대학원 강의 준비와 그간의 고민을 담은 3~4권의 책 저술에 매진하고 있다.”

    문 대통령 취임 5개월이 돼간다.  
    “사실 좀 우려스럽다. 대한민국 건국을 부인하고, 전대미문의 경제성장을 이룬 위대한 나라를 폄하하고, 3대 세습 독재왕조를 비호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백척간두에 선 안보 위기에서 우왕좌왕하고, 촛불을 정치도구화하고, 심각한 경제위기에서도 과거의 실패한 처방을 내놓고 있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국민에게 줄 특별한 요술방망이를 갖고 있지는 않다. 원리·원칙에 따라 국정을 운용하고 솔선수범하며 사심 없이 행동하면 역사에 남을 텐데….”



    “대통령은 사회자    …    들어야 산다”

    구체적으로 말해달라.
    “대통령을 영어로 ‘프레지던트(president)’라 하는데 그 어원은 ‘프리자이드(preside)하는 사람’, 즉 사회자를 뜻한다. 대통령은 귀를 활짝 열고 사람들이 모두 자기 견해를 피력할 수 있도록 유도한 뒤 최종적으로 자신의 책임 하에서 고독한 결단을 내려야 한다. 그런데 짜놓은 일정 속에서 몇 달 지나면 스스로의 정체성을 잃기 마련이다. 외부와 차단된 채 하루 한 시간이라도 성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  ·  6호기 건설을 일시 중단하고 의견 수렴 절차에 들어간 것은 ‘사회자’로서 제구실을 한 것인가.
    “크게 보면 탈원전정책은 산업 측면과 안전 측면이 핵심이다. 그렇다면 이 분야는 전문가의 영역이다.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 위원들의 면면을 보면 전력사업이나 원전 관련 과학자와 전문가가 안 보인다. 가장 먼저 전문가들이 나서 우리나라 지질단층대를 연구해 원전 안전성을 검증한 뒤 문제가 있으면 극복 방안을 찾아보고, 그래도 안 되면 폐쇄해야 한다. 어렵게 세계적 수준의 원전 기술을 갖춘 만큼 ‘적은 노력으로 큰 이득을 남기는’ 원전의 산업 측면도 검토해야 한다. 지금 같은 방법은 잘못됐다. 국가 주요 정책을 정치인과 일반인이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잘못이다. 갈등만 커질 뿐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집에서 TV나 밥솥이 고장 나면 어떻게 하나. 서비스센터에 문의해 기술자의 도움을 받는다. TV 하나 고치는 것도 전문성이 필요한데, 원전이나 경제에 대해 누구나 다 안다고 생각하는 건 오판이다. 내가 대통령이라면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 전문가들에게 의견을 들은 다음 결정하겠다.”

    탈원전 정책뿐 아니라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현 정부 들어 문화재청 반대로 제자리걸음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 발행 계획도 취소돼 발행서명운동이 진행 중이다.  
    “전 정권이 한 일 가운데 절차나 내용이 잘못된 것은 고쳐야 하지만, 심각한 잘못이나 오류가 없는데도 단순히 전 정권에서 했던 일이어서 바꿔야 한다는 건 민주주의를 앞세우는 이 정부의 자기모순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의 지지를 받아 민주주의에 의해 정권을 잡았다고 말하는데, (앞서 기자가 질문한) 그러한 사례들이 그 (민주주의) 원리에 부합하는가. 내용이나 절차가 정당했는데도 ‘안 된다’고 하는 건 독재다. 국정운영의 화두가 적폐청산 등 온통 과거 중심이라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민주주의가 아니라 독재다”

    문 대통령과 이낙연 국무총리는 현 정부를 ‘촛불혁명의 산물’로 규정한다. 따라서 대선 공신(功臣)인 지지자들의 ‘청구서’도 무시할 수 없지 않을까.
    “사람은 생각의 바탕이 아주 중요한데, 선거를 앞둔 정치인의 눈에는 촛불과 태극기 세력만 보인다. 어차피 정치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 보고 서로 지지자들을 규합했지만, 선거가 끝나고 정권을 잡으면 촛불이나 태극기 얘기는 안 하는 게 낫다. 대통령은 대한민국 모두의 대통령 아닌가. 역사에 남은 지도자는 예외 없이 소신과 확신으로 국민을 선도하는 ‘리더(leader)’였지, 자신을 뽑아준 지지자들의 눈치를 보는 ‘팔로어’(follower·추종자)가 아니었다. 국민은 미래를 내다보는 강력한 지도력에 목말라 한다.”

    국론 분열은 사드(THAAD  ·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와 정부의 대북 지원 같은 안보·대북 분야에서 보이는 거 같다.
    “나라가 왜 존재하나, 대통령이 무엇을 해야 하나 등 두 가지 문제는 기본적으로 같이 간다. 국민 다수와 일부 지식인은 나라가 존재하는 이유를 ‘국민에게 복지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나라의 존재 이유이자 책무는 ‘방위(防衛)’와 ‘질서 유지’다. 우리가 세금을 내는 이유는 다른 나라에 점령당하지 않고, 강도를 막아주며, 내 재산을 지켜주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국제사회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우려하고, 북한 김정은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설전을 벌일 때는 굳건한 한미동맹을 바탕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과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만나 상의하겠다’고 하니 누가 이해할 수 있을까. 독일 히틀러가 한창 세력을 구축할 때 유럽의 많은 정치가와 지식인은 히틀러에게 아부하며 유화 제스처를 보냈다. 그때 윈스턴 처칠 영국 총리는 ‘유화주의자는 자신은 잡아먹히지 않으리라 믿으며 악어를 키우는 사람’이라고 히틀러의 본성을 간파했다. 이 엄중한 시기에 국가 중대사를 적(김정은)과 상의할 건가. 인도적 지원도 평상시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지금은 그런 국면도 아니다.”

    최근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9월 19일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문정인 대통령 통일외교안보 특보에 대해 “학자 입장에서 떠드는 느낌으로, 개탄스럽다”고 비판했다(문 특보는 ‘북한이 핵·미사일 활동을 중단하면 미국의 한반도 전략자산과 한미 합동군사훈련을 축소할 수 있다’ ‘사드 때문에 한미동맹이 깨지면 그게 무슨 동맹이냐’는 등의 발언을 한 바 있다).
    “문정인 특보를 비판했다고 송 장관이 청와대로부터 ‘엄중 주의’ 조치를 받았다고 신문에 났더라. 청와대나 문 특보는 기본을 잘 모르는 거 같다. 국가의 주요 정책은 대통령과 장관이 결정하고 발표해야 한다. 어떤 경우라도 참모(특보)가 전면에 나서서는 안 된다.”

    그는 테이블에 놓인 녹차를 한 모금 마시더니 잠시 천장을 올려다봤다.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냈는데, 문재인 정부의 의료정책은 어떻게 보나. 국민은 대체로 국민건강보험 보장을 강화하는 방향에는 찬성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은 사회주의 제도다. (끓여서 파는) 라면 값도 가게와 지역마다 다른데, 감기 치료 보험 수가는 서울 전문의와 시골 의사 모두 같다. 나이 드신 분들 집에 가보면 약봉지가 잔뜩 쌓인 것을 쉽게 볼 수 있고, 감기 때문에 병원에 가면 환자는 1500원만 내면 된다. 사실 진료비는 1만 원인데. 이게 다 국민건강보험 덕이다. 내가 장관일 때는 전체 의료 행위의 30~40%가 국민건강보험으로 커버(보장)됐는데, 이제는 63%까지 커버한다(문재인 정부는 2022년까지 보장률을 70%로 확대하고, 본인부담 의료비는 37%에서 30%로 낮출 계획이다). 그렇다면 늘어난 비용은 누가 부담해야 하나.”

    국민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해 5년간 30조6000억 원을 투자하고, 건강보험 누적 흑자 21조 원 가운데 절반가량을 활용할 계획이다.
    “대부분 국민건강보험을 돈 많은 사람이 돈 없는 사람을 도와주는 거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건강한 사람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을 도와주는 제도다. 같은 보험료를 내면서도 어떤 사람은 1년에 한 번 병원에 가고, 어떤 사람은 한 달에 두세 번 찾는다. 그렇다면 국민건강보험 제도를 병원에 자주 안 가는 사람을 중심으로 설계하든가, 최소한 자기가 치료받은 만큼 비용을 내도록 설계해야 한다. 현재처럼 소득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낼 게 아니다. 병원 방문 횟수 등을 따져 보험료를 정하고, 생활이 어려운 사람은 의료급여제도(경제적으로 어려운 국민을 대신해 국가가 대신 의료비용을 지불하는 제도)를 통해 도와주면 된다. 이런 인식이나 논의 없이 현 정부는 ‘치매를 국가가 책임진다’며 치매 의료비 90%를 국민건강보험으로 처리하겠다고 한다. 고령화로 치매환자가 2024년 100만 명, 2050년 270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정책을 시행하려면 먼저 비용 부담자와 혜택받는 사람들을 감안해 국민에게 ‘이런 대안과 정책이 있다’고 설명해야 한다. 대선 공약이라고 무작정 추진하고, 여당이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하는 건 굉장히 야만스러운 처사다.”



    역대 대통령이 실패한 이유

    최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앞서 안경환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박성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후보자, 박기영 과학기술혁신본부장도 자진사퇴했다. 인사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대통령은 국사(國事)를 책임지는 사람이고, 국사는 능력이 출중한 핵심 책사들의 도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나라 환공을 춘추시대 최초 패자로 만든 관중(管仲)은 포숙아(鮑叔牙)와 깊은 우정(관포지교)으로 잘 알려졌고, 제갈량이 가장 존경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2700여 년 전 시장경제와 지방자치를 주장했는데, 그 근본으로 첫째는 인치로 널리 인재를 천거하게 해 천하의 인재를 활용했고, 둘째는 법치로 법을 명확히 해 백성에게 행위의 준칙을 명백히 밝혔다. 그러면서 지방 수령이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일로 지역의 유능한 인재 추천을 꼽았다. 유능한 인재를 임금 곁에 두는 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옛날 우리네 할머니들은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지만 집안의 분쟁이나 대소사를 척척 해결했다. 지혜로웠기 때문이다. 대통령 주변에도 우리네 할머니 같은 지혜로운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 안보, 경제, 문화, 법 같은 국정의 큰 ‘맥점’을 제대로 짚어내는 지혜로운 사람 5명만 앉혀 놓으면 될 거 같다.(웃음)”

    현 정부에서 ‘지혜로운 5명의 인사’가 있다면 꼽아달라.
    “글쎄…. 지혜로운 최상급 참모는 보이지 않는다.(웃음)”

    역대 대통령을 봐도 ‘대선 공신’을 먼저 챙겼지, 유능한 새 인재를 등용하는 경우는 드물었던 거 같다.
    “물론 대통령이 되기까지 많은 빚을 진다. 그러나 대통령이 되기 전 동원된 인재와 국정운영에 활용할 인재는 구분해야 한다. 이 점에서 일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인재 등용술’을 배울 필요가 있다.”

    일본 전국시대를 통일하고 에도 막부를 세운 쇼군(將軍) 말인가.
    “그렇다. 도쿠가와는 천하통일을 이룬 뒤 전쟁에서 목숨을 걸었던 공신들의 생계는 보장했지만 나라 운영에서는 철저히 배제했다. 유능한 새 인재를 등용해 무게중심을 기존 ‘정치세력’에서 ‘정책세력’으로 옮겨 놓았다. 과거 문민정부부터 지난 박근혜 정부까지 역대 정부가 모두 실패한 이유가 뭔가. 대통령과 측근들은 그동안 묻어둔 한(恨)을 풀려 했고, 반대 세력을 용인하지 않았다.

    대선 공약에 집착해 국정을 올바르게 끌고 갈 수 없었다. 만약 새로운 인재를 대거 등용하면 국정철학과 관련된 공약을 체계적으로 살피면서 실현 가능성과 일관성이 있는 국정 약속을 새로 제시할 수 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대통령이 ‘공공부문 81만 개 일자리 창출’ 같은 특정 수치를 제시하는 건 금기(禁忌) 중 금기다.”

    왜 그런가.
    “구체적인 수치가 대통령 입에서 나오면 관료들은 어떻게 해서든 대통령이 뱉은 말을 책임지고 맞춰내야 한다. 그러면 수치는 달성되겠지만, 다른 부문에서 엄청난 왜곡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역대 정부에서도 국내총생산(GDP)을 몇% 성장시키겠다는 식의 숫자를 남발했다. 대통령은 국정 방향을 ‘정량(定量)적’이 아닌, ‘정성(定性)적’으로 표현해야 한다. 처칠 전 영국 총리는 취임사에서 ‘내가 국민에게 바칠 수 있는 것은 피와 노고와 땀뿐(I have nothing to offer but blood, toil, and sweat)’이라고 했다. 원리·원칙에 따라 국정을 운용하고 사심 없이 행동하면 국운은 융성한다.”

    최 교수도 언급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과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을 통한 소득주도형 경제성장을 추구한다. 경제학자로서 이른바 ‘J노믹스’를 어떻게 보나.
    “나는 대통령이 ‘실업 문제 해결할 자신이 있느냐’고 물으면 ‘실업 문제 해결 자체만 요구하면 자신 있습니다. 그러나 나라 흥망이 어떻게 되는지는 묻지 마십시오’라고 할 거다. 실업 문제를 해결하려면 실업자들을 거주지 인근 학교 운동장으로 모이라 해 땅을 파게 한 뒤, 그다음 날 구덩이를 메우게 하고 일당 10만 원씩 주면 된다. 그럼 나라는 망한다. 생산이 동반되지 않은 일자리는 일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만들려고 공무원 수를 늘린다는 건 모르긴 해도 아프리카 어느 나라에도 없는 정책이다. 꼭 해야 한다면 별도 조직을 만들어 간척사업을 벌이든가, 간벌을 시켜 경제수림을 조성하는 등 생산적인 활동을 해야 한다.”



    간단한 실업 해결책

    최 교수는 프랑스 경제학자 클로드 프레데릭 바스티아의 ‘깨진 유리창의 오류’를 언급했다. 빵집 아들이 유리창에 돌을 던져 유리창이 깨지자 아버지는 아들을 심하게 나무랐는데, 이를 지켜보던 동네 사람이 ‘꼭 나쁜 방향으로만 생각지 말라’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새 유리창을 사서 갈아 끼우면 유리창 수리업자는 일거리와 소득이 발생하고, 수리업자가 번 돈으로 새 구두를 사면 구둣방 주인의 일감도 생겨나니 마을 경제에도 나쁘지 않다.”

    그러나 빵집 주인은 새 옷을 사려고 모아놓은 돈으로 유리창을 교체해 옷 구입을 포기했다. 유리창 수리업자는 일거리가 생겼지만 양복점 재봉사의 일감은 사라졌다. 결국 마을 전체적으로 보면 소득과 일자리가 새로 창출된 게 아니라, 방향만 전환된 것이다. 이 이야기는 바스티아의 1850년 에세이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나온다.

    공공일자리 창출에 따른 기회비용을 생각하라는 말인가.
    “수리업자가 새 유리창을 만들어야 경제에 도움이 된다면, 모든 유리창을 깨면 최선이다. 그런데 바스티아의 주장처럼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공무원 수를 늘리면 민간 부문 생산성은 줄어들고, 공무원들에게 월급과 연금을 주려고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문 대통령의 핵심 공약 이행에 178조 원이 든다고 추산한다. 그리고 민간 투자 인력과 자본은 공공으로 옮겨간다. 당장 서울 노량진 고시학원은 문전성시고, 대기업 사원과 대리는 세계무대에 나서기보다 공무원 채용 시장에 뛰어든다. 일전에 대기업 임원인 후배를 만났는데 ‘5년 정도 키운 핵심 인력들이 사표 내고 공무원시험을 치겠다고 해 말리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참모들은 ‘대통령님, 일자리 창출도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닙니다. 일자리 창출은 되겠지만, 아웃풋(산출)은 없고 우리가 모르는 새 손실도 입고 있습니다’라고 직언해야 한다. 저성장을 극복하고 일자리를 늘리려면 법과 질서를 유지하고, 과감한 규제 혁파와 기업 친화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세계 자본과 기술이 대한민국으로 찾아오게 해야 한다. 2700년 전 관중은 ‘재화가 많으면 먼 데서도 사람이 몰려온다, 입고 먹는 게 충족되면 사람은 영욕을 안다’고 했다. 그의 이러한 부국강병책을 제환공이 대폭 수용해 제나라는 천하를 제패할 수 있었다.”

    인터뷰 말미에 기자는 2015년 10월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사임한 배경을 물었다. 그해 9월 1일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에 찬성한 홍완선 전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장의 연임을 반대한 데 따른 주무장관(정진엽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외압 의혹도 제기됐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2015년 9월 1일 합병. 연금공단은 7월 10일 투자위원회를 개최해 합병안 가결) 건으로 많은 사람이 재판을 받고 있는데, 이 시간에 내가 동아일보와 인터뷰할 수 있는 건 당시 원칙을 지켰기 때문이다. 사실 보건복지부 장관도, 국민연금공단 이사장도 기금운용본부의 개별 투자 건에 개입하지 못한다고 규정돼 있다. 나는 우직하게 규정을 따랐다. 홍완선 전 본부장과 2년을 함께 일해보니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판단이 들었다. 2022년이면 1000조 원에 육박하는 기금을 운용하는 수장 자리에는 좀 더 글로벌한 인재가 필요했다 생각했고, 본부장 선발과 연임 권한은 이사장에게 있다.

    그런데 2015년 8월 취임한 정진엽 보건복지부 장관이 ‘청와대 뜻’이라며 홍 본부장의 연임을 요구했다.”



    삼성물산  -  제일모직 합병 건

    과거 의결권 행사에 관여한 이사장들도 있지 않았나.
    “물론이다. 그래서 특검(박영수 특별검사팀)이 나도 조사했다. 그런데 원칙적으로 투자위원회 안건 내용과 결과는 결정 열흘이나 2주가 지나야 이사장이 볼 수 있다. 당시 (합병을 반대한 미국계 헤지펀드인) 엘리엇매니지먼트는 내게 편지 9통을 보냈는데, 나는 발신자를 확인하고 곧장 홍 전 본부장에게 전달했고, 이후 무슨 내용인지 물어봤다. 그러면서 ‘삼성 합병 건은 세계 이목이 집중되고 있으니 내용과 절차에 한 치의 빈틈이 있어선 안 된다’고 당부했고, ‘복수의 로펌에 반드시 자문을 구하라’고도 지시했다. 원칙에 맞게 했다고 생각한다.”

    당시 이사장직 사퇴 전날까지 직원들에게 e메일을 보내 ‘자진 사퇴는 없다’고 했다 다음 날 전격 사퇴했다.
    “그랬다. 당시 나는 전북 전주에 있었는데 나도 모르는 분이 교수인 내 제자에게 e메일을 보냈다. 차기 총선을 앞둔 시점에 (보건복지부 장관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간 갈등은) 야당이 청문회를 요구하는 등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고, 내가 버티면 사안이 ‘인사 게이트’로 비화될 수 있다고 했다. 임명권자인 대통령을 생각해 다음 날 아침 정진엽 장관에게 전화로 퇴임하겠다 하고 오후 4시까지 엠바고를 요청했는데, 1시간 뒤 다 알려졌다. 당시 정 장관에게 굉장히 실망했다. 2013년 6월 취임해보니 500조 원을 운용하는 기금운용본부 직원이 200명에 불과했다. 외국인 투자 전문가 13명 등 148명을 늘렸고, 리스크 관리와 준법 감시를 강화했다. 그리고 원칙대로 일해 누구와 다툴 일도 없었다. 정부의 공공기관·기관장 평가에서 A를 받았는데 왜 사퇴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정진엽 전 장관의 사퇴 압력을 주장했는데, 청와대 뜻이라 생각하나.
    “공공기관·기관장 평가 점수도 좋고, 박 전 대통령이 그렇게 했을 거라 생각지는 않는다. 정치권에서 장난을 친 거다.”

    앞으로 활동 계획이 있다면 알려달라.
    “국내 여러 학자와 ‘오래된 새로운 비전-대한민국 바로 세우기’라는 책을 쓰고 있고 10월 중 출판기념회를 할 계획이다. 이 책은 자유지식인 30여 명의 대한민국 위기 진단과 해법을 담았는데, 위기의 대한민국이 중심을 잡고 세계무대를 항해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현명한 사람은 경험하지 않고도 알고, 보통 사람은 경험을 하고 나서야 알며, 바보는 경험을 하고도 모르는 사람이다. 대한민국 지도자들은 ‘경험하고도 모르는 사람’이 많은 거 같다. 문재인 정부는 역대 대통령의 실패 사례를 반면교사 삼아 끊임없이 역사와 대화하면서 성공했으면 좋겠다. 대한민국 미래를 위해 문 대통령은 반드시 성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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