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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책을 읽자

그래, 책을 읽자

그래, 책을 읽자
지난여름 독서인 사이에서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의 색연필 독서법이 화제가 됐다. ‘읽는 인간’에 실린 오에의 공손한 말투 그대로 옮기면 이렇다.

“한 권의 번역본을 읽습니다. 그 책에서 정말로 좋다고 생각하는 부분, 혹은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부분에 각각 빨강과 파랑, 두 종류의 색연필로 선을 긋거나, 약간 긴 구절이라면 선으로 상자를 만드는 것이 제 방법입니다. (중략) 아울러 외우고 싶은 단어나 문장이 있다면, 특별히 선을 굵게 그어두는 게 좋습니다.”

책을 읽다 흐뭇한 표정으로 마음에 드는 문장에 빨간 선을 긋고, 고개를 갸웃하며 이해가 잘 안 되는 문장에 파란 선을 긋는 오에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그러나 책에 대한 공손함은 곧 집요함의 시작이다. 처음엔 번역서에 선을 그어가며 빈틈없이 읽고, 두 번째엔 원서를 구매해 선을 그은 부분과 원문을 대조해서 읽고, 마지막엔 처음부터 끝까지 쭉 원서로 읽어야 비로소 치열한 책 읽기가 끝난다. 또 오에는 독서의 기본 원리를 ‘배우기, 외우기, 나아가 깨닫기’로 설명했다. 그는 문학작품, 특히 시를 읽을 때 어렵다고 느끼면 일단 외웠다고 한다. 생활 속에서 반복적으로 시를 중얼거리는 동안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그 의미를 자력으로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앤디 밀러의 ‘위험한 독서의 해’는 마흔을 앞둔 저자가 1년간 걸작 50권 읽기에 도전한 기록이다. 일명 ‘인생 개선 독서 프로젝트’ 목록에는 미하일 불가코프의 ‘거장과 마르가리타’부터 P.G. 우드하우스의 ‘우스터 가의 규칙’까지 다양한 책이 올라와 있지만 처음부터 어떤 의도를 갖고 고른 것은 아니었다. 너무 싸다는 이유로 덜컥 사버린 책이 ‘거장과 마르가리타’였고 ‘잘린 머리가 자갈 위로 굴러나왔다’는 대목을 읽은 뒤 이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궁금해서 계속 읽기로 했다. 하지만 완독의 과정은 험난했다. 한낮의 악몽 같은 이 소설 도입부에서 벌써 잠에 빠져드는 독자가 대부분이다. 밀러 자신도 완독까지 닷새가 조금 넘게 걸렸지만 결국 해냈고, 이것이 ‘인생 개선 독서 프로젝트’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렸다. 저자는 이어 ‘내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책 100권’과 ‘앞으로 더 읽으려는 책들’ 목록을 첨부하면서 이 책들을 읽고 다음 책을 쓰겠다는 각오도 밝혔다.

어떻게 읽을 것인가, 무엇을 읽을 것인가 다음 질문은 ‘책이란 무엇인가’다. 중국 작가 차이자위안이 쓴 ‘독서인간’은 ‘영혼을 가진 사물’로서 책에 대한 기록이다. 1부 ‘책의 향기’에서는 예술품처럼 감상 대상이 된 책을, 2부 ‘책의 거처’에서는 서가 혹은 도서관 풍경을, 3부 ‘책과의 인연’에서는 ‘눈 오는 밤 문을 닫고 금서를 읽는’ 즐거움에 대해 들려준다. ‘읽는다는 것의 역사’(로제 샤르티에 외 지음)나 ‘독서의 역사’(알베르토 망구엘 지음), ‘독서의 탄생’(마거릿 윌리스 지음)처럼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지만 말 그대로 ‘책에 우아하게 미친’ 독서인들에겐 탐나는 장서인 것만은 틀림없다. 중국 출판 역사를 볼 수 있는 다양한 도판이 실려 있기 때문이다.



그래, 책을 읽자
천년도서관 숲

김외정 지음/ 메디치미디어/ 288쪽/ 1만6000원

소나무의 ‘소’는 솔(우두머리)에서 나왔다. 소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서든 볼 수 있는 ‘대장 나무’였다. 그러나 80년 전쯤 산림 면적의 75%를 차지하던 소나무가 25%로 줄어들고 그 대신 참나무 비중이 증가하고 있다. ‘식생천이’라는 자연의 질서는 어쩔 수 없다. 36년간 숲과 나무만 연구해온 저자가 인간의 진화, 문명, 미래 모든 지식을 담은 ‘천년도서관’인 숲의 세계로 안내한다. 인류문명사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본 것 같은 오감만족의 책.

그래, 책을 읽자
민주주의의 마법에서 깨어나라

존 던 지음/ 황미영 옮김/ 레디셋고/ 224쪽/ 1만5000원

“민주주의가 가장 이상적이고 평등한 제도라고? 착각하지 마.” ‘절대선’처럼 군림해온 자유민주주의의 모순과 맹점을 신랄하게 비판한 책. 정치학자인 저자는 민주주의가 주장하는 권위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살펴보고 민주주의가 다양한 방식으로 지배력을 행사하게 된 과정을 분석한다. 예일대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어서 대학과 정치학자들 책임을 강조한 것 이상의 대안 제시가 없다는 점은 아쉽다.

그래, 책을 읽자
사업의 철학

마이클 거버 지음/ 이제용 옮김/ 라이팅하우스/ 340쪽/ 1만6000원

500대 기업 최고경영자(CEO)들이 선정한 최고 비즈니스북이자 “사업이 위기에 빠질 때마다 다시 꺼내 읽는다”는 이 책의 매력은 우리 내면에 있는 기업가, 관리자, 기술자라는 세 가지 인격을 모두 불러내 각자 몫을 찾아준다는 점이다. 파이 가게 운영에 실패한 ‘사라’라는 이름의 여성과 대화하는 형식으로 사업을 보는 새로운 관점과 철학이 있는 기업으로 만드는 과정을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래, 책을 읽자
대중은 왜 음모론에 끌리는가

톄거 지음/ 허유영 옮김/ 미래의창/ 320쪽/ 1만4000원

2010년 중국에서 백신 논쟁이 일었다. 홍역 백신 접종 계획이 프리메이슨에 의한 국제적 음모이며, 인종청소계획에 따라 곧 금융전쟁과 생화학전쟁이 벌어진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백신 접종 거부자가 늘어나는 등 중국인은 크게 동요했다. 저자는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 암살설부터 렙틸리언의 지구 지배설까지 전 세계에 퍼진 음모론의 실체에 다가간다. 이들의 공통점은 ‘반증 불가능’하고 ‘또 다른 음모론과 연결’된다는 것.

그래, 책을 읽자
생명 그 자체

프랜시스 크릭 지음/ 김명남 옮김/ 이인식 해제/ 김영사/ 264쪽/ 1만3800원

40억 년 전 어느 먼 행성에서 고등 생물체가 무인우주선에 미생물들을 실어 이웃 행성으로 보낸다. 이 미생물들이 원시 바다에 떨어져 증식하면서 지구에서도 생명이 시작된다. 이것이 ‘정향(定向) 범종설’이다. 지구 생명체는 자발적으로 시작됐는가, 외부에서 유입됐는가라는 논쟁에서 저자는 정향 범종설을 제시해 학계를 뒤흔들었다. 현대과학의 한계를 뛰어넘어 우주를 향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를 보여주는 책.

그래, 책을 읽자
유년기 인류학

헤더 몽고메리 지음/ 정연우 옮김/ 연암서가/ 496쪽/ 2만3000원

국제법은 19세 미만을 어린이라고 정의하지만 신체발달 단계만으로 유년기를 설명할 수는 없다. 인류학자인 저자는 어린이란 보편적 개념이 아니라 각 사회의 내부적 관점과 문화적 맥락에 따라 다르게 정의된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가족, 친구, 또래집단, 말하기, 놀기, 일하기, 훈육, 체벌, 학대, 섹슈얼리티, 성인식 등 아동 발달의 단계를 통해 ‘어린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물음에 답한다.

그래, 책을 읽자
한자어는 공부의 비타민이다

김성희 지음/ 더숲/ 316쪽/ 1만4800원

글의 기본인 어휘 실력을 다지는 데 한자어의 중요성을 빼놓을 수 없다. 예를 들어 갈등(葛藤)은 칡과 등나무가 뒤엉켜 치열한 생존경쟁을 벌인다는 뜻이고, 경륜(經綸)은 헝클어진 실타래를 가지런히 한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저자는 개념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해 학습에 어려움을 겪는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춰 100개 표제어와 638개 어휘를 선별해 다양한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쉽고, 재미있는 한자어 개념 사전.

그래, 책을 읽자
하루 한시

장유승 외 지음/ 샘터/ 316쪽/ 1만5000원

한시 연구자 6명이 한시 101수 가운데 핵심 구절만 뽑아 풀이했다. 1부 ‘날은 채 밝지 않았는데 눈은 맑아온다’, 2부 ‘이제 일어나 앉으니 아침 새소리 꾸짖는다’, 3부 ‘소 끄는 대로 밭 갈아도 옷은 젖네’, 4부 ‘찾아오는 벗 없는데 해 저물어 산그림자 길다’, 5부 ‘달은 차지 않고 별만 밝으니 고향 생각에 아득하다’처럼 범부의 소박한 하루를 따라가며 한시를 배치한 것에서도 운치가 느껴진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주간동아 2015.09.14 1005호 (p74~75)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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