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5

2015.09.14

대개발로 변질한 박원순의 서울역 공중공원

2000억 원 투입해 낙후된 서부지역 개발 추진…지지층 내부에서조차 갸우뚱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15-09-14 09: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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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프로젝트를 적극 추진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되는’ 이슈이기 때문이다. 정치권에서는 본래 이런 이슈를 좋아한다. 내가 찬성, ‘하자’는 쪽에 서는 이슈 말이다. 상대방이 ‘말자’며 반대를 해준다면 이보다 좋을 순 없다. 반대의 강도가 셀수록, 반대하는 집단이 많아질수록 더 좋다. 그만큼 이목이 모아질 테고, 너도나도 한마디씩 거들면서 판이 커지면 덩달아 나도 더 유명해진다. 반대세력도 늘어나지만 잘하면 지지세력을 크게 늘릴 수 있다.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의 수도 이전 이슈가 그랬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과 대운하 이슈가 그랬다. 박 시장의 서울역 고가도로 공원화 계획, ‘서울역 7017 프로젝트’는 이들 이슈를 빼닮았다. 그래서 대권주자로서의 승부수라는 분석이다. 박 시장은 이 호랑이를 타고 청와대로 진입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은 진정성이다. 박원순 시장의 소신이자 철학과 직결돼 있는가 여부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수도 이전은 지역 균형발전이라는 젊은 시절부터의 소신이자 철학에 기반을 둔 것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대운하는 젊은 시절 운하와 수운이 발전한 유럽을 보면서 키워온 꿈에서 비롯된 것이다. 박 시장은 2기 시정 목표를 사람특별시, 보행친화도시로 설정했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도 당초 보행친화 관점에서 기획했단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여기에 개발이 덧씌워진다. 7월 12일 ‘한국경제’와 인터뷰에서 박 시장은 이렇게 말했다.

    개발론자 박원순?

    “인천국제공항에서 서울역까지 철도로 곧바로 오는데도 여전히 서울역 배후지역은 시골이나 동남아시아 도시 같은 허름한 분위기죠. 중림동, 청파동, 만리동, 공덕동 일대는 1970년대 이후 변화 없이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앞으로 서울역 서부지역 대개발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냥 개발도 아니고 대개발이다. 이 대목에서는 박원순 시장의 지지세력도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박 시장이 언제부터 개발론자가 됐을까’ 의문이 들기 때문이다. 박 시장을 지지하는 많은 이는 전임 시장들의 개발에 신물이 난 터다. 박 시장만은 개발 프로젝트라는 미명 아래 서민을 변두리로 내쫓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 컸다. 뚜렷한 개발 성과가 없어도 2기에 다시 그를 뽑아준 이유다. 그런데 개발을, 그것도 대개발을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 끝을 잘 안다. 개발 이후 그곳에는 대형 체인 카페와 음식점들이 들어설 테고 지가 상승으로 서민들은 다시 짐을 싸서 변두리로 이사를 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작 이 지역 주민들은 반대다.



    마포구 공덕동, 중구 만리동, 용산구 서계동 일대에는 여전히 2000~2500개 봉제공장이 자리 잡고 있다. 대한민국 의류산업의 중심지 동대문 의류상가와 남대문시장에 옷을 납품하는 가내수공업형 영세공장들이다. 이들에게 서울역 고가도로는 젖줄이다. 촌각을 다투는 납품 시간을 절약해준 것이 바로 이 고가도로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하루에 4만6000대 차량이 지난다. 이들은 지금 서울역 서부지역 대개발에 불안해한다. 개발로 상처받은 도시를 재생하겠다는 박원순 시장의 철학에 상반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도 정치적으로 이득이 된다면, 박원순 시장으로서는 반드시 해야 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이명박 전 대통령이 청계천 복원사업이나 대운하 사업을 하자고 했을 때 반대했던 것은 진보세력이었다. 개발을 좋아하는 보수세력은 대부분 찬성했다. 요즘 진보세력은 박 시장의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놓고 고민에 빠졌다. 지지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새정치민주연합 출신인 전철수 서울시의회 환경수자원위원장의 지적은 이런 고민을 잘 보여준다. 8월 31일 전 위원장이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공원을 짓겠다는 데 반대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러나 제가 서울시장이라면 서울역 고가같이 400억 원이나 드는 큰 공원보다 그 돈으로 서울시 곳곳에 40억 원짜리 작은 소공원 10개를 짓겠습니다.”

    대개발로 변질한 박원순의 서울역 공중공원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12일 서울역 고가도로의 차량통행을 차단하고 시민들이 자유롭게 거닐며 조망할 수 있는 시민개방행사를 진행했다.

    골리앗 박근혜 vs 다윗 박원순

    도시재생을 목적으로 한 친환경 사업인지 아닌지도 애매한 터에, 서울역 서부지역 대개발 프로젝트까지 얹히면서 사업 규모도 크게 증가할 전망이다. ‘서울역 7017 프로젝트’에서 17은 주변 건물 또는 도로와 연결하는 사잇길 17개를 상징하는 숫자인데, 이들 도로를 건설하는 사업에 2124억 원이나 든다. 이로써 3887억 원의 경제적 편익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지만 설득력은 떨어진다. 과거 개발론자들도 늘 그런 식으로 설명해왔다. 새정치민주연합 노웅래 의원도 지난해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서울역 고가도로를 공원화하는 데 적어도 사업 확정 전 교통영향평가와 환경영향평가를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실제로 이 프로젝트는 경찰청과 문화재청의 반대에 직면해 있다. 경찰청은 교통량 증가를, 문화재청은 서울역 경관 훼손을 이유로 든다. 경찰청은 개·보수 후 재개통을, 문화재청은 철거를 지지한다. 서울시는 이들 기관의 심의 보류에 대해 정치적 음모론을 제기 중이다. 박근혜 정부가 의도적으로 비합리적 이유를 들어 반대한다는 것이다. 골리앗 박근혜 대통령 앞에 선 다윗 박원순 시장의 구도를 염두에 둔 듯하다. 이런 구도는 지지세력이 결집할 때 힘을 갖는다. 지금처럼 야당은 물론 지지세력 내에서도 의견이 나뉘는 상태에서는 힘을 받기 어렵다.

    서울역 고가도로는 어차피 허물어야 한다. 정밀안전진단에서 D등급 판정을 받아 수명이 불과 2~3년밖에 남지 않았다. 경찰청의 주장대로 결국 차량용 도로로 유지하건, 문화재청의 주장대로 아예 허물어 서울역 역사 건물을 돋보이게 하건 일단은 허무는 게 정답이다. 문제는 허문 뒤인데, 이제까지 서울시가 추진했듯이 단기간에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일 일은 절대 아니다.

    만약 박 시장의 밀어붙이기가 성공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지지율이 급등할까, 아니면 역풍에 급락할까. 딱히 역풍이 불 일도 없겠지만 당초 박 시장 측이 기대한 것처럼 광풍이 불지도 않을 것이다. 미국 뉴욕 하이라인 파크를 모방한 것에 지나지 않을뿐더러, 이명박 전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사업만큼 파괴력이 크지도 않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후속타가 없다. 이 전 대통령의 청계천 복원사업이 국민적 관심을 끌었던 데는 국가적 확장판으로서 한반도 대운하 프로젝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민은 물론 서울시민조차 큰 관심이 없다. 찬성하는 이들조차 ‘되면 좋겠네’ 정도의 반응일 뿐이다. 누구도 이 사업으로 국가의 명운이 바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 박 시장은 ‘서울역 7017 프로젝트’를 끝까지 추진하려 들 것이다. 정부 반대로 임기 중 완성이 어려워지면 박근혜 정부의 정치적 탄압이라 주장할 것이다. 박 시장으로서는 되도 좋고 안 되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어느 쪽이건 논란이 더 커지길 원하겠으나 찻잔 속 태풍 이상이 되기는 어려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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