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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배려하되 자아 숨기지 않는 앙상블

가을방학 ‘세 번째 계절’

배려하되 자아 숨기지 않는 앙상블

배려하되 자아 숨기지 않는 앙상블
9월 첫날 밤 비가 내리더니 귀뚜라미가 한결 크게 울어댄다. 저녁은 선선하고 밤에는 얇은 카디건이라도 걸쳐야 할 것 같다. 낮 햇살은 따갑지만 덥지는 않다. 짧았던 봄에 잠시 입었던 춘추복을 꺼내 손질할 채비를 한다. 그러고 보니 추석도 머지않았다. 가을이 뚜벅뚜벅, 걸어오고 있다.

여기 가을을 알리는 또 한 통의 편지가 있다. 가을방학의 세 번째 앨범 ‘세 번째 계절’(사진)이다. 정바비(어쿠스틱기타)와 계피(보컬)로 이뤄진 가을방학은 부드럽되 달지 않고, 서정적이되 통속적이지 않은 음악으로 21세기 한국 대중음악계의 감성을 채워온 팀이다. 언니네 이발관을 거쳐 줄리아 하트를 이끌던 정바비와 브로콜리 너마저 출신인 계피가 팀을 결성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들은 한결같되 디테일의 층을 달리하는 노래들로 성별을 구분하지 않는 공감을 이끈다. 감성 혹은 어쿠스틱 같은 단어로 수식되는 음악 가운데 가을방학의 공연을 찾는 이들의 남녀 성비가 비교적 고르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다른 공연은 당연히 여성이 압도적이다).

봄에 찾아왔던 두 번째 앨범과 달리, 이번 앨범은 첫 번째처럼 가을 문을 두드리며 왔다. 정바비의 송라이팅에 다채로운 색깔을 입혔던 프로듀서 이병훈이 함께한 것도 첫 번째와 같다. 그렇게 나온 ‘세 번째 계절’은 지난 앨범들보다 울긋불긋하다.

칼럼니스트로 활약하고 있는 정바비는 자신의 직함을 늘 ‘송라이터’라고 적는다. 노래를 쓰는 사람이란 말답게 그는 자신이 어디서 어떤 곡을 쓰는지 명확히 한다. 줄리아 하트에서는 기타 팝으로 표현할 수 있는 음악을, 컨트리 밴드인 바비 빌에서는 사운드뿐 아니라 가사로 표현되는 정서까지 컨트리의 형식과 내용에 충실한 음악을 들려줬다. 그렇다면 가을방학의 정체성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계피가 노래를 하고, 정바비가 곡을 쓴다는 거다. 영화로 치자면 정바비가 쓴 각본을 계피가 연기하는 셈이다.

‘샛노랑과 새빨강 사이’ ‘취미는 사랑’ 같은 1집 곡들이나, ‘3월의 마른 모래’ ‘언젠가 너로 인해’ 같은 2집 ‘선명’ 노래들이나, 공통점이 있다면 남성성과 여성성의 중첩일 것이다. 나긋하고 소곤거리는 계피의 목소리로 남자 시선에서 쓴 노래들이 불린다. 이 모호함은 자칫 이도저도 아닌 결과를 낳기 십상이다. 남자가 곡을 쓰고 여자가 노래를 부르는 많은 여성 보컬 밴드가 그러하듯. 하지만 가을방학은 이런 실수를 저지른 적이 없다. 각자의 구실, 그리고 서로의 역할을 명확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이는, 역시 영화로 치자면 각본가와 배우가 서로를 염두에 두되 자아를 숨기지는 않을 때 나오는 앙상블 같은 것이다.



이런 신뢰의 기초 위에서 가을방학은 여러 가지 시도를 멈추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의 가요 같은 멜로디가 등장할 때도 있고, 폭스트롯 리듬이 기분 좋은 그루브를 자아내기도 한다. 계피가 랩 또는 리듬감 있는 내레이션을 하는가 하면, 베이스가 강조되는 댄서블한 노래도 있다.

이런 감수성은 지난 앨범들에선 찾기 힘들었다. 그러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계피의 보컬은 어떤 노래에서도 매력을 잃고 방황하지 않는다. 모든 가사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종이 한 장 차이의 감정선을 표현한다. 이런 섬세한 표현력을 가진 여성 보컬을 만나기란 쉽지 않을 거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된다. 정바비 역시 마찬가지다. 깃털 같은 일상의 단면들에 감정의 풍성한 날개를 부여하는 그의 재능은, 탄탄하고 풍성한 멜로디에 의해 종종 영화 없는 사운드트랙처럼 다가오곤 한다.

하여, 가을방학의 세 번째 앨범은 매너리즘과는 거리가 멀다. 잘하는 것을 여전히 잘하고 안 해본 것을 새롭게 해보는, 평범하지만 내공 없이는 만들어낼 수 없는 결과물이다.



주간동아 2015.09.07 1004호 (p78~78)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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