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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총선용 퍼주기가 시작됐다

선거=선심, 환심사기용 경기 부양에 재정건전성 ‘빨간불’

총선용 퍼주기가 시작됐다

총선용 퍼주기가 시작됐다

9월 1일 19대 마지막 정기국회가 개회하면서 내년 총선을 앞둔 여야의 힘겨루기가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제 본격적인 총선용 퍼주기가 시작됐다고 봅니다. 새로 투입하는 재원은 크지 않지만 보기엔 그럴듯한, 전형적인 생색내기식 정책이잖아요.”

9월 3일 정부와 새누리당이 내년도 예산안에 대해 협의한 뒤 보육료 3% 인상, 병사 봉급 15% 인상 등의 내용을 발표한 데 대한 한 대학교수의 촌평이다. 그는 “이번 결정으로 내년도 예산이 급팽창하지는 않겠지만, 정부를 비롯해 여야 정치권이 앞으로도 계속 선심성 공약을 내놓고 그것을 고스란히 예산에 반영할 것이라는 게 문제”라고 밝혔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미 “재정건전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범위에서 재정을 확장적으로 운용할 것”이라고 천명한 상태다. 8월 25일 새누리당 국회의원 연찬회에 참석해 “내년에는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 수준인 3% 중반 정도로 복귀할 수 있도록 해 당의 총선 일정 등 여러 가지에 도움이 되게 하겠다”고도 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은 이 발언을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 의무 위반으로 보고, 같은 자리에서 ‘총선 필승’ 건배사를 한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과 함께 두 사람을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총선에 맞춰 돌아가는 시계

하지만 이처럼 내놓고 말하지 않을 뿐, 현재 정치권의 모든 시계가 내년 4월 총선에 맞춰져 있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야당 의원 사이에서도 공공예산 확보 경쟁이 치열하다.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의 한 중진의원은 “서민 경기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돈을 풀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 특정 지역에 사회간접자본(SOC) 투자가 집중되는지 등을 따지겠지만, 확장적 재정정책 자체에 대해서는 반대할 생각이 없다”고 밝혔다.



이에 맞춰 세금은 깎아주고, 복지는 확대하는 정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정부가 8월 26일 발표한 개별소비세(개소세) 인하도 한 사례로 꼽힌다. 기획재정부는 이날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등의 여파로 위축된 소비를 활성화하기 위해 연말까지 승용차와 대용량 가전제품에 부과되는 개소세를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가구, 시계, 가방, 보석 등의 과세 기준을 높여 출고가 또는 수입 신고가가 500만 원(기존 200만 원) 미만인 상품까지 세금을 감면한다는 방침도 밝혔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이 조치로 세금 수입은 1200억~1300억 원 줄어든다. 반면 내수소비가 진작돼 연간 경제성장률은 0.25%p 올라가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게 정부 측 기대다.

그러나 김유찬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는 다른 의견을 냈다. “개소세 인하로 고가제품의 가격이 몇십만 원 싸진다고 갑자기 서민이 그 물건을 살 수 있는 건 아니지 않나”라는 것이다. 그는 “이번 정책의 혜택은 고가제품을 구매하는 일부 고소득층에게만 돌아간다. 서민경제는 나아질 게 없기 때문에 국내 경기 활성화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정부가 ‘소비심리 회복’을 대의로 내세웠을 뿐, 실은 지지층을 타깃 삼아 선심성 정책을 내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비판이다.

상당수 명품업체가 세금 감면 후 제품 가격을 인하하지 않은 것도 정책 효과에 의구심을 갖게 하는 요인으로 꼽힌다. 김유찬 교수는 “500만 원짜리 가방 가격을 450만 원으로 내리면 오히려 판매가 줄어들 수도 있는 게 명품 아니냐”며 “정부의 이번 조치로 세금 수입은 확실히 줄고 그 혜택은 엉뚱한 데로 간다”고 꼬집었다.

총선용 퍼주기가 시작됐다
우리나라 살림이 세금을 덜 걷어도 될 만큼 넉넉한 것도 아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세수(稅收) 결손이 발생했고, 올해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올해 예상되는 재정수지 적자 규모는 약 47조 원으로 사상 최대 수준(그래프 참조). 국내총생산(GDP·2015년 기준 1580조 원)의 3%에 육박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이에 대해 “유럽연합(EU)의 ‘안정과 성장을 위한 협약’이 정한 국가재정건전성의 기준이 GDP의 3%라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수출 비중이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재정수지 적자를 더욱 철저히 관리해왔다. 노무현 정부까지만 해도 GDP 대비 1% 이내를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 적자폭이 커지는 추세다.

8월 24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가 개최한 ‘향후 경제 및 재정운용방향’ 공청회에서 박용주 국회예산정책처 경제분석실장도 “부진한 세수 여건에서 재정 지출에 충당할 재원의 상당 부분을 국채로 조달해 재정건전성이 악화됐다”며 “국가채무 규모가 커지면서 국가채무 질도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기획재정부와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국민 부담으로 갚아야 할 적자성 채무는 2014년 현재 283조8000억 원으로 전체 국가채무(530조5000억 원)의 53.5%에 이른다.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은 정부 지출을 줄이거나 수입을 늘리는 것이다. 그러나 전자에 대해서는 상당수 전문가가 난색을 표한다. 경제 전반에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3.3%를 쪼개 보면 수출 기여도가 1%p, 내수 기여도가 2.3%p였다. 한국은행이 7월 이전에 내놓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 3.1%도 수출(1%p)보다 내수(2.1%p)가 더 높으리라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퍼주고 덜 걷고

정부와 새누리당도 임금피크제 관련 예산을 내년 현행 320억 원에서 201억 원 더 늘리고, 노인 일자리 5만 개를 만드는 사업에 예산 460억 원을 투입하며, 청년창업프로그램 예산 200억 원을 신규 편성하는 등 지출을 더욱 늘릴 예정이다. 시간선택일자리 지원액도 현행 312억 원에서 463억 원으로 올리고, 중증장애인 근로지원금도 509억 원을 책정하기로 했다. 김우철 교수는 “고령화와 사회 전반의 복지 수요를 감안할 때 복지예산은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권은 어떻게 재정건전성을 지켜나갈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가지 방법으로 제시되는 것이 증세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총선을 앞두고 오히려 앞다퉈 세금감면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올해 여야 의원들이 특정 이익단체에 대한 부가가치세 감면 등을 내용으로 발의한 세법 개정안이 모두 국회를 통과할 경우 향후 5년간 최소 21조4067억 원에 이르는 세금이 덜 걷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국민적 지지를 받고 있는 종교인 과세법안 처리는 차일피일 미뤄지는 상태다. 지난해 말 여론조사 전문기관 모노리서치가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5.3%가 종교인 과세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법안은 여전히 국회에 계류 중이다.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은 세법 관련 당정협의 후 “(종교인 과세에 대해) 신중히 할 것을 정부에 주문했다”고 밝히는 등 처리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정건전성 확보를 위해 법인세 인상 등을 요구하고 있는 새정연도 이 문제에 관한 한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1968년부터 정부가 추진해온 종교인 과세법안이 이번에도 국회를 통과하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전망이 나온다. 그 배경에는 총선을 앞둔 정치권의 ‘종교계 눈치 보기’가 있다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이에 대해 김우철 교수는 “종교인 과세법안의 가장 큰 문제는 무슨 이유로 이 법안이 통과되지 않는지 투명하게 드러나지 않는다는 점”이라며 “현재 국회 조세소위원회에서 이 법안을 논의하고 있는 만큼, 각 의원이 회의장에서 무슨 발언을 했고 어떤 이유로 법안 처리가 지연되고 있는지를 녹취록 형태로라도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총선용 퍼주기가 시작됐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에서 세 번째)이 8월 27일 국회에서 열린 내년 예산안 당정협의에 앞서 새누리당 김정훈 정책위의장과 악수하고 있다(왼쪽). 8월 31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여야 간사인 새정치민주연합 안민석,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과 양당 원내수석부대표인 새누리당 조원진, 새정치민주연합 이춘석 의원이 회동을 마친 후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왼쪽부터).

재정건전화 방안 필요

전문가들은 이외에도 정치권이 장기적 관점에서 국가 재정건전성을 높일 방안을 마련해야 하다고 입을 모은다. 김유찬 교수는 더 늦기 전에 법인세 인상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법인세 실효세율은 15.98%이다. 기업의 실질 세부담 정도를 뜻하는 실효세율은 2009년 19.6%에서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 영국(25.1%·이하 2010년 기준), 호주(23.7%), 미국(21.3%) 등 선진국과 비교해 크게 낮다. 김 교수는 “대기업들이 막대한 사내유보금을 두고도 쓰지 않아 경제에 활력이 떨어지고 있다.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학수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향후 경제 및 재정운용방향’ 공청회에서 ‘소득세 정상화’ 의견을 냈다. 김 선임연구위원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GDP 대비 소득세수는 2000년대 평균 9%인 반면 우리나라는 3.5% 안팎이다. 근로소득세를 점검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체 근로자의 48.2%가 근로소득세를 내지 않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정치권은 재정건전성을 위한 큰 그림을 그리지 않은 채 눈앞의 선거에 골몰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1985년 1월 26일 ‘총선 선심’ 기사에서 ‘여야 각 정당이 전국에서 본격적인 총선체제로 돌입하면서 (중략) 겨울철에 때 아닌 기공식이 러시를 이루고 선거구민들에게 난데없이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당원복지증이 배부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10년 후인 1995년 9월 16일자에는 ‘야권은 (중략) 정부 여당이 최근 잇따라 발표한 정책이 내년 4월의 총선을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라고 규정, 강력히 비판하고 나섰다’는 대목이 있다. 그러나 20년이 흐른 지금도 ‘선거=선심’ 공식은 지속되고 있다.



주간동아 2015.09.07 1004호 (p18~20)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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