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2

2015.08.24

이란 핵 합의 발목 잡는 유대계

민주당 차기 원내대표까지 포섭…오바마 최대 성과 기우뚱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5-08-24 13:5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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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란 핵 합의안에 대해 심사하고 있는 미국 의회를 상대로 로비전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미국 의회는 이란과의 핵협상 승인법에 따라 7월 20일부터 9월 17일까지 60일간 합의 내용을 검토한 후 승인이나 거부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다. 이란 핵 합의안을 이끌어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이에 강력하게 반대해온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의원들을 상대로 직접 로비에 나섰다.

    특히 오바마 대통령은 의원들을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골프 회동, 대통령 전용기인 ‘에어포스 원(Air Force One)’과 백악관으로 초대하기, 전화 걸기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해 소통에 정성을 들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타냐후 총리도 론 더머 주미 이스라엘 대사를 미 의회 의사당에 아예 상주케 하는 등 의원들의 마음을 돌리려 애쓰고 있다.

    가열되는 TV·인터넷 광고전

    친(親)이스라엘과 친이란 단체들도 사실상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미이란계미국인협의회(NIAC)’는 ‘뉴욕타임스’에 전면광고를 내고 ‘전쟁 대신 평화를 원하는 수천만 미국인의 목소리를 사장할 수는 없다’며 의회의 승인을 강력하게 촉구했다. ‘전쟁 없는 승리(Win Without War)’를 비롯한 미국의 10여 개 진보단체도 “공화당이 이란 핵 합의를 반대함으로써 우리를 전쟁으로 끌어들이려 한다”고 비판하며 이란 핵 합의 지지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반면 대표적인 유대인 로비단체인 ‘미국·이스라엘 공공정책위원회(AIPAC)’는 ‘핵 없는 이란을 위한 시민들(CNFI)’이란 조직을 결성하고 TV와 인터넷을 통해 핵 합의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는 대대적인 광고전을 펼치고 있다. 이 단체는 현재 35개 주에서 4000만 달러(약 474억 원)를 들여 광고를 내보내고 있다.



    양측의 로비 전쟁에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AIPAC는 그간 미국 정치권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로비단체다. 실제로 AIPAC는 여당인 민주당의 차기 상원 원내대표로 유력한 찰스 슈머(64) 의원의 마음을 돌리는 데 성공했다. 슈머 의원은

    8월 6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란이 핵 합의를 자신들의 사악한 목표를 위해 사용할 실질적인 위험이 있다”면서 합의안에 반대한다는 견해를 공식 발표했다.

    슈머 의원의 지역구인 뉴욕 주는 유대계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거구. 특히 슈머 의원은 그동안 상원에서 원내대표인 해리 리드(네바다 주) 의원과 함께 민주당을 이끌어온 거물 정치인이다. 당내 서열 3위로 정책소통위원장인 슈머 의원은 리드 원내대표의 내년 정계은퇴 선언으로 차기 원내대표가 될 개연성이 높다.

    AIPAC는 공화당 36명, 민주당 22명 등 하원의원 58명의 이스라엘 방문도 주선했다. 의원 1명당 1만8000달러(약 2133만7200원)에 달하는 비용은 AIPAC가 부담했다.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 하원 의원들의 방문을 쌍수를 들어 환영했고 극진하게 대접했다.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오바마 대통령은 유대계 인사 20여 명과 만난 자리에서 AIPAC의 로비 활동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1938년 나치 독일에 대한 유화정책인 뮌헨 협정에 서명한 당시 네빌 체임벌린 영국 총리에 자신을 비유한 AIPAC 광고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했다.

    1947년 유대계와 의회 인사들의 친목단체로 출발한 AIPAC는 53년 기자 출신 유대인 이사이아 케넨이 지금의 모습으로 만들었다. 유대인이면서 미국 시민권자이고 납세자, 유권자는 회원으로 가입할 수 있다. 정회원이 10만여 명이나 된다. 신의 이름으로 움직인다고 해서 ‘신의 조직’이라고도 부르는 AIPAC는 435개 하원 선거구마다 조직을 갖추고 있다. 각 지역구 의원들이 유대인과 이스라엘에 유리한 입법 활동을 하도록 독려한다.

    미국 유대계는 650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2.5%밖에 되지 않지만 정재계는 물론 문화, 언론, 과학 등 주요 분야에 포진해 있다. 억만장자도 상당수다. 이 때문에 자금 동원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특히 2만여 명이 핵심적인 재정 기여를 하고 있으며 전국에서 100달러 이상 기부금을 내는 사람만 30만 명에 달한다. 풍부한 자금이 막강한 영향력의 원천임은 불문가지. 매년 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연례총회에는 대통령을 비롯해 장관과 정부 고위관료, 의회 지도부와 상·하원 의원 대부분이 참석한다.

    문제는 거부권 이후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FP)’에 따르면 2007~2012년 연방의회 의원 5명 중 3명이 AIPAC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한다. AIPAC에 밉보인 정치인 가운데 정치 생명이 끝난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대표적 사례가 1972년 민주당 대통령선거 후보로 나섰던 조지 맥거번 상원의원의 낙선. 맥거번 의원은 F-15 전투기를 사우디아라비아 측에 판매하겠다는 당시 지미 카터 대통령의 조치에 동조했다 80년 선거에서 AIPAC의 지원을 받지 못해 패배했다. 상원 외교위원장을 지낸 공화당 찰스 퍼시 의원도 미국이 팔레스타인과도 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84년 선거에서 이 단체의 낙선운동으로 낙마했다.

    AIPAC의 로비 활동을 감안할 때 미 의회에서 이란 핵 합의안은 일단 부결될 공산이 크다. 이란 핵 합의에 반대해온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원에서 과반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다음부터다. 오바마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할 경우 의회는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의결로 대통령의 거부권을 무력화할 수 있다. 공화당은 현재 하원 246명, 상원 54명인만큼 3분의 2 이상을 충족하려면 민주당으로부터 각각 13명과 44명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상원의 경우, 슈머 의원을 포함해 친이스라엘 성향의 민주당 상원의원만 해도 14명이나 된다. 의회전문지 ‘더 힐’은 이란 핵 합의를 지지한 민주당 상원의원은 18명뿐이라고 보도하기도 했다. 하원의 경우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이란 핵 합의안이 부결되면 오바마 대통령에게는 ‘재앙’이 될 것이 분명하다.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오바마 대통령은 “의회가 이란 핵 합의안을 부결할 경우 중동지역에서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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