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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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근 감독의 승리 방정식

투수 9명 선발 등판, 9회 말 투수 2명 교체…한화의 파격 불펜 운용에 논란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입력2015-08-17 16: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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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성근 감독의 승리 방정식
    변호사 출신 야구 감독이던 토니 라루사(71)는 미국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린 최고 명장으로 꼽힌다. 통산 2728승을 거둔 그의 지략과 혁신적인 팀 운영은 미국 기업 경영인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줬다.

    라루사는 야구의 혁신가 혹은 혁명가로 불린다. 그는 1998년 투수도 타석에 서는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에서 그동안 모두가 당연하게 여기던 투수의 9번 타자 출장에 마침표를 찍었다. 9번에서 1번으로 이어지는 타격 흐름의 중요성을 파악해 투수를 8번에 두고, 9번에는 그보다 타격이 강한 타자를 배치했다. 98년 처음 실험한 투수 8번은 2000년대 들어 더 자주 활용됐고, 경제적인 득점 방법으로 유행처럼 퍼졌다. 지금은 내셔널리그에서 투수가 8번에 서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지만 라루사가 라인업 8번에 처음 투수 이름을 올렸을 때는 기상천외한 작전으로 비쳤다.

    불펜 야구 창시자

    더 큰 혁명은 불펜 야구다. 라루사는 지금은 당연한 정석처럼 된 1이닝 마무리 시대를 열었다. 단 한 명의 타자만 상대하는 좌완 원 포인트 릴리스를 적극 활용한 것도 라루사가 처음이다. 현대 야구 불펜의 창시자라 부를 만큼 라루사의 불펜 운영 방식은 메이저리그는 물론 한국과 일본, 대만 등 전 세계에 영향을 미쳤다.

    라루사는 20승 투수 데니스 에커슬리가 30대에 접어들자 이전 시스템과 전혀 다른, ‘이기는 경기 9회에만 등판하는 투수’로 변신시켰다. 왼손투수 릭 허니컷에게는 경기 중반 승부처에서 상대 팀 타선 가운데 가장 강한 왼손타자 단 한 명과 승부하는 임무를 맡겼다. 이렇듯 라루사는 7회 투수, 8회 투수, 좌완 원 포인트, 그리고 마무리로 이어지는 공식을 처음으로 완성했고 적용했다. 이전까지 메이저리그 불펜투수는 한 번 등판하면 2이닝부터 3~4이닝씩까지 던졌지만 각각 1이닝 안팎만 던지도록 한 라루사의 방식은 집중적인 승부는 물론, 장기 레이스에서 체력 관리까지 할 수 있는 진법이었다.



    한화 김성근(73) 감독은 라루사보다 두 살 연상이다. 1980년대 후반 라루사가 시작해 90년대 세상에 널리 퍼진 불펜 야구와 1이닝 마무리는 90년대 중반부터 한국에서도 완전히 자리 잡았다.

    2015년 라루사는 완전히 은퇴해 명예의 전당에 올라 야구 혁명가로 큰 존경을 받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4년 만에 한국 프로야구에 복귀했다. 그리고 라루사가 완성한 불펜 야구 공식과는 전혀 다른 야구를 하고 있다. 김 감독은 야구 혁명가인가, 아니면 다시 구식 야구를 하고 있는 것인가.

    지난해까지 3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한 한화는 올 시즌을 앞두고 김성근 감독을 영입했고 자유계약선수(FA) 시장에서 배영수, 송은범, 권혁 등 투수 3명과 계약하며 대대적인 전력 보강에 나섰다. 이미 2013시즌 종료 후 계약한 국가대표 테이블세터 정근우, 이용규까지 더하면 2년 사이 5명의 정상급 FA를 영입했다. 2000년대 초반 ‘악의 제국’ ‘돈성’으로까지 불리던 삼성과 비교될 정도의 적극적인 투자였다.

    김성근 감독은 8월 중순까지 치열한 중위권 다툼을 벌이며 5위까지 주어지는 포스트시즌 진출 카드를 획득하고자 전력을 다하고 있다. 어느새 꼴찌가 익숙해져버린 한화 팬들은 열광하고 있다. 그러나 김 감독의 투수 운용 방식을 두고 계속해서 큰 논란이 따르고 있다. 올 시즌 한화는(8월 12일 기준) 총 9명의 투수가 선발 등판 기록에 이름을 남겼다. 5인 로테이션을 기준으로 했을 때 매우 안정적인 상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최악은 아니었다.

    그러나 불펜 운용 방식은 다른 팀과 매우 달랐다. 마무리 투수 권혁은 벌써 60경기에 등판했다. 팀이 치른 102경기 가운데 절반 이상을 마운드에 오른 것이다. 박정진은 이보다 많은 66경기다. 권혁은 60경기에 나와 91이닝을 던졌는데 기록만 보면 마무리가 아닌 선발투수 급이다. 권혁은 2이닝, 3이닝 투구를 자주 했다.

    우리 나이로 마흔인 박정진은 85.2이닝을 던졌다. 이미 개인 최다 등판 기록을 넘어선 지 오래다. 연투도 잦다. 권혁과 박정진은 이미 시즌 초 3연투를 3차례씩 기록하기도 했다. 불펜투수들의 잦은 등판은 혹사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한 3실점 이하 투수를 6회 이전에 교체하는 ‘퀵 후크’도 뜨거운 논쟁거리다. 김성근 감독은 대량 실점이 없는 2회에도 과감하게 선발투수를 바꾸고 있다. 당연히 불펜의 부담이 가중됐다.

    독특한 불펜 운영 방식만이 전부는 아니다. 7월 28일 잠실야구장 두산전에서 한화는 9회 말 시작 전까지 10-2, 8점차로 이기고 있었다. 두산은 이미 3번 김현수와 4번 로메로를 교체했다. 중심 타자 2명을 모두 바꿨다는 것은 상대 팀에 분명한 메시지를 전한다. ‘사실상 경기가 끝났고 더는 무리해 추격할 마음이 없다’는 의도가 담긴 것이다. 이기고 있는 팀에게 이런 무언의 메시지가 전달되면 팀은 다양한 작전을 삼가고 투수 운용도 훨씬 편하게 가져간다. 그런데 김성근 감독은 이 상황에서 마무리 투수 권혁을 올렸다. 야구팬들 사이에서 격한 논쟁이 일기도 했던 권혁의 8점차 9회 말 등판이었다.

    김성근 감독의 승리 방정식
    불문율 깬 투수 교체

    5월 23일 수원kt위즈파크 kt전도 큰 논란이 따랐다. 한화는 6-1로 앞서는 상황에서 시작된 9회 말 수비에서 투수를 2명이나 교체했다. 마운드에 있던 투수가 안타나 볼넷을 허용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은 한 명의 투수에게 한 명의 타자만 상대하게 했다. 경기 종료 직후 kt 선수들은 매우 불쾌한 심정을 그대로 드러냈다.

    프로야구는 각 상황마다 다양한 불문율이 존재한다. 크게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9회 투수 교체는 지고 있는 팀에게는 큰 굴욕으로 느껴진다. 김성근 감독은 1984년부터 프로야구 감독을 한 원로 야구인이다. 경력만 오래된 것이 아니라, 깊이 있는 야구 이론가이자 심오한 철학도 갖고 있다. 그만큼 독특한 성역이 존재한다. 절대적 신뢰를 보내는 다수의 마니아 팬도 있다.

    5월 23일 경기를 중계한 이용철 KBS 해설위원은 “이해할 수 없는 투수 교체다. 상대를 자극하는 행위”라고 소신 있게 발언했다. 박수도 있었지만 일부 팬의 거센 항의가 오랜 시간 이어지기도 했다. 상대 팀 감독은 겉으로는 표현을 삼가지만 한화와 만나면 변칙적인 투수 운영 방식에 큰 자극을 받는 경우가 많다. 김성근 감독 스타일의 투수 운용, 9회 투아웃에 투수 교체 등 똑같은 방법으로 되갚는 일도 종종 등장하고 있다.

    김성근 감독은 자신의 투수 운용 방식에 대한 논란과 관련해 “외부에서 보는 것과 내부 사정은 다르다”며 “모두 상황에 따른 교체”라고 해명한다.

    감독의 오늘 임무는 승리다. 그러나 더 큰 의무는 장기적인 팀 육성이다. 라루사는 메이저리그에서 좌완 스페셜 리스트와 1이닝 전문 마무리라는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켰다. 불펜 야구는 선수 생명 연장과 분업화에 기여했다.

    김성근 감독의 승리 방정식이 더 많은 승리를 가져오는 혁신인지, 아니면 선수 생명을 갉아먹는 구식인지는 지금 당장 알 수 없다. 첫 번째 평가는 시즌 최종일 한화의 순위가 몇 위인지, 그리고 내년 개막전을 앞두고 부상 이탈자가 몇 명인지로 이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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