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01

2015.08.17

재밌으니 보여줄까? 범죄행위!

탑승자 동의 없이 차량 내부 촬영도 불법…공익 목적 아니면 온라인 명예훼손죄

  • 구태언 테크앤로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 taeon.koo@teknlaw.com

    입력2015-08-17 15: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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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차량용 블랙박스가 일반인에게 보편적으로 공급되면서 교통사고 발생 시 블랙박스에 찍힌 영상이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는 데 결정적 도움이 되고 있다. 또 차량 침입이나 고의 파손 등을 예방할 수 있는 효과도 있어 블랙박스 장착이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다. 블랙박스에 우연히 범죄 현장이 촬영돼 범인의 얼굴, 범죄 발생 사실 등이 경찰 자료로 적극 활용되기도 한다. 2013년 부산지방경찰청은 ‘히든 아이(Hidden Eye)’ 제도를 도입해 개인 차량용 블랙박스 영상을 제공받아 이를 범죄 증거 자료로 적극 활용하고 있다.

    한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 게시판, 스마트폰 메시지 서비스 등을 통해 블랙박스 영상이 무분별하게 유포되는 일도 비일비재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온라인상에 떠도는 영상을 살펴보면 교통사고 순간을 촬영한 영상뿐 아니라 우연히 차량 앞을 지나가던 행인의 우스꽝스러운 모습, 남녀 간 은밀한 행위 등을 포착한 영상까지 있어 개인의 사생활이나 초상권이 심각하게 침해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다.

    본인이 원치 않는데도 블랙박스에 촬영될 경우, 그 영상에 대해 개인은 어떠한 권리를 가질까. 먼저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법적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블랙박스에 적용되는 법률은 개인정보 보호법 제25조로, ‘공개된 장소’에서 영상정보처리기기의 설치와 운영에 대해 규제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블랙박스는 공개된 장소를 촬영해야 하므로 차량 내부에 설치하더라도 차량 바깥쪽 도로를 촬영해야 적법하다. 차량 내부를 촬영하면 블랙박스 소유자가 아닌 다른 탑승객을 촬영하게 되므로 이때는 촬영 전 탑승자로부터 동의를 받아야 한다.

    차량용 블랙박스가 위 법조문을 적용받는 ‘영상정보처리기기’ 해당 여부에 대해 의견 대립이 있긴 하지만, 개인정보 보호법 제2조 7호에 의하면 영상정보처리기기란 ‘일정한 공간에 지속적으로 설치되어 사람 또는 사물의 영상 등을 촬영하는 장치’를 의미하므로 차량용 블랙박스 역시 차량이라는 일정 공간에 지속적으로 설치되는 장치인 만큼 영상정보처리기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개인정보 보호법으로 보호받을 수 있어



    또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정보처리자’가 개인정보를 수집·이용하고 제3자에게 제공하는 행위에 대해 일정한 제한을 가한다. 차량을 개인 목적으로 운영하는 운전자가 ‘개인정보처리자’에 해당돼야 블랙박스 영상에 대해 개인정보 보호법에 따라 보호가 이뤄질 수 있다. 즉 개인정보 보호법은 업무를 목적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경우에만 적용되므로 사업 목적 차량이 아닌 개인 소유 차량에 설치하는 블랙박스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자신의 모습이 담긴 블랙박스 영상이 블랙박스 소유자에 의해 유포됐을 때 당사자는 어떤 권리를 가질까. 세 가지 경우를 생각할 수 있다. △경찰서 등 공공기관에 범죄 신고 등을 위해 제출된 경우 △공익 목적을 위해 언론사에 제보된 경우 △인터넷으로 블랙박스 영상이 유포된 경우다.

    첫 번째로 경찰서 등 공공기관에 범죄 신고 등을 위해 블랙박스 영상이 제출된 경우, 영상 제공자가 피촬영자의 개인정보를 넘긴 것으로 법적 처벌을 받기는 어렵다. 형법상 명예훼손죄(제307조)는 공연히 진실한 사실을 적시한 경우(영상 제공을 사실 적시로 볼 수 있다)에는 2년 이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 원 이하 벌금,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경우에는 가중돼 5년 이하 징역이나 10년 이하 자격정지 또는 1000만 원 이하 벌금 처분을 받게 된다.

    하지만 진실한 사실로서 오로지 공공의 이익에 관한 때는 처벌되지 않는다(제310조). 범죄 신고를 위해 블랙박스 영상을 제출한 경우 영상을 조작해 허위로 제출한 것이 아닌 한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형법상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 또 해당 자료는 공공기관에 제출한 것인 만큼 전파 가능성을 인정하기 쉽지 않아 명예훼손죄 성립에 필요한 ‘공공연하게 배포한 것’이 아니므로 명예훼손죄 성립도 어렵게 된다. 민사상 책임에 대해서도 위법성을 따지기 힘들어 민사상 불법행위 책임 또한 인정되기 어렵다.

    재밌으니 보여줄까? 범죄행위!
    공익 목적은 명예훼손죄 성립 어려워

    두 번째로 블랙박스 영상을 언론사 등에 제보하는 경우, 피촬영자에 대한 영상 제공자의 형법상 출판물 등에 의한 명예훼손죄(제309조) 성립 여부가 문제될 수 있다. 이 경우 진실한 사실을 제보한 경우에도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있다면 처벌될 수 있지만, 제보 영상이 진실한 사실로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으로 판단되면 처벌받지 않는다. 민사상 책임도 비슷하다. 영상 제공자가 공익을 위해 제보하는 것이라 믿었고 또 그렇게 믿을 상당한 이유가 있다면 위법성이 없기 때문에 민사상 책임을 지지 않는다.

    세 번째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SNS나 인터넷 등 온라인상에 블랙박스 영상을 유포한 경우다. 이때는 온라인 명예훼손죄(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0조 위반)가 적용될 수 있다. 온라인에서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공공연하게 진실한 사실 또는 거짓의 사실을 드러내 다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처벌된다.

    여기서 ‘사람을 비방할 목적’이 무엇인지가 문제인데, 판례는 ‘해를 끼칠 의사 내지 목적’이라고 한다. 판례상 유포된 영상이 ‘공공의 이익’에 관한 것일 경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비방할 목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공공의 이익이란 ‘널리 국가나 사회, 기타 일반 다수인의 이익에 관한 것뿐 아니라 특정 사회집단이나 그 구성원 전체의 관심과 이익에 관한 것’도 포함된다. 이 때문에 온라인상에 블랙박스 영상을 유포한 행위자의 주요 동기와 목적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다른 사적 목적이나 동기가 내포돼 있더라도 비방할 목적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한다.

    민사 책임에 관한 판례는 온라인상 게시물이 타인의 명예를 훼손해 불법행위가 되는지 여부에 맞춰져 있다. 이때 재판부는 게시물에서 객관적 내용, 사용된 어휘의 통상적 의미, 문구의 연결 방법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일반 국민에게 주는 전체적인 인상을 기준으로 타인의 명예를 훼손했는지 여부를 판단한다. 또한 게시물의 배경이 된 사회적 흐름에 맞춰 그 표현이 갖는 의미도 고려 대상이 된다.

    해당 블랙박스 영상이 오로지 흥미를 유발하기 위해 유포된 것이라면 영상 제공자는 온라인 명예훼손죄에 해당할 공산이 크다. 이 경우 민사상 불법행위로, 손해배상을 해야 할 것이다. 이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모습이 촬영된 영상을 온라인상에 유포하는 행위는 범죄가 될 수 있고 거액의 손해배상도 뒤따를 수 있는 위험한 행위라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오늘날 본래 취지에 맞지 않게 사고와 무관한 블랙박스 영상이 무분별하게 유포되면서 개인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되고 있다. 블랙박스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현실을 고려할 때 개인정보 보호법을 개정해 차량 내부에 설치하는 블랙박스에 대해 적절한 규제가 이뤄지도록 하는 방법도 논의돼야 한다. 또한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할 수 있는 영상은 무분별하게 배포하지 않는 성숙한 시민의식도 자리 잡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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