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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오너 리스크의 끝을 보다

롯데家 골육상쟁의 교훈…계열사 이사회·주주 두려워하게 만들어야

오너 리스크의 끝을 보다

오너 리스크의 끝을 보다
또 터졌다. 오너 일가의 2세 형제간에 그룹 지배권을 둘러싼 극한 대립이 불거졌고, 그 바람에 국내 상장 계열사들의 전체 주가가 며칠 새 폭락했다. 그 규모가 조 단위다. 계열사 주주들은 전혀 예기치 않게 오너와 직접 연관된 불확실성 혹은 위험의 피해자가 됐다. 이른바 오너 리스크의 생생한 현장이다. 주연은 재계 서열 5위 롯데그룹이다.

오너 리스크란 최고경영자(CEO)로 재임 중인 그룹 최대주주가 정상적인 경영을 수행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다. 사유는 다양하다. 부실경영으로 회사가 도산 상황까지 이르는 경우, 혹은 오너가 불법행위로 행정적·사법적 제재 절차에 들어갔거나 제재를 당한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룹 후계자로 경쟁하는 후보군끼리 서로 이기기 위해 소송전을 불사하는 경우도 있다.

롯데그룹의 사례는 오너 리스크의 매우 적나라한 형태를 보여준다. 말 그대로 누가 그룹을 지배할지 자체가 오리무중인 탓이다. 형제간 다툼이어서 그렇기도 하지만, 시장이나 주주 처지에서 수긍할 만한 기준과 절차가 적용되는지, 혹은 누가 그 절차를 집행하는지 의문스럽기 때문이기도 하다. 투자자로서는 그 기준이 계열사 전반을 잘 경영할 능력인지, 최대주주 일가의 이익을 잘 챙기는 능력인지 알 길이 없다.

권한과 책임의 괴리

이번 분쟁 과정에서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측은 그룹 최대주주가 작성했다는 해임지시서를 공개하면서 그룹 후계자임을 사실상 자처했다. 사실 이런 행위는 시장이나 주주 처지에서는 자못 충격적이다. 임원 해임은 엄연히 주주의 핵심 권한이다. 최대주주의 지시 하나로 최고경영진 인사가 좌지우지된다는 사실을 짐작하지 못했던 바는 아니지만 막상 이렇듯 적나라하게 확인되니 실망이 크다.



오해를 막는 차원에서 덧붙이자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측이 신 전 부회장 측의 행태가 법과 거리가 멀다고 비판하는 것 역시 설득력이 부족하다. 최대주주 일가가 5%도 되지 않는 지분으로 그룹 계열사의 최고경영진 인사와 경영승계를 장악한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는 바로 본인일지 모른다. 최대주주의 의사가 법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래서 갑작스럽고,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으로 비친다.

롯데그룹은 투명성 측면에서도 오너 리스크가 심각하다. 한국 내 계열사들의 사실상 지주회사는 일본 내 두 지주사의 100% 자회사인데, 두 일본 회사의 소유지배구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국내 롯데그룹 계열사 투자자들은 투자 대상 회사의 최종적인 지배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투자한 셈이다. 아니, 원래는 명확하다고 생각했지만 부자간, 형제간 골육상쟁 과정에서 전혀 알 수 없게 돼버렸고, 주가 하락으로 그 대가를 반강제로 치르는 중이다.

사실 국내 거의 모든 대규모 기업집단은 동일한 경영진 인사 시스템을 갖고 있다. 최대주주 일가는 5%도 되지 않는 지분율로 전체 계열사의 대표이사 등 최고경영진을 사실상 추천하고 선임한다. 권한은 이처럼 막강한데, 최고경영진 선임이 잘못돼 부실경영이 이뤄져도 지분이 적으니 회사 가치 하락에 따른 손실이나 부담은 별로 없다. 권한과 책임의 괴리가 심각하다.

물론 이러한 인사시스템의 열매는 최대주주 일가에게는 달콤하다. 일감 몰아주기를 통해 최대주주 일가가 소유한 계열사에 막대한 이익을 안기기도 하고, 특정 계열사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손실에도 최대주주의 이익을 꾀하는 계열사 간 합병이나 분할을 추진하기도 쉽다. 얼마 전 한국 시장과 사회를 뒤흔든 삼성그룹 계열사 간 합병 사례도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본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이 숨겨진 이득이 계열사 경영진 선임권을 놓칠 수 없는 중요한 동기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권한과 책임의 괴리를 야기하는 핵심 수단 중 하나는 순환출자다. 재무구조가 보기보다 허약해진다거나 책임 구조가 모호해진다는 점은 부차적 문제다. 순환출자를 이용하면 돈 한 푼 들이지 않고도 계열사 자본금을 확대하고 계열사 수를 늘릴 수 있다. 순환출자에 대한 논란이 격화된 이래 여러 기업집단이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하면서 줄어들긴 했지만, 재계 5위 롯데그룹에는 400개가 넘는 순환출자 고리가 있고 그 위 순위 그룹에도 시가총액 기준 10위 이내 핵심 계열사가 순환출자 고리에 포함돼 있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힘

오너 리스크의 끝을 보다
결국 이번 롯데그룹 사례에서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한국 기업집단 지배구조의 심각한 한계를 확인한 점이라고 본다. 역설적으로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적절한 해결책은 롯데그룹 문제뿐 아니라 한국의 전반적인 지배구조를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필자는 두 가지를 핵심적으로 제안하고 싶다.

첫째, 각 계열사의 최고경영진이 그룹 최대주주 일가가 아니라, 해당 계열사 이사회와 주주의 평가를 두려워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회사 가치 경영은 바로 여기에 뿌리를 둔다. 이 점에서 보면 롯데그룹 한국 계열사 사장단이 특정 경쟁자를 지지 선언한 것은 각 계열사 주주를 안중에 두지 않는 태도가 아니고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더욱이 그룹 후계자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계열사 경영진 교체가 불가피해질 가능성이 크므로 각 계열사의 CEO 리스크를 부적절하게 극대화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대안은 주주총회에 CEO 후보 등을 추천할 임원후보추천위원회를 이사회 내에 설치하고 객관적인 후보 선정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다. 이렇게 선임된 CEO 등은 주주를 대표하는 이사회의 감독 아래 주주 일부인 최대주주보다 회사와 전체 주주의 처지에서 경영을 수행하게 될 것이다. 주주가 이사를 선임하고 이사회가 최고경영진 추천과 선임, 경영승계를 책임지는 구조는 모든 선진국의 공통된 시스템이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는 지난해 말 나온 ‘금융회사 지배구조 모범 규준’이나 얼마 전 국회를 통과한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에 포함된 내용이다. 설치 의무를 비금융회사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때다. 임원후보추천위원회에서 최고경영진 승계가 이뤄진다면, 후보자들이 언론에 자신의 우위를 공개적으로 주장하며 다툼을 벌이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둘째, 순환출자 규제를 다시 한 번 논의해야 한다. 이번 정부 초기에 이미 순환출자에 관한 규제 논의가 있었지만, 당시 규제는 신규 순환출자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합의된 바 있다. 이제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도 검토할 필요가 생겼다고 본다. 규제 강화에 따른 부작용이 우려된다면 의결권 제한 같은 조치도 검토할 만하다. 금융자본과 산업자본의 분리를 유도하려는 목적으로 금융계열사의 의결권 행사를 제한하는 장치가 이미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에 마련돼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으면 한다.



주간동아 2015.08.10 1000호 (p76~77)

  • 송민경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연구위원 mksong@cgs.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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