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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음악이 아날로그였던 시절을 추억함

‘연트럴파크’ 홍대 앞 기찻길

음악이 아날로그였던 시절을 추억함

음악이 아날로그였던 시절을 추억함
최근 서울 홍대 앞에서 가장 핫한 구역은 ‘연트럴파크’다. 예전 경의선 기찻길 자리에 새롭게 들어선 이 공원(사진)은 개장과 동시에 사람이 몰리고 있다. 연남동에 있어 연트럴파크라는 별명을 얻었다. 격세지감이다. 홍대 앞 문화의 역사에서 그 기찻길이 차지하던 의미 때문이다.

홍대 앞을 구분 지을 때, 크게 둘로 나뉜다. 이스트 홍대와 웨스트 홍대. 홍대 정문을 기준으로 오른쪽, 즉 상수역 일대가 이스트 홍대다. 산울림 소극장 일대를 웨스트 홍대라고 부른다. 나침반을 돌려보면 정확히는 ‘사우스 홍대’, ‘노스 홍대’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홍대 정문이 동양 최대의 대학 정문이 됐다고 하지만, 1990년대에는 다른 대학 건물과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말 그대로 평범한 교문이었다. 서울 지하철 6호선이 생긴 게 2000년 이후니 상수동 쪽 랜드마크는 극동방송국이었고, 산울림 소극장 일대의 그것은 기차가 거의 안 다니는 경의선 철길이었다.

어쨌거나 홍대 앞 상권이 훨씬 작았을 때였으니 이스트 홍대, 웨스트 홍대의 분위기는 달랐다. 물론 그때는 그런 구분도 없었다. 극동방송국에서 홍대 정문까지 주인공은 펑크들이었다. 형형색색 물들인 머리와 청계천에서 구매한 찡을 일일이 박아 만든 레자(인조가죽) 점퍼는 필수 아이템이었다. 물론 허리춤에는 철물점에서 산 개줄이나 체인을 달았다. 그들의 아지트는 당연히 ‘드럭’이었다.

반면 기찻길 일대는 모던록의 땅이었다. 코코어, 허클베리핀 등 ‘스팽글’에서 주로 공연하던 밴드를 중심으로 형성된 그 일대의 패션 아이템은 구제였다. 광장시장에서 구매한 구제 청바지와 티셔츠 말이다. 요즘에야 남자들도 한 사이즈 작은 티셔츠를 입는 게 아무렇지 않은 일이지만 1990년대 후반 핏감 터져나는 티셔츠를 입은 남자를 볼 수 있는 곳은 홍대 앞 외에 그리 많지 않았다(허리에 체인을 두르고 찡 박힌 가죽점퍼를 입은 사람 역시 홍대 앞 말고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그들의 아지트는 ‘스팽글’ 외에도 곱창전골의 전신인 ‘그 집에 술이 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홍대스러운’ 술집 ‘꽃’ 등이었다.

이 기찻길은 본래 신촌과 홍대를 가르는, 일종의 비무장지대(DMZ)였다. 그래서 이쪽의 음악 문화권은 1990년대 중반 쇠락하던 신촌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우드스톡’ ‘도어스’ 같은 전설적인 신촌의 음악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이들이 엄청 싼 임대료 때문에 이 일대에 자신의 가게를 내기 시작하던 게 초창기 홍대 앞 문화의 시초였다. 헤비메탈, 하드록 등 신촌에서 강세를 보이던 음악과 달리 영국의 브릿팝과 미국의 컬리지록을 종종 틀었다. 거기서 한국 모던록이 발아하기 시작했다.



기찻길 일대 허름한 고깃집들은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하러 모이는 뮤지션들의 소굴이었다. 1990년대 후반 인디음악이 융성하면서 뒤풀이도 흥했다. 공연료를 받으면 몽땅 고깃집으로 몰렸다. 한 집에서 몇 팀의 밴드 뒤풀이가 열리기도 했다. 잡초가 무성한 기찻길에서 프로필 사진을 찍기도 했고 뮤직비디오도 촬영했다. 음악이 그래도 아직 아날로그였던 시절, 음원이 아닌 음반이 더욱 일상적이었던 시절 이야기다. 모두가 20대였고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 현재를 즐기는 데 여념이 없던 시절 이야기다.

10여 년 동안 세상은 엄청나게 바뀌었고, 홍대 앞의 모습도 바뀌었다. 그때 흔적은 머나먼 기억이 돼 유물처럼 남아 있다. 주말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연트럴파크를 걸으며, 한때 젊음으로 가득했던 기찻길을 떠올렸다.



주간동아 2015.08.10 1000호 (p94~94)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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