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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3김 시대’ 이제는 안녕

‘해태 야구’ 만들어낸 김응용 감독 은퇴…김인식·김성근과 한화 사령탑 공통분모

프로야구 ‘3김 시대’ 이제는 안녕

1982년부터 33년간이나 이어진 ‘3김 시대(三金時代)’가 막을 내렸다. 정치무대 이야기가 아니다. 군사독재와 민주화 시대를 관통한 정치계의 ‘3김’과는 다른 ‘3김’이 녹색 그라운드에서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승부를 펼쳐왔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 프로야구의 중심이었고 스스로 한국 프로야구 역사를 만들어온 김응용(74) 전 감독과 김성근(73), 김인식(68) 감독이 그 주인공이다.

프로야구 33년 역사에서 이들이 동시에 프로야구 구단을 떠난 것은 2012년 단 한 해뿐이었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은 KBO(한국야구위원회) 규칙위원회와 기술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김성근 감독 역시 독립구단 고양 원더스 사령탑으로 활동했다. 무대 위는 아니었지만 여전히 프로야구 전체에 미치는 영향력이 컸다.

사상 최초 감독 은퇴식

7월 18일 수원kt위즈파크. 깔끔한 정장에 운동화를 곱게 신은 노신사가 마운드에 섰다. 70대 중반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역동적인 동작으로 공을 던졌고 그대로 미트에 꽂혔다. 사상 처음으로 열린 감독 은퇴식, 그것도 최고 선수들, 각 팀 팬들이 함께 모인 올스타전에서 열린 화려한 작별이었다. 은퇴식이기에 정장을 차려입었지만 그라운드를 존중해 구두가 아닌 운동화를 신은 모습이 진정 그다웠다.



10개 팀 감독이 뜻을 모아 준비한 은퇴식이라는 선물에 김응용 전 감독은 “영원히 다시 돌아오지 말라는 거지”라며 크게 웃었다. “노욕을 부려 다시 현장에 돌아왔다고 손가락질하고 욕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뜻깊은 자리를 만들어줘 고마울 뿐이다. 현역 때 따듯한 말 한마디 못 건넸는데…”라며 감격스러워했다. 김응용 전 감독의 화려한 은퇴는 그동안 끊길 듯 질기게 이어진 프로야구 ‘3김 시대’의 마침표였다.

2000년대 중반까지 ‘3김’의 주역은 김응용 전 감독이었다.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은 김 감독 스스로도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성과다. 지금까지 한국시리즈 정상에 선 경험이 있는 감독은 12명에 불과하다. 김 감독에 이어 김재박 전 감독과 류중일 삼성 감독이 4회 우승했다. 현역 감독 중에는 류 감독과 함께 한화 김성근(3회), kt 조범현(1회) 감독만이 한국시리즈 정상을 경험했다. 그만큼 김응용 전 감독의 10회 우승은 여전히 추격은 물론, 근접도 허용하지 않고 있다.

김응용 전 감독은 ‘해태 야구’라는 프로야구에 큰 획을 그은 하나의 문화와 전술도 완성했다. 강력한 카리스마로 최고 선수들을 하나의 팀으로 묶는 리더십이다. 마운드의 임무가 세분화되기 전 팀 내 최고 투수인 선동열을 선발이 아닌 불펜 투수로 활용한 것도 획기적이었다. 또한 야구선수 출신으로는 사상 처음이자 아직도 깨지지 않은 프로야구단 사장 자리에도 올랐다. 2004년 삼성 라이온즈 사장에 취임한 김 감독은 2004~2005년 우승을 뒷받침했고 2010년 말 퇴임했다. 그리고 2011~2012년 2년의 공백 끝에 2013년 한화 감독에 취임해 2014 시즌을 끝으로 퇴임했다.

김응용 전 감독은 한화에서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며 해태, 삼성에 이은 마지막 팀에서는 큰 실패를 경험했다. 스스로 완전히 유니폼을 벗고 은퇴해 경기 용인에서 텃밭을 가꾸며 편안한 노후를 보내고 있는 그는 “삼성 사장을 끝으로 점잖게 그만뒀어야 하는데…. 한화에서 야구가 어렵다는 걸 새삼 깨달았다. 인생이란 게 만만찮다는 걸 나이 팔십 가까이 돼서야 알았다”고 되돌아봤다.

프로야구 ‘3김 시대’ 이제는 안녕
3김과 한화의 질긴 인연

한화는 ‘3김’에게 묘한 공통점을 가진 팀이다. 김인식 감독의 현역 마지막 팀도 한화였다. 물론 프로야구 현장으로의 복귀 가능성이 남아 있지만 지금까지 마지막으로 지휘한 팀이 김응용 전 감독의 마지막 유니폼이던 한화였다. 김성근 감독은 김인식 감독, 김응용 전 감독이 최하위를 기록하며 재계약에 실패한 한화 사령탑을 맡아 올해 첫 시즌을 지휘하고 있다. 흔치 않은 인연의 엇갈림이다.

김응용 전 감독이 2013년까지 감독, 야구단 사장으로 승승장구했다면 김성근 감독의 지도자 인생은 2007년까지 정반대였다. 김 전 감독과는 달리 철저히 음지에서 자신만의 야구철학을 그라운드에 담아냈다. 김 전 감독이 최고 선수들과 함께해왔다면 김성근 감독은 주로 최약체 팀을 맡아왔다.

2002년 한국시리즈는 역대 최고 승부로 꼽힌다. 6차전에서 승리하며 삼성에 첫 우승을 안긴 김응용 전 감독은 “마치 야구의 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며 적장인 LG 김성근 감독을 한껏 치켜세우며 신을 이긴 자부심도 드러냈다.

2002년을 끝으로 LG 유니폼을 벗은 김성근 감독은 2006년까지 현장에 복귀하지 못했다. 그사이 국가대표팀에서 함께 뛰며 친구로 지낸(나이는 김응용 전 감독이 한 살 위지만 고교 졸업 연도가 같아 친구로 지낸다) 김응용 전 감독은 야구단 사장까지 올랐다.

그러나 김성근 감독의 전성기는 환갑이 지나서 찾아왔다. 2007년 아끼는 제자였던 조범현 감독이 팀 설계를 탄탄히 해놓은 SK를 맡아 첫해 우승을 했고 2008년 연이어 정상에 올랐다. 2011 시즌 중반까지 SK를 지휘해 한국시리즈 우승 3회, 준우승 1회를 기록했다.

2011년 구단과 갈등 끝에 팀을 떠난 김성근 감독은 고양 원더스를 맡은 후 팬들에게 더 높은 평가를 받았다. 미국 유학 경험의 영향으로 자율훈련을 중시했던 김응용 전 감독과는 정반대인 반복되는 훈련과 다양한 전술 응용 등의 야구색깔은 프로야구 전체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리고 김응용 전 감독이 물러난 한화 사령탑에 올라 73세 나이로 다시 프로야구 감독을 맡았다.

마지막 ‘3김’ 김인식 감독은 앞선 두 사람과는 또 다른 자신만의 독특한 색깔로 독점적인 영역을 구축했다. 양김과는 5~6년 후배로 화려함에서는 한발 비켜서 있다. 그러나 한국시리즈 10회 우승에 구단 사장까지 오른 김응용 전 감독, ‘야구의 신’이라는 자랑스러운 닉네임을 가진 김성근 감독도 갖지 못한 ‘국민감독’이라는 위대한 타이틀을 안고 있다.

국가대표 투수였던 김인식 감독은 부상으로 27세에 은퇴했다. 이후 고교,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쳤다. 1986년 해태 수석코치를 맡아 김응용 전 감독과 전성기를 함께했다. 쌍방울 초대 감독을 거쳐 95년 OB 감독이 됐고 2차례 팀을 한국시리즈 정상으로 이끌었다. 현역 감독 경력은 2009년 한화가 마지막이다. 그러나 김인식 감독은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4강, 2009년 제2회 WBC 준우승 신화를 쓰며 국민감독으로 선수와 팬 모두에게 큰 존경을 받고 있다. 특히 ‘울지 않는 새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말처럼 선수들의 발전을 참고 기다리며 능력을 최대한 이끌어낸 따뜻한 리더십은 김응용 전 감독, 김성근 감독과는 전혀 다른 야구철학이다.

김응용 전 감독은 화려하게 은퇴했고 김성근 감독은 김인식 감독의 마지막 팀 감독을 맡아 다시 왕성하게 현역 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고 김인식 감독은 사상 첫 전임 국가대표 감독이라는 영광스러운 소임을 맡아 세계소프트볼연맹(WBSC)이 개최하는 제1회 프리미어12를 통해 다시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에 선다. 3김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여전히 두 명의 김 감독은 한국 야구에서 큰 영향력을 보여주고 있다.



프로야구 ‘3김 시대’ 이제는 안녕




주간동아 2015.07.27 998호 (p64~65)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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