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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배의 food in the city

질기고 매운 이열치열 음식

서울 함흥냉면

질기고 매운 이열치열 음식

질기고 매운 이열치열 음식
질기고 맵다. 함흥냉면의 특색을 나타내는데 이 두 단어면 충분하다. 함경도 실향민들의 기질과 한이 함흥냉면 한 그릇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감자전분으로 만든 함경도식 국수는 탄력이 좋다. 가위로 자르지 않으면 국수 전체를 다 입에 넣을 때까지 잘 끊기지도 않는다. 북한 연인들은 데이트할 때 이 국수를 같이 먹는다고 한다. 오죽하면 함경도식 국수를 먹을 때 국수 가락이 그릇에 3분의 1, 공중에 3분의 1, 입과 배안에 3분의 1이 있다는 농담도 있을 정도다.

함경도에서는 우리가 함흥냉면이라 하는 국수를 농마국수 혹은 그냥 국수라고 부른다. 남한에서와 달리 함경도식 국수는 반드시 국물이 있다는 것도 특징이다. 국수 위에 얹는 고명에 따라 매콤한 가자미식해를 얹으면 회국수, 돼지고기 편육을 얹으면 육국수로 부르기도 했다.

사실 1945년 이전까지는 함흥냉면이란 말은 사용된 적이 없었다. 함흥냉면은 광복과 6·25전쟁을 거치면서 함경도와 가장 가까운 강원 속초 일대에 모여든 함경도 사람들이 만들어냈다. 함경도 실향민들은 속초에서 명태로 기반을 잡는다. 서울 중부시장은 건명태(북어)를 중심으로 한 건어물 유통의 중심지였다. 당연히 함경도 사람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중부시장 주변에 함경도 실향민이 몰려 살면서 자연스럽게 오장동 주변으로 함흥냉면 거리가 만들어졌다.

평안도 사람들이 평양냉면이라 부르는 것처럼 고향을 잃은 사람에게 오장동은 정체성을 확인하는 공간이었고, 함흥냉면은 고향의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음식이었다. 전성기 때는 20곳이 넘던 함흥냉면집이 이제는 ‘오장동 함흥냉면’ ‘신창면옥’ ‘오장동 흥남집’ 세 곳만 남았다. 서울 함흥냉면집 중 가장 오래된 ‘오장동 함흥냉면’은 1954년 청계천 평화시장 근처에서 천막 치고 장사하다 55년 오장동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 함흥냉면집은 이제 거의 비슷한 가격과 맛의 메뉴를 팔고 있다. 회냉면, 비빔냉면, 물냉면은 기본이고 회와 육고기를 반반씩 고명으로 섞은 세끼미(함경도 말로 섞었다는 뜻)냉면도 있다. 평양냉면집들에선 메밀을 삶고 난 면수를 면과 함께 내놓지만 함흥냉면집에선 고기로 우린 육수를 쓴다. 고깃국물은 매운맛을 빨리 가시게 하는 효과가 있다. 서울 종로4가에 있는 ‘곰보냉면’이나 명동 ‘함흥냉면’도 함경도식 국수로 제법 유명하다.



평양냉면이 시원한 육수와 차가운 메밀의 맛을 지닌 이냉치열(以冷治熱)의 대표 주자라면 함흥냉면은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웠던 이열치열(以熱治熱) 음식이었다. 예전에는 매운맛에 더해 식해가 내는 감칠맛과 참기름의 고소한 향, 다진 양념이 내는 또 다른 매콤한 맛이 어우러져 더욱 땀을 쏟게 하는 음식이었다. ‘땀이 부쩍 솟아나게 헉헉 혀를 내두르도록 얼얼하게 먹어야 제맛이다’(1978년 4월 20일 ‘조선일보’)라고 할 정도로 강한 맛들이 다양하게 어우러진 음식이었지만 최근 들어 단맛이 점점 강해지고 있다.

함흥냉면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맛만 달라진 것은 아니다. 질긴 함흥식 냉면을 먹기 위해 가위가 등장한 것도 새로운 볼거리다. 북한 출신 새터민들은 냉면에 가위질을 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다. 국수는 오래 살라는 기원의 의미가 담겨 있기 때문에 북한에선 절대 가위질을 하지 않는다. 남한에 정착하면서 국물이 사라진 것도 가장 큰 변화다. 정확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새로운 땅에 새로운 음식이 정착하기가 만만치 않은 일임을 함흥냉면이 보여주고 있다.

질기고 매운 이열치열 음식




주간동아 2015.07.27 998호 (p76~76)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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