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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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밀한 구성과 상상력, 베테랑 배우들의 완벽한 조화

질 파케브레네르 감독의 ‘다크 플레이스’

  • 강유정 영화평론가·강남대 교수 noxkang@daum.net

    입력2015-07-20 13: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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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밀한 구성과 상상력, 베테랑 배우들의 완벽한 조화
    살면서 너무 큰일은 만나지 않는 게 좋다. 일가족이 누군가에게 살해당하는 것 같은 일 말이다. 신문 사회면의 주인공이 되는 건 누군가에게는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의 일이 되면 단순한 기사가 아니다. 아무와도 공유하기 힘든 상처이자 회복하기 어려운 고통이다. ‘다크 플레이스’의 주인공 리비 데이가 그렇다. 여덟 살 시절, 그는 온 가족이 처참히 살해된 현장에서 유일하게 살아남는다. 영화는 그런 리비가 어른이 되고도 여전히 자기 기억 속 다크 플레이스에서 벗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시작한다.

    영화 ‘다크 플레이스’는 ‘나를 찾아줘’를 쓴 작가 길리언 플린의 소설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다. 데이비드 핀처 감독의 영화 ‘나를 찾아줘’처럼 이 영화 역시 스릴러물이다. 범죄가 일어나고, 범인이 나타나고, 그 사연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점은 사건이 모두 끝난 지 18년 만에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일가족 살해 사건의 범인은 리비의 오빠 벤 데이로 결론 난다. 문제는 오빠를 범인으로 만든 유일한 증거가 바로 8세 소녀 리비의 증언이었다는 점이다. 과연 리비는 그날 일을 제대로 기억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다만 경찰들이 “오빠가 맞지? 오빠가 엄마와 언니들을 죽였지?”라고 물었을 때 고개를 끄덕였을 뿐이다. 그렇게 엄마와 언니들, 그리고 오빠까지 잃은 리비는 사람들이 보내주는 위로금을 탕진하며 한 살, 두 살 먹어 어른이 된다. 하지만 몸만 커졌지 어른이라고 할 수 없다. 삶에 대한 뚜렷한 의지도, 아무런 목표도 없이 시간에 떠밀려 자라났을 뿐이다.

    위로 성금이 떨어져가던 리비는 용돈이라도 벌려고 범죄 해결 동아리 모임에 나간다. 그런 리비에게 동아리의 한 남자가 접근해온다. 의외의 질문을 던지면서. “정말 오빠가 범인이 맞는 것일까. 오빠가 범인이라는 아무런 증거도 없는 상황이었는데. 혹시 잘못 판단한 것은 아닐까.” 리비는 모든 것을 되돌리기엔 너무 늦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시 과거 기억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한다. 사실 오빠는 그럴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크 플레이스’는 이처럼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일가족 살해 사건 뒤에 놓인 복잡한 얼개를 풀어나간다. 하지만 혼돈스럽거나 어지럽지 않다. 8세 리비는 어떤 면에서 사건을 전혀 모르고 있다. 이제 어른이 된 리비는 자신의 과거를 들여다보며 마치 처음 보는 사건을 대하듯 실체에 접근해간다.



    사건 실마리는 엉뚱한 곳에서 풀린다. 그런데 그 엉뚱함이 무척이나 현실적이고 개연성 있게 다가온다는 점에 ‘다크 플레이스’의 강점이 있다. 세상의 그 어떤 사건도 사회와 무관하지 않다. 모든 사건의 근간에는 돈, 즉 경제적인 문제가 깔려 있다. 어쩌면 이것은 길리언 플린의 소설 전반에 흐르는 전제라 할 수 있다. 사람은 돈 때문에 간혹 해서는 안 될 선택을 하고, 돈 때문에 행복한 시절로부터 격리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불안한 눈빛의 리비 데이를 연기한 샬리즈 시어런은 그 자체로 영화의 만듦새에 만족감을 느끼게 한다. 무력하고 순진한 탐정으로서 그는 어두운 사건의 탐조등 노릇을 해낸다. 오빠 벤 데이 역을 맡은 코리 스톨과 어린 벤을 연기한 타이 셰리든의 연기도 훌륭하다. 꼬마 악녀 클로이 머레츠, 안내자 니컬러스 홀트의 연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훌륭한 영화는 날카로운 관찰력과 상상력, 그리고 치밀한 플롯(구성)으로 완성된다. 거액의 제작비나 어마어마한 기술력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보다 바로 이런 기본기에 충실한 작품들 덕에 할리우드 영화는 여전히 건강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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