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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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보당국에 드리운 ‘IS 파병’의 그림자

물밑서 시작된 워싱턴의 ‘운 떼기’… 이라크 파병 갈등 재현되나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5-07-20 10: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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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보당국에 드리운 ‘IS 파병’의 그림자
    안보당국에 드리운 ‘IS 파병’의 그림자
    6월 중순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의 여파로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가 취소되면서, 안도의 한숨을 쉰 부처는 따로 있었다. 대통령과 함께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던 한민구 장관의 국방부가 그 주인공. 대통령의 외국순방 일정을 국방부 장관이 수행하는 것은 전례를 찾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등 두 나라 사이의 군사현안이 초미 관심사로 떠오른 상황이다 보니 결정된 동행 계획이었다.

    그러나 정작 군 당국자들이 전하는 ‘안도’의 배경은 사드 문제가 아니었다. 국내외에서 핫이슈로 떠올랐던 이 사안은 미국의 구매 일정이나 그간의 논의를 감안하면 충분히 예상 가능한 변수라는 것. 한 장관을 비롯한 국방부 핵심인사들이 내심 촉각을 곤두세운 변수는 파병 문제였다고 안보라인 관계자들은 말한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격퇴작전과 관련해, 미국이 우리 측에 파병 문제를 거론하고 나설지 모른다는 신호가 방미를 앞두고 곳곳에서 울려댔다는 이야기다. 양국 정상회담이나 국방부 장관 회담을 통해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를 경우 엄청난 후폭풍을 피하기 어려운 까닭이었다.

    ‘연합전선의 강화’가 뜻하는 것

    5월 이후 미군의 IS 공습이 한계에 이르렀음은 잘 알려진 사실. 지난해 6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격퇴전략을 공식 천명한 이래 미군은 전투기와 폭격기, 무인공격기 등을 포함해 총 3000회에 가까운 공습을 단행했다. 그간 사용한 전비만 30억 달러(약 3조5000억 원)에 육박하는 수준. 그러나 IS는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와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 인접지역까지 점령하며 기세를 올렸고, 유럽 국가에서는 관련 테러가 끊이지 않고 반복됐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미국이 지상군 임무를 맡긴 이라크 정부군의 무기력한 모습. 30만에 이르는 정부군이 2만5000명 남짓한 IS군의 기습전략에 속수무책으로 영역을 내주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그간 오바마 대통령이 수차례 선을 그어온 미군 지상군 파병문제가 워싱턴 조야에서 급속도로 부상했고, 공화당 중진 의원들과 전직 국방부 장관, 예비역 장성들이 연이어 ‘파병 불가피론’의 총대를 메고 나섰다. 이라크전의 악몽이 재현될 것을 염려하는 오바마 행정부로서는 말 그대로 곤혹스러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최근 들어 우리 안보당국이 주목하는 부분은 백악관과 미 국방부가 공개적으로 언급하는 ‘국제연합전선의 강화’. 현재까지는 주로 미국과 영국이 IS 공습의 주축을 맡아왔지만, 인도주의적 지원에 머물고 있는 다른 우방국들도 군사작전에 참여하도록 유도한다는 복안이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상군을 투입할 경우에는 이라크 전쟁과 비교해 미군 병력 비율을 대폭 줄이는 대신 다른 국가들의 파병을 독려해야 한다는 게 공화당 인사들이 꺼내놓은 카드다. IS의 테러와 위해가 사실상 전 세계에 걸친 만큼, 전쟁의 정당성을 두고 프랑스 등 서유럽과 미국이 대립했던 이라크전과는 상황이 다르다는 것. 미군 병력의 희생을 최소화하겠다는 속내가 깔려 있음은 불문가지다.

    정부 당국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올해 들어 미국 측은 다양한 경로를 통해 IS 격퇴작전에 한국군이 일부나마 참여해줄 수 있는지 타진해온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군 공군 전력의 일부 파견이나 비지상군 기술병과 부대 파병 같은 구체적인 형태를 언급하기도 했다는 것.

    4월 리비아주재 한국대사관이 IS 세력에 의해 피격된 사건이 중요한 계기로 작용했다는 설명도 나온다. 그간에는 우리와 직접적 이해관계가 없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전달하며 미국 측의 ‘운 떼기’에 선을 그어왔지만, 당시 사건을 계기로 ‘국민을 설득할 논리가 없다’는 명분이 여의치 않아졌다는 설명이다. 5월 이후 외교안보라인 당국자들의 ‘경계심’이 한층 고조된 배경이다.

    특히 당국자들이 거론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IS가 미 본토에서 대규모 테러를 감행하는 경우. 이미 IS는 5월 4일 텍사스 갈랜드에서 벌어진 무함마드 만평 전시회 총격 사건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바 있다. 당시 사건은 보안요원 1명이 부상하는 선에서 마무리됐지만, IS는 “미국 15개 주에 71명의 훈련된 게릴라를 확보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공포감을 극대화했다. 마이클 모렐 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IS가 미국 본토에서 9·11테러 방식의 직접적인 공격을 하는 것은 시간문제”라고 주장한 것 역시 이 무렵 일이다.

    日 집단자위권 행사의 시범 케이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갈 경우 미국의 IS 격퇴는 국제사회의 안전을 지키는 ‘치안 유지’ 임무에서 외부의 군사 공격에 맞서는 ‘응징작전’으로 전환된다. 아직은 논쟁에 머물고 있는 미군 지상군 파병이 순식간에 현실화하리라는 사실은 불 보듯 뻔한 일. 국제법 논리로만 따지면, 일방이 침략을 받았을 때는 다른 일방이 지원한다는 한미동맹 정신에 따라 한국 역시 격퇴에 동참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한 전직 청와대 당국자는 “이 경우 한국이 지상군 파병을 피할 길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더욱 곤혹스러운 것은 일본의 행보. 7월 중순 집단자위권 관련 11개 법안을 강행 처리한 아베 신조 총리의 최근 기세를 감안하면, 먼저 나서서 자위대 지상병력의 IS 파병을 본격화할 개연성도 충분하다. ‘자국이 직접 공격을 당하지 않았다 해도, 동맹국이 공격당할 경우 무력을 사용해 저지할 수 있는 권리’라는 집단자위권의 본질에 해당하는 사안이기 때문. 그간 미국이 일본의 집단자위권을 강력하게 지원해온 이유 역시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뒀기 때문이라는 게 중론이다. 일본이 공격받으면 미국이 돕듯 미국이 공격받으면 일본이 도울 수 있어야 ‘완전한 동맹’이 된다는 논리다.

    게다가 2월 일본인 인질이 IS에 의해 참수되는 영상이 공개된 이후 일본 국내에서는 ‘국민이 살해돼도 응징할 수 없는 나라’라는 구호가 퍼지면서 평화헌법 개정 목소리에 힘이 실린 바 있다. 아베 총리는 당시 인도주의 차원의 자금 지원에 머물고 있는 IS 격퇴 참여를 파병 수준까지 확대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치며 관계법 개정 여론몰이의 불을 댕겼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의 말이다.

    “최근 워싱턴에서는 한국과 일본을 두고 동맹의 결속력을 저울질하려는 기류가 역력하다. 일본 측이 주요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한국보다 우리가 훨씬 긴요한 동맹’이라는 암시를 반복적으로 주입하고 있는 데다, 한국이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눈치만 본다는 질시도 늘고 있다. 아베 총리로서는 집단자위권 행사의 정당성을 홍보할 첫 사례로 IS만한 사안이 없지 않겠나. 일본이 파병을 결정했는데도 한국이 머뭇거리는 모습을 보인다면 워싱턴의 의구심은 한층 강력해질 게 뻔하다. 우리로서는 난감할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한국이 IS 파병을 결정할 경우 그 구성이나 임무가 이라크 파병 때와는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예상 역시 마찬가지 맥락이다. 2003년 이라크에 파병된 서희부대와 제마부대는 전후 복구와 의료지원을 담당하는 비전투병력이었고, 이듬해 미국의 전투병 요청이 거듭되면서 파병된 3000여 명의 자이툰부대 역시 도시 기반시설 재건과 치안 유지 임무를 주로 수행했다. 이후 4년 여간 지속된 파병에도 사상자 수가 ‘0’을 기록할 수 있었던 이유다.

    앞서의 전직 청와대 당국자는 “이번에도 같은 행운이 반복되길 기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최근 IS 전황이나 일본과의 경쟁구도를 감안하면 제한적인 범위에서나마 전투임무를 맡을 공산이 크고, 이 경우 한국군 장병이 희생되는 상황 역시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특히 군 당국이 가장 염려하는 부분은 2003~2004년 이라크 파병을 둘러싸고 치열하게 전개됐던 국내 논란의 재현. IS 전장(戰場) 참여를 결정할 경우, 이들의 테러가 한국을 향해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반대여론을 자극할 공산이 충분한 까닭이다. 2003년의 경우 이라크 파병 계획이 입안될 무렵부터 시민사회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된 반대여론이 청와대와 당시 여당 내부에까지 확산돼 노무현 정부 초기 최대 정치쟁점으로 떠오른 바 있다. 정점은 2004년 6월 22일 파병 철회를 요구하는 한 무장단체에 의해 살해된 김선일 씨 사건. 이후 국방부는 자이툰부대 출병식도 비공개로 진행해야 할 정도로 수세에 몰려야 했다.

    안보당국에 드리운 ‘IS 파병’의 그림자
    단기적 상황 변화, 변함없는 큰 틀

    공교롭게도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의 동반 방미가 연기된 직후 오바마 대통령은 쿠바와의 국교정상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오바마케어(건강보험개혁법), 동성결혼 합법화, 이란 핵협상 타결 등 주요 이슈에서 ‘연승’을 거두며 개가를 올리고 있다. 정부 일각에서는 이러한 미국 내 정치 상황 때문에 IS 파병을 둘러싼 한국 측 관계당국의 고민에 숨 쉴 틈이 생겼다는 분석도 나온다.

    6월까지만 해도 주요 현안에서 코너에 몰린 백악관이 돌파구 마련 차원에서 지상군 파병을 단행할지 모른다는 관측이 적잖았지만, ‘업적 쌓기(legacy building)’에 집착할 이유가 없어진 현재로서는 지상군 투입 시나리오도 한층 힘이 떨어졌으리라는 시각이다. 실제로 전략 변경 여부를 두고 관심이 집중됐던 7월 6일 미 국방부 청사 방문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IS 지도부와 핵심 기지 제거작전을 강화한다는 지침을 밝히며 지상군 파병 유보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이러한 단기적 상황 변화에도 큰 틀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는 반론 역시 만만치 않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의 전황이 답보를 거듭할 때마다 펜타곤은 지상군 파병 시나리오를 흘릴 테고, 한국의 동참을 바라는 ‘은밀한 목소리’도 반복되리라는 것. 2015년 하반기 내내 이 이슈가 청와대와 국방부, 외교부 핵심 당국자들의 심기를 괴롭힐 수밖에 없는 이유다. 수면 위로 떠오르는 순간 모든 안보 현안을 삼킬지 모르는 초대형 변수다. 동맹의 편익이 우리에게 내미는 또 다른 차원의 청구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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