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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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부금이 우선순위일 수 없어, 대학의 사회적 책임 중시”

美 하버드대 첫 한국계 동문회장 폴 최(한국명 최정열)

  • 부형권 동아일보 뉴욕 특파원 bookum90@donga.com

    입력2015-06-29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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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부금이 우선순위일 수 없어, 대학의 사회적 책임 중시”
    최근 한국 언론은 건강관리용 웨어러블(착용형) 기기를 만드는 ‘핏비트(Fitbit)’의 뉴욕증권거래소 상장 소식을 전하면서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인 제임스 박(39)이 ‘하버드대 중퇴생’임을 강조했다. 그러자 ‘한국 언론은 하버드에 왜 이렇게 열광하느냐’는 미디어 비평이 나왔다.

    한국인만 유독 하버드대에 집착하는 걸까. 자녀를 대학에 보낸 재미동포들 얘기를 들어보면 ‘명문대에 보내려는 부모 마음은 어느 곳이나 비슷하고, 하버드대의 명성은 미국 사회에서도 위력적’이란 설명이다. 하버드대 같은 명문대의 심벌을 자랑스럽게 유리창에 붙이고 다니는 자동차를 아주 쉽게 볼 수 있다. 한 재미동포는 “집주인이 정말 거만하고 무례한 미국인이었는데, 세를 든 한국계 집안의 자녀가 하버드대에 진학하자 ‘급친절 상냥모드’로 바뀌었다는 식의 일화가 꽤 있다”고 전했다.

    이처럼 하버드대가 ‘특별대우’를 받는 건 그만큼 ‘특별하게’ 들어가기 힘들기 때문이다. 세계 인재가 몰리는 이 학교는 지난해 3만4295명 지원자 가운데 2048명(6.0%)만 합격했다. 16.7 대 1의 경쟁률이다. 하버드대는 미등록자가 수백 명 있어도 그 수만큼 추가 합격자를 선발하지 않는다. 지난해에도 합격자 가운데 386명(18.8%)이 등록하지 않았지만 딱 30명만 추가로 뽑았다. 올해 지원자는 3만7305명으로 사상 최다를 기록했기 때문에 ‘합격의 문’은 더욱 좁아졌을 게 뻔하다. 최종 집계 결과는 9월 학기가 시작될 때 공개한다.

    1636년 설립된 하버드대의 첫 한국계 미국인 동문회장(7월 1일자로 1년 임기 시작)인 폴 최(51·한국명 최정열) 변호사와 최근 전화 인터뷰를 했다. 3세 때 미국으로 이민 온 최 변호사는 1986년 하버드대 경제학과, 89년 하버드대 로스쿨(법과대학원)을 졸업했고, 현재 시카고 대형로펌 ‘시들리 오스틴’의 파트너다. 2002년 경제전문지 ‘크레인스’가 뽑은 ‘성공한 40세 미만 40인’에 선정됐던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너무 어릴 때 이민 와서 한국어로는 (인사말 같은) 제한적인 표현밖에 못한다”며 기자에게 이해를 구한 뒤 영어로 대답했다.

    세 살 때 이민, 아들도 하버드대 재학



    ▼ 하버드대 진학을 꿈꾸는 학생이나 그 학부모에게 조언을 한다면.

    “하버드대 같은 대학들(places like Harvard)에 입학하기 어려운 (진짜) 이유를 잘 알아야 합니다. 하나의 합격 공식이나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There is no single formula or path). 학교 성적이나 대학수학능력시험(SAT) 점수도 매우 중요하죠. 하지만 그 수치만으로 합격이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버드대 같은 대학들은 선천적 재능이 탁월한 학생을 뽑기도 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능력이 있는 흥미로운 학생을 선발하기도 합니다. 다양한 학생이 다양한 기준으로 선발됩니다. 그래서 합격하기 힘들고, 그래서 (합격 방식에 대해) 조언하기도 어려운 것이죠.”

    하버드대의 이런 ‘다양성을 추구하는 입학사정 원칙’조차 미국 사회에선 논란거리다. 미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최근 ‘하버드대 등 미국 인기 명문대들은 1970년대부터 입학사정(査定)에서 흑인, 히스패닉 등 소수인종 배려를 해오고 있다. 그 때문에 성적이 월등히 뛰어난 아시아계 학생들이 차별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 몇십 년 전 일이지만 대학 진학할 때 하버드대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솔직히 제가 1982년 입학할 때는 그냥 ‘최고 대학 중 하나’라는 명성밖에 모르고 지원했습니다.”

    그렇게 잘 모르고 들어간 하버드대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고 한다.

    “입학 당시엔 아버지(최홍영 전 미국 위스콘신대 의대 교수)를 따라 의사가 되겠다는 막연한 생각만 있었습니다. 하지만 하버드대에서 무척이나 많은 걸 배우고, 평생의 친구들을 얻으면서 삶의 진로도 새롭게 설정하게 됐습니다. 하버드대는 그렇게 제게 엄청난 기회들(incredible opportunities)을 줬습니다. 특히 하버드대 친구와 동문 선후배 중에는 흥미로운 사람이 아주 많습니다. 같은 공간에서 그런 사람들에 둘러싸여 대화하는 건 늘 즐거운 일입니다. (하버드대 졸업생으로서) 무척 큰 보상이기도 하고요.”

    대화 중 그의 외아들 데렉(19) 군이 하버드대 2학년생이고 현재 전공 선택을 결정하는 단계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아들에 대한 구체적 정보를 요청하자 ‘자식 자랑을 스스로 하기 쑥스러웠는지’ 일리노이 주 최고 고교생 10명을 소개한 ‘시카고트리뷴’ 기사를 e메일로 보내왔다.

    ‘하버드대 진학이 확정된 데렉 최 군은 유치원생 때 아르헨티나의 국가 부도 위기 뉴스를 듣고 ‘어떻게 나라가 부도날 수 있다는 거지’ 하는 호기심을 느꼈다고 한다. 그의 지적(知的) 열정은 전통적인 생각으론 쉽게 연결되지 않는 주제들 간 연결고리를 발견하려는 열망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면 정보기술의 시각에서 영어(어학)를 탐구하고, 철학적 관점에서 생물학을 공부하는 식이다. 그의 친구들은 그를 ‘매우 친절하고 겸손한 친구’라고 평가했다.

    “기부금이 우선순위일 수 없어, 대학의 사회적 책임 중시”
    동문회는 봉사와 헌신의 기회

    한국의 고교나 대학 동문회장은 주로 부(富)나 이름(명예)이 있는 사람이 주로 맡는 경향이 짙다. 하버드대는 어떨까.

    “하버드대 동문회 간부의 선출 방식은 좀 특이한 면이 있습니다. 약 30만 명의 동문에게 ‘투표 서한’을 보냅니다. 저는 ‘시카고 지역 하버드대 동문회’ 회장을 역임하다 2009년 (글로벌) 하버드대 동문 이사회 이사로 입후보했습니다. 9명의 후보 명단을 30만 동문에게 보내 투표하면 그중 상위 6명이 이사가 되는 것이죠. 그때 저도 당선해 이사회 멤버로 꾸준히 활동해오다 이번에 임기

    1년의 동문회 회장으로 선출된 겁니다.”

    하버드대 입학이 높은 학과 성적 하나만으로 결정되지 않듯이, 동문회 임원이 되는 것도 돈이나 명성만으로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었다. 꾸준한 봉사와 헌신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최 변호사는 동문회장으로서 포부에 대해 “기부금을 많이 모으는 일이 우선순위일 수 없다”고 했다. 하버드란 이름 아래 학교(재학생)와 동문(졸업생)들이 더 단결해 하버드대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데 더욱 헌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였다.

    ▼ 하버드대의 사회적 소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하버드대는 세상에 대한 ‘엄청난 책임(tremendous responsibilities)’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최고 연구기관으로서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문제들을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여러 분야의 가장 어렵고 복잡한 이슈들을 마주하고 해결해나가야 합니다. 또 하나의 중요한 사명은 세상의 리더(지도자)들을 교육하고 육성하는 일입니다. 지역공동체, 비즈니스, 정부, 과학, 예술 등 다양한 영역에서 리더를 길러내야 합니다.”

    ‘하버드’란 이름으로 얻은 ‘엄청난 기회와 혜택’을 사회에 갚는 일은 세상의 난제를 앞장서 해결해야 하는 ‘엄청난 책임’을 이행하는 것이란 얘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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