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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for you

착한 가격에 프랑스를 능가하는 품질

미국의 부르고뉴, 오리건 ‘피노 누아르’

착한 가격에 프랑스를 능가하는 품질

“피노 누아르(Pinot Noir)를 좋아하면 가산 탕진이야.”

내가 와인 초보였을 때 피노 누아르 와인을 처음 먹어보고 마음에 들어 하자 당시 나보다 와인을 잘 아는 친구가 했던 말이다. 왜냐는 내 질문에 그 친구 답변은 “맛은 좋은데 너무 비싸”였다. 선명한 루비색에 무겁지 않은 보디감. 체리와 크랜베리를 섞은 듯한 상큼함. 숙성될수록 은은하게 올라오는 담배, 가죽, 버섯향. 피노 누아르는 우아하고 섬세한 와인의 대명사다.

하지만 피노 누아르는 수확량이 적고 기르기가 까다로울 뿐 아니라 껍질이 워낙 얇아 병충해에도 약하다. 조금만 덥거나 습해도 잘 자라지 못해 서늘하고 건조한 지역에서만 재배할 수 있다. 테루아르(terroir·토양)의 특성을 잘 드러내지만, 그러려면 피노 누아르와 궁합이 맞는 토양이어야 하고 양조 기술 또한 탁월해야 한다. 이런 조건을 모두 갖춘 곳이 프랑스 부르고뉴(Bourgogne)의 코트도르 지역이다. 석회암 토양과 서늘한 기후, 2000년을 이어온 양조 기술까지 갖췄기 때문이다. 하지만 땅이 좁고 생산량도 적다 보니 코트도르산 피노 누아르 와인은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런데 최근 피노 누아르의 새로운 강자로 떠오르는 와인 산지가 있다. 바로 미국 오리건(Oregon) 주다. 오리건 피노 누아르는 신대륙 레드와인의 달큼함보다 상큼한 크랜베리향이 많고 여기에 은은한 흙향이 어우러져 뛰어난 복합미를 자랑한다. 블라인드 테이스팅을 하면 부르고뉴 피노 누아르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오리건이 이렇게 우수한 피노 누아르 와인을 생산하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기후다. 오리건은 캘리포니아 북쪽에 위치하며 와인 산지가 해안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 서늘한 해양성 기후에 강수량이 적당하며 위도가 높아 햇빛이 풍부하고 일교차가 크다. 그 덕에 피노 누아르가 잘 익는다. 산도가 좋고 균형 잡힌 맛을 보여준다. 토양도 한몫한다. 오리건은 한때 태평양 아래 잠겨 있던 땅이어서 해양 퇴적물이 많고 여기에 화산성 토사가 섞여 피노 누아르를 기르기에 최적이다. 오리건을 미국의 부르고뉴라고 부르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노력이다. 오리건은 처음부터 양보다 질 위주로 와인을 생산해왔다. 와이너리의 75%가 연생산량 5만 병을 넘지 않는 소규모 가족 경영 와이너리다. 이들은 수익보다 품질을 추구하며 와인이 테루아르의 특성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친환경 농법을 채택하는 곳이 많다.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도 대부분 수작업으로 한다. 50년이라는 짧은 와인 역사에도 오리건 피노 누아르 와인이 고급 와인 대열에 진입하게 된 데는 아마도 이런 노력이 가장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마트나 와인숍에서 코트도르 피노 누아르 와인은 병당 10만 원을 넘기 일쑤지만 비슷한 품질의 오리건 피노 누아르 와인은 10만 원 미만에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많다. 6월 한 달간 서울 시내 레스토랑과 와인 비스트로 13곳에서 진행하는 ‘와인 바이 더 글라스’ 행사를 통해 다양한 오리건 피노 누아르 와인을 글라스 단위로 시음해볼 수도 있다.

품질도 착하고 가격도 착한 오리건 피노 누아르 와인. 섬세하고 우아한 스타일을 좋아하는 와인 애호가에겐 후회 없는 선택이 될 것이다.

착한 가격에 프랑스를 능가하는 품질




주간동아 2015.06.15 992호 (p77~77)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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