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2

2015.06.15

메르스 국면에 박원순만 날았다?

소통 물꼬 텄지만 ‘정치쇼’란 비난도…후속 대책 못 해 질타 이어져

  •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입력2015-06-15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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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르스 국면에 박원순만 날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6월 4일 오후 10시 40분쯤 서울시청에서 긴급 브리핑을 하고 “서울시는 질병관리본부로부터 환자에 대한 정보를 제공받지 못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 확산 공포’가 한국 사회를 뒤덮고 있던 6월 4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밤 10시 40분 심야 기자회견을 갖고 ‘서울시메르스대책본부장’을 자임하며 ‘투명한 정보 공개’를 전제로 시민의 협조를 요청했다.

    “서울시는 이제 시민의 안전과 생명을 위해 시민의 삶을 보호하는 길에 직접 나설 것입니다. 서울시의 모든 행정력을 총동원해 메르스 확산을 방지하고 시민의 안전을 지키는 일에 집중해나가겠습니다. 서울시 자체적으로 더 강력한 대책을 마련해나가겠습니다. 이 시간 이후부터는 제가 직접 대책본부장으로 진두지휘하겠습니다.”

    박 시장의 심야 기자회견 이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을 중심으로 ‘메르스 해결의 전기가 마련됐다’며 박 시장을 응원하는 이가 부쩍 많아졌다. 메르스 관련 정보 부족으로 어찌할지 몰라 답답해하던 국민에게 ‘이것이 문제다. 이렇게 해야 해결할 수 있다’고 해법을 제시한 것이 모두를 안도하게 만들었다는 평가에서다.

    서울시메르스대책본부장 자처

    온라인에서 시작된 ‘박원순 칭찬 릴레이’는 오프라인으로도 이어졌다.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6월 9일 서울시청에 꾸려진 ‘서울시 메르스 방역대책본부 상황실’을 찾아 “오늘 나는 박원순 서울시장을 보러온 게 아니라 서울시메르스대책본부장을 보러왔다”며 “박 시장이 정부와 지자체(지방자치단체) 간 공조·협력 체계, 정보 공유, 자체적인 역학조사와 확진 권한을 요구해 관철함으로써 지자체들이 더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방역할 수 있게 됐다”고 박 시장을 한껏 치켜세웠다. 야권뿐 아니라 여권에서조차 ‘박 시장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목소리를 냈다’며 ‘당분간 박 시장 페이스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는 분위기가 많았다.



    메르스 국면에 박원순만 날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6월 8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 위치한 ‘범정부 메르스 대책지원본부’ 상황실을 방문해 메르스 방역 대응 및 지원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그러나 6월 9일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중앙정부와 조율 없이 독자적으로 대응하면 국민이 더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며 “중앙정부와 지자체는 관련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고 빈틈없는 공조 체계를 가동해야 한다”며 차분한 대응을 주문했다. 새누리당 하태경 의원도 박원순 시장의 처신을 비난하고 나섰다. 6월 11일 하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정부의 무능이 두드러진 초기 상황에서는 ‘늑장대응보다 과잉대응이 낫다’는 박원순 서울시장 말에 많은 분이 공감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과잉대응에도 적절한 수준이 있고 그 수준을 넘으면 불필요한 과잉대응이 됨을 다수 국민이 깨닫고 있다’며 ‘적절한 과잉대응보다 더 중요한 건 일관된 대응’이라면서 ‘박 시장이 일관성을 결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하 의원은 아파트 재건축조합원 총회에는 과잉대응하고 공무원시험에는 과소대응하는 박 시장의 이중적 태도를 꼬집었다.

    ‘정치쇼’ 논란에도 한동안 차기 대통령선거(대선) 주자 경쟁에서 밀려 있던 박원순 시장은 메르스 국면에 다시금 유력 차기주자 반열에 올라섰다. 한국 사회, 특히 국민 여론의 역동성은 최근 넉 달 동안 대선 차기주자 지지율 조사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2·8 전당대회에서 새정치민주연합 당대표에 오른 문재인 대표는 한동안 ‘컨벤션효과’(전당대회 같은 정치 이벤트 직후 지지율이 상승하는 현상)를 톡톡히 누렸다. 전당대회 직후 문 대표는 20% 중·후반대의 높은 지지율을 기록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세론은 채 100일을 이어가지 못했다. 수도권과 호남 등에서 치른 4·29 재·보궐선거(재보선) 전패가 그의 발목을 잡은 것.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2500명을 대상으로 매주 실시하는 휴대전화 ARS 정례조사에 따르면, 문 대표는 4·29 재보선 참패 이후인 5월 첫째 주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에게 지지율 1위를 내준 이후 줄곧 하락세를 이어가고 있다. 한때 30%에 육박하던 문 대표 지지율은 6월 첫째 주에는 18.3%로 하락했다. 그에 반해 김무성 대표는 4·29 재보선 승리 여세를 몰아 지지율 1위에 오른 이후 20% 초반대에서 안정적인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6월 첫째 주 김 대표 지지율은 23.3%.

    문재인과 김무성 두 대표가 번갈아가며 차기 대선주자 선두다툼을 벌이는 동안 박 시장 지지율은 10%대 초반에 머물렀다. 그의 지지율은 문 대표 지지율과 연동돼 있다. 문 대표 지지율이 고공행진을 하면 박 시장 지지율은 하락했고, 반대로 문 대표 지지율이 하락하면 그의 지지율이 상승했다. 이 같은 지지율 변동은 박 시장이 문 대표를 대체할 차기주자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문재인 찍고 김무성 돌아 박원순?

    6월 첫째 주 박원순 시장 지지율은 13.8%. 정치권에서는 박 시장의 차기 대선 지지율이 앞으로 더 높아질 것이라고 본다. 박 시장이 메르스 국면에서 터닝포인트를 만들어낸 점이 국민 여론에 한동안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 이숙현 시사칼럼니스트는 “문재인 대표가 등장한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이후 한동안 주춤하던 박 시장의 지지율이 이번 메르스 심야 기자회견을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과 맞짱 뜨는 박원순 시장 이미지를 만들어내면서 반등 기회를 잡은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야권 한 관계자도 “박 시장을 다시 보기 시작한 인사가 많아졌다”며 달라진 당내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박 시장이 이번 메르스 국면에서 ‘소통’ 계기를 만들어냄으로써 ‘불통 이미지’가 강한 박 대통령과 대비된 측면이 있다. 비록 박 시장이 메르스 문제를 완전히 해결한 것은 아니지만, 소통에 목말랐던 국민에게 문제 해결을 위한 박원순식 접근 방식이 일정 부분 청량감을 줬다.”

    야권에서는 박원순 신드롬이 한동안 지속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문 대표가 친노(친노무현)-비노(비노무현) 갈등이란 고질병에 깊은 내상을 입은 데다, 4·29 재보선 참패로 심각한 외상까지 입어 쉽사리 회복하기 힘들다고 보기 때문. 새정치민주연합에서는 ‘김상곤 혁신위원회라는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문재인 대표체제가 연명치료에 들어갔지만 안락사의 길을 걷게 될지, 아니면 기적적으로 소생의 길로 들어서게 될지는 알 수 없다’는 회의론이 많다.

    새정치민주연합 한 인사는 “김상곤 혁신위원회에 거는 기대가 큰지만, 친노-비노 갈등을 부추겨 기득권을 지키려는 구체제 인사들을 한꺼번에 몰아내고 신진세력이 대거 등장할 수 있는 수준까지 혁신이 가능할지, 그런 추진력을 김상곤 혁신위원장이 발휘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메르스 국면에 박 시장이 ‘반짝 인기’를 구가했지만, 지속적인 지지율 상승으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이종훈 시사평론가는 “박 시장이 메르스 국면에서 야권 지지층에게 차기주자로서 어필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국정운영이나 문제 해결 능력까지 검증된 것은 아니다”라며 “깜짝 심야 기자회견 이후 서울시가 후속 대책을 제대로 하지 못해 질타가 이어진 점은 박 시장의 한계를 노정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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