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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타자 이승엽의 위대한 기록

통산 400홈런 대기록 달성…한일 통산 600홈런도 머지않아

국민타자 이승엽의 위대한 기록

국민타자 이승엽의 위대한 기록

6월 3일 경북 포항야구장에서 열린 2015 KBO 프로야구 롯데와 삼성의 경기에서 삼성 이승엽 선수가 400홈런을 기록했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마지막 4할 타자 테드 윌리엄스(1918~2002)는 19시즌 동안 통산 521홈런과 통산 타율 0.344라는 위대한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더 놀라운 것은 윌리엄스가 제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에 참전하며 선수생활 중 약 5년간 공백이 있었다는 점이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참전 기간(1943~45)은 타자의 신체적 전성기인 20대 중반이었다. 6·25전쟁에 참전했을 때는 기술적, 정신적으로 완성기인 30대 초반이었다. 지금도 많은 메이저리그 전문가는 약 5년여의 공백이 없었다면 윌리엄스가 ‘야구의 신’이라 부르는 베이브 루스(1895~1947·통산 714홈런)의 많은 기록을 뛰어넘을 수도 있었다고 말한다.

윌리엄스가 5년여 동안의 공백을 이겨내고 41세인 1960년까지 19시즌을 뛰며 521홈런이라는 대기록을 세웠다면, 우리나라에서는 올해 ‘국민타자’ 이승엽(삼성·39)이 8년간의 공백을 이겨내고 400홈런이란 대기록을 달성했다. 이승엽은 6월 3일 포항 롯데전 3회 말 2사에서 롯데 선발 구승민을 상대로 400호 홈런을 뽑아냈다. 1995년 열아홉 나이로 프로에 데뷔해 2003년까지 뛰었고, 일본에서 8년을 보낸 뒤 돌아온 2012년부터 올 시즌까지 14시즌을 뛰면서 400홈런을 쳤다. 아직 올 시즌은 절반도 지나지 않았지만 올해까지 계산해도 연평균 29홈런이다. 특히 이승엽은 타자의 절정기인 28세부터 35세까지 한국무대를 떠나 있었다. 8년간의 공백에도 앞으로도 쉽게 깨지기 어려운 위대한 기록을 세웠다.

장타자 기준 시즌 20홈런

이승엽은 “처음 프로에 데뷔할 때 400홈런은 메이저리그 선수들의 숫자라고 생각했다. 내가 한국 팬들 앞에서 400홈런을 치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우리나라에서 첫 번째 기록이라 의미가 더 크게 느껴진다”고 말했다.

야구 흐름과 각 시즌의 환경, 색깔에 따라 다르지만 여전히 한 시즌 20홈런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장타자의 기준으로 통한다. 한 시즌 20홈런을 치면 중심타선에 설 수 있는 강타자로 꼽힌다. 한 시즌 30홈런은 특급 수준이며, 40홈런은 슈퍼스타로 통한다. 개인 통산 400홈런은 20홈런을 20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때려야 도달할 수 있는 기록이다. 한국 프로야구는 경기 수가 메이저리그(162경기)에 비해 올 시즌 전까지 최대 30경기 이상 적었기 때문에 더 어려운 기록이었다.



이승엽의 야구 첫 시작은 투수였다. 경북고 에이스로 큰 기대를 받으며 삼성에 입단했다. 그러나 고교 시절 잦은 등판으로 왼쪽 팔에 부상을 입었다. 교과서적인 깨끗한 타격 폼을 눈여겨본 박승호 당시 타격코치의 권유로 타자로 전향했다. 그러나 당시 삼성이 이승엽에게 대형 홈런타자를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1995년 중반 삼성 사령탑에 오른 백인천 전 감독은 중장거리 타자였던 이승엽에게서 홈런타자의 가능성을 봤고, 그의 성장을 이끌었다. 여기에 특유의 성실함이 더해졌고 유연함과 손목 힘, 타격 기술이 빛을 발하면서 아시아 최고 홈런타자가 됐다.

이승엽은 1997년 처음으로 홈런왕에 올랐고 2003년까지 5차례 홈런 1위를 차지했다. 99년 한국 프로야구에서는 불가능할 것 같았던 시즌 50개 이상 홈런(54)을 기록했으며, 2003년에는 아시아 단일 시즌 최다 홈런 기록(56)을 세웠다. 이승엽의 홈런 공을 잡으려고 외야부터 관중이 입장하고 잠자리채가 등장하는 등 전 사회적인 신드롬이 일어나기도 했다.

이승엽은 소속 팀 사령탑인 류중일 감독조차 “이승엽은 삼성 이승엽이 아니라 대한민국 이승엽”이라고 말할 정도로 태극마크를 달고 야구팬들에게 잊을 수 없는 홈런을 선물해왔다.

국민타자 이승엽의 위대한 기록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통산 400홈런 기록을 달성하고 기념식을 가진 삼성 이승엽 선수.

‘국민타자’로 불리기 시작한 계기는 2000 시드니올림픽 야구경기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이었다. 이승엽은 일본 에이스 마쓰자카 다이스케를 상대로 8회 결정적인 2타점 2루타를 터뜨리며 한국 야구에 사상 첫 동메달을 안겼다. 2006년 제1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도 일본 야구의 심장 도쿄돔에서 열린 1라운드(아시아 예선) 일본전에서 8회 역전 2점 홈런을 쳤다. 2008 베이징올림픽 일본과 4강전에서도 역전 2점 홈런을 똑같은 8회에 터뜨렸다.

한국 프로야구에서 300개 이상 홈런은 이승엽을 포함해 양준혁(351), 장종훈(340), 심정수(328), 박경완(314), 송지만(311), 박재홍(300) 등 총 7명이 기록했다. 그러나 이승엽을 제외하고는 모두 은퇴했다. 현역선수 가운데 이승엽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299홈런을 기록 중인 선수는 NC 이호준이다. 그러나 이호준은 이승엽과 동갑내기인 39세다. 33세 한화 김태균이 240홈런으로 세 번째다. 앞으로 시즌 30홈런 페이스를 5년 이상 유지해야 이승엽의 기록에 도전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28세인 SK 최정(173), 29세인 넥센 박병호(172) 등이 해외 진출을 하지 않는다면 기록에 다가설 가능성이 있다.

비공식 기록이지만 이승엽은 한일 통산 600홈런이라는 위대한 기록에 대한 여정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일본에서 8년 동안 159홈런을 기록해 한일 통산 이미 500홈런을 넘어 600홈런까지 41개가 남았다. 이승엽은 38세 때인 지난 시즌에도 30개 이상 홈런을 기록했다. 올해는 산술적으로 달성이 어렵지만 큰 부상이 없다면 내년 시즌에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는 숫자다.

위대한 노력의 승리자

메이저리그에서도 600홈런은 위대한 기록으로 불린다. 500홈런만으로 모든 야구선수의 마지막 꿈인 명예의 전당 입성이 보장된다. 이미 500홈런을 달성했다면 부와 명예를 이룬 상태. 여기서 100홈런을 더 쳤다는 것은 그만큼 위대한 노력의 결과라는 점에서다.

150년 역사의 메이저리그에서 지금까지 600홈런에 도달한 주인공은 단 8명이다. 1900년대 베이브 루스(714), 윌리 메이스(660), 행크 에런(755)이 전설적인 기록을 세운 이후 600홈런은 상당 기간 실종됐다. 2000년대 이후 배리 본즈(762), 켄 그리피 주니어(630), 새미 소사(609), 짐 토미(612), 알렉스 로드리게스(664)가 600홈런 고지에 올랐다. 그러나 본즈, 소사, 로드리게스는 약물 복용 혐의가 드러나 미국에서도 기록을 정식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3명을 제외하면 600홈런의 영광은 메이저리그 역사에서 고작 5명으로 한정된다.

일본 프로야구에서 600홈런의 주인공은 2명뿐이다. 오 사다하루(왕정치)가 1959년부터 80년까지 22시즌 동안 868홈런, 노무라 가쓰야가 54년부터 80년까지 27시즌 동안 657홈런을 쳤다. 대기록이지만 당시 일본은 타구 비거리가 늘어나는 압축배트 사용을 허락했다.

이승엽은 최고 스포츠 스타지만 처음 만나는 사람은 신인 선수보다 더 겸손한 그의 모습에 깜짝 놀란다. 그뿐 아니라 그는 지독한 연습벌레다. 2005년 일본 지바 롯데 마린스에서 이승엽 전담코치로 함께했던 김성근 한화 감독은 “이승엽은 경기 전 하루 600개씩 토스 배팅을 함께 쳤고, 개그맨 김제동이 응원하려고 일본을 찾았을 때도 호텔 옥상에서 개인 훈련을 마친 후 저녁을 먹으러 갔다. 요미우리에서 2군으로 떨어졌을 때는 손바닥이 다 터져 튜브로 동여매고 피투성이 상태에서 스윙을 했다”며 “이승엽은 위대한 노력의 승리자”라고 말했다.

한국 프로야구 사상 400홈런이란 위대한 대기록을 세운 이승엽은 타고난 재능을 가진 타자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인성과 노력 두 가지 면에서도 인정받고 있는 선수다.



주간동아 2015.06.08 991호 (p66~67)

  • 이경호 스포츠동아 기자 rushlk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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