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91

2015.06.08

물은 아끼고 맛과 향은 더한 일석삼조

지구 지키는 드라이 팜드 와인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5-06-08 10: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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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물은 아끼고 맛과 향은 더한 일석삼조

    드라이 파밍으로 생산한 칠레산 몬테스 알파 와인(왼쪽)과 드라이 파밍으로 운영하는 몬테스 와이너리 포도밭.

    올해 초 세계경제포럼은 ‘글로벌 리스크 2015’ 보고서에서 물 부족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발표했다. 물은 와인 생산과도 관련 깊다. 포도밭 운영에 에이커(acre)당 연간 6만ℓ이상의 물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건조한 지역에서 강이나 지하수에만 의존해 포도밭을 유지할 경우 수자원 고갈을 쉽게 불러올 만한 수치다.

    세계 유명 와인 산지는 대체로 강수량이 적당한 곳에 위치하지만 미국 캘리포니아, 남아프리카, 호주, 칠레, 아르헨티나 등 일부 지역은 비가 부족해 관개를 하지 않으면 포도 재배가 어렵다. 하지만 그런 곳에서도 관개를 전혀 하지 않는 드라이 파밍(Dry Farming) 농법을 채택하는 와이너리가 늘고 있다. 드라이 파밍으로 포도를 재배하면 포도나무가 땅속에서 필요한 만큼만 물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환경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다. 그뿐 아니라 포도 질이 좋아져 와인 품질도 좋아진다.

    물이 풍족하고 비옥한 땅에서 자란 포도는 와인용으로 적합치 않다. 덩굴이 무성해 포도송이가 햇빛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열매 안에 수분이 많아져 맛이 희석되기 때문이다. 오히려 척박한 땅에서 시련을 겪으며 자란 포도나무가 더 맛있는 포도를 생산한다. 물과 양분이 부족하면 포도송이는 커지지 않지만 모든 양분이 열매로 집중돼 훨씬 더 농축된 당분을 품는다. 아마도 종족 번식의 본능일 것이다.

    포도송이가 작으면 과육 대비 껍질의 비율도 커진다. 와인의 색, 타닌, 향은 포도껍질에서 오기 때문에 껍질이 많다는 건 와인의 색과 향이 진해지고 타닌이 풍부해져 오래 숙성이 가능한 와인, 즉 고급 와인을 만들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지표면에 물이 충분하면 포도는 굵은 뿌리를 아래로 뻗기보다 잔뿌리를 지표면 가까이에 넓게 퍼뜨린다. 이런 포도밭은 한 해라도 가물 경우 관개를 하지 않으면 유지가 불가능하다. 반대로 물이 부족하면 포도나무는 지하수를 찾아 땅속 깊숙이 뿌리를 내린다. 지하수까지 뿌리를 내린 포도나무는 웬만한 가뭄도 견딜 뿐 아니라 지하 심층부에서 미네랄과 영양분을 빨아들이기 때문에 열매마다 테루아르(terroir·토양)가 내는 독특한 맛과 향이 담기게 된다.

    이렇게 장점이 많지만 드라이 파밍에도 문제가 있다. 바로 수확량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점. 와이너리들이 드라이 파밍을 쉽게 채택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캘리포니아, 남아프리카, 호주에는 이미 드라이 파밍을 실천하는 와이너리가 많고 그렇게 생산된 와인의 레이블에는 ‘드라이 랜드(Dry Land)’ 또는 ‘드라이 팜드(Dry Farmed)’라고 명시돼 있다.



    우리나라에서 많은 팬을 확보하고 있는 칠레산 몬테스 알파(Montes Alpha) 와인도 2012년 빈티지부터 드라이 파밍 와인을 출시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국을 방문한 몬테스 와이너리 사장은 “드라이 파밍으로 5만 명이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물을 절약했다”고 발표하면서 “생산량은 크게 줄었지만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더 맛있는 와인을 생산할 수 있으므로 드라이 파밍을 계속할 계획”이라고 역설했다.

    우리는 자연환경보호라고 하면 유기농을 쉽게 떠올린다. 하지만 물도 보호가 절실히 필요한 천연자원이다. 와인을 구매할 때 이왕이면 드라이 파밍 와인을 선택하는 것은 어떨까. 맛과 향이 더 좋은 와인을 구매하고 환경보호에도 일조하니 일석삼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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