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9

2015.05.26

호로하 전투와 고구려 장수의 최후

  • 전성영 사진작가 alisoo21@naver.com

    입력2015-05-26 14: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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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로하 전투와 고구려 장수의 최후
    2011년 5월 임진강 일대 고구려 관방유적(關防遺蹟·국경 방비를 위해 설치한 진(鎭), 영(營), 보(堡), 책(柵) 등 군사적 목적의 시설)인 ‘연천 무등리 2보루’에서 고구려 철갑이 모습을 드러냈다. 철갑은 만주대륙을 지배하며 강성했던 고구려의 국력과 기상을 가장 잘 보여주는 상징적인 유물이다. 고분 벽화에서만 보던 갑옷 실물이 놀랍게도 임진강변에서 출토된 것이다. 7세기 후반까지 임진강은 고구려의 남쪽 국경이었다.

    지금까지 고구려 찰갑(비늘갑옷) 조각이 발굴된 적은 있지만 온전하게 발굴된 것은 한반도와 중국을 통틀어 처음이었다. 발굴단장인 이선복 서울대 교수는 “출입구 옆에서 발견된 것으로 미뤄볼 때 주요 군사시설을 지키던 고구려 장수가 신라군의 급습을 받자 급히 갑옷을 버리고 도망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삼국통일 전쟁 막바지, 당나라가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자 신라군도 북진을 단행한다. 김유신은 평양성 인근 당나라군에게 군량을 전해주고 돌아오는 길에 임진강에서 고구려군과 교전을 벌인다. ‘삼국사기’에는 이날의 전투를 ‘호로하에서 고구려군이 와해됐다’고 기록돼 있다. 호로하는 경기 연천군 장남면 일대 임진강으로, 이곳에서 김유신이 이끄는 신라군에 의해 고구려군이 무너진 것이다. 임진강변에서 출토된 고구려 철갑은 1300여 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역사적인 호로하 전투와 고구려군의 최후를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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