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8

2015.05.18

섭탕, 째복탕, 막국수…자연 그대로의 맛

강원 양양의 토속 먹을거리

  • 박정배 푸드칼럼니스트 whitesudal@naver.com

    입력2015-05-18 11: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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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섭탕, 째복탕, 막국수…자연 그대로의 맛
    강원 속초는 현재 동해 북부를 대표하는 도시지만 6·25전쟁 전까지만 해도 양양군의 작은 마을이었다. 전쟁 후 실향민이 대거 속초로 몰려들고 경제가 활성화하면서 양양은 지역의 중심 자리를 속초에게 내줬다. 속초의 음식문화는 대개 함경도 실향민들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양양에는 강원 토박이의 오래된 음식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양양은 설악산 끝자락과 동해안이 맞닿아 있는 지형 덕에 식재료가 풍부하고 먹을거리도 다양하다. 특히 늦봄까지 조개의 계절이다. 양양 수산항에는 해산물이 풍부하다. 수산항에는 40년 경력의 해녀 박복신 씨가 있다. 요즘 박씨가 주로 잡는 것은 섭이라 부르는 홍합이다. 4월부터 6월까지가 제철.

    섭은 섭새김의 옛말인데 모양이 툭 튀어나온 것을 보고 지은 강원도 사투리다. 자연산 홍합인 섭은 이맘때면 살이 실하게 차오른다. 양식 홍합의 작은 알과 비교가 안 된다. 꽉 찬 속은 단단하고 깊은 맛이 난다. 박씨는 직접 잡은 섭을 해안가에 있는 자신의 식당 ‘해녀횟집’에서 판다. 자연산 섭을 제철에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섭과 파 정도만 넣고 끓이는 섭탕이다. 섭에서 나오는 맑고 투명하고 푸른 국물은 깊고 개운하다. 꾸밈없는 천연의 맛이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속은 졸깃하다. 간을 따로 안 해도 맛이 좋다. 술안주로나 식사로 좋지만 해장용으로도 그만이다.

    동해안 맑은 물속 모래에는 민들조개가 산다. 물이 더러워지면 무리를 지어 맑은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깔끔한 성격의 조개다. 하지만 작은 모양 때문에 현지에서는 쩨쩨하고 볼품없다 해서 ‘째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조개의 왕이라 부르는 백합과 사촌간이다. 어부 한석환 씨는 수산항에서 째복을 캐고 그의 아내는 째복만 파는 식당 ‘수산항물회’를 운영한다.

    바지락과 비슷한 크기의 째복을 넣고 끓인 째복탕은 재첩국과 비슷한 국물 맛이 난다. 개운하고 달달하다. 후루룩 마시는 재첩과 비교해 월등히 큰 몸집 덕에 씹는 맛도 즐길 수 있다. 고추장과 된장을 섞은 장국에 칼국수를 넣은 째복장칼국수는 가장 양양다운 음식이다. 얼큰하고 개운한 맛이 난다. 속초나 양양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째복물회는 더운 여름에 먹기 좋은 음식이다.



    양양에는 유명한 막국숫집이 많다. 특이한 것은 산악지대의 막국수와 바닷가의 막국수 문화가 극명하게 갈린다는 점이다. 석교리에 있는 ‘영광정 메밀국수’는 동치미메밀국수 명가다. 살얼음이 살짝 낀 동치미 국물과 건건하고 잘 씹히는 무는 아무 곳에서나 맛볼 수 없는 명품 동치미다. 단맛이 거의 없고 개운하다. 투박하지만 입에 착착 감기는 면발과 순한 동치미는 잘 어울린다.

    섭탕, 째복탕, 막국수…자연 그대로의 맛
    해변 마을 송전리에는 막국숫집이 몇 군데 모여 있다. 간장을 달여 채소와 섞은 육수를 사용하는 게 인상적이다. 양양은 예부터 장을 이용한 문화가 발달한 곳이다. 속초의 장을 이용한 장칼국수 같은 음식문화가 모두 양양의 장 문화를 활용한 대표적인 예다. 가장 오래되고 유명한 ‘송월막국수’는 막국수에 김을 잔뜩 넣어 김국을 연상케 하는 독특한 막국수를 판다.

    ‘송전메밀국수’는 김이 상대적으로 적게 들어간 막국수를 내놓는다. 100% 메밀로 만든 면을 사용한다. 국물이 개운하고 간장 때문에 단맛이 감도는 게 특징이다. 간장막국수는 겨울 한철에만 제대로 먹을 수 있는 동치미 막국수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사철 먹을 수 있는 간장을 이용하면서 탄생한 음식문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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