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8

2015.05.18

가짜 백수오 파동, 식약처는 왜?

소비자도 판매자도 우왕좌왕…정치권, 업체와 기관 유착 의혹 제기

  • 구희언 기자 hawkeye@donga.com

    입력2015-05-18 09:4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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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짜 백수오 파동, 식약처는 왜?

    5월 1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서울약령시장의 한 매장에 국내산 백수오와 각종 약재가 진열돼 있다.

    식용 불가 작물인 이엽우피소가 혼입된 가짜 백수오 파동과 관련해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이엽우피소는 인체에 위해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소비자의 불안감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이엽우피소가 혼입된 백수오 제품을 구매해 복용해온 피해자들은 인터넷 카페를 개설하고 제품 판매사와 제조사 ㈜내츄럴엔도텍 등에 대한 집단 소송을 준비 중이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개설된 ‘가짜 백수오 피해자모임 환불 및 피해보상을 위한 단체소송준비’(cafe.naver.com/100soo5) 카페에는 개설 10일 만에 3000여 명이 회원으로 가입해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가짜 백수오 피해자 속출

    가짜 백수오 파동으로 내츄럴엔도텍 주식이 수직 하락하며 손실을 본 개인투자자들은 ‘㈜내츄럴엔도텍 투자피해자 모임’을 결성해 내츄럴엔도텍과 김재수 대표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 시기와 방법을 조율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내츄럴엔도텍의 소액주주는 9433명으로 주식의 54.9%(1061만3649주)를 보유 중이다.

    내츄럴엔도텍의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은 2010년 식약처(당시 식약청)로부터 ‘갱년기 여성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음’으로 기능성을 인정받았다. 내츄럴엔도텍은 백수오를 활용해 2012년 216억 원 매출 규모에서 2014년 1241억 원 매출을 기록하며 급성장했다. 백수오 열풍을 주도한 TV홈쇼핑 업체들은 5월 8일 업체별로 보상 방침을 발표했지만, NS홈쇼핑을 제외한 5개 홈쇼핑 업체는 먹지 않고 남은 제품에 대해서만 환불하겠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이들이 전액 환불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이유는 환불 규모가 수백억 원에서 수천억 원에 달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홈쇼핑 업체들은 환불을 진행한 후 구상권 청구를 통해 내츄럴엔도텍 측에 책임을 물을 가능성도 높다.



    5월 13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 서울약령시장을 찾았다. 여러 상점에서 백수오(큰조롱의 덩이뿌리)를 팔고 있었으나 손님은 찾아볼 수 없었고, 건강식품을 사려는 발길마저 뚝 끊겨 상인들도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한 약재 유통업자는 “식약처의 부적절한 처신과 언론보도로 백수오 시장이 다 죽었다. 방송에서 좋다고 나온 이후 백수오 가격이 2배 이상 올랐는데, 이제는 노점상 포함해서 전부 장사가 안 된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한약방을 운영하는 한 상인은 “처음에는 백수오가 시장에서 비싼 편이 아니었는데 너도나도 찾다 보니 가격이 훌쩍 뛰었다. 그렇게 시장을 부풀려놓고 한 방에 죽여버리면 농가와 판매자들은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답답해했다. 이어 “언론에 보도되기 전까지는 유통 과정에서 뭐가 백수오고 이엽우피소인지 장사하는 사람도 구분을 못 할 정도였다. 식약처에서 나서서 ‘이건 진짜고 이건 아니다’ 구분해주지는 못할망정 손을 놓고 있다”고 말했다.

    김승희 식약처장은 5월 6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이엽우피소는 국외 식용 섭취 경험이 있고, 독성에 대해 연구한 논문 또한 과학적 신뢰성이 낮다는 전문가들 의견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볼 때 해당 제품 섭취에 따른 인체 위해 문제가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식약처는 정승 처장 재직 당시였던 지난해 12월 10일 이엽우피소를 사용해 제품을 생산한 식품제조업체 대표 등을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적발해 검찰에 송치하며 ‘식품제조업체 서진바이오텍이 식품 원료로는 사용할 수 없는 이엽우피소를 사용해 제조한 추출물을 ‘백수오·한속단 추출농축액’으로 표시해 혼합음료 제조업체에 납품했다’면서 ‘이엽우피소는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아 식품원료로 사용할 수 없다’고 명시했다. 3월 임기를 마친 정 전 처장에 이어 부임한 김 처장은 이번에 식약처가 이엽우피소 안전성 검토를 의뢰한 한국독성학회에 2007~2013년까지 명예 부회장으로 있었다.

    가짜 백수오 파동, 식약처는 왜?
    식약처의 석연찮은 태도

    한국소비자원은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남인순 의원의 요구로 제출한 ‘이엽우피소 안전성 연구 결과에 대한 검토 의견’에서 “3편의 독성 연구 논문과 해외에서 허용한 작물을 국내에서 부작용 등 안전성 문제로 불허하고 있는 사례 등을 종합하면 이엽우피소를 식용으로 섭취해도 문제없다고 쉽게 단정하기 힘들며, 국내에서 자체적인 독성 연구를 수행한 후 그 결과에 따라 최종 판단을 내리는 것이 합당하다”고 주장하는 상황이다.

    종전까지 이엽우피소에 대한 유일한 연구 논문으로 알려졌던 1998년 중국 난징 레일웨이의과대 연구진의 쥐 실험 연구 논문에 이어, 84년 중국 빈하이 수의연구소의 암퇘지 유산 연구 논문(이엽우피소와 그 가공부산물을 사료에 섞어 암퇘지 28마리에게 먹인 결과 그중 26마리가 유산 또는 사산했다), 2007년 중국 서북농림과기대 연구진의 천연 쥐약 개발 연구 논문(이엽우피소를 사료의 일부(20%)에 섞어 먹인 실험쥐군 절반이 사망해 이엽우피소가 쥐약으로서 살서(殺鼠)효과를 보였다)이 추가로 공개되면서 안전성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남 의원은 “식품안전관리 주무부처인 식약처가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이엽우피소의 독성과 인체 위해성 등 안전성에 대해 판단하지 않고 신뢰할 만한 독성 연구 결과가 없음에도 ‘인체 위해가 없다’고 단정하는 비과학적 판단으로 논란을 증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식약처는 식품안전관리 컨트롤타워 기능을 상실한 데다, 이엽우피소 안전성 판단 과정에서 식약처의 독성 및 위해성 판단에 문제가 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주장했다.

    식약처가 내츄럴엔도텍에 백수오 개별인증을 내주는 과정도 석연치 않았다는 지적이 있다. 남 의원에 따르면 내츄럴엔도텍은 2008년 2월 14일 ‘백수오 등 복합추출물’ 기능성 원료 인정을 식약처에 신청했는데, 식약처는 2008년과 2010년 두 차례 회의를 거친 후 2010년 4월 26일 업체 측에 인정 결과를 통보했다. 2010년 3월 23일 심의회의에서 제기된 문제는 기준규격과 기능성 자료를 보완해야 한다는 것. 식약처는 2010년 4월 6일 업체로부터 보완자료를 받았으나 심의회의에 재상정하지 않고, 같은 달 26일 인정을 통보했다.

    이엽우피소 유통 알고도 방치

    가짜 백수오 파동, 식약처는 왜?

    5월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보건복지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승희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이 ‘백수오 제품 원료 문제’ 관련 현안보고를 하고 있다.

    식약처가 이엽우피소가 오래전부터 시중에 유통되는 것을 알고도 방관했다는 주장도 나온다. 2009년 식약처가 대한한의사협회에 보낸 공문에는 이엽우피소가 백수오로 둔갑해 공공연히 유통되고 있으니 주의를 요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식약처는 ‘유전자 분리 및 증폭반응(PCR)’을 이용한 이엽우피소 혼입 판별 검사법을 도입하지 않다 한약재 백수오는 2014년 10월, 식품 백수오는 2014년 12월이 돼서야 PCR를 이용한 이엽우피소 혼입 판별 검사법을 도입했다. 식약처는 백수오 제품을 모니터링한 결과 2014년 한 해 동안 안면홍조, 가슴 두근거림, 두드러기 등 301건의 이상사례를 접수하기도 했다. 그러나 PCR 검사법 도입 후 현재까지 이엽우피소가 혼입된 백수오 제품을 잡아낸 건수는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약처는 2월 내츄럴엔도텍 제품을 검사했을 때도 이엽우피소 혼입을 잡아내지 못했다.

    농림축산식품부(농식품부)의 특용작물 생산 실적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309개 농가에서 187t의 백수오를 생산했고, 수입량은 79t이었다. 수원지방검찰청(수원지검)은 5월 11일 내츄럴엔도텍에 백수오 원료를 납품한 충북 등지 영농조합 3곳과 한약건재상 1곳 등 4곳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내츄럴엔도텍 공장에서 중국산 백수오 원료를 확보, 이엽우피소 혼입이 이뤄졌는지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는 “검찰에서 수사가 진행 중인 내용이라 해명이나 확인이 어렵다. 수사에 최대한 협조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식 입장은 4월 30일 나온 보도자료를 봐달라”며 말을 아꼈다. 소비자가 가장 궁금해하는 ‘이엽우피소가 식용으로 안전한가’에 대해서는 “안전하다는 게 아니라 국내에서 식경험의 부재, 사용 실태에 대한 자료가 없어 식품원료로 사용을 허용하고 있지 않았으나, 제 외국의 식용 사례 및 한국독성학회 자문 결과를 종합할 때, 이엽우피소가 혼입된 제품의 섭취로 인한 인체 위해 사례는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는 것”이라고 답변했다. 석청, 태국칡, 센나, 통캇 알리, 쓴쑥 등은 해외에서 식용 작물이지만 국내에서는 식용을 불허한 반면, 이엽우피소만 ‘위해성이 없다’고 한 데 대해 또 다른 식약처 관계자는 “식품원료로는 허가가 안 났지만, 국민이 어쩔 수 없이 (이엽우피소에) 노출된 상황에서 많이 불안해하고 있기에 안심시키고자 인체에 위해성이 없음을 알린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소비자원은 4월 22일부터 5월 5일까지 ‘1372 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백수오 관련 소비자 상담 4448건 중 부작용 사례 400여 건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할 예정이었으나 “소비자의 불안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며 5월 12일 발표를 취소했다. (사)한국식품커뮤니케이션포럼(KOFRUM)은 5월 14일 오후 이엽우피소의 독성·안전성·효능을 주제로 한 기자간담회를 열었다. 이날 한국독성학회는 이엽우피소의 독성·안전성에 대한 최종 결론이 나올 때까지는 섭취하지 말 것을 권고하면서, 식약처가 이엽우피소의 독성시험이나 위해성 평가를 이른 시일 안에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자영 식약처 식품안전평가원 독성연구과장은 “중국과 대만의 식경험으로 판단했을 때 (이엽우피소가) 이미 섭취한 사람들에게 위해성이 낮을 거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며 이엽우피소에 대한 독성시험 실시 여부에 대해서는 “검토 중이며 결정된 사항은 아니다. 2년이나 걸리는 약재의 독성·안전성 조사를 이엽우피소에 대해서도 해야 할지 논의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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