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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장원의 클래식 산책

파격적인 배치, 신선한 울림

이반 피셔와 RCO의 베토벤 사이클

파격적인 배치, 신선한 울림

파격적인 배치, 신선한 울림
올해 최대 화제 클래식 공연으로 꼽혔던 ‘로열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RCO)의 베토벤 사이클’이 4월 20일부터 23일까지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 운 좋게도 모든 공연을 참관할 수 있었는데, 한마디로 ‘아직도 새로운 베토벤 교향곡 연주가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한 매우 뜻깊고 수준 높은 공연이었다.

가장 돋보인 부분은 악기 배치의 의외성이었다. 이번에 RCO는 통상 첼로 파트 뒤쪽에 자리하는 베이스 파트를 무대 정면 최후방으로 보냈는데, 사실 이런 배치는 함께 내한한 헝가리 지휘자 이반 피셔가 자신의 악단인 ‘부다페스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BFO)’에서 기본으로 채택해온 것이다. 이 경우 대개 첼로 파트와 연동해 움직이는 베이스 파트의 특성상 앙상블에 지장이 생길 수 있지만, 그 대신 최저음부의 움직임이 한층 선명하게 부각되는 동시에 그 울림이 공연장 전체에 고르게 분산되면서 다른 악기들의 소리를 북돋우는 효과가 있다.

그뿐 아니라 피셔는 일부 곡에서 실로 파격적인 배치를 선보이기도 했는데, 이를테면 5번 4악장에서 트롬본 3대를 무대 최후방 중앙과 구석에 분산 배치해 기립해서 연주하게 한다든지, 6번에서 ‘전원’의 이미지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자 목관 수석들을 지휘대 앞으로 불러 내린다든지 하는 식이었다. 또 9번에서는 독창자들을 현악군 사이사이에 세우는가 하면, ‘터키행진곡’을 연주하는 일부 악기를 한쪽으로 몰아놓기도 했다. 이런 독특한 배치들은 앙상블 밸런스와 음향 블렌딩 면에서 청중에게 새로운 체험을 선사하는 한편, 특정 부분을 인상적으로 부각함으로써 해당 악곡들에 자못 참신한 이미지를 부여했다.

다만 오케스트라 전체 앙상블의 교합과 조형 관점에서는 다소 미흡하거나 어색한 면도 없지 않았다. 상임지휘자 마리스 얀손스의 지휘봉 아래서는 더는 정교하고 명료할 수 없었던 RCO의 앙상블이 조금은 거칠게, 때때로 산만하게 들리기까지 했는데, 어쩌면 그런 야생적이고 발산적인 인상에는 일정 부분 피셔가 다분히 과격하고 성급했던 작곡가의 성정을 고려해 의도한 측면이 있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RCO 특유의 둥글고 유려하며 기품 있는 사운드와 솔리스트들의 탁월한 명인기가 별로 퇴색하지는 않았기에, 이번 연주에 대한 인상은 ‘최고급 요리에 파프리카 소스를 뿌려놓은’ 정도에 그쳤다.

한편 전 9곡 가운데 가장 훌륭했던 연주로는 6번 교향곡 ‘전원’을 꼽고 싶다. 목관 배치상 예의 ‘새소리’가 더욱 생생하게 부각된 2악장도 좋았지만, 자연에 대한 경외와 감사를 담은 5악장은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하는 아름다움과 신비로움, 그윽함으로 다가왔다. 반면 5번은 둥글고 부드러운 소릿결을 지닌 악단의 특성이 작품 특유의 예리하고 격렬한 개성을 감쇄한 탓에 가장 불만족스러웠던 연주로 기억된다.



비록 악곡별로, 또 단원들의 컨디션에 따라 날짜별로 연주 완성도에 기복은 좀 있었지만, 이번 사이클은 지휘자의 과감하고 참신하며 개성적인 해석과 악단의 수준 높은 기량이 한데 어우러져 일궈낸 흐뭇한 위업으로 평가할 수 있겠다. 아울러 단기간 집중 체험을 통해 베토벤 교향곡의 진화상을 확인할 수 있는 귀중한 기회였다.



주간동아 2015.05.04 986호 (p77~77)

  • 황장원 음악칼럼니스트 tris72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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