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5

2015.04.27

중국 싱크탱크 성과보다 ‘관시’

연구기관보다 개인의 영향력 중시…재정적 · 정치적 독립성이 관건

  • 랴오 쉬안리 스코틀랜드 던디대 교수 번역 · 강찬구 동아시아재단 간사 ckkang@keaf.org

    입력2015-04-27 13: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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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 싱크탱크 성과보다 ‘관시’

    2009년 7월 2일부터 4일까지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 싱크탱크 정상회의’ 모습. 세계 싱크탱크와 국제기구 관계자, 각국 전현직 관료, 기업인, 학자 등 10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이를 기회로 중국은 자신의 논리와 생각을 세계에 널리 알렸다.

    중국에 정책자문기관으로서 싱크탱크가 처음 출현한 것은 1980년대 정책 추진 과정을 과학화하려는 중국 정부의 노력에 부응하는 차원에서였다. 이후 중국의 싱크탱크들은 30년간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고, 수십여 개에 그쳤던 숫자도 2014년 현재 민간과 정부 지원 기관을 합쳐 429개로 증가했다. 1830개 싱크탱크가 활동하는 미국에 이어 세계 두 번째다.

    이처럼 빠른 발전의 원동력은 물론 급속도로 진행된 세계화와 중국의 국제사회 의존성 심화다. 이제 중국 최고지도자는 전문가들에게 자문을 구하지 않고는 어떤 주요 정책결정도 내릴 수 없게 됐다. 2014년 10월 시진핑 국가주석은 한 연설에서 “높은 수준의 싱크탱크를 하루빨리 육성해 국제적인 지위를 얻어야 한다”고 역설한 바 있다.

    전형적 사례, 왕후닝

    각종 자료를 종합해보면 중국의 싱크탱크는 크게 세 종류로 나뉜다. 먼저 중국공산당과 정부 각 부처, 군부 등이 운영하는 정부 산하 연구기관이 있고, 과학 및 사회과학 계열의 연구소와 대학 부설 연구소가 그 뒤를 잇는다. 최근에는 민간 싱크탱크를 네 번째 범주로 분류하는 경우도 눈에 띄는데, 이는 민간 싱크탱크가 중국 경제나 사회정책에 미치는 영향력이 점점 확대되고 있음을 뜻한다. 여기에 각종 협회나 포럼, 재단은 물론 신화통신 같은 언론매체를 포함하느냐 여부에 따라 전체 싱크탱크 수는 200개에서 2000개 사이로 크게 엇갈린다.

    다만 중국의 정책결정 과정에는 싱크탱크 같은 연구기관보다 흔히 ‘즈낭(智囊)’으로 통칭하는 정부 정책자문위원들의 영향력이 훨씬 크게 작용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상당히 설득력 있는 이 같은 견해는 크게 두 가지 시각에서 볼 수 있다. 먼저 정책과 전략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최고지도자를 개인적으로 보좌하는 주요 정책자문위원들이 절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는 측면과 함께, 더욱이 특정 싱크탱크의 영향력은 조직 자체가 관료사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에 따라 좌우되기보다 이 싱크탱크 소속 주요 인사들이 가진 명성과 관계 깊다는 부분이 있다.



    이러한 정책자문역의 전형적인 예가 바로 왕후닝이다. 그는 상하이 푸단대 교수로 재직 중이던 1995년 장쩌민 주석의 정책자문역으로 시작해 장 주석의 이른바 ‘3개 대표론’의 기틀을 만드는 데 기여했다. 2002년부터는 후진타오 주석을 보좌하며 ‘과학발전론’의 초안을 다듬었고, 2012년 시진핑 주석 취임과 함께 중국공산당의 가장 중요한 정책결정기구인 중앙정치국 위원 자리에 올랐다. 정부 관료가 아닌 싱크탱크 소속 연구위원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울 정도로 이례적인 경우다.

    중국 싱크탱크 성과보다 ‘관시’

    ‘시진핑의 두 번째 두뇌’로 불리는 왕후닝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위원 겸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시 주석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미국과의 ‘신형대국관계’ 역시 그의 작품이라는 설이 지배적이다.

    조직 차원에서의 싱크탱크를 놓고 보면 일단 정부 산하 연구기관들이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게 학계의 중론이다. 이들 싱크탱크는 비공개 고급 정보를 접할 수 있는 데다 정보 분석과 관련해서도 정부당국과 고유의 채널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반면 중국사회과학원이나 각 대학 부설 싱크탱크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은 이들의 연구가 정책결정 심장부에서 벗어나 있는 데다 학술적 성격이 짙어서다. 재정적 제약이나 정책자문을 제공할 접근 통로도 부족한 민간 싱크탱크는 아직까지 영향력 수준이 가장 낮다고 봐야 할 것이다.

    특히 정부 산하 싱크탱크들은 여러 과제를 안고 있다. 먼저 정부에 재정적으로 의존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기본적으로 싱크탱크가 편견 없는 정책연구를 진행하려면 독립성이 필수적이지만,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는 중국의 공공 싱크탱크들은 연구 활동의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기 일쑤다. 더욱이 국내 정치 제도나 외교정책 전략 같은 민감한 사안의 경우 정치적 제약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예컨대 2014년 6월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는 중국사회과학원에 “외부세력이 침투했다”고 강하게 압박하고 나선 바 있다. 이 사건으로 중국 학계는 엄청난 논란과 혼선에 휩싸였고, 국제적 입지를 쌓으려 애써온 싱크탱크들의 그간 노력에 역효과를 일으켰다.

    빠른 성장, 낮은 성과

    마지막 한계는 경쟁의식 부족이다. 중국에서 최근까지 정책연구는 공공 싱크탱크의 전유물이었고, 이들 사이에 제 나름의 경쟁구도가 있다 해도 일정한 선을 넘지 않았다. 그렇다 보니 성과나 연구 결과물 차원에서는 국제 기준에 한참 뒤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중국 정부가 좀 더 활발하고 왕성한 정책연구 활동을 원한다면 민간 싱크탱크에 더 많은 기회와 신뢰를 줘야 한다는 견해가 힘을 얻는 배경이다.

    이렇듯 중국의 싱크탱크는 역사도 일천하고 갖가지 제약도 만만치 않지만, 최근 들어 그 나름의 국제적 인지도를 확장해나가고 있다. 2014년 세계 싱크탱크의 영향력 순위를 분석한 서구 민간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을 제외한 전 세계 50대 싱크탱크 목록에 총 3개의 중국 연구기관이 이름을 올렸다. 16위를 차지한 현대국제관계연구소, 28위에 오른 중국사회과학원, 33위에 오른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연구원이다.

    그러나 성과 면에서는 갈 길이 멀다. 예컨대 영국은 세계 세 번째인 287개 싱크탱크를 보유하고 있고 이 가운데 9개가 50위 안에 들었다. 독일의 경우 네 번째로 많은 194개 싱크탱크가 활동하고 있는데, 이 중 7개가 50대 싱크탱크에 포함됐다. 중국 지도부가 지난 30년간 정책결정 과정을 크게 개선해왔음은 분명한 사실이지만, 앞서 본 다양한 한계로 인상적인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렵다.

    특히 공공 싱크탱크는 가장 규모가 큰 연구집단이면서도 재정적, 정치적 독립성은 가장 낮다. 중국의 거시정책과 전략을 뒷받침할 심도 있는 이론 분석을 이어나갈 수 있는 잠재력은 오히려 대학 부설연구소들이 더 커 보이지만, 이들은 자신의 아이디어를 최고지도부에 전달할 통로와 기회를 찾기가 힘들다는 점에서 한계를 안고 있다. 어쩌면 중국 싱크탱크의 미래는 아직 초기 수준에 가까운 민간 싱크탱크에 정부가 얼마나 큰 믿음을 보여주느냐에 달렸다 해도 좋을 것이다.

    (영어 원문은 www.globalasia.org/article/seeking-influence-chinese-foreign-policy-think-tanks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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