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84

2015.04.20

꾀돌이 사령탑 윤정환의 도발

지난 시즌 6위 울산현대 단숨에 선두권으로…40대 감독들 치열한 승부전

  • 김도헌 스포츠동아 기자 dohoney@donga.com

    입력2015-04-20 11:2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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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꾀돌이 사령탑 윤정환의 도발

    4월 4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프로축구 2015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4라운드 울산현대 대 광주FC 경기에서 윤정환 울산 감독이 작전 지시를 하고 있다.

    윤정환(42) 신임 사령탑이 이끄는 울산현대가 2015 K리그 클래식(1부 리그) 초반 레이스를 강타하고 있다. 울산은 5라운드까지 3승2무를 기록하는 등 ‘디펜딩 챔피언’ 전북현대와 함께 시즌 초반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다. 전북은 개막 전 각 팀 감독과 간판선수들이 꼽은 ‘압도적인 1강 후보’였다. 여타 구단과는 격이 다른 두꺼운 선수층을 자랑하는 전북의 선전은 어느 정도 예상된 일. 하지만 지난해 6위에 그친 울산의 변신은 놀라울 정도다.

    윤 감독은 짧지 않은 일본 생활을 마치고 지난해 12월 새롭게 지휘봉을 잡았다. 자신의 색깔을 팀에 입히기까지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전망됐지만, 현역 시절부터 ‘꾀돌이’로 불리던 윤 감독은 사령탑으로서도 탁월한 능력을 과시하고 있다. 그는 이제 40대 초반 나이에 불과하지만 능력 있는 지도자 한 명이 팀을 단기간에 어떻게 효율적으로 바꿀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윤 감독은 선수 때 영리한 플레이로 이름을 날렸다. 공수를 조율하는 중앙 미드필더로서 창조적 플레이에 능했다. 감각적인 패싱 능력이 발군이었다. 23세 이하 대표로 1994~96년 29경기 6골을 기록했고, 94년부터 2002년까지 A매치 38경기에 나서 3골을 뽑았다. 1996 애틀랜타올림픽 축구대표팀의 핵심 플레이메이커였던 그는 성인대표로 2000 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3위와 2002 한일월드컵 4강 신화에 힘을 보탰다.

    박지성의 롤모델

    한때 한국 축구의 상징과도 같았던 박지성(은퇴)이 롤모델로 생각했던 이가 바로 윤 감독이었다. 박지성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뛰던 2009년 영국 일간지 ‘더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나의 우상은 둥가(브라질)와 윤정환 선배”라고 밝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지성은 윤 감독과 2002 한일월드컵 대표팀에서 한솥밥을 먹었다.



    프로선수로서 부천SK에서 시작해 세레소 오사카, 성남일화, 전북현대, 사간 도스 등 한일 무대를 넘나들던 그는 2007년 시즌을 끝으로 사간 도스에서 은퇴한 뒤 일본에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2008년 초 사간 도스 유소년팀 수석코치를 시작으로 1군 수석코치(2009~2010)를 거쳐 2011년 1월 1일 1군 감독이 됐다. 사간 도스는 윤 감독의 지휘 아래 2011시즌 일본 2부 리그 2위로 J리그로 승격했다. 2012시즌 5위에 이어 2014시즌 18라운드 종료 시까지 1위에 올랐지만 석연치 않은 이유로 지난 시즌 도중 사간 도스 사령탑에서 물러난 뒤 귀국길에 올랐다.

    윤 감독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부천SK 시절(1995~99) 만난 발레리 네폼냐시(72·러시아·FC 톰 톰스크 소속) 감독이다. 네폼냐시 감독은 공을 갖지 않은 선수의 움직임을 중시했다. 아기자기한 패스 게임을 할 수 있도록 공간을 잘 파고드는 것을 강조했고, 공격적 성향이 강했다. 당시 K리그에 새바람을 일으킨 네폼냐시 감독의 스타일은 ‘니포축구’란 별명으로 센세이션을 일으키기도 했고, 윤 감독은 니포축구의 핵심이었다.

    니포축구는 실점 위험을 줄이기 위해 최대한 상대방 진영에서 공을 갖고 플레이하는 것을 추구한다. 사간 도스 사령탑 시절 윤 감독은 엷은 선수층으로 최대 효과를 내고자 강한 체력에 바탕을 둔 수비 축구를 구사했다. 한 해 성적은 오프시즌에 달렸다고 믿는 그는 엄청난 훈련량으로 선수들을 조련했고, 2부 리그에 머물던 사간 도스가 1부 리그 정상급으로 발돋움할 수 있었던 것도 이 덕분이다.

    지난해 울산 지휘봉을 잡은 뒤 그는 곧바로 선수들로 하여금 ‘죽지 않을 만큼’ 땀을 흘리게 했다. 2012년 김호곤 전 감독 시절, 탄탄한 수비를 갖춘 뒤 이를 발판삼아 과감하게 역습을 노리는 ‘철퇴축구’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를 제패했던 울산은 윤 감독 부임 후 혹독한 훈련으로 니포축구와 철퇴축구가 결합한 ‘윤정환 축구’를 구사하게 됐다.

    윤 감독은 올 시즌 개막에 앞서 성남에서 공격형 미드필더 세르베르 제파로프(우즈베키스탄)를 영입했다. 제파로프는 성남 시절 박종환 전 감독으로부터 “선수도 아니다”라는 혹평을 들었지만, 윤 감독을 만나 ‘패스 마스터’로서의 옛 명성을 재현하고 있다. 김신욱과 양동현 두 장신 스트라이커는 전북 이동국-에두 조합 못지않은, K리그 클래식 최고 ‘타깃형 투톱’으로 위력을 뽐내고 있다.

    “반드시 이기고 싶다”

    꾀돌이 사령탑 윤정환의 도발

    4월 4일 울산문수축구경기장에서 열린 광주FC와 경기에서 득점한 울산 김신욱(앞)이 동료와 함께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간 도스 시절과 지금 울산 시절을 비교해보면 윤 감독이 여러 측면에서 좀 더 나은 여건에서 팀을 꾸리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한 축구인은 “K리그에서만 놓고 보면 초보사령탑이지만, 윤 감독은 이미 3년 반가량 일본에서 감독 경험을 쌓았다. 일본이 어떤 곳인가. 쉽게 한국인에게 감독직을 주는 나라가 아니다. 갑자기 사간 도스가 지난 시즌 중반 팀을 1위로 이끈 윤 감독을 경질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을 것”이라며 “선수층만 봐도 다르다. 윤 감독이 사령탑으로서 자기 능력을 보여주기에는 사간 도스보다 울산 환경이 더 나을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일본 J리그에서도 이미 지도력을 인정받은 윤 감독이 K리그 사령탑으로서 보여주고 있는 초반 돌풍은 단순한 바람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준비된 성적’이라는 말이다.

    지난해 12월 취임 기자회견에서 윤 감독은 “또래 감독들과의 대결? 나를 무서워할 것이다. 반드시 이기고 싶다”고 했다. 올 시즌 K리그에는 윤 감독뿐 아니라 포항 스틸러스 황선홍(47), 수원삼성 서정원(45), FC서울 최용수(42) 등 윤 감독과 현역 시절을 함께한 젊은 지도자가 여럿 있다. 전남드래곤즈 노상래(45), 인천 유나이티드FC 김도훈 감독(45) 등 초보 사령탑들과의 자존심 경쟁도 걸려 있다.

    윤 감독은 “나이 차가 별로 나지 않는 감독들과 좋은 라이벌 의식을 갖고, 더욱 활발한 리그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겠다. 또래 감독들과의 대결에선 반드시 이기고 싶다. 무서울 게 없다. 강하게 부딪힐 것”이라 했고, 시즌 초반 결과로 말하고 있다. 3월 8일 개막전에서는 최 감독이 이끄는 서울을 2-0으로 따돌렸고, 같은 달 15일에는 ‘동해안 더비’로 부르는 포항 황 감독에게 4-2 완승을 거뒀다.

    초반 분위기만 놓고 보면 ‘윤정환 축구’는 2015 K리그를 뜨겁게 달굴 ‘히트 상품’이 될 공산이 크다. 울산은 5월 10일 홈에서 전북을 만난다. 시즌 초반 인상적인 성적을 거두며 단숨에 40대 사령탑 선두주자로 떠오른 윤 감독이 K리그 최고 명장으로 꼽히는 50대 최강희(56) 감독과 만난다. 그야말로 시즌 판도를 점칠 수 있는 ‘빅매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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